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파리의 거리에서는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기존 질서에 맞서 항거했다. 68혁명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저항을 넘어 도시 공간과 일상생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다. 바로 이 시기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도시와 공간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혁신적 이론을 제시했다. 공간이 단순한 물리적 용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것이라는 그의 통찰은 도시사회학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다.
시카고 학파 이후 도시이론의 전환점
1970년대에 이르면서 시카고 학파의 생태학적 접근법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됐다. 기존 이론이 도시 현상을 자연스러운 생태학적 과정으로 설명하는 데 치중하면서, 권력 관계와 사회적 갈등,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간과한다는 지적이 커졌다. 특히 1960년대 미국의 도시 폭동, 인종 갈등, 빈곤 문제 등이 표면화되면서 기존 이론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도시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했다. 도시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산물로 보고, 도시 공간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계급 갈등과 자본 축적의 관점에서 분석하려는 새로운 접근법이 대두됐다.
무엇보다 공간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기존에는 공간을 사회적 활동이 일어나는 중립적인 배경이나 용기로 여겼다면, 새로운 이론가들은 공간 자체가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며 동시에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능동적 요소라고 보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론적 전환의 선두에 앙리 르페브르와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있었다. 이들은 각각 프랑스와 영미권에서 마르크스주의적 도시 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오늘날까지도 비판적 도시 이론의 핵심 인물로 자리잡고 있다.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 생산론
앙리 르페브르는 1974년 출간한 『공간의 생산』(La Production de l'Espace)에서 공간에 대한 전혀 새로운 사고를 제시했다. 그의 핵심 주장은 공간이 단순히 주어진 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공간 인식을 뒤바꾸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르페브르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은 상품이 된다. 토지와 부동산이 매매의 대상이 되면서 공간 자체가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공간은 추상화되고 균질화된다. 구체적인 장소의 특성과 의미는 사라지고 교환가치로 환원된다.
공간의 사회적 생산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르페브르는 공간을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했다. 첫째는 공간적 실천(spatial practice)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공간을 사용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말한다. 출퇴근, 쇼핑, 여가활동 등을 통해 도시 공간을 실제로 활용하는 모든 행위가 여기에 포함된다.
둘째는 공간의 재현(representations of space)이다. 이는 전문가들이 만든 공간에 대한 개념적 표상으로, 도시계획가, 건축가, 지리학자들이 만든 지도, 설계도, 개발계획 등이 해당한다. 지배층의 공간 담론이 여기에 속하며, 일반적으로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성격을 갖는다.
셋째는 재현의 공간(representational spaces)이다. 이는 사용자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상상하는 살아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기호, 상징, 이미지로 가득한 공간으로, 예술가, 작가, 철학자들이 묘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공간은 지배적 질서에 저항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르페브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의 재현이 재현의 공간을 억압하고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관료적이고 기술적인 공간 계획이 사람들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공간 경험을 무시하거나 억누른다는 것이다.
르페브르의 도시권 개념
공간 생산론과 함께 르페브르가 제시한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이 도시권(le droit à la ville)이다. 1968년 출간된 같은 제목의 저서에서 처음 제시된 이 개념은 단순한 거주권을 넘어 도시 공간에 대한 포괄적인 권리를 의미한다.
도시권은 도시에 거주하고 도시를 사용할 권리만이 아니라, 도시를 만들고 변화시킬 권리를 포함한다. 즉 도시민이 도시 공간의 생산과 재생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다. 이는 기존의 소유권 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집합적 권리다.
도시권은 크게 두 가지 권리로 구성된다. 하나는 점유권(right to occupation)이다. 이는 도시 공간에 물리적으로 접근하고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다른 하나는 참여권(right to participation)이다. 이는 도시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도시 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르페브르가 보기에 자본주의 도시화는 도시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부동산 투기와 상업적 개발이 서민들을 도심에서 내몰고, 관료적 도시계획이 주민들의 의견을 배제한 채 진행된다. 도시 공간이 소수의 자본가와 전문가들에 의해 독점되면서 일반 시민들의 도시권이 박탈당한다.
도시권 개념은 오늘날 도시 운동과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반대 운동, 주거권 운동, 참여형 도시계획 등에서 중요한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유엔해비타트도 2016년 신도시의제에서 도시권을 핵심 원칙 중 하나로 채택했다.
데이비드 하비의 마르크스주의적 도시 이론
데이비드 하비는 1973년 출간한 『사회정의와 도시』(Social Justice and the City)를 통해 지리학과 도시연구에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본격 도입했다. 하비는 도시 현상을 자본주의 축적 과정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간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분석틀을 제시했다.
하비의 핵심 아이디어는 자본주의에서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자본 축적의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자본은 이윤율 하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과 투자처를 찾아야 하는데, 도시 공간의 생산과 재생산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한다.
하비는 자본의 공간적 순환(spatial circuit)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자본은 첫 번째 순환에서 생산 영역에 투자되고, 두 번째 순환에서 도시 인프라와 부동산에 투자된다. 생산 부문의 수익성이 떨어지면 자본은 부동산과 도시 개발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이윤 창출을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도시 공간은 끊임없이 파괴되고 재건된다. 하비는 이를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불렀다. 기존의 건물과 시설들이 철거되고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가 들어서면서 도시 경관이 급격히 변화한다. 이는 자본이 새로운 투자처를 확보하는 동시에 기존 투자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이다.
시공간 압축과 불균등 발전
하비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공간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시공간 압축'(time-space compression)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제시했다.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교통과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거리와 시간의 장벽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시공간 압축은 자본의 회전 속도를 높이고 시장의 범위를 확대한다. 하지만 동시에 지역 간 경쟁을 심화시키고 공간적 불평등을 확대하기도 한다. 글로벌 도시들은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반면, 주변 지역들은 더욱 주변화된다.
