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al Science

비교정치학 3. 행태주의와 후기행태주의의 등장: 정치행태 연구의 혁명적 전환과 그 한계

SSSCHS 2025. 4. 1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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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태주의 혁명의 배경과 등장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학계에서는 기존의 전통적 제도주의 접근법에 대한 비판과 함께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된 이 '행태주의 혁명'(Behavioral Revolution)은 정치학 연구 방법과 초점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행태주의는 정치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야심찬 시도였으며, 비교정치학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실증주의 철학의 영향

행태주의 등장의 지적 배경에는 논리실증주의와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강조가 있었다. 논리실증주의는 의미 있는 지식은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철학적 관점은 정치학자들에게 관찰 가능한 현상에 집중하고, 경험적 증거에 기초한 이론 구축을 강조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오스트리아 빈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와 칼 포퍼의 반증주의는 행태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철학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들은 형이상학적 주장이나 규범적 판단보다 관찰과 검증을 통해 객관적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정치학에서 이는 법률과 제도의 형식적 분석보다 실제 정치행태의 관찰과 측정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방법론적 혁신과 기술의 발전

행태주의 혁명은 방법론적 혁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설문조사, 통계분석, 내용분석 등 사회과학 연구방법이 발전하면서, 정치학자들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정치현상을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통계학의 발전과 컴퓨터 기술의 도입은 대규모 데이터 분석을 가능하게 했다. 미시간 대학의 설문조사연구센터(Survey Research Center)와 같은 기관들은 체계적인 여론조사 방법을 발전시켰고, 이는 정치행태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했다. 회귀분석, 요인분석과 같은 통계기법의 도입은 변수 간 관계를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게 했다.

전통적 제도주의에 대한 비판

행태주의는 전통적 제도주의 접근법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다. 행태주의자들은 기존 정치학이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가진다고 비판했다:

  1. 기술적(descriptive)이고 분석적이지 않음: 기존 정치학은 제도를 단순히 기술하는 데 그치고, 인과관계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부족했다.
  2. 형식적 제도에만 집중: 헌법, 법률, 공식적 규칙에만 초점을 맞추고 실제 정치행위자들의 행태와 비공식적 과정을 무시했다.
  3. 비과학적 접근: 경험적 검증 없이 규범적 주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4. 비교 가능한 개념과 이론의 부재: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체계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이 부족했다.

이러한 비판을 바탕으로, 행태주의자들은 정치학을 보다 '과학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행태주의의 핵심 원칙과 방법론

경험주의와 관찰 가능한 현상 중심

행태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은 경험주의(empiricism)다. 행태주의자들은 관찰 가능한 현상, 즉 개인과 집단의 정치행태에 초점을 맞추었다. 투표행태, 정치참여, 엘리트 의사결정, 이익집단 활동 등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 행위를 연구의 중심에 두었다.

공식적 제도나 법률보다는 실제 정치행위자들의 행태에 관심을 가졌다. 예를 들어, 의회의 공식적 권한보다는 의원들의 투표 패턴과 의사결정 과정을, 헌법상 권력구조보다는 실제 정치권력의 행사 방식을 분석했다.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 추구

행태주의는 자연과학의 방법론적 엄밀함을 정치학에 도입하고자 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나타났다:

  1.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s): 추상적 개념을 측정 가능한 형태로 정의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나 '권력'과 같은 개념을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지표로 전환했다.
  2. 체계적 자료수집: 인상주의적 관찰이 아닌 체계적이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확률표본추출에 기반한 설문조사, 내용분석, 참여관찰 등의 방법을 활용했다.
  3. 계량적 분석: 수집된 자료를 통계적 방법으로 분석하여 변수 간 관계를 파악하고자 했다. 상관관계, 회귀분석, 요인분석 등 다양한 통계기법을 활용했다.
  4. 가설 검증: 명확한 가설을 설정하고 경험적 자료를 통해 이를 검증하는 과정을 강조했다. 귀납적 추론보다는 연역적-가설 검증 모델을 선호했다.

가치중립성 추구

행태주의는 정치학 연구에서 가치중립성(value neutrality)을 강조했다. 연구자의 개인적 가치나 규범적 판단이 연구 과정에 개입되는 것을 경계하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관찰과 분석을 추구했다.

