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 Communication

미디어론 10. 정치경제학적 미디어 접근

SSSCHS 2025. 4. 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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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를 둘러싼 권력과 자본의 구조

지금까지 우리는 미디어 효과 이론, 뉴스와 저널리즘 이론, 문화연구와 비판이론 등 다양한 관점에서 미디어를 살펴봤다. 이번에는 미디어 산업 구조와 자본, 권력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정치경제학적 접근법을 살펴본다.

정치경제학적 미디어 접근은 미디어를 문화적 텍스트나 심리적 효과의 차원을 넘어, 경제적 구조와 권력 관계의 맥락에서 분석한다. 이 관점은 미디어가 누구의 소유인지, 어떻게 재정이 조달되는지, 어떤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중심 질문으로 삼는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이론적 기반

마르크스주의와 정치경제학적 전통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마르크스의 분석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 생산 수단의 소유와 통제가 사회적 권력의 핵심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을 미디어 영역에 적용하면, 미디어 소유 구조와 통제 메커니즘이 미디어 콘텐츠와 사회적 담론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정치경제학 접근이 단순히 '경제 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요소와 정치적·이데올로기적·문화적 요소 간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즉, 미디어를 경제적 토대와 문화적·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를 매개하는 핵심 기제로 파악한다.

주요 이론가들과 그 기여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학자들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다:

  • 허버트 쉴러(Herbert Schiller): 문화 제국주의와 미국 미디어 기업의 글로벌 지배력에 주목했다. 그의 저서 「정보와 문화산업에서의 미국 제국주의(Communication and Cultural Domination)」(1976)는 미디어가 어떻게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를 지원하고 확산시키는지 분석했다.
  • 댈러스 스메이시(Dallas Smythe): 미디어 수용자를 상품으로 보는 '수용자 상품화(audience commodity)' 개념을 제시했다. 상업 미디어는 내용을 통해 시청자를 모으고, 이 '시청자의 관심'을 광고주에게 판매한다는 것이다.
  • 니콜라스 가넘(Nicholas Garnham): 문화 생산의 산업적 측면과 문화 상품의 특수성에 주목했다. 특히 문화산업이 어떻게 자본 축적 과정에 통합되는지 분석했다.
  • 빈센트 모스코(Vincent Mosco): 「정치경제학과 커뮤니케이션(The Political Economy of Communication)」(2009)에서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포괄적 이론 틀을 제시했다. 특히 '상품화(commodification)', '공간화(spatialization)', '구조화(structuration)' 개념을 통해 현대 미디어 체계를 분석했다.

기본 분석 개념과 관점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다음과 같은 핵심 개념과 관점을 중심으로 분석을 전개한다:

  1. 소유와 통제: 미디어 기업의 소유 구조, 집중도, 수직적·수평적 통합 경향이 콘텐츠 생산과 유통에 미치는 영향
  2. 상품화: 미디어 콘텐츠, 수용자 관심, 데이터 등이 어떻게 상품으로 전환되는지
  3. 구조적 제약: 광고 의존, 이윤 추구, 정부 규제 등이 미디어 내용과 기능에 미치는 구조적 제약
  4. 노동 과정: 미디어 생산에 관여하는 노동력, 노동 조건, 창의적 노동의 특성
  5. 국제적 권력 관계: 글로벌 미디어 흐름에서 나타나는 불균형과 지배 관계

허만과 촘스키의 프로파간다 모델

프로파간다 모델의 개념 및 발전

에드워드 허만(Edward Herman)과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프로파간다 모델'은 미디어 정치경제학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분석 틀 중 하나다. 이들은 1988년 발표한 「동의의 제조: 대중 미디어의 정치경제학(Manufacturing Consent: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Mass Media)」에서 미국 주류 미디어가 어떻게 지배 엘리트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뉴스를 필터링하는지 설명했다.

프로파간다 모델에 따르면, 미디어는 표면적으로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조적 제약 요인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왜곡된 뉴스를 생산한다. 이는 개별 언론인의 의도적 조작이 아니라, 미디어 체계의 구조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체계적 편향이다.