이와 관련해 하비가 제시한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이 '불균등 발전'(uneven development)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공간적으로 불균등한 발전을 낳는다. 자본은 더 높은 이윤을 추구해 유리한 지역으로 이동하고, 그 결과 지역 간 격차가 확대된다.
불균등 발전은 다양한 규모에서 나타난다. 국가 간, 지역 간, 도시 내부의 지역 간에도 발전의 격차가 발생한다. 강남과 강북의 격차,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격차 등이 모두 불균등 발전의 사례다.
하비는 이러한 불균등 발전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공간적 해법(spatial fix)이라고 분석했다. 자본은 한 지역에서 수익성이 떨어지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하지만 이는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전시키는 것일 뿐이다.
축적에 의한 수탈
2000년대 들어 하비는 '축적에 의한 수탈'(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한 '원시적 축적'의 현대적 형태로, 자본이 기존의 생산 확대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워지자 다른 방식으로 부를 집중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도시 공간에서 축적에 의한 수탈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한 저소득층의 강제 이주, 공공자산의 민영화,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부의 집중 등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거주민들이나 공동체는 자신들의 권리와 자산을 빼앗기게 된다.
특히 신자유주의 도시 정책은 축적에 의한 수탈을 촉진한다. 도시 재개발, 메가이벤트 유치, 창조도시 정책 등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많은 사업들이 실제로는 부동산 자본의 이익을 위해 일반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비는 이러한 현상을 '신자유주의적 도시주의'(neoliberal urbanism)라고 비판했다. 도시가 시민들의 삶터가 아니라 자본 축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도시권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란의 도시와 도시권 운동
하비는 2012년 『반란의 도시』(Rebel Cities)에서 도시가 사회 변혁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는 상황에서 도시는 정치적 변화의 핵심 무대가 되고 있다.
실제로 21세기 들어 주요한 사회운동들이 대부분 도시에서 시작됐다. 1999년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 2011년 월가 점령 운동, 아랍의 봄,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 운동 등이 모두 도시 광장과 거리에서 벌어졌다. 한국의 2016-17년 촛불집회도 마찬가지다.
하비는 이러한 도시 운동들이 단순한 정치적 항의를 넘어 도시권 회복을 위한 투쟁이라고 해석한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도시를 되찾기 위해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도시 공간에 대한 통제권을 자본과 국가로부터 시민들에게 되돌리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도시권 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주거권 운동, 공공공간 지키기 운동, 참여예산제나 주민자치 확대 운동, 젠트리피케이션 반대 운동 등이 모두 넓은 의미의 도시권 운동이다. 이들은 모두 시민들이 도시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공통의 지향을 갖고 있다.
한국 도시 현실에 대한 시사점
르페브르와 하비의 이론은 한국의 도시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의 급속한 도시화와 부동산 중심의 성장 모델은 이들이 분석한 자본주의적 도시화의 전형적인 사례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도시 개발은 전형적인 성장연합의 산물이었다. 정부, 건설업체, 금융자본이 결합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엄청난 부를 창출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거주민들의 권리는 종종 무시됐고, 도시 공간은 투기의 대상이 됐다.
강남 개발로 대표되는 한국의 도시 개발 방식은 하비가 말한 '공간적 해법'의 전형이다. 경제성장의 한계를 부동산 개발로 돌파하려 했고, 그 결과 부동산이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이 됐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심각한 공간 불평등과 주거비 부담을 낳았다.
최근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르페브르와 하비의 분석틀로 이해할 수 있다. 홍대, 강남역, 경리단길 등에서 벌어지는 임대료 상승과 기존 상인들의 내몰림은 전형적인 '축적에 의한 수탈' 사례다. 문화적 가치와 장소성이 상품화되면서 기존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이다.
반면 성미산 마을, 문래예술창작촌, 각종 도시재생 사업에서의 주민참여 등은 도시권 회복을 위한 시도들로 볼 수 있다. 비록 제한적이지만 시민들이 도시 공간의 생산 과정에 개입하려는 노력들이다.
공간 생산론의 현대적 확장
르페브르와 하비의 이론은 후속 연구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전되고 있다. 특히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은 젠더 관점에서 공간 이론을 확장했고, 포스트콜로니얼 학자들은 제3세계 도시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에드워드 소자(Edward Soja)는 '제3공간'(thirdspace) 개념을 통해 르페브르의 공간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물리적 공간도 정신적 공간도 아닌 제3의 공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리스 마시(Doris Massey)는 공간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계적이고 과정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간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이 만나고 교차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닐 스미스(Neil Smith)는 하비의 불균등 발전 이론을 더욱 정교화했고, 젠트리피케이션을 자본의 공간적 순환 과정으로 분석했다. 그의 '임대료 격차'(rent gap) 이론은 젠트리피케이션 연구의 고전이 되었다.
결론
르페브르와 하비의 공간 생산론과 비판적 도시 이론은 도시사회학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은 공간을 단순한 물리적 용기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자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특히 이들의 이론은 도시를 자본주의 축적 과정의 핵심 요소로 파악하면서, 도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모순을 계급적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젠트리피케이션, 도시 재개발, 부동산 투기 등 현대 도시의 주요 현상들을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또한 도시권 개념은 단순한 거주권을 넘어 도시 공간에 대한 포괄적인 권리를 제시하면서, 도시 운동과 정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시민들이 도시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도시 공간의 생산과 재생산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한국의 급속한 도시화와 부동산 중심의 성장 모델, 그리고 최근의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 논쟁들은 모두 이들의 이론적 틀로 분석할 수 있는 현상들이다. 도시가 시민들의 삶터가 아니라 자본 축적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도시권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르페브르와 하비의 이론적 유산은 바로 그러한 대안적 사고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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