이는 '사실'과 '가치'의 구분을 전제로 한다. 행태주의자들은 '무엇이 있는가'(is)에 관한 경험적 질문과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ought)에 관한 규범적 질문을 구분했으며, 정치학은 전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화와 이론 구축 추구

행태주의는 특수한 사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보다는 일반화된 법칙이나 이론의 발견을 목표로 했다. 정치현상에 관한 일반 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예측과 설명이 가능한 이론을 구축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비교연구를 강조했으며, 서로 다른 정치체제나 맥락에서도 적용 가능한 일반적인 개념과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특히 정치행태의 패턴과 규칙성을 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비교정치학에서 행태주의의 주요 연구 영역

정치문화와 정치사회화 연구

행태주의는 비교정치학에서 정치문화 연구의 발전을 이끌었다. 가브리엘 알몬드와 시드니 버바의 '시민문화'(The Civic Culture, 1963)는 이 분야의 선구적 연구다. 이들은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멕시코 5개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 각 국가의 정치문화를 비교했다.

알몬드와 버바는 정치문화를 지역적(parochial), 신민적(subject), 참여적(participant) 유형으로 구분하고, 민주주의의 안정성과 정치문화의 관계를 분석했다. 특히 '시민문화'는 참여적 요소와 신민적 요소가 균형을 이루는 혼합 정치문화로, 이것이 민주주의의 안정에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사회화 연구도 중요한 영역이었다. 데이비드 이스턴과 잭 데니스는 아동기 정치사회화 과정을 연구하며, 정치적 태도와 가치관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투표행태와 정치참여 연구

투표행태 연구는 행태주의 정치학의 대표적 영역이었다. 안쥬 캠벨과 동료들의 '미국 유권자'(The American Voter, 1960)는 정당일체감 모델을 제시하며 투표 결정 요인을 분석했다. 이후 이 모델은 다른 국가들에도 적용되어 비교정치학적 연구로 확장되었다.

시드니 버바와 노먼 나이의 '정치참여'(Participation in America, 1972) 연구는 투표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정치참여를 분석했다. 이들은 정치참여의 사회경제적 결정요인을 밝히고, 국가 간 참여 패턴의 차이를 비교했다.

로버트 달의 '다원주의 민주주의'(Polyarchy, 1971) 연구는 정치참여와 경쟁의 두 차원을 기준으로 다양한 정치체제를 분류하고 비교했다. 이는 민주주의 이행 연구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정치 엘리트와 리더십 연구

행태주의는 정치 엘리트와 리더십에 대한 체계적 연구도 발전시켰다. 로버트 퍼트남의 '비교 엘리트 연구'는 여러 국가의 정치 엘리트 충원 과정과 사회적 배경을 비교했다. 로버트 달의 '뉴헤이븐에서의 누가 통치하는가'(Who Governs? 1961)는 지역사회 권력구조를 분석하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하롤드 라스웰의 정치심리학 연구는 정치 지도자의 성격과 리더십 스타일을 분석했다. 이후 마가렛 허만, 제임스 배버 등이 이 전통을 발전시켜 비교정치학적 관점에서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을 연구했다.

이익집단과 정치적 압력 연구

데이비드 트루먼의 '정부과정'(The Governmental Process, 1951)은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이익집단 정치를 분석했다. 맨서 올슨의 '집합행동의 논리'(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 1965)는 이익집단 형성과 활동의 문제를 합리적 선택 접근법으로 설명했다.

필립 슈미터와 게하르트 렘브루흐는 이익중개(interest intermediation) 시스템을 다원주의(pluralism)와 조합주의(corporatism)로 구분하고, 서로 다른 국가들의 이익집단 체계를 비교했다. 이는 비교정치경제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행태주의의 기여와 영향

방법론적 엄밀성 향상

행태주의의 가장 큰 기여 중 하나는 정치학 연구의 방법론적 엄밀성을 크게 향상시킨 것이다. 체계적인 자료수집과 분석 방법, 명확한 개념 정의와 측정, 가설 검증을 통한 이론 구축 등은 정치학의 과학적 기반을 강화했다.

