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론의 출발점: 합의가 아닌 투쟁의 사회
기능주의가 사회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한다면, 갈등론은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한다. 사회는 합의와 협력이 아니라 갈등과 투쟁으로 특징지어진다. 희소한 자원을 둘러싼 경쟁, 권력을 둘러싼 대립, 가치관의 충돌이 사회의 본질적 속성이다.
갈등론자들에게 사회문제는 체계의 일시적 기능 장애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 불평등과 권력관계의 필연적 결과다. 빈곤은 부의 불평등한 분배 때문이고, 차별은 지배집단의 특권 유지 때문이며, 범죄는 억압적 사회구조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다.
이런 관점은 사회질서 자체를 문제시한다. 기능주의가 현존 질서의 유지와 회복을 추구한다면, 갈등론은 근본적 구조 변혁을 지향한다. 사회문제의 해결은 개혁이 아닌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마르크스의 계급갈등론: 자본주의와 소외
칼 마르크스는 갈등론의 토대를 놓은 사상가다. 그에게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 고대의 주인과 노예, 중세의 영주와 농노, 근대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 간의 갈등이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핵심 갈등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에 존재한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의 잉여가치를 착취한다.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고, 자신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만을 임금으로 받는다. 나머지는 자본가의 이윤이 된다.
마르크스는 이런 착취 관계가 다양한 사회문제를 낳는다고 보았다:
경제적 불평등: 자본 축적 과정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된다. 자본가는 점점 부유해지고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빈곤해진다. 이는 단순한 소득 격차가 아니라 구조적 착취의 결과다.
노동의 소외: 노동자는 네 가지 차원에서 소외를 경험한다. 생산물로부터의 소외(자신이 만든 것을 소유하지 못함), 생산과정으로부터의 소외(노동이 강제되고 통제됨), 유적 존재로부터의 소외(인간의 창조적 본성 상실), 타인으로부터의 소외(경쟁과 대립 관계).
이데올로기적 지배: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 사상이 된다. 자본주의적 가치관(개인주의, 경쟁, 성공 신화)이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계급의식 형성을 방해하고 false consciousness를 만든다.
산업예비군: 실업자들의 존재는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필수적이다. 이들은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노동자들의 저항을 약화시킨다. 실업은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체제의 필요악이다.
마르크스에게 이런 문제들의 해결책은 명확했다. 사적 소유의 폐지와 생산수단의 사회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계급 없는 사회의 건설. 사회문제는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해결될 수 없으며, 체제 전환만이 근본적 해법이다.
베버의 다원적 갈등론: 계급, 지위, 권력
막스 베버는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을 비판하면서 더 복잡한 갈등 구조를 제시했다. 그는 사회 불평등이 세 가지 차원에서 나타난다고 보았다:
계급(Class): 경제적 차원의 불평등이다. 시장에서의 기회, 재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달리 베버는 계급을 더 세분화했다. 자본가와 노동자뿐 아니라 중간계급, 전문직, 관리직 등 다양한 계급이 존재한다.
지위(Status): 사회적 명예와 위신의 차원이다. 생활양식, 교육 수준, 가문, 직업의 사회적 평가 등에 따라 결정된다. 경제적으로는 비슷해도 지위는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소득이라도 의사와 사업가의 사회적 지위는 다르다.
권력(Power): 정치적 차원의 불평등이다.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정당, 압력단체, 관료조직 등을 통해 행사된다. 권력은 계급이나 지위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베버의 다차원적 분석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불평등 구조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는 단순한 경제적 불평등이 아니다. 명문대 출신은 높은 소득(계급)뿐 아니라 사회적 인정(지위)과 네트워크(권력)를 동시에 획득한다.
베버는 또한 관료제의 문제를 지적했다. 근대 사회의 합리화 과정에서 관료제가 확산되지만, 이는 새로운 지배 구조를 만든다. '철제 우리(iron cage)'라는 은유로 표현된 관료제의 비인간성은 현대 사회문제의 중요한 원천이다.
네오마르크시즘: 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순
20세기 들어 전통적 마르크시즘은 여러 도전에 직면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고, 노동자 계급의 생활수준은 향상되었다.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은 새로운 형태의 억압을 보여주었다. 네오마르크시즘은 이런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시즘을 수정하고 발전시켰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지배의 복잡성을 설명했다. 지배계급은 강제력뿐 아니라 동의를 통해서도 지배한다. 교육, 언론, 문화를 통해 자신들의 세계관을 피지배계급에게 내면화시킨다. 이는 왜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는지 설명해준다.
루이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와 억압적 국가기구(RSA)를 구분했다. 경찰, 군대 같은 RSA는 직접적 폭력을 사용하지만, 학교, 가족, 종교, 미디어 같은 ISA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주체를 형성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ISA를 통한 지배에 더 의존한다.
프랑스의 조절이론학파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화를 분석했다. 포드주의에서 포스트포드주의로의 전환, 복지국가의 위기, 신자유주의의 등장 등을 구조적으로 설명했다. 이들은 자본주의가 위기를 극복하며 변형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 문화산업과 일차원적 인간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학, 비판이론을 결합했다. 이들은 경제적 착취뿐 아니라 문화적 지배의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특히 대중문화와 소비사회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문화산업' 개념을 제시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문화는 상품화되고 표준화된다. 영화, 음악, TV 프로그램들은 대량생산되고 소비된다. 이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는 마비되고 순응주의가 확산된다.