다섯 가지 뉴스 필터

허만과 촘스키는 뉴스 내용을 걸러내는 다섯 가지 '필터(filters)'를 제시했다:

  1. 소유권과 영리 지향성: 대부분의 주류 미디어는 거대 기업에 의해 소유되며, 이윤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이는 소유주의 이해관계나 광고주의 요구에 반하는 내용을 제한한다.
  2. 광고 의존성: 상업 미디어의 주 수입원은 광고다. 이는 미디어가 광고주에게 '좋은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압력을 만들고, 소비자 지향적 내용을 선호하게 한다.
  3. 정보원 의존성: 미디어는 정부, 기업, 전문가 등 '공인된' 정보원에 크게 의존한다. 이는 지배적 관점을 과대대표하고, 대안적 목소리를 주변화한다.
  4. 비판과 압력 장치: 미디어에 대한 '플랙(flak)', 즉 부정적 반응과 압력(소송, 항의, 비판 등)은 미디어가 지배적 이해관계에 도전하는 것을 억제한다.
  5. 이데올로기적 통제 메커니즘: '반공산주의'와 같은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뉴스 프레임을 형성한다. 오늘날에는 '테러와의 전쟁', '자유시장' 등의 이데올로기가 이 역할을 한다.

사례 연구: 가치 있는 희생자와 가치 없는 희생자

허만과 촘스키는 미디어 보도의 이중 잣대를 보여주기 위해 '가치 있는 희생자(worthy victims)'와 '가치 없는 희생자(unworthy victims)' 개념을 사용했다. 미국의 적대국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는 광범위하게 보도되고 도덕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반면, 미국이나 동맹국이 자행한 유사한 침해는 최소화되거나 무시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냉전 시기 소련 점령하의 폴란드 성직자 살해 사건은 미국 언론의 대대적 보도와 비난을 받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는 엘살바도르나 과테말라에서 벌어진 유사한 사건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이러한 패턴은 오늘날에도 계속되어, 미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인권 문제의 보도 방식이 달라진다.

이러한 사례 분석을 통해 허만과 촘스키는 미디어의 편향이 단순한 '실수'나 '편향'이 아니라, 권력과 이해관계의 체계적 반영임을 보여준다.

미디어 소유·규제·광고 시장의 영향

미디어 소유 집중과 그 영향

전 세계적으로 미디어 소유의 집중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소수의 거대 미디어 기업이 신문, 방송, 영화, 음악, 출판 등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수직적·수평적으로 통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를 들어, 디즈니, 컴캐스트, AT&T 등의 기업은 콘텐츠 제작부터 배급, 방송, 스트리밍까지 미디어 가치 사슬 전반을 통제한다. 이러한 소유 집중은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

  1. 콘텐츠 다양성 감소: 소수 기업이 다수의 채널과 플랫폼을 통제하면서, 표면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관점의 다양성은 제한된다.
  2. 상업적 논리 강화: 이윤 극대화 압력이 증가하면서, 공익적 콘텐츠보다 상업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콘텐츠가 선호된다.
  3. 사적 검열 위험: 거대 기업 소유주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입장이 편집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4. 정치적 영향력: 소수의 미디어 재벌이 정치적 의제 설정과 여론 형성에 불균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도 신문과 방송을 중심으로 소유 집중 현상이 나타나며, 특히 보수 진영에 편중된 소유 구조가 미디어 다양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이 있다.

규제 환경과 미디어 정책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규제 환경과 미디어 정책이 어떻게 특정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강화하는지 분석한다. 표면적으로는 '공익'을 위한 것처럼 보이는 정책도 실제로는 특정 산업 집단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기능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디어 규제 완화(deregulation)와 민영화(privatization) 정책은 '소비자 선택 확대'와 '효율성 증진'이라는 명목으로 추진되었지만, 실제로는 미디어 집중화를 심화시키고 공공 서비스 미디어를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 현상이다. 이는 본래 공익을 위해 설립된 규제 기관이 점차 규제 대상 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시민의 이익보다 통신·미디어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채택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광고와 미디어 콘텐츠의 관계

댈러스 스메이시의 '수용자 상품화' 개념에서 보듯, 광고 중심 미디어 모델에서 미디어의 실질적 상품은 콘텐츠가 아니라 '수용자의 관심'이다. 이런 구조는 미디어 콘텐츠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

