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은 교육의 핵심 요소로,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며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관한 계획과 실천을 포괄한다. 교육과정에 대한 접근 방식은 교육의 목적과 가치, 지식의 본질, 학습자의 특성, 사회적 맥락 등에 대한 철학적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교육과정 이론의 두 가지 주요 흐름—랄프 타일러(Ralph W. Tyler)로 대표되는 합리적·기술적 접근과 엘리엇 아이즈너(Elliot Eisner)가 발전시킨 예술적·심미적 접근—을 탐구하고, 각 관점이 교육 평가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을 살펴본다.
교육과정 이론의 역사적 전개
현대적 의미의 교육과정 이론은 20세기 초반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교육과정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이론화는 프랭클린 보빗(Franklin Bobbitt), 헨리 해럽(Henry Harap), 웨레트 차터스(W.W. Charters) 등의 학자들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들은 산업 모델과 과학적 관리 원칙을 교육에 적용하려 했다. 이러한 초기 접근은 효율성, 표준화, 측정 가능한 목표 설정 등을 강조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진보주의 교육 운동의 영향으로 학생 중심, 경험 중심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존 듀이(John Dewey)의 철학적 실용주의와 경험 교육론은 이러한 흐름에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듀이는 교육과정이 학생의 경험과 관심에 기초해야 하며, 실제 생활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교육과정 개발에 대한 체계적 접근이 강조되면서 랄프 타일러의 합리적 모형이 큰 영향력을 얻게 된다. 타일러의 『교육과정과 수업의 기본 원리』(1949)는 교육과정 개발의 표준적 지침으로 자리 잡았다.
1960-70년대에는 교육과정에 대한 다양한 비판적, 대안적 관점이 등장했다. 재개념주의자들은 기존의 기술적 접근을 비판하고, 교육과정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측면에 주목했다. 이 시기에 엘리엇 아이즈너와 같은 학자들은 교육과정과 평가에 대한 예술적, 심미적 접근을 발전시켰다.
198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혁과 함께 표준화, 책무성, 측정 가능한 성과에 대한 강조가 다시 강화되었다. 동시에 비판적 교육학,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등 다양한 이론적 관점에서 교육과정을 재해석하려는 시도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 속에서, 교육과정 이론은 크게 처방적(prescriptive) 접근과 기술적(descriptive) 접근으로 나눌 수 있다. 처방적 접근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교육과정 개발의 원리와 지침을 제시하는 반면, 기술적 접근은 '교육과정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다. 타일러의 합리적 모형은 전형적인 처방적 접근이며, 아이즈너의 교육감식안 모형은 기술적 접근의 특성을 더 많이 갖는다.
타일러의 합리적 교육과정 모형
랄프 타일러는 1949년 출판된 『교육과정과 수업의 기본 원리』에서 체계적인 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네 가지 기본 질문을 제시했다. 이 '타일러의 원리'(Tyler Rationale)는 이후 수십 년 동안 교육과정 개발의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타일러의 네 가지 기본 질문
- 교육이 달성해야 할 목표는 무엇인가?
- 교육 목표는 교육과정 개발의 출발점이자 기준이 된다. 타일러는 목표를 설정하기 위한 세 가지 주요 출처로 학습자 연구, 현대 사회 분석, 그리고 교과 전문가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러한 출처에서 도출된 잠정적 목표들은 교육 철학과 학습 심리학의 관점에서 검토되고 정제되어야 한다.
- 이러한 목표 달성에 유용한 교육 경험은 무엇인가?
- 교육 목표가 설정되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학습 경험을 선택해야 한다. 타일러는 효과적인 학습 경험의 특성으로 학습자의 적극적 참여 유도, 만족감 제공, 학습자의 현재 수준 고려, 다양한 목표 달성 가능성 등을 강조했다.
