Social Welfare

사회문제론 9. 복지국가 이론과 사회문제: 사회권, 경제위기,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전

SSSCHS 2025. 5. 1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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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이념적 기초와 발전

복지국가는 시장경제의 불평등과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국가 체제다. T.H. 마셜은 시민권의 역사적 발전을 세 단계로 구분했다: 18세기의 시민적 권리(civil rights), 19세기의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s), 20세기의 사회적 권리(social rights). 사회권은 교육, 건강, 주거, 소득보장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며, 복지국가의 핵심 토대가 된다.

복지국가의 기원은 19세기 후반 독일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 도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사회적 위험—산업재해, 실업, 질병, 노령—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대공황은 시장 자율성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냈고, 케인스주의 경제정책과 함께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정당화되었다.

베버리지 보고서(1942)는 현대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빈곤, 질병, 무지, 불결, 나태라는 '5대 악'을 퇴치하기 위한 포괄적 사회보장 체계를 제안했다.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 창설은 보편적 복지의 상징이 되었다. 2차 대전 후 서구 선진국들은 '복지국가의 황금기'를 맞이했고, 완전고용과 사회보장이 결합된 '케인스주의적 복지국가'가 확립되었다.

에스핑안데르센의 복지국가 유형론

고스타 에스핑안데르센은 『복지 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1990)에서 복지국가를 세 가지 레짐으로 분류했다. 이 유형론은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와 계층화(stratification) 정도를 기준으로 한다. 탈상품화는 개인이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하며, 계층화는 복지제도가 사회계층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다.

자유주의 복지체제(liberal welfare regime)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앵글로색슨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시장 중심적이며 선별주의적 복지를 특징으로 한다. 자산조사를 통한 공공부조가 중심이고, 보편적 급여는 제한적이다. 낮은 탈상품화 수준과 높은 계층화가 특징이며, 복지 수급자에 대한 낙인이 강하다. 개인의 자립과 노동시장 참여를 강조하는 워크페어(workfare) 정책이 발달했다.

보수주의 복지체제(conservative welfare regime)는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대륙 유럽 국가들이 속한다. 직업과 지위에 따른 사회보험이 중심이며, 가족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중간 수준의 탈상품화를 보이지만, 직업별·계층별로 분절된 복지제도는 기존 지위 차이를 유지한다. 가톨릭 교회의 영향으로 보충성 원칙(subsidiarity principle)이 작동하며, 국가는 가족과 시민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만 개입한다.

사회민주주의 복지체제(social democratic welfare regime)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보편주의적이고 포괄적인 복지를 제공하며, 높은 수준의 탈상품화를 달성했다.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급여를 제공하여 계층화를 최소화한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공공 부문 고용을 통해 완전고용을 추구한다. 높은 조세 부담과 강한 사회적 연대가 이 체제를 뒷받침한다.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복지국가의 발전은 다양한 정치경제적 요인들의 상호작용 결과다. 권력자원 이론(power resources theory)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동원과 좌파 정당의 집권이 복지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스웨덴의 사회민주당 장기 집권과 노동조합의 강력한 영향력은 포괄적 복지체제를 만들어냈다. 반면 미국의 약한 노동운동과 좌파 정당의 부재는 잔여적 복지국가를 낳았다.

신제도주의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제도의 경로의존성을 강조한다. 한번 확립된 복지제도는 수혜자 집단을 만들어내고, 이들은 복지 축소에 저항하는 정치적 지지 기반이 된다. 폴 피어슨은 복지국가가 '새로운 정치'를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복지 확대의 정치와 복지 축소의 정치는 다른 논리로 작동하며, 복지 축소는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된다.

세계화 이론은 경제 개방과 자본 이동성 증가가 복지국가에 미치는 압력을 분석한다. 자본의 초국적 이동은 각국의 조세 경쟁을 촉발하고, 복지 지출 삭감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 실증 연구들은 세계화가 복지국가를 자동적으로 약화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개방경제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보상하기 위해 복지가 확대되는 '보상 가설'도 제기된다.

경제위기와 복지국가의 전환

1970년대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주의적 복지국가의 위기를 초래했다. 경제성장 둔화와 실업 증가는 복지 재정을 압박했고, 인구 고령화는 장기적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를 경제 비효율성과 도덕적 해이의 원인으로 공격했다. 복지 의존성, 빈곤의 덫, 관료주의적 비효율성이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198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는 복지국가 축소를 시도했다. 민영화, 규제 완화, 조세 감축과 함께 복지 지출 삭감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복지 축소는 예상보다 어려웠다. 중산층도 수혜자인 연금과 의료 같은 대규모 프로그램은 정치적 저항이 컸고, 실제 삭감은 주로 빈곤층 대상 프로그램에 집중되었다.

