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Welfare

장애인복지론 2. 장애인 권리와 법제도의 발전 - UN 장애인권리협약과 국내 법체계

SSSCHS 2025. 5. 24.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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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권리 패러다임의 등장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형성되었다. 과거에는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로 보호하고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면, 현재는 장애인을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식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관점의 전환을 넘어서 장애인복지 정책과 실천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권리 중심 접근법은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개인의 불운이나 사회의 선의에 의존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권 침해의 문제로 본다. 따라서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권리 보장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장애인복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요한 변화였다.

권리 중심 접근법의 핵심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며,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하게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는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국가와 사회는 이러한 권리가 실질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

UN 장애인권리협약의 탄생과 의미

UN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은 2006년 12월 13일 UN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이 협약은 장애인 인권 보장을 위한 최초의 국제적 법적 구속력 있는 문서로, 장애인 권리 보장의 국제적 기준을 제시했다. 협약은 2008년 5월 3일 발효되었으며, 현재 전 세계 180여 개국이 가입하여 가장 빠르게 비준된 UN 인권협약이 되었다.

장애인권리협약의 가장 큰 의미는 장애인 문제를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이다. 과거 장애인 관련 국제 문서들이 주로 사회보장이나 재활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이 협약은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로 명확히 규정했다. 장애인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기준에서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완전하고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협약의 목적이다.

협약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장애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협약은 장애를 개인의 손상이 아니라 사회적 장벽과의 상호작용 결과로 정의했다. 이는 사회적 모델의 관점을 국제법적으로 확립한 것으로,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을 사회의 장벽에서 찾고 이를 제거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을 명확히 했다.

장애인권리협약의 주요 원칙과 내용

장애인권리협약은 8개의 기본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과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둘째, 비차별의 원칙으로 장애를 이유로 한 어떠한 차별도 금지한다. 셋째, 사회에 대한 완전하고 효과적인 참여와 통합을 보장한다. 넷째, 인간의 다양성과 인간성의 일부로서 장애인의 차이를 존중하고 수용한다.

다섯째, 기회의 균등을 보장한다. 여섯째, 접근성을 보장하여 장애인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일곱째, 남녀의 평등을 보장한다. 여덟째, 장애아동의 점진적 발달 능력을 존중하고 장애아동이 자신의 정체성을 보전할 권리를 존중한다.

협약은 이러한 원칙에 기반하여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생명권, 자유권, 안전권과 같은 기본적 권리부터 교육권, 건강권, 근로권, 문화생활권 등 사회적 권리까지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 특히 협약은 장애인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기준에서 이러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강조한다.

합리적 편의 제공의 개념과 중요성

장애인권리협약이 도입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합리적 편의 제공'이다. 합리적 편의 제공은 장애인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기준에서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변경과 조정을 의미한다. 단, 이러한 변경과 조정이 과도한 부담이나 불균형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합리적 편의 제공은 장애인 차별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합리적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이 협약의 입장이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단순히 직접적인 배제나 불이익 처우로만 보던 기존 관점을 크게 확장한 것이다.

합리적 편의 제공의 구체적인 예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자료 제공,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 제공, 지체장애인을 위한 물리적 접근성 개선 등이 있다. 하지만 합리적 편의 제공은 이러한 물리적 조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업무 방식의 조정, 근무 시간의 조정, 평가 방식의 변경 등 다양한 형태의 조정이 포함될 수 있다.

합리적 편의 제공 의무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도 개인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필요한 편의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획일적인 기준보다는 개별적인 욕구와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이 중요하다.

한국의 장애인권리협약 비준과 이행

한국은 2008년 12월 11일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다. 이는 협약 발효 후 비교적 빠른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한국 정부의 장애인 인권 보장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협약 비준 이후 한국은 협약 이행을 위한 다양한 법제도적 개선을 추진해왔다.

협약 비준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이었다. 2007년 제정된 이 법은 협약의 정신을 국내법으로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다. 법률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합리적 편의 제공 의무를 법적으로 규정했다. 또한 차별 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다.

정부는 협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다. 5년마다 수립되는 이 계획은 협약의 각 조항에 따른 구체적인 이행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022)이 시행되었고, 제6차 계획이 수립되어 추진되고 있다.