- 교육 경험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학습 경험은 계열성(sequence), 계속성(continuity), 통합성(integration)의 원리에 따라 체계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계열성은 학습 경험이 점진적으로 심화되는 것을, 계속성은 주요 요소가 반복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통합성은 다양한 학습 경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 목표가 달성되고 있는지 평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평가는 교육 목표의 달성 정도를 확인하고, 교육과정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다. 타일러는 다양한 평가 도구와 방법을 활용하여 학생의 행동 변화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것을 강조했다.
타일러 모형의 특징과 영향
타일러의 합리적 모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 목표 중심 접근(objectives-centered approach):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교육과정 개발의 핵심이다. 이러한 목표는 가능한 한 학생의 행동적 변화 측면에서 진술되어야 한다.
- 선형적·체계적 과정: 교육과정 개발은 목표 설정→학습 경험 선택→조직→평가의 순차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 합리성과 효율성 강조: 과학적 원리와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체계적 접근을 통해 교육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이고자 한다.
- 가치중립적 기술(technique)로서의 교육과정: 타일러는 교육과정 개발 방법을 가치중립적인 기술적 과정으로 제시했다. 목표의 내용은 사회와 교육자의 가치 판단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개발 과정 자체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절차를 따른다.
타일러의 모형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교육과정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모형은 국가 교육과정, 교과서 개발, 교사 양성, 교육 평가 시스템 등 교육의 다양한 측면에 적용되었다. 특히 행동주의 심리학과 결합하여 행동 목표(behavioral objectives) 중심의 교육과정 개발 접근으로 발전했으며, 이후 역량 기반 교육(competency-based education), 성과 중심 교육(outcome-based education) 등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
타일러 모형의 평가관
타일러 모형에서 평가는 교육 목표 달성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 목표 지향적 평가: 평가의 주요 목적은 사전에 설정된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평가 도구와 방법은 목표에 명시된 행동적 변화를 측정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 객관성과 측정 가능성 강조: 평가는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표준화된 검사, 체계적 관찰, 명확한 평가 기준 등이 중요시된다.
- 과학적 증거 수집으로서의 평가: 평가는 학생의 성취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증거는 교육과정의 효과성을 판단하고 개선하는 데 활용된다.
- 형성평가와 총괄평가의 구분: 타일러는 교육 과정 중에 이루어지는 형성평가(formative evaluation)와 교육 종료 시점의 총괄평가(summative evaluation)를 구분했다. 형성평가는 학습 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총괄평가는 최종적인 성취 수준을 판단한다.
이러한 평가관은 교육 평가의 체계화와 과학화에 기여했으나, 복잡한 학습 과정과 결과를 단순화하고, 측정하기 어려운 교육적 가치와 성과를 간과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이즈너의 교육감식안과 비평 모형
엘리엇 아이즈너는 교육을 예술적 활동으로 보는 관점에서, 교육과정과 평가에 대한 대안적 접근을 제시했다. 그의 '교육감식안'(educational connoisseurship)과 '교육비평'(educational criticism) 개념은 예술 비평의 원리를 교육 평가에 적용한 것으로, 기존의 기술적·측정적 접근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했다.
아이즈너의 교육철학적 기반
아이즈너의 접근은 다음과 같은 철학적 기반에 근거한다:
- 교육의 예술적 본질: 교육은 기계적 생산 과정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맥락적인 예술적 활동이다. 교사는 기술자가 아닌 예술가로서, 학생, 내용, 환경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교육적 경험을 창조한다.
- 지식의 다양한 재현 형식: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언어, 수학, 음악, 시각 예술, 신체 움직임 등)을 가지고 있으며, 각 형식은 고유한 인식적 가치와 한계를 갖는다. 교육은 이러한 다양한 '재현 형식'(forms of representation)을 발달시켜야 한다.
- 경험의 질적 차원: 교육 경험은 양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질적 차원을 포함한다. 이러한 질적 측면—의미, 느낌, 뉘앙스, 미묘한 관계 등—은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며, 이를 인식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감수성과 안목이 필요하다.