특히 비교정치학에서 행태주의는 국가 간 체계적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개념적·방법론적 도구를 제공했다. 서로 다른 맥락의 정치현상을 비교할 수 있는 공통 변수와 측정도구가 발전했으며, 이는 현대 비교정치학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연구 영역의 확장

행태주의는 정치학의 연구 영역을 크게 확장했다. 기존의 제도 중심 연구에서 벗어나 정치문화, 정치적 태도, 투표행태, 정치참여, 정치심리 등 다양한 영역으로 연구가 확대되었다.

특히 미시적 수준(개인, 집단)의 정치현상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다. 정치적 사회화 과정, 정치적 의사결정의 심리적 기제, 정치참여의 동기와 패턴 등에 관한 연구가 발전했다.

비교가능한 개념과 이론 발전

행태주의는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비교할 수 있는 일반적 개념과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는 비교정치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가브리엘 알몬드와 G. 빙햄 파월의 '비교정치'(Comparative Politics, 1966)는 모든 정치체제가 수행하는 기능(사회화, 충원, 이익표출, 이익집약, 정책결정 등)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정치체제를 비교하는 틀을 제시했다.

데이비드 이스턴의 정치체제 모델은 투입(input), 산출(output), 피드백(feedback)의 개념을 통해 정치과정을 분석하는 보편적 틀을 제공했다.

실증적 지식의 축적

행태주의는 정치현상에 관한 실증적 지식의 축적에 크게 기여했다. 가설 검증과 경험적 연구를 통해 정치행태의 패턴과 규칙성에 관한 이해가 증진되었다.

특히 비교정치학에서는 서로 다른 국가와 지역의 정치 현상에 관한 체계적 자료가 축적되었다. 여러 국가를 포괄하는 대규모 설문조사 프로젝트와 비교연구는 정치체제와 정치행태의 다양성에 관한 이해를 넓혔다.

행태주의에 대한 비판과 한계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비판

행태주의가 추구한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정치학은 여러 측면에서 비판을 받았다. 비판론자들은 완전한 가치중립성이란 불가능하며, 연구자의 가치와 관점은 불가피하게 연구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연구 주제 선정, 개념 정의, 변수 측정 방식 등 연구의 모든 단계에서 연구자의 가치판단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과학에서 '사실'과 '가치'의 엄격한 구분이 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었다.

방법론적 한계

행태주의의 방법론도 여러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우선, 과도한 계량화와 통계분석이 정치현상의 복잡성과 맥락을 간과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통계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현상이나 과정은 연구에서 소외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주로 미국과 서구 선진국에서 개발된 개념과 방법론을 비서구 사회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서로 다른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서 같은 개념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서구적 관점이 연구에 편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거시적 맥락과 구조적 요인 간과

행태주의는 미시적 수준(개인, 집단)의 정치행태에 초점을 맞추면서, 거시적 맥락과 구조적 요인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제구조, 계급관계, 국제체제, 역사적 발전 경로 등 정치행태의 구조적 조건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

특히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들은 행태주의가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구조와 모순을 간과한다고 비판했다. 투표행태나 정치참여 패턴은 보다 근본적인 경제적, 사회적 권력관계의 표면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추상적 경험주의와 이론적 협소함

행태주의는 경험적 자료 수집과 분석에 치중하면서 이론적 발전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찰스 앤더슨은 이를 '추상적 경험주의'(abstract empiricism)라고 비판했는데, 자료 수집과 분석은 정교해졌지만 그것이 의미 있는 이론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이스턴은 행태주의가 '방법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인해 정치학의 근본적 질문과 문제의식을 소홀히 한다고 비판했다. 정치학의 목적이 단순한 사실 수집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이론 구축과 사회 개선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규범적, 실천적 차원의 소홀

행태주의가 가치중립성을 강조하면서 정치학의 규범적, 실천적 차원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정치학은 단순히 '무엇이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넘어, '무엇이 바람직한가',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와 같은 규범적 질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1960년대 미국의 사회적, 정치적 격변(시민권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학생 운동 등) 속에서 정치학이 현실 문제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강화되었다.

후기행태주의의 등장과 특징

후기행태주의의 등장 배경

1960년대 후반, 행태주의에 대한 비판이 강화되면서 '후기행태주의'(Post-Behavioralism) 운동이 등장했다. 데이비드 이스턴은 1969년 미국정치학회장 연설 "정치학의 새로운 혁명"(The New Revolution in Political Science)에서 후기행태주의의 출현을 선언했다.