  1. 타깃 청중 선호: 광고주가 선호하는 인구통계학적 집단(주로 구매력이 높은 집단)을 겨냥한 콘텐츠가 우선시된다.
  2. 소비자 문화 촉진: 미디어 콘텐츠는 직접적 광고와 별개로, 소비주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자연화하는 경향이 있다.
  3. 논쟁적 내용 회피: 광고주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논쟁적이거나 기업 이익에 반하는 내용이 자제된다.
  4. 엔터테인먼트 중심 뉴스: 심각한 공공 이슈보다 가볍고 소비자 친화적인 뉴스가 선호된다(인포테인먼트, infotainment).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화되어, 알고리즘을 통한 초개인화된 타겟팅과 '클릭베이트(clickbait)' 전략이 저널리즘의 품질을 저하시킨다는 우려가 있다.

거대 미디어 기업의 형성과 문화 제국주의

미디어 대기업의 등장과 영향력

오늘날 글로벌 미디어 산업은 소수의 거대 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연간 수익은 많은 국가의 GDP를 능가하며, 전 세계 미디어 생산과 유통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요 글로벌 미디어 기업으로는 디즈니, 컴캐스트(NBC유니버설), 바이어컴CBS, 워너미디어(AT&T), 소니, 넷플릭스 등이 있다. 이들은 단순한 미디어 회사를 넘어 '정보·엔터테인먼트 복합기업(info-entertainment conglomerates)'으로, 영화, TV, 음악, 출판, 테마파크, 스포츠, 소셜 미디어, 통신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 기업의 형성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 수평적 통합(horizontal integration): 동일 산업 내 경쟁 기업 인수합병(예: 디즈니의 21세기 폭스 인수)
  2.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 콘텐츠 생산부터 유통까지 가치 사슬 전반 통제(예: AT&T의 타임워너 인수)
  3. 다각화(diversification): 다양한 미디어 영역으로 사업 확장(예: 아마존의 영화 제작, 스트리밍 서비스)
  4. 글로벌화(globalization): 국제 시장으로 진출 확대(예: 넷플릭스의 글로벌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

문화 제국주의 논쟁

문화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 이론은 글로벌 미디어 흐름의 불균형이 단순한 상업적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문화적 지배 관계를 반영하고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허버트 쉴러, 올리버 보이드-배럿(Oliver Boyd-Barrett) 등의 학자들은 서구(특히 미국) 미디어 콘텐츠의 압도적 수출이 문화적 동질화와 현지 문화의 침식을 가져온다고 비판했다.

문화 제국주의의 주요 메커니즘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하드웨어와 인프라 통제: 선진국 기업들이 글로벌 미디어 기술과 인프라를 통제
  2. 콘텐츠 흐름의 불균형: 북반구에서 남반구로의 일방적 콘텐츠 흐름
  3. 문화적 가치와 소비 습관 수출: 서구적 생활양식과 소비주의 가치관 확산
  4. 현지 미디어 산업의 종속: 현지 미디어 산업이 글로벌 기업의 하청 역할로 전락

대안적 관점: 문화적 혼종성과 능동적 수용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문화 제국주의 관점은 다음과 같은 비판에 직면했다:

  1. 문화적 혼종성(hybridity): 글로벌 콘텐츠가 현지에서 재해석되고 혼합되어 새로운 문화 형태를 만들어낸다는 주장
  2. 능동적 수용자: 현지 수용자들이 외국 콘텐츠를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전유(appropriation)'한다는 관점
  3. 역방향 흐름: K-pop, 텔레노벨라, 볼리우드 등 비서구 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 증가
  4. 지역적 미디어 중심지: 인도, 나이지리아, 브라질, 한국 등 지역적 미디어 생산 중심지의 등장

이러한 대안적 관점은 문화 흐름의 복잡성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구조적 불평등과 권력 관계는 존재한다. 따라서 최근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단순한 '문화 제국주의' 모델을 넘어, 글로벌 미디어 체계 내의 복합적 권력 관계와 불평등 구조를 분석하고자 한다.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정치경제학

플랫폼 자본주의와 데이터 경제

디지털 환경에서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새로운 분석 과제에 직면한다. 특히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등장은 미디어 생태계와 경제 모델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플랫폼 자본주의(platform capitalism)'라는 개념은 이러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 플랫폼 기업들은 콘텐츠 생산자가 아니라 중개자로서, 사용자, 광고주, 개발자, 콘텐츠 제작자 등 다양한 행위자들을 연결하는 디지털 인프라를 통제한다.