- 암묵적 교육과정의 중요성: 공식적으로 명시된 교육과정 외에도, 학교의 물리적 환경, 시간 구조, 사회적 관계, 평가 방식 등에 내재된 '암묵적 교육과정'(implicit curriculum)이 학생들의 학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교육감식안과 교육비평의 개념
아이즈너는 와인 감식가(connoisseur)의 전문적 안목과 예술 비평가(critic)의 역할에서 영감을 얻어, 교육 현상을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을 제안했다.
- 교육감식안(Educational Connoisseurship):교육감식안은 다음과 같은 요소를 포함한다:
- 교실의 분위기, 리듬, 관계적 역동성 등 미묘한 질적 차원 인식
- 표면적 현상 너머의 의미와 맥락 파악
- 교육 상황의 특수성과 복잡성에 대한 민감성
- 다양한 교육적 가치와 실천에 대한 개방적 태도
- 교육감식안은 교육 현상의 미묘한 질적 측면을 인식하고 감상할 수 있는 전문적 안목이다. 감식가는 일반인이 놓치기 쉬운 세부 사항과 뉘앙스를 포착하고, 이를 더 넓은 맥락과 의미 체계 속에서 이해한다. 이러한 능력은 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 그리고 지속적인 성찰을 통해 발달된다.
- 교육비평(Educational Criticism):아이즈너에 따르면, 교육비평은 다음 네 가지 차원을 포함한다:
- 기술(Description): 교육 상황의 생생하고 상세한 묘사. 중요한 특징, 분위기, 상호작용 등을 독자가 '볼 수 있도록' 표현한다.
- 해석(Interpretation): 기술된 현상의 의미와 맥락을 탐색한다. 왜 특정 방식으로 일어났는지, 참여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다양한 이론적 렌즈를 통해 해석한다.
- 평가(Evaluation): 교육적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판단. 이는 특정 교육적 가치와 목적에 비추어 현상의 의의를 평가하는 과정이다.
- 주제화(Thematics): 특정 상황에서 도출된 일반적 주제나 통찰을 식별하는 것. 이는 개별 사례의 독특성을 존중하면서도, 보다 넓은 맥락에 적용될 수 있는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 교육비평은 감식안을 통해 인식한 것을 공적 언어로 표현하고 소통하는 과정이다. 비평가는 자신의 전문적 안목을 바탕으로 교육 현상을 기술하고, 해석하며, 평가한다. 이는 단순한 판단이나 평점 부여가 아니라, 교육 경험의 복잡성과 의미를 드러내는 설득력 있는 서사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아이즈너 모형의 교육과정관
아이즈너는 교육과정을 단순한 계획이나 내용 목록이 아닌, 학생들이 경험하는 '교육적 만남'으로 이해했다. 그의 교육과정관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 발견적·창발적 과정으로서의 교육과정: 교육과정은 미리 정해진 경로를 따르는 선형적 과정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 속에서 창발적으로 전개되는 여정이다.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학습 기회와 발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다양한 재현 형식의 발달: 교육과정은 언어적, 수리적 능력뿐만 아니라, 시각적, 청각적, 신체적, 사회적 등 다양한 재현 형식을 발달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습득한다.
- 표현적 결과(expressive outcomes): 아이즈너는 타일러의 행동 목표 중심 접근에 대한 대안으로 '표현적 결과'의 개념을 제안했다. 표현적 결과는 사전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으며, 학생들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반응과 발전을 허용하고 장려한다.
- 교육과정의 맥락성과 특수성: 효과적인 교육과정은 보편적 모델이나 표준화된 처방이 아니라, 특정 학습자, 교사, 학교, 지역사회의 맥락과 필요에 맞게 조정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예술적 평가의 원리와 방법
아이즈너의 예술적 평가 접근은 전통적인 측정 중심 평가의 대안으로, 교육 경험의 질적 측면을 포착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접근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질적 판단과 해석: 예술적 평가는 수량화된 점수나 등급보다는 교육 경험의 질적 특성에 대한 풍부한 기술과 해석을 강조한다. 이는 표준화된 도구로 쉽게 측정할 수 없는 학습의 미묘하고 복잡한 측면을 포착하기 위한 것이다.