문화산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표준화와 의사 개성화: 겉으로는 다양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상품들
- 수동적 소비: 능동적 참여가 아닌 일방적 수용
- 현실 도피: 일상의 고통을 잊게 하는 오락
- 욕망의 조작: 허위 욕구의 창출과 충족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 개념으로 현대인의 소외를 분석했다. 풍요로운 소비사회에서 인간은 비판적 사고를 잃고 체제에 통합된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빈곤을 가져온다. 기술적 합리성이 모든 영역을 지배하면서 대안적 사고가 불가능해진다.
마르쿠제는 또한 '억압적 관용' 개념을 제시했다. 자유민주주의는 표면적으로 다양성을 허용하지만,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그렇다. 근본적 비판과 대안은 주변화되고 무력화된다.
비판이론의 현대적 전개: 하버마스와 소통이론
위르겐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의 대표 학자다. 그는 초기 비판이론의 비관주의를 극복하고 해방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특히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통해 새로운 비판이론을 구축했다.
하버마스는 체계와 생활세계를 구분한다. 체계(경제, 행정)는 화폐와 권력이라는 매체를 통해 작동한다. 생활세계는 문화, 사회, 인격이 재생산되는 공간이다. 문제는 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할 때 발생한다.
생활세계의 식민화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낳는다:
- 공공영역의 쇠퇴: 시민적 토론과 정치 참여 약화
- 문화의 상품화: 의미 상실과 전통 파괴
- 사회병리 현상: 정체성 혼란, 소속감 상실
- 의미 상실: 삶의 목적과 가치에 대한 혼란
하버마스는 이상적 담화상황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왜곡되지 않은 소통을 통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기존 비판이론의 혁명적 전망과는 다른, 개혁적 접근이다.
갈등론으로 본 현대 사회문제들
갈등론과 비판이론은 다양한 현대 사회문제를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경제적 양극화: 신자유주의 정책은 부의 집중을 심화시켰다. 금융화, 탈규제, 민영화는 자본가 계급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프레카리아트(불안정 노동자)의 증가는 새로운 계급 구조를 보여준다.
교육 불평등: 교육은 계급 재생산의 핵심 기제다. 문화자본(부르디외)의 차이가 학업 성취도를 좌우한다. 사교육 시장은 경제자본을 문화자본으로 전환시킨다. 수능과 입시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다.
미디어와 여론 조작: 주류 언론은 지배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 프레이밍을 통해 현실을 왜곡하고, 의제 설정을 통해 중요한 문제를 은폐한다. 소셜 미디어도 알고리즘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다.
젠더 불평등: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은 여성에 대한 이중 착취를 만든다. 임금 격차, 돌봄 노동의 무급화, 유리천장 등은 구조적 차별의 결과다. 성 상품화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착취한다.
인종 차별: 자본주의는 인종차별을 이용해 노동자를 분할 지배한다. 이주 노동자는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되면서도 시민권에서 배제된다. 제도적 인종차별은 불평등을 영속화한다.
환경 파괴: 이윤 추구 논리는 생태계 파괴를 필연적으로 낳는다. 환경 비용은 외부화되고 미래 세대에 전가된다. 기후위기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의 극단적 표현이다.
갈등론과 비판이론의 기여와 한계
갈등론과 비판이론은 사회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권력관계와 이해갈등을 분석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표면적 현상 뒤의 본질을 파악하게 했다. 또한 변화와 변혁의 가능성을 제시해 현상 유지에 안주하지 않게 했다.
이데올로기 비판은 특히 중요한 기여다. 지배적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 어떻게 피지배계급이 자신의 이해에 반하는 체제를 수용하게 되는지 설명했다. 이는 비판적 의식 형성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첫째, 경제결정론의 함정이다. 모든 것을 경제적 요인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다. 문화, 정체성, 감정 등 비경제적 요인의 자율성을 간과한다.
둘째, 혁명적 변화에 대한 과도한 기대다. 점진적 개혁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전면적 변혁만을 추구한다. 이는 현실적 대안 제시에 한계를 낳는다.
셋째, 행위자성(agency)의 과소평가다. 구조의 억압성을 강조하다 보니 개인과 집단의 저항과 창조성을 간과한다. 사람들을 수동적 희생자로만 그린다.
넷째, 복잡성의 단순화다. 현대 사회의 다층적이고 복잡한 현실을 이분법적 도식(지배/피지배,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으로 환원한다.
결론
갈등론과 비판이론은 사회문제를 권력관계와 구조적 불평등의 산물로 본다. 마르크스는 계급갈등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베버는 다차원적 불평등을,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문화적 지배를 분석했다.
이들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경제적 양극화, 민주주의의 형식화, 문화의 상품화, 생태계 파괴 등 현대 사회문제들은 구조적 접근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권력관계를 분석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갈등론도 다른 이론들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구조와 행위, 갈등과 협력, 계급과 정체성 등을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비판만이 아닌 건설적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사회문제론에서 갈등론의 가장 큰 기여는 "비판적 시각"의 제공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의심하고, 숨겨진 권력관계를 드러내며, 대안적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필수적인 지적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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