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Welfare

사회문제론 13. 거리의 정치학: 사회운동은 어떻게 변화를 만드는가

SSSCHS 2025. 5. 14. 00:13
반응형

사회운동의 본질과 정의

사회운동은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적 행동이다. 찰스 틸리는 사회운동을 "지속적이고 조직화된 공공의 요구 제기"로 정의했다. 단순한 폭동이나 일시적 시위와 달리, 사회운동은 명확한 목표와 전략을 가진다. 프랑스 혁명부터 최근의 미투 운동까지, 역사적 변혁의 순간마다 사회운동이 있었다.

현대 사회운동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노동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성소수자 운동, 반전운동 등 각각의 운동은 서로 다른 목표와 전략을 추구한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모두 현재의 권력 구조나 사회 규범에 문제를 제기하고, 집단행동을 통해 변화를 모색한다는 점이다.

자원동원론의 관점

1970년대 등장한 자원동원론은 사회운동을 합리적 행위자들의 전략적 선택으로 본다. 매카시와 잘드는 운동의 성공이 자원 동원 능력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자금, 인력, 시간, 전문성, 미디어 접근성 같은 자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동원하느냐가 관건이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자원동원의 교과서적 사례다. 시민단체들은 체계적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일부는 집회 허가와 법률 지원을 담당했고, 다른 이들은 무대 설치와 질서 유지를 맡았다. SNS를 통한 정보 확산, 자원봉사자 모집, 기금 마련이 유기적으로 이뤄졌다. 이런 효율적 자원동원이 평화적이면서도 강력한 시위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자원동원론의 한계도 명확하다. 왜 사람들이 운동에 참여하는지, 감정과 정체성의 역할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자원이 부족한 집단의 운동을 설명하기 어렵다. 홈리스 운동이나 이주노동자 운동처럼 자원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도 강력한 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

정치기회구조론의 통찰

정치기회구조론은 운동의 성공이 정치적 환경에 달려있다고 본다. 시드니 태로우는 정치적 기회의 개방과 폐쇄가 운동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정권 교체, 엘리트 분열, 국제적 압력, 동맹 세력의 등장 같은 요인들이 기회의 창을 연다.

87년 6월 항쟁은 정치기회구조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는 오히려 저항을 촉발했다. 미국의 민주화 압력, 88올림픽을 앞둔 국제적 시선, 중산층의 각성이 맞물렸다. 이한열 열사 사건은 감정적 동원의 계기가 됐다. 여러 기회 요인들이 중첩되면서 군부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반대로 기회구조가 닫히면 운동은 쇠퇴한다. 2008년 촛불시위는 초기엔 강력했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과 보수 언론의 프레이밍에 밀렸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反정부 시위로 규정되면서 중산층 지지를 잃었다. 정치적 기회가 축소되자 운동도 동력을 상실했다.

프레이밍 이론과 의미 투쟁

데이비드 스노우의 프레이밍 이론은 사회운동을 '의미를 둘러싼 투쟁'으로 본다. 운동은 현실을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한다. 진단적 프레이밍(문제 정의), 예후적 프레이밍(해결책 제시), 동기적 프레이밍(행동 촉구)을 통해 사람들을 동원한다.

미투 운동의 프레이밍 전략은 탁월했다. "나도 당했다"는 간단한 문구로 성폭력 문제를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재정의했다. 피해자에게 씌워진 침묵의 굴레를 깨고 가해자와 시스템을 문제 삼았다. SNS 해시태그는 개인의 경험을 집단적 목소리로 전환시켰다.

기후 운동도 프레이밍 진화를 보여준다. 초기엔 '지구 온난화'라는 과학적 용어를 썼지만, 이제는 '기후 위기'나 '기후 비상사태'로 바꿨다. 북극곰 이미지에서 산불과 홍수 피해 현장으로 초점을 옮겼다. 미래 세대의 생존권이라는 프레임은 그레타 툰베리 같은 청소년 활동가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체성 정치와 신사회운동

신사회운동론은 1960년대 이후 등장한 운동들의 새로운 특징에 주목한다. 알랭 투렌과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들 운동이 계급이 아닌 정체성을 중심으로 조직된다고 봤다. 여성, 성소수자, 인종, 환경 같은 이슈들은 물질적 이익보다 인정과 존중을 추구한다.

퀴어 퍼레이드는 정체성 정치의 전형이다. 화려한 의상과 과감한 퍼포먼스는 이성애 중심 사회에 도전한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가시화 전략은 존재 자체를 정치화한다. 동성혼 합법화나 차별금지법은 경제적 재분배가 아닌 시민권의 문제다.

하지만 정체성 정치는 연대의 어려움을 낳기도 한다. 각 집단이 고유한 억압 경험을 강조하다 보면 공통분모를 찾기 힘들어진다. '억압 올림픽'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엔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인종, 계급, 젠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복합적 억압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감정동원과 도덕적 충격

제임스 재스퍼는 감정이 사회운동의 핵심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분노, 공포, 희망, 자부심 같은 감정들이 사람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다. '도덕적 충격'은 특히 중요하다. 부당한 사건을 목격하거나 경험할 때 느끼는 강렬한 감정이 행동을 촉발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거대한 도덕적 충격을 안겼다. 구조 가능했던 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듣고 희생된 것은 집단적 트라우마가 됐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운동은 슬픔과 분노에서 시작됐다. 노란 리본은 애도와 연대의 상징이 됐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도 마찬가지다. 경찰의 무릎에 짓눌려 숨지는 영상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I can't breathe"는 구조적 인종차별의 상징이 됐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분노를 조직화하여 경찰 개혁과 인종 정의를 요구했다.