- 맥락의 중요성: 평가는 특정 교육 상황의 맥락과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동일한 행동이나 결과도 다른 맥락에서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이러한 맥락적 이해는 의미 있는 평가의 핵심이다.
- 다양한 증거 활용: 예술적 평가는 학생의 학습과 발달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증거—관찰, 작품 분석, 대화, 성찰적 글쓰기 등—를 활용한다. 이는 학습의 다차원적 성격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 과정과 성장 중시: 최종 결과나 성취만이 아니라, 학습 과정에서의 발전과 성장에 주목한다. 이는 학생의 출발점, 도전, 진전, 전환점 등을 포함하는 종합적 관점이다.
- 평가자의 전문적 판단: 예술적 평가는 기계적 측정이나 표준화된 루브릭보다 평가자의 전문적 안목과 판단을 중시한다. 이는 교육감식안을 바탕으로 한 질적 판단으로, 지속적인 성찰과 전문성 개발을 통해 발전된다.
예술적 평가의 구체적 방법으로는 포트폴리오 평가, 내러티브 평가 보고서, 사례 연구, 교실 관찰과 필드 노트, 학생 작품에 대한 비평적 분석 등이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학생의 학습과 발달에 대한 풍부하고 맥락화된 이해를 제공하며, 수량적 측정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교육의 질적 측면을 드러낸다.
두 접근의 비교와 통합 가능성
타일러의 합리적 모형과 아이즈너의 예술적 접근은 교육과정과 평가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제시하지만, 상호 배타적이라기보다는 교육의 서로 다른 측면을 조명한다고 볼 수 있다. 두 접근의 주요 차이점과 통합 가능성을 살펴보자.
두 접근의 주요 차이점
- 교육의 본질에 대한 관점:
- 타일러: 교육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으로 본다. 명확한 목표 설정과 측정 가능한 결과를 강조한다.
- 아이즈너: 교육을 창의적이고 맥락적인 예술적 활동으로 본다. 예상치 못한 발견과 질적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교육과정 개발 과정:
- 타일러: 선형적이고 체계적인 과정(목표→경험→조직→평가)을 따른다.
- 아이즈너: 더 순환적이고 발견적인 과정으로, 실행 과정에서의 재해석과 조정을 중시한다.
- 목표와 결과의 성격:
- 타일러: 사전에 명시된 구체적 행동 목표를 강조한다.
- 아이즈너: 표현적 결과와 다양한 형태의 이해와 성장을 중시한다.
- 평가의 본질과 방법:
- 타일러: 객관적 측정과 목표 달성 여부 확인을 중심으로 한다.
- 아이즈너: 질적 판단, 맥락적 해석, 비평적 서술을 통한 의미 구성을 강조한다.
- 교사의 역할:
- 타일러: 교사를 계획된 교육과정의 효과적인 실행자로 본다.
- 아이즈너: 교사를 창의적 의사결정자이자 교육과정의 공동 창조자로 본다.
통합적 접근의 가능성
두 접근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복잡한 현실을 보다 온전히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두 관점의 통합적 활용이 가능하고 필요하다.
- 다층적 교육과정 계획: 타일러의 체계적 계획 원리를 기본 틀로 활용하되, 아이즈너의 창발적·예술적 관점을 통해 유연성과 맥락 적응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명확한 방향성과 구조를 제공하면서도, 교사와 학생의 창의적 상호작용을 위한 공간을 허용하는 접근이다.
- 다차원적 평가 시스템: 객관적 측정과 질적 판단의 균형 있는 통합을 통해, 학습의 다양한 측면을 포괄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표준화된 평가 도구와 루브릭은 기본적인 성취 수준을 확인하는 데 활용하고, 포트폴리오, 프로젝트, 성찰 일지, 비평적 피드백 등은 학습의 질적 측면과 성장 과정을 포착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 교사의 이중적 역할 인정: 교사는 체계적인 교육과정 계획을 따르는 실행자인 동시에, 구체적 맥락에서 이를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예술가적 실천가이다. 이러한 이중적 역할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교사 교육과 전문성 개발이 필요하다.