이들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라고 불리는 데이터 추출과 상품화에 기반한다. 사용자의 온라인 활동, 위치, 선호도 등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광고 타깃팅과 예측 상품 개발에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미디어 정치경제학에 새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 데이터가 새로운 형태의 자본이 되면서, 누가 이를 소유하고 통제하는가?
  •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어떤 권력 관계와 가치를 내장하고 있는가?
  • 디지털 노동(사용자가 무보수로 제공하는 콘텐츠와 데이터)은 어떻게 착취되는가?

디지털 노동과 불안정성

전통적인 미디어 노동이 디지털 환경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중요한 연구 주제다. 정규직 기자나 제작자가 감소하고, 프리랜서, 계약직, 크라우드 워커 등 불안정 노동이 증가하면서 미디어 노동의 '유연화'와 '불안정화(precarization)'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무보수 디지털 노동(free digital labor)'의 확산이다.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이 생산하는 콘텐츠, 유튜버나 인플루언서의 활동, 사용자 리뷰와 평가 등은 플랫폼의 가치를 높이는 노동 형태지만, 전통적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한 알고리즘 관리(algorithmic management)의 확대로 콘텐츠 제작자들은 미디어 기업 경영진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알고리즘의 통제를 받게 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나 기사 작성자들이 알고리즘이 '선호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창작 과정을 조정하는 현상이 대표적 사례다.

디지털 격차와 접근성 문제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과 활용 능력의 불평등, 즉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에도 주목한다.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가 보편화되었지만, 접근성과 활용 역량은 계급, 지역, 교육 수준, 세대, 젠더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특히 주목할 점은 디지털 격차가 단순한 기술 접근성 문제를 넘어, 기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디지털 영역에서 재생산되고 심화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성 격차는 교육, 취업, 사회 참여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기회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또한 글로벌 차원에서, 디지털 인프라와 기술의 불균등한 발전은 '정보 부자'와 '정보 빈자' 국가 간의 격차를 심화시킨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 단계의 차이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 내의 구조적 불평등이 정보 영역에서 재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디어 대안과 저항의 정치경제학

공공서비스 미디어와 그 역할

상업적 미디어 모델의 대안으로, 공공서비스 미디어(Public Service Media)는 이윤 추구가 아닌 공익을 우선시하는 모델이다. 영국 BBC, 한국 KBS, 일본 NHK 등이 대표적인 공영 방송이다.

공공서비스 미디어의 핵심 가치는 다음과 같다:

  • 보편적 접근성: 모든 시민이 경제적·기술적 장벽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
  • 다양성: 상업적 성공 가능성과 관계없이 다양한 관점과 문화적 표현 촉진
  • 공공성: 시민 교육, 정보 제공, 공론장 형성 등 민주주의적 가치 우선
  • 독립성: 상업적 압력과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의 독립

그러나 공공서비스 미디어도 재정 압박, 정치적 간섭, 시청률 경쟁,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 하에서 공공 미디어에 대한 재정 지원 축소와 상업화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

대안적·급진적 미디어 실천

기업 미디어와 공공서비스 미디어 외에도, 다양한, 대안적·급진적 미디어 실천이 존재한다. 이들은 주류 미디어가 배제하는 목소리와 관점, 특히 소외된 공동체와 사회 운동의 의제를 대변하고자 한다.