네트워크 사회와 운동 전략

디지털 시대는 사회운동의 지형을 완전히 바꿨다. 마누엘 카스텔은 '네트워크 사회'에서 수평적 연대가 가능해졌다고 본다. 위계적 조직 없이도 대규모 동원이 일어난다. 아랍의 봄, 월가 점령 시위, 홍콩 우산혁명은 모두 SNS를 통해 확산됐다.

그러나 클릭티비즘(clicktivism)의 한계도 드러난다. 온라인 서명이나 해시태그 공유는 쉽지만 지속적 헌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좋아요' 누르기와 거리 시위는 다르다. 또한 디지털 감시와 탄압도 정교해졌다. 중국 정부는 위챗과 웨이보를 통해 반정부 활동을 추적한다.

하이브리드 전략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온라인 동원과 오프라인 행동을 결합하는 것이다. 태국의 민주화 운동은 트위터로 정보를 공유하고 플래시몹으로 집회를 열었다. 홍콩 시위대는 텔레그램으로 암호화된 소통을 하면서 '물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연대의 정치학

현대 사회운동의 최대 과제는 연대다. 개별 이슈를 넘어 광범위한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그린뉴딜은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을 시도한다. 일자리 창출과 기후 대응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정의로운 전환'을 모색한다.

한국의 차별금지법 운동도 연대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장애, 인종, 종교,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차별 경험을 가진 집단들이 연합했다. 개별 집단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하지만 보수 종교계의 반발과 정치권의 미온적 태도로 여전히 입법은 지연되고 있다.

국제연대도 확대되고 있다. 기후 운동은 본질적으로 국경을 넘는다. Fridays for Future는 전 세계 청소년들을 연결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반다보스 운동은 초국적 자본에 맞서는 국제적 저항을 조직했다.

억압과 대응 전략

국가의 탄압은 사회운동의 영원한 도전이다. 물리적 폭력, 법적 제재, 감시와 사찰, 분열 공작 등 다양한 억압 수단이 동원된다. 하지만 운동도 진화한다. 비폭력 저항, 시민 불복종, 문화적 저항 등 창의적 전술을 개발한다.

홍콩의 'Be Water' 전략은 현대적 저항의 모범이다. 브루스 리의 명언에서 따온 이 전술은 유연성과 적응력을 강조한다. 경찰이 오면 흩어지고, 떠나면 다시 모인다. 리더 없는 조직, 암호화된 통신, 현금 거래로 추적을 피한다. 레이저 포인터로 안면인식 카메라를 무력화하는 등 하이테크 저항도 동원했다.

미얀마의 시민 불복종 운동은 또 다른 사례다. 2021년 군부 쿠데타에 맞서 의사, 교사, 공무원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섰다. '쿠데타는 실패한다'는 믿음으로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냄비를 두드리는 소음 시위, 빨래 걸기 캠페인 등 일상적 저항도 이어졌다.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저항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운동의 성과와 한계

사회운동의 성공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즉각적인 정책 변화만이 성과는 아니다. 문화적 변화, 의식 전환, 새로운 정체성 형성도 중요한 성과다. 실패한 운동도 후속 운동의 자양분이 된다.

민주화 운동이 대표적이다. 4.19, 5.18, 6월 항쟁은 연속선상에 있다. 각각의 운동은 즉각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민주주의 열망을 키웠다. 희생과 투쟁의 기억은 다음 세대에 계승됐다. 결국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이뤘다.

페미니즘 운동도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 여성 참정권에서 시작해 낙태권, 동일노동 동일임금, 성폭력 근절까지 의제가 확대됐다. 각 시대마다 백래시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진전했다. 미투 운동 이후 성평등 의식은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겪었다.

미래의 사회운동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는 새로운 운동 형태를 낳는다. 인공지능, 자동화, 기후변화, 팬데믹은 전례 없는 도전을 제기한다. 기본소득 운동, 트랜스휴머니즘, 탈성장 운동 등 새로운 의제들이 부상한다.

가상현실과 메타버스는 운동의 공간을 확장한다. 아바타 시위, 가상 점거, NFT 모금 등 새로운 전술이 실험되고 있다. 동시에 디지털 권리, 알고리즘 정의, 데이터 주권 같은 이슈들이 운동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불평등, 부정의, 억압에 맞서는 집단적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형태는 바뀌어도 변화를 향한 열망은 영원하다.

결론

사회운동 이론은 변화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해준다. 자원동원론은 전략적 계획의 중요성을, 정치기회구조론은 타이밍의 중요성을, 프레이밍 이론은 의미 구성의 힘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론들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보완적이다.

성공적인 운동은 여러 요소들을 결합한다. 충분한 자원, 유리한 정치적 기회, 설득력 있는 프레임, 감정적 동원, 광범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헌신과 창의적 전략이 요구된다.

사회운동은 민주주의의 생명선이다. 제도 정치가 포착하지 못하는 목소리를 대변하고, 기존 질서에 도전하며, 대안적 미래를 상상한다. 완벽한 사회는 없기에 운동은 계속된다. 더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향한 집단적 열망이 역사를 전진시킨다. 이것이 사회운동이 가진 변혁의 힘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