- 연구와 실천의 다양한 방법론 활용: 교육 연구와, 평가에서 양적 방법론과 질적 방법론을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대규모 표준화 평가는 교육 시스템의 전반적 경향과 기본적 성취 수준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며, 질적 사례 연구와 교육비평은 구체적 맥락에서의 심층적 이해와 의미 구성에 기여한다.
- 지속적인 대화와 반성: 두 접근 사이의 지속적인 대화와 반성은 교육과정 이론과 실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합리적 모형의 체계성과 명확성은 예술적 접근의 모호함과 주관성을 보완할 수 있으며, 예술적 접근의 맥락 민감성과 질적 이해는 합리적 모형의 기계적 적용 위험을 견제할 수 있다.
현대 교육과정 이론과 평가의 동향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교육과정 이론과 평가는 급변하는 사회적·기술적 환경과 새로운 교육적 요구에 대응하여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타일러와 아이즈너의 통찰은 여전히 중요한 참조점이 되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관점과 접근이 등장하고 있다.
역량 기반 교육과정과 평가
역량 기반 교육(competency-based education)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교육과정 접근이다. 이는 학생들이 실제 삶과 직업 세계에서 성공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기술, 태도, 가치의 총체적 조합으로서의 '역량'을 발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역량 기반 접근은 타일러의 목표 중심 모형과 유사점이 있으나, 다음과 같은 차별점이 있다:
- 보다 통합적이고 맥락적인 목표 설정: 단편적 지식이나 기술보다 복합적이고 실제적인 과제 수행 능력을 강조한다.
- 개인화된 학습 경로: 모든 학생이 동일한 경로를 따르기보다, 개인의 진도와 필요에 맞춘 유연한 학습 경로를 허용한다.
- 수행 중심 평가: 지식 재생보다 실제 과제 수행과 결과물을 통한 역량 증명에 초점을 맞춘다.
역량 기반 평가에서는 객관적 기준과 질적 판단을 결합한 평가 방식이 활용된다. 루브릭, 포트폴리오, 프로젝트, 실제적 과제 등이 주요 평가 도구로 사용되며, 이는 아이즈너의 예술적 평가와 타일러의 목표 지향적 평가의 요소를 모두 반영한다.
구성주의와 학습자 중심 교육과정
구성주의 학습 이론의 영향으로,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지식을 구성하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강조하는 교육과정 접근이 발전했다. 이는 아이즈너의 창발적 교육과정 관점과 맥을 같이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학습 환경과 가능성을 반영한다.
학습자 중심 교육과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학습자의 관심사, 사전 지식, 학습 스타일에 기반한 교육과정 설계
- 탐구 기반, 문제 기반, 프로젝트 기반 학습 등 능동적 학습 방법론 활용
- 교사의 조력자, 촉진자, 공동 학습자로서의 역할 강조
- 학습 과정과 메타인지적 성찰을 중시하는 평가
이러한 접근에서는 아이즈너가 강조한 교육 경험의 질적 측면과 예상치 못한 학습 결과의 가치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동시에 명확한 학습 목표와 기준은 학습자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위한 안내와 비계(scaffolding)로 기능한다.
비판적 교육과정 이론
비판적 교육과정 이론은 교육과정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측면에 주목하며, 교육과정이 어떻게 사회적 권력 관계와 불평등을 반영하고 재생산하는지를 분석한다. 마이클 애플(Michael Apple), 헨리 지루(Henry Giroux), 피터 맥라렌(Peter McLaren) 등의 학자들이 이 흐름을 주도했다.
비판적 교육과정 이론가들은 타일러의 기술적·합리적 모형이 교육과정의 정치적 본질을 은폐하고,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자연화한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교육과정 개발과 평가가 표면적 중립성과 객관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아이즈너의 예술적 접근과 부분적으로 공명하는데, 둘 다 교육의 맥락적·해석적 측면과 암묵적 가치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적 이론가들은 아이즈너보다 더 명시적으로 권력과 이데올로기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교육과정을 통한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비판적 교육과정 평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 누구의 지식이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가?