대안적 미디어의 유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커뮤니티 미디어: 특정 지역이나 공동체를 위한 미디어로, 마을 방송, 공동체 라디오, 지역 신문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주류 미디어가 간과하는 지역 이슈와 문화적 표현에 초점을 맞춘다.
  2. 독립 미디어: 상업적·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 독립적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매체들. 독립 다큐멘터리, 조사 저널리즘 플랫폼, 독립 잡지 등이 이에 속한다.
  3. 대안 디지털 플랫폼: 독점적 플랫폼에 대한 대안으로, 오픈 소스, 협동조합형, 비영리 모델에 기반한 디지털 플랫폼들. 마스토돈(Mastodon)과 같은 분산형 소셜 네트워크, 위키미디어 프로젝트 등이 여기 포함된다.
  4. 행동주의 미디어(activist media): 특정 사회 운동이나 정치적 목표를 위한 미디어 활동. 환경 운동, 노동 운동, 여성 운동 등 다양한 사회 운동과 연계된 매체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대안적 미디어 실천은 다음과 같은 정치경제학적 함의를 갖는다:

  • 소유 구조의 대안: 영리 기업이나 국가가 아닌, 협동조합, 비영리 단체, 사회적 기업 등 대안적 소유 형태 실험
  • 재정 모델의 혁신: 광고 의존이 아닌 회원제, 크라우드펀딩, 보조금, 자원봉사 등 다양한 재정 방식 활용
  • 참여적 생산 구조: 전문 제작자와 일반 시민 간의 구분을 흐리는 참여적·협력적 콘텐츠 생산
  • 디지털 커먼즈: 지적 재산의 사유화가 아닌 공유와 협업에 기반한 디지털 커먼즈(commons) 구축

디지털 저항과 미디어 행동주의

디지털 시대에는 미디어 자체가 사회 변화를 위한 투쟁의 장이자 도구가 된다. '미디어 행동주의(media activism)'는 지배적 미디어 담론과 구조에 도전하고, 대안적 목소리와 실천을 확산시키는 활동을 말한다.

주요 미디어 행동주의 전략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문화 해킹(culture jamming): 기업 광고나 대중문화의 메시지를 전복적으로 재해석하거나 패러디하는 전술. 애드버스터스(Adbusters)와 같은 단체가 실천한다.
  2. 디지털 시위와 해시태그 운동: 온라인 공간에서의 집단적 행동을 통해 특정 이슈를 가시화하고 담론화하는 방식. #MeToo, #BlackLivesMatter 등의 해시태그 운동이 대표적 사례다.
  3. 해킹티비즘(hacktivism): 정치적 목적을 위한 해킹 활동. 위키리크스(WikiLeaks)의 기밀 정보 공개, 어노니머스(Anonymous)의 사이버 공격 등이 이에 속한다.
  4. 디지털 권리 운동: 인터넷 검열, 감시, 개인정보 침해, 망중립성 훼손 등에 반대하는 운동. 전자프론티어재단(EFF)과 같은 단체가 주도한다.

이러한 미디어 행동주의는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핵심 쟁점인 권력, 접근성, 소유, 통제 등의 문제를 실천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저항 활동 자체가 상업화되거나 주류에 흡수되는 '혁신의 포섭(co-optation)' 위험에도 직면한다.

현대 미디어 환경의 정치경제학적 쟁점

알고리즘 통치성과 권력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특정한 가치와 권력 관계를 내장한 '통치성(governmentality)'의 도구다. 이는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알고리즘 통치성의 주요 측면은 다음과 같다:

  1. 가시성의 관리: 알고리즘이 특정 콘텐츠를 노출하거나 감추는 방식으로 공론장의 가시성 체계를 구성한다.
  2. 행동 유도: 추천 시스템과 인터페이스 설계를 통해 사용자의 특정 행동을 유도하고 강화한다.
  3. 데이터 수집과 프로파일링: 사용자의 온라인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분류하여 통제와 상업화에 활용한다.
  4. 자동화된 의사결정: 콘텐츠 조정(content moderation), 계정 정지, 신용 평가 등 중요한 결정이 불투명한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화된다.

이러한 알고리즘 통치성은 표면적으로는 '개인화된 서비스'나 '효율적 정보 관리'로 제시되지만, 실제로는 특정 비즈니스 모델과 이데올로기적 가정에 기반한 권력 행사 방식이다. 이는 민주적 감시와 규제의 중요한 대상이 된다.

데이터 식민주의와 글로벌 불평등

글로벌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최근 쟁점 중 하나는 '데이터 식민주의(data colonialism)'라는 개념이다. 이는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전 세계, 특히 개발도상국의 사용자 데이터를 추출하여 가치화하는 과정이 식민지 시대의 자원 추출과 유사한 권력 관계를 재생산한다는 주장이다.