한국은 협약 제35조에 따라 국가 보고서를 UN에 제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2011년 제1차 국가 보고서를 제출한 이후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으며, UN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심의를 받고 있다. 위원회는 한국의 협약 이행 상황을 검토하고 개선 권고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장애인 관련 법체계의 발전

한국의 장애인 관련 법체계는 장애인권리협약의 영향을 받아 큰 변화를 겪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법률은 장애인복지법이다. 1981년 제정된 이 법은 장애인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사회참여를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률은 여러 차례 개정을 통해 권리 중심의 내용으로 발전해왔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2007년 제정되어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장애인권리협약의 정신을 구현한 대표적인 법률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합리적 편의 제공 의무를 규정했다. 법률은 고용, 교육, 재화와 서비스 이용, 사법·행정 절차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2014년 제정되어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보장, 의사소통 지원, 권리구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장애인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은 2011년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지원서비스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여 생활할 수 있도록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주요 내용과 의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한국 장애인 법제도 발전의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이 법은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명확히 규정했다. 법률의 목적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법률은 차별의 개념을 폭넓게 정의했다. 직접차별뿐만 아니라 간접차별, 정당한 편의 제공 거부에 의한 차별, 광고를 통한 차별 등을 모두 차별로 규정했다. 특히 합리적 편의 제공 거부를 차별로 명시한 것은 장애인권리협약의 정신을 구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법률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한다. 고용 영역에서는 모집·채용, 임금, 승진, 교육, 해고 등 모든 단계에서 차별을 금지한다. 교육 영역에서는 입학, 전학, 교육내용, 방법, 평가 등에서 차별을 금지한다. 재화와 서비스 이용 영역에서는 토지·건물 매매·임대, 금융·보험 서비스, 교통수단, 정보통신 등에서 차별을 금지한다.

법률은 차별 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 차별에 대한 조사와 구제 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피해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고, 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차별이 인정되면 시정 권고나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한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발달장애인법의 제정과 특별한 보호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제정은 한국 장애인 법제도의 또 다른 중요한 발전이었다.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들의 특성을 고려한 별도의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제정되었다.

법률은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자기결정권, 성년후견제 등 의사결정 지원 체계,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 권익옹호 등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 지원을 위한 체계적인 장치를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법률은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지원을 규정했다. 영유아기부터 성인기까지 각 단계별로 필요한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제공하도록 했다. 조기 진단과 개입, 특수교육, 직업 재활, 평생교육 등이 포함된다.

권익옹호 체계 구축도 법률의 중요한 내용이다. 발달장애인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보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체계가 필요하다. 법률은 발달장애인 권익옹호기관 설치, 공공후견인 제도 등을 통해 체계적인 권익옹호 체계를 구축하도록 했다.

활동지원서비스법과 자립생활 지원

장애인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 법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여 생활할 수 있도록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신체활동 지원, 가사활동 지원, 사회활동 지원 등을 포함한다. 신체활동 지원은 개인위생, 식사, 실내이동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활동을 지원한다. 가사활동 지원은 청소, 세탁, 취사 등 가정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지원한다. 사회활동 지원은 직장생활, 학교생활, 여가활동 등 사회참여에 필요한 활동을 지원한다.

법률은 활동지원서비스의 이용 절차와 기준을 규정했다. 서비스 신청, 종합조사, 등급 판정, 개인별 이용계획 수립 등의 과정을 거쳐 서비스가 제공된다. 장애인의 개별적인 욕구와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해 개인별 이용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핵심적인 서비스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 시설 중심의 보호에서 벗어나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서비스 이용자 수와 서비스 시간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국제적 동향과 한국의 과제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연합, 미국, 호주 등 선진국들은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 정책 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탈시설화, 자립생활 지원, 통합교육, 고용 촉진 등의 영역에서 혁신적인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한국도 국제적 동향에 발맞춰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UN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의 협약 이행 상황을 검토하면서 여러 개선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탈시설화 추진, 특수교육에서 통합교육으로의 전환, 장애인 고용 확대, 접근성 개선 등이 주요 권고사항이다.

법제도적 측면에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장애인 관련 법률들 간의 체계성 확보, 법률 간 중복이나 공백 해소, 실효성 있는 제재 수단 마련 등이 필요하다. 또한 법률의 내용이 현실에서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실행 체계의 강화도 중요한 과제다.

사회적 인식 개선도 지속적으로 필요한 영역이다. 법제도가 아무리 잘 정비되어도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 장애인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보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확산되어야 한다.

결론

장애인 권리와 법제도의 발전은 장애인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UN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 권리 보장의 국제적 기준을 제시했고, 각국은 이를 바탕으로 자국의 법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한국도 협약 비준 이후 장애인차별금지법, 발달장애인법, 활동지원서비스법 등을 제정하여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법제도의 정비만으로는 장애인의 권리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법률의 내용이 현실에서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의지, 사회적 인식 개선,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장애인 당사자가 권리의 주체로서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법제도의 지속적인 개선, 정책의 실효성 제고, 사회적 인식 개선, 장애인 당사자의 역량 강화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이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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