- 교육과정이 어떤 목소리와 관점을 특권화하고, 어떤 것을 주변화하는가?
- 평가 방식이 어떤 형태의 지식과 능력을 인정하고 보상하는가?
- 교육과정과 평가가 어떻게 사회적 계층화와 불평등에 기여하는가?
디지털 시대의 교육과정과 평가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은 교육과정과 평가에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변화는 타일러와 아이즈너의 접근을 새로운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확장할 것을 요구한다.
디지털 시대의 교육과정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유연성과 개인화: 디지털 도구는 학습자의 필요, 관심사, 진도에 맞춘 개인화된 학습 경로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타일러의 선형적 모형보다 더 복잡하고 적응적인 교육과정 설계를 요구한다.
- 연결성과 네트워크 학습: 지식은 더 이상 고정된 내용의 집합이 아니라, 연결과 네트워크를 통해 지속적으로 구성되고 재구성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교육과정을 닫힌 계획이 아닌 열린 생태계로 보는 관점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 다중 양식 리터러시: 디지털 환경에서는 텍스트, 이미지, 소리, 동영상 등 다양한 양식을 통한 의미 구성과 표현이 중요해진다. 이는 아이즈너가 강조한 다양한 재현 형식의 가치를 새롭게 부각시킨다.
- 실시간 피드백과 형성평가: 디지털 도구는 학습자의 활동과 성취에 대한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학습 과정을 지원하는 평가의 형성적 기능을 강화한다.
디지털 평가 도구와 방법으로는 컴퓨터 기반 적응형 평가, 학습 분석(learning analytics), 디지털 포트폴리오, 게임화된 평가, 시뮬레이션 및 가상 현실 기반 평가 등이 있다. 이러한 도구들은 타일러의 객관적 측정과 아이즈너의 질적 판단을 새로운 방식으로 통합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교육과정 개발과 평가를 위한 실천적 함의
타일러와 아이즈너의 관점, 그리고 현대 교육과정 이론의 발전은 교육 실천가들에게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21세기 교육 환경에서 교육과정 개발과 평가를 위한 실천적 함의를 몇 가지 살펴보자.
맥락 민감성과 적응적 계획
효과적인 교육과정 개발은 보편적 모델의 기계적 적용이 아니라, 특정 교육 맥락의 필요와 조건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적응적 계획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 학습자의 배경, 지식, 관심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 설계
- 학교와 지역사회의 특수한 맥락, 자원, 제약을 고려한 현실적 계획
- 실행 과정에서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조정을 통한 교육과정의 적응적 발전
- 다양한 학습 경로와 표현 방식을 허용하는 유연한 교육과정 구조
이러한 접근은 타일러의 체계적 계획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아이즈너가 강조한 교육의 맥락적·창발적 특성을 존중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반영한다.
명시적 교육과정과 암묵적 교육과정의 통합적 고려
효과적인 교육과정 개발과 평가는 공식적으로 계획된 내용과 활동뿐만 아니라, 학교 문화, 물리적 환경, 사회적 관계, 일상적 관행 등에 내재된 '암묵적 교육과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 학교와 교실의 물리적, 사회적, 정서적 환경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대한 인식과 성찰
- 평가 방식, 시간 구조, 의사결정 과정 등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암묵적 레슨에 대한 비판적 검토
- 명시적 교육 목표와 암묵적 메시지 사이의 일관성 추구
- 학생들이 암묵적 교육과정을 비판적으로 읽고 참여할 수 있는 능력 발달 지원
이는 아이즈너의 교육감식안 개념을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교육 상황의 미묘하고 복합적인 질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을 요구한다.