데이터 식민주의의 주요 특성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비대칭적 데이터 흐름: 남반구에서 추출된 데이터가 북반구 기업들의 본사로 집중되는 구조
  2. 가치 사슬의 불평등: 데이터 추출은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지만, 데이터 처리와 가치화는 소수 국가와 기업에 집중
  3. 디지털 주권의 약화: 개발도상국이 자국민의 데이터와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
  4. 북반구 중심 알고리즘: 서구 중심적 가치관과 기준에 기반한 알고리즘이 전 세계에 적용

이러한 데이터 식민주의는 디지털 시대의 문화 제국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불평등 구조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디지털 정의와 데이터 주권에 대한 논의가 국제적 차원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콘텐츠 조정과 표현의 자유

콘텐츠 조정(content moderation), 즉 온라인 플랫폼에서 어떤 콘텐츠가 허용되고 어떤 콘텐츠가 제한되는지에 관한 결정은 현대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중요한 쟁점이다.

소수의 거대 플랫폼 기업이 전 세계 수십억 사용자의 표현과 접근을 결정하는 '민간 검열자(private censors)' 역할을 맡게 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1.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 콘텐츠 삭제나 제한 결정이 어떤 기준과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2. 문화적 편향: 주로 미국 기업인 플랫폼들의 콘텐츠 정책이 다양한 문화적·지역적 맥락을 고려하는가?
  3. 경제적 동기: 광고주 보호나 이용자 참여 극대화와 같은 경제적 동기가 콘텐츠 조정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4. 공적 가치와 사적 권력: 공론장의 중요한 인프라를 사적 기업이 통제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은?

특히 혐오 표현, 가짜 뉴스, 테러리즘, 정치적 극단주의 등 논쟁적 콘텐츠에 대한 조정은 표현의 자유와 공공 안전 사이의 복잡한 균형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법적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권력과 가치의 문제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이론적·실천적 함의

미디어 리터러시와 비판적 이해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시민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특히 비판적 차원의 리터러시를 위한 중요한 도구를 제공한다. 미디어를 단순히 콘텐츠나 텍스트의 차원을 넘어, 그 배후의 구조적·경제적·정치적 맥락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적 리터러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 이 미디어는 누구의 소유인가?
  • 어떻게 재정이 조달되며, 그것이 콘텐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어떤 목소리와 관점이 우선시되고, 어떤 것이 배제되는가?
  • 이 미디어 시스템은 어떤 권력 관계와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가?

이러한 비판적 이해는 시민들이 미디어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때로는 저항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기여한다.

미디어 정책과 규제의 방향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미디어 정책과 규제에 대한 논의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단순한 기술적·행정적 접근을 넘어, 미디어 규제가 반영하고 강화하는 권력 관계와 가치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현대 미디어 정책에서 정치경제학적 관점이 제기하는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1. 소유 집중과 독점: 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의 소유 집중을 제한하고 다양성을 촉진하는 정책
  2. 공공 공간의 보호: 상업화와 사유화에 맞서 공공 미디어와 디지털 공유재(commons)를 보호하는 정책
  3. 보편적 접근성: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 모든 시민의 미디어 접근권을 보장하는 정책
  4. 데이터 권리와 알고리즘 책임성: 개인정보 보호, 데이터 소유권, 알고리즘 투명성에 관한 규제
  5. 노동 보호: 미디어와 창의 산업,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와 조건을 보호하는 정책

이러한 정책 방향은 미디어를 단순한 산업이나 기술이 아닌,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는 관점에 기반한다.

대안적 미디어 모델의 가능성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기존 상업 미디어와 플랫폼 모델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대안적 미디어 모델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러한 대안적 모델의 원칙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민주적 소유와 거버넌스: 집중화된 기업 소유가 아닌, 사용자, 노동자,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민주적 소유와 의사결정 구조
  2. 공공재로서의 미디어 인프라: 디지털 인프라와 플랫폼을 사적 이윤이 아닌 공공재로 인식하고 관리하는 접근
  3. 비상업적 가치 중심: 이윤 극대화가 아닌 사회적 가치(다양성, 포용성, 민주주의적 참여 등)를 우선시하는 운영 원칙
  4. 연대 경제: 경쟁이 아닌 협력과 상호부조에 기반한 경제 모델, 협동조합, 비영리 조직 등의 대안적 경제 형태