후기행태주의 등장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있었다:

  1. 사회적, 정치적 격변: 1960년대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사회운동과 정치적 격변은 순수하게 과학적인 정치학의 한계를 드러냈다.
  2. 행태주의 내부의 자기비판: 많은 행태주의 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가 현실 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다.
  3. 비판이론, 마르크스주의 등 대안적 접근의 부상: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신마르크스주의 등 대안적 접근법이 활발하게 논의되면서 행태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강화되었다.

가치와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 복귀

후기행태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가치와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을 복귀시켰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학이 '관련성'(relevance)과 '행동'(action)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학 연구는 현실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어야 하며, 사회 개선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과 '가치'의 엄격한 구분에서 벗어나, 가치문제를 학문적 논의의 중심으로 복귀시켰다. 정치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가진 가치함의를 명시적으로 인식하고, 사회정의, 평등, 자유 등의 가치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보았다.

방법론적 다원주의

후기행태주의는 방법론적 다원주의를 강조했다. 행태주의가 강조한 계량적 방법과 통계분석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정치학 연구의 유일한 접근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역사적 접근, 해석학적 방법, 비판이론, 담론분석 등 다양한 방법론이 정치현상의 서로 다른 측면을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방법론적 다원주의를 옹호했다. 방법론은 연구 질문과 맥락에 따라 적절히 선택되어야 한다는 실용적 관점을 취했다.

이론적 통합과 학제간 연구

후기행태주의는 미시적 수준의 정치행태 연구와 거시적 수준의 구조적 분석을 통합하고자 했다. 개인과 제도, 행위자와 구조, 미시와 거시 수준을 연결하는 다층적 분석을 추구했다.

또한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research)를 강조했다. 정치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통찰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후기행태주의의 주요 연구 흐름과 기여

정치경제학의 발전

후기행태주의 시기에 비교정치경제학이 크게 발전했다. 국가와 시장의 관계, 자본주의 다양성, 복지국가 비교 등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피터 카젠스타인, 피터 고우레비치 등의 학자들은 국제경제와 국내정치의 상호작용을 분석했다. 요한 갈퉁,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은 종속이론과 세계체제론을 발전시켜 국제적 불평등 구조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복지국가 비교연구도 활발해졌다. 에스핑-안데르센은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유형(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민주주의)을 구분하고, 각 유형의 역사적 형성과 특징을 분석했다.

국가 이론과 국가-사회 관계 연구

1970-80년대에는 '국가로의 복귀'(bringing the state back in) 현상이 나타났다. 테다 스카치폴, 피터 에반스, 디트리히 루스마이어 등의 학자들은 국가를 사회적 이해관계의 단순한 반영이 아닌 자율적 행위자로 보는 시각을 발전시켰다. 국가는 자체적인 이해관계와 목표를 가지며, 사회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국가의 역량(state capacity)과 자율성(state autonomy)이 중요한 분석 개념으로 부상했다. 어떤 조건에서 국가가 사회세력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고 발전 목표를 추진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연구 질문이 되었다.

특히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연구가 활발해졌다. 찰머스 존슨, 피터 에반스, 앨리스 앰스덴 등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을 분석했다. 이들은 국가 관료제의 특성, 국가-기업 관계, 산업정책 등에 주목했다.

비판이론과 마르크스주의 정치학

후기행태주의 시기에는 비판이론과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도 활성화되었다. 라우언스타인, 밀리밴드, 풀란차스 등의 학자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과 기능에 관한 이론적 논쟁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국가가 지배계급의 도구인지, 계급 간 타협의 장인지, 아니면 보다 복잡한 구조적 역할을 하는지를 둘러싸고 논쟁했다. 특히 밀리밴드와 풀란차스 간의 '도구주의 vs. 구조주의' 논쟁은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발전시킨 연구도 활발해졌다. 스튜어트 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샹탈 무페 등은 문화, 이데올로기, 담론이 정치권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민주화 연구와 정치변동 이론

1970-80년대에 남유럽, 라틴아메리카, 동아시아에서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민주화 연구가 활발해졌다. 이는 단순한 경험적 기술을 넘어, 정치변동의 조건과 과정에 관한 이론적 논의로 발전했다.

필립 슈미터, 기예르모 오도넬, 후안 린츠, 알프레드 스테판 등은 민주화 이행과 공고화 과정을 분석했다. 특히 엘리트 협상, 시민사회의 역할, 제도적 선택의 중요성 등이 주요 연구 주제였다.