다차원적 평가 체계 구축
학습의 다양한 측면과 수준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평가 방법과 도구를 균형 있게 활용하는 다차원적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체계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포함할 수 있다:
- 기본적 지식과 기술의 습득을 확인하기 위한 객관적 평가
- 고차원적 사고력과 복합적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수행 평가
- 학습 과정과 전략에 대한 메타인지적 성찰을 촉진하는 자기 평가
- 학습의 질적 측면과 성장 과정을 기록하는 포트폴리오 평가
- 실제적 맥락에서의 지식과 기술 적용을 평가하는 진정한 평가(authentic assessment)
이러한 다차원적 평가는 타일러의 목표 지향적 평가와 아이즈너의 예술적 평가의 장점을 통합하여, 학습의 양적·질적 측면을 모두 존중하는 균형 잡힌 접근을 제공한다.
교사의 전문적 자율성과 판단 존중
교육과정과 평가에서 교사의 전문적 자율성과 판단은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이를 존중하고 지원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 교사를 단순한 교육과정 전달자가 아닌, 전문적 의사결정자이자 교육과정 공동 창조자로 인식
- 교사의 교육감식안과 비평적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전문성 개발 지원
- 교사들이 자신의 실천을 성찰하고, 동료들과 협력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 조성
- 교육과정 개발과 평가에 교사의 목소리와 전문적 지식이 의미 있게 반영될 수 있는 구조와 과정 마련
이는 아이즈너가 강조한 교사의 예술가적 역할과 타일러가 인정한 교사의 전문적 판단의 중요성을 모두 반영하는 접근이다.
결론: 21세기 교육을 위한 교육과정과 평가의 재개념화
21세기의 급변하는 교육 환경과 사회적 요구는 교육과정과 평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접근을 지속적으로 재검토하고 재개념화할 것을 요구한다. 타일러와 아이즈너의 상이한 관점은, 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재개념화 과정에 여전히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타일러의 합리적 모형은 명확한 목적의식과 체계적 계획의 중요성을, 아이즈너의 예술적 접근은 교육 경험의 질적 측면과 맥락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 두 관점의 생산적 긴장과 대화는 보다 풍부하고 균형 잡힌 교육과정 이론과 실천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21세기 교육을 위한 교육과정과 평가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재개념화될 필요가 있다:
- 복잡성과 불확실성의 인정: 교육은 선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과정이 아니라, 복잡하고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생태계적 현상이다. 교육과정과 평가는 이러한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어야 한다.
-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화: 학습자의 다양한 배경, 능력, 관점, 학습 스타일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교육과정과 평가가 필요하다. 이는 단일한 표준이나 경로가 아닌, 다양한 성공의 경로와 표현 방식을 허용하는 접근을 의미한다.
- 학습자 주체성과 참여의 강화: 학습자는 교육과정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자신의 학습을 주도하고 교육과정을 공동 창조하는 적극적 참여자로 재개념화되어야 한다. 평가 역시 학습자의 자기 주도성과 성찰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 지속적 학습과 적응을 위한 역량 강조: 급변하는 세계에서 특정 내용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이다. 교육과정과 평가는 이러한 메타학습 역량, 비판적·창의적 사고, 협력적 문제 해결 능력 등의 발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디지털 변혁과 새로운 리터러시의 통합: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지식의 본질, 학습의 방식, 교육의 공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교육과정과 평가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고, 디지털 리터러시, 정보 평가 능력, 온라인 협력 등 새로운 역량의 발달을 지원해야 한다.
교육과정과 평가는 궁극적으로 교육의 본질적 목적—학습자의 전인적 성장과 발달, 민주 사회의 시민 양성,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변화—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다. 타일러와 아이즈너의 관점, 그리고 이후 발전한 다양한 이론적 흐름은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상이하지만 상호보완적인 접근을 제공한다.
교육자로서 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다양한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통합하여, 각자의 교육 맥락에 적합한 교육과정과 평가 실천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는 기계적 적용이나 무비판적 수용이 아닌, 지속적인 질문, 성찰, 적응,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열린 탐색을 요구하는 창조적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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