이러한 대안적 모델은 유토피아적 상상에 그치지 않고, 이미 다양한 형태로 실험되고 있다. 협동조합형 플랫폼, 크라우드펀딩 기반 저널리즘,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커뮤니티 소유 미디어 등이 그 사례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확장과 도전

생태적 관점과 지속가능성

최근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기존의 계급, 권력, 소유 중심 분석을 넘어, 생태적 관점과 지속가능성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물질적 기반과 환경적 영향에 주목하는 '그린 미디어 스터디(green media studies)'가 그 예다.

이러한 접근은 다음과 같은 측면을 분석한다:

  1.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발자국: 데이터 센터, 네트워크 인프라, 기기 생산 및 사용의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
  2. 전자 폐기물과 자원 고갈: 디지털 기기의 빠른 교체 주기가 만들어내는 전자 폐기물과 희귀 자원 채굴의 문제
  3. 콘텐츠 생산과 소비의 생태적 영향: 스트리밍 서비스, 클라우드 저장소, AI 기반 서비스 등의 생태적 비용
  4. 지속가능한 미디어 모델: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대안적 미디어 생산과 소비 방식의 모색

이러한 생태적 관점은 미디어를 물질적·환경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디지털 기술의 '비물질성'이라는 신화를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

교차성과 다차원적 분석

전통적 미디어 정치경제학이 주로 계급과 자본을 중심으로 분석했다면, 현대적 접근은 계급, 인종, 젠더, 성적 지향, 장애, 지역 등 다양한 사회적 위치가 교차하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 관점을 채택한다.

이러한 교차적 접근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1. 미디어 소유와 통제의 다차원적 불평등: 계급적 차원을 넘어, 인종적·젠더적 차원에서의 미디어 소유와 의사결정 불평등
  2. 노동 차별과 착취의 중층성: 미디어 산업 내 다양한 사회적 위치에 따른 노동 조건과 기회의 차별화
  3. 디지털 격차의 복합적 성격: 단순한 접근성 너머, 활용 능력, 참여 조건 등의 복합적 격차와 그 사회적 맥락
  4. 다층적 재현 정치학: 누가, 어떻게, 누구의 이야기를 전달하는지에 관한 권력과 재현의 정치학

이러한 교차적 분석은 미디어 불평등과 권력 관계를 보다 복합적이고 맥락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디지털 네이티브 시대의 정치경제학

마지막으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등장과 함께 미디어 소비와 생산의 패턴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미디어 정치경제학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전통적 개념과 분석 틀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확장되어야 한다:

  1. 크리에이터 경제(creator economy): 개인 크리에이터와 플랫폼 간의 관계, 팬-크리에이터 관계의 경제적·사회적 역학
  2. 참여 문화와 프로슈머(prosumer):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가 흐려지는 환경에서의 가치 창출과 착취 메커니즘
  3. 밈(meme) 문화와 바이럴 로직: 디지털 네이티브만의 독특한 문화적 생산과 순환 논리, 그리고 이의 상업적 포섭
  4. 디지털 친밀성의 상품화: 팬덤, 커뮤니티, 인플루언서-팔로워 관계에서 정서적 유대와 친밀성이 상품화되는 방식

이러한 새로운 현상들은 기존의 생산자-소비자, 노동-자본 구도로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권력 관계와 가치 창출 방식을 보여준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이러한 새로운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개념과 방법론을 갱신해야 한다.

비판적 관점으로 미디어 풍경 읽기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미디어와 정보 환경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가시화하는 도구다. 이는 단순히 학문적 분석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미디어와 맺는 관계, 그리고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미디어 체계의 가능성에 대한 실천적 통찰을 제공한다.

넷플릭스 시리즈를 시청하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소비하거나, 소셜 미디어를 스크롤할 때, 우리는 단순히 콘텐츠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경제적 구조, 소유 관계, 노동 조건, 알고리즘 기제, 데이터 추출과 같은 복합적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관계'를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미디어를 보다 의식적이고 비판적으로 소비하고, 나아가 더 공정하고 민주적인 미디어 환경을 위한 사회적·정치적 참여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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