페르슨은 복지국가가 축소보다는 '재조정'(recalibration)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구구조 변화, 가족 형태 다양화,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응하여 복지제도가 재편되고 있다. 소득이전 중심에서 사회서비스로, 수동적 소득보장에서 활성화 정책으로, 표준화된 급여에서 개인화된 서비스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의 변화

신자유주의는 시장 원리를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정치경제적 프로젝트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복지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최소국가, 자유시장, 개인적 책임을 강조하며 복지의 시장화를 주장했다.

신자유주의적 복지 개혁의 핵심은 '활성화'(activation) 정책이다. 전통적인 소득보장에서 노동시장 참여를 조건으로 하는 조건부 복지로 전환했다. 실업급여 수급 조건 강화, 구직 활동 의무화, 직업훈련 프로그램 참여 강제 등이 도입되었다. '복지에서 노동으로'(welfare to work)라는 슬로건 아래 근로연계복지가 확산되었다.

복지 서비스의 민영화와 시장화도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준시장(quasi-market) 도입, 바우처 제도, 민간 위탁 확대를 통해 공공 서비스에 경쟁 원리가 도입되었다. 뉴질랜드와 영국의 급진적 개혁은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 원칙에 따라 복지 전달체계를 재편했다. 성과 평가, 표준화, 관리주의가 복지 영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복지국가와 새로운 사회적 위험

탈산업화와 서비스 경제로의 전환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만들어냈다. 전통적 복지국가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기초했지만,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증가와 가족 구조 변화는 이 모델을 구시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일과 가정의 양립, 돌봄 서비스 부족, 한부모 가구 증가는 새로운 정책 대응을 요구한다.

비정규직 증가와 고용 불안정은 전통적 사회보험 체계의 한계를 드러낸다. 플랫폼 노동, 영시간 계약, 가짜 자영업 등 새로운 고용 형태는 기존 노동법과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기술 변화에 따른 숙련 편향적 실업은 재훈련과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기후변화와 환경 위기는 복지국가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녹색 전환(green transition)은 전통적 산업 노동자들에게 위협이 되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환경 정책과 사회 정책의 통합을 요구한다. 탄소세와 같은 환경 정책이 저소득층에 미치는 역진적 효과를 보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한국 복지국가의 발전과 특징

한국 복지국가는 발전주의 국가 모델 속에서 형성되었다. 1960-70년대 경제개발 우선 정책 하에서 복지는 최소한으로 억제되었다. 기업 중심의 복지와 가족의 역할이 국가 복지를 대체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복지 확대의 정치적 기반을 마련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복지국가의 전환점이 되었다. 대량 실업과 빈곤 증가는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을 절감시켰다. 김대중 정부는 '생산적 복지'를 표방하며 4대 사회보험을 전 국민으로 확대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은 공공부조의 권리성을 확립했다. 그러나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도 진행되어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속화되었다.

한국 복지국가는 압축적 성장을 반영하여 선별주의와 보편주의가 혼재한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보편적 제도로 발전했지만,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특수고용노동자는 실질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또한 복지 지출 수준은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며, 조세 부담률도 낮아 재정적 기반이 취약하다.

복지국가의 미래와 대안적 모델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복지국가의 근본적 재구성을 요구한다. 기술적 실업의 확산 가능성은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논의를 활성화시켰다. 핀란드, 케냐, 스페인 등에서 진행된 기본소득 실험은 새로운 소득보장 모델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재원 조달, 노동 유인, 기존 복지와의 관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 모델은 사후적 소득보장보다 사전적 역량 강화를 강조한다. 아동 조기교육, 평생학습,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인적자본을 향상시키고 고용가능성을 높이려 한다. 북유럽 국가들이 추진하는 이 전략은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의 선순환을 추구한다. 그러나 즉각적 욕구를 가진 취약계층을 소외시킬 위험도 있다.

돌봄의 사회화는 현대 복지국가의 핵심 과제가 되었다. 인구 고령화와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는 돌봄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보편적 아동돌봄, 장기요양보험, 유급 돌봄휴가는 돌봄의 탈가족화를 추구한다. 동시에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돌봄 제공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론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파괴적 효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다. 에스핑안데르센의 유형론이 보여주듯, 복지국가는 각국의 역사적 경로와 정치적 동학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20세기 후반의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의 도전은 복지국가의 축소보다는 재편을 가져왔다.

현대 복지국가는 전통적 위험과 새로운 위험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인구 고령화, 기술 변화, 기후 위기, 팬데믹은 복지국가의 적응력을 시험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후발 복지국가들은 압축적 발전의 기회와 제약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독자적인 경로를 모색하고 있다.

복지국가의 미래는 단순히 지출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와 시민권의 재구성 문제다. 보편적 기본권으로서의 사회권을 확립하면서도 개인의 자율성과 선택을 존중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또한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초국적 연대와 글로벌 사회정책의 가능성도 모색해야 한다. 복지국가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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