새뮤얼 헌팅턴의 '제3의 물결'(1991)은 전 세계적 민주화 추세를 분석하고, 그 성공과 실패의 조건을 탐구했다. 이후 비교민주화 연구는 비교정치학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신제도주의의 부상과 행태주의의 재평가

1980년대 이후 신제도주의(New Institutionalism)가 부상하면서, 행태주의와 후기행태주의의 통찰을 제도 분석과 결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신제도주의는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 역사적 제도주의, 사회학적 제도주의 등 다양한 갈래로 발전했다.

신제도주의는 행태주의의 방법론적 엄밀성을 유지하면서도, 제도의 중요성을 재조명했다. 제도는 단순한 중립적 장(arena)이 아니라, 행위자의 선호와 전략을 형성하고 제약하는 중요한 변수로 인식되었다.

이와 함께 행태주의의 공헌과 한계에 대한 균형 잡힌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행태주의가 정치학의 과학적 기반을 강화하고 방법론적 엄밀성을 높인 공헌은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후기행태주의의 유산과 현대 비교정치학

다양한 접근법의 공존과 대화

후기행태주의의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는 다양한 이론적, 방법론적 접근법의 공존과 대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현대 비교정치학에서는 행태주의적 접근, 제도주의적 접근, 비판이론, 해석학적 접근 등 다양한 패러다임이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특히 양적 방법과 질적 방법의 통합, 형식 모델링과 역사적 분석의 결합, 미시적 행태 연구와 거시적 구조 분석의 연결 등 다양한 방법론적 융합이 시도되고 있다.

규범적 문제와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

후기행태주의가 강조한 규범적 문제와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은 현대 비교정치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질, 불평등, 인권, 환경 문제, 정체성 정치 등 현대 사회의 중요한 과제들이 비교정치학의 주요 연구 주제로 등장했다.

정치학자들은 단순한 경험적 분석을 넘어, 연구의 규범적 함의와 정책적 제언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학문적 지식 생산과 사회적 실천 사이의 연결을 강조한 후기행태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다차원적, 다층적 분석

현대 비교정치학에서는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구조와 행위자, 제도와 문화, 공식적 영역과 비공식적 영역 등을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다차원적, 다층적 접근이 발전하고 있다. 이는 정치현상의 복잡성과 상호연결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이를 분석하려는 후기행태주의적 지향을 반영한다.

특히 글로벌화, 지역통합, 초국적 네트워크 등의 현상이 부각되면서, 국민국가 중심의 전통적 비교정치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분석틀이 모색되고 있다.

결론: 행태주의와 후기행태주의의 의의

행태주의 혁명은 비교정치학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정치학의 과학적 기반을 강화하고, 체계적인 자료수집과 분석 방법을 발전시켰으며, 정치행태에 관한 경험적 지식을 크게 확충했다. 특히 정치문화, 투표행태, 정치참여, 정치심리 등의 연구 분야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행태주의는 가치중립성 추구, 계량적 방법론 편중, 미시적 수준 중심의 분석 등 여러 한계도 보였다. 이러한 한계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서 후기행태주의가 등장했으며, 가치와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 복귀, 방법론적 다원주의, 이론적 통합 등을 강조했다.

후기행태주의는 비교정치경제학, 국가이론, 민주화 연구, 비판이론 등 다양한 연구 영역의 발전을 촉진했다. 특히 1970-80년대 '국가로의 복귀' 현상은 국가의 자율성과 역량, 국가-사회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왔다.

행태주의와 후기행태주의의 논쟁과 발전 과정은 현대 비교정치학의 다원적이고 통합적인 성격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방법론적 엄밀성과 가치 지향, 경험적 분석과 규범적 문제의식, 미시적 행태 연구와 거시적 구조 분석 등 다양한 측면의 균형을 추구하는 현대 비교정치학의 특성은 이러한 역사적 발전 과정의 산물이다.

현대 비교정치학은 여전히 과학으로서의 엄밀성을 추구하면서도, 인간 삶의 개선에 기여하는 실천적 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발전시키고 있다. 이는 행태주의의 방법론적 공헌과 후기행태주의의 규범적, 실천적 관심을 모두 계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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