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logy

도시사회학 7. 도시정치와 성장연합: 권리로서의 도시와 시민참여의 새로운 지평

SSSCHS 2025. 5. 28.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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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복잡한 정치적 역학이 펼쳐지는 무대다. 누가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가? 시민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반영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현대 도시정치학의 핵심을 이룬다. 특히 성장연합(Growth Coalition) 이론과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도시에 대한 권리(Right to the City)' 개념은 도시 공간을 둘러싼 권력 투쟁의 본질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성장연합 이론의 등장과 발전

하비 몰로치(Harvey Molotch)가 1976년 제시한 성장연합 이론은 도시정치를 이해하는 혁신적인 관점을 제공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도시는 '성장기계(Growth Machine)'로 작동하며, 지역의 엘리트들이 연합을 형성하여 도시 개발과 성장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들 엘리트는 부동산 개발업자, 금융기관, 지방정부, 언론, 대학 등 다양한 분야의 행위자들로 구성된다.

성장연합의 핵심 목표는 토지 가치의 상승을 통한 이익 극대화다. 이들은 대규모 개발 사업, 인프라 구축, 대형 이벤트 유치 등을 통해 지역의 '성장'을 추진하며,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한다. 예를 들어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메가 이벤트 유치는 단순히 국가적 위상 제고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 건설 사업과 부동산 개발을 통한 이익 창출의 기회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존 로건(John Logan)과 하비 몰로치는 후속 연구에서 이 이론을 더욱 정교화했다. 그들은 도시 공간을 '교환가치(Exchange Value)'와 '사용가치(Use Value)'의 갈등 구조로 설명했다. 성장연합은 토지와 건물의 교환가치 극대화에 관심을 갖는 반면, 일반 시민들은 주거, 근무, 여가 등을 위한 사용가치에 더 큰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성장연합의 구성과 작동 메커니즘

성장연합은 다양한 행위자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로 구성된다. 핵심 구성원은 부동산 개발업자와 건설업체들이다. 이들은 개발 사업을 통해 직접적인 이익을 얻는 주체로서 연합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들도 개발 자금을 제공하고 대출 이자 수익을 얻기 때문에 성장연합의 중요한 구성원이 된다.

지방정부는 성장연합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표면적으로는 공공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세수 증대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발 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장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통해 정치적 성공을 추구하려는 유인이 있어,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기 쉽다.

언론매체들도 성장연합의 일원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신문사나 방송사들은 광고 수익의 상당 부분을 부동산 관련 업체들로부터 얻기 때문에, 개발 사업을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들은 '지역 발전'이라는 담론을 통해 성장연합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대학이나 병원 같은 대형 기관들도 성장연합에 참여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시설 확장이나 주변 지역 개발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며,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특히 대학은 지식과 전문성을 제공함으로써 개발 사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국의 성장연합 사례: 강남 개발과 뉴타운 정책

한국에서 성장연합 이론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는 1970년대 강남 개발이다. 박정희 정부는 한강 이남 지역을 새로운 부도심으로 개발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고, 이 과정에서 정부, 대기업, 건설업체, 금융기관들이 강력한 연합을 형성했다. 강남 개발은 표면적으로는 서울의 균형 발전을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막대한 개발 이익을 창출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농지와 임야의 소유주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건설업체들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정부는 강남을 '강남 스타일'로 상징되는 부와 성공의 공간으로 브랜딩하면서, 이 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지속적으로 상승시켰다. 언론은 강남을 '교육의 메카', '문화의 중심지'로 포장하며 개발의 정당성을 뒷받침했다.

2000년대 들어 추진된 뉴타운 정책도 성장연합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발표된 뉴타운 정책은 기존 주거지역을 철거하고 고층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이 정책은 '도시 환경 개선'과 '주거 여건 향상'을 명분으로 추진되었지만, 실제로는 건설업체와 부동산 업계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뉴타운 정책 추진 과정에서 기존 거주민들의 의견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많은 경우 주민들은 재정착이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반면 건설업체들은 막대한 수익을 얻었고, 부동산 투기 세력들도 상당한 이익을 챙겼다. 이는 성장연합이 추구하는 교환가치와 일반 시민들이 추구하는 사용가치 사이의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권리로서의 도시 개념의 등장

앙리 르페브르가 1968년 제시한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은 성장연합 중심의 도시정치에 대한 강력한 대안적 관점을 제공한다. 르페브르는 도시가 단순히 거주하고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향유해야 할 권리의 공간이라고 주장했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두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는 '점유의 권리(Right to Occupation)'로, 이는 도시 공간에 접근하고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둘째는 '참여의 권리(Right to Participation)'로, 도시 계획과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들이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이러한 개념은 도시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도시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집합적 작품(collective work)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도시 공간의 상품화에 맞서는 대안적 비전을 제시한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르페브르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도시에 대한 권리를 '도시 잉여의 생산과 이용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했다. 도시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들을 소수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만들어낸 시민들이 공동으로 향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참여와 참여민주주의의 확산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의 확산과 함께 도시정치에서 시민참여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전통적인 대의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서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지만, 현대 도시정치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직접 참여 메커니즘이 도입되고 있다.

참여예산제도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리(Porto Alegre)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시민들이 직접 지방정부의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동네별, 주제별 모임을 통해 예산 우선순위를 논의하고 결정하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필요와 요구를 직접 반영시킬 수 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시민참여 제도들이 도입되고 있다. 주민자치센터, 마을만들기 사업, 도시계획 주민설명회 등이 그 예시다. 특히 최근에는 '리빙랩(Living Lab)' 개념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이 도시 문제 해결의 주체로 참여하는 실험들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도 시민참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정책 토론, 모바일 앱을 활용한 시민 의견 수렴, 빅데이터를 이용한 시민 니즈 분석 등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전자정부 시스템이나 대만의 vTaiwan 플랫폼 같은 사례들은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시민참여를 혁신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도시 사회운동과 대안적 도시정치

성장연합의 논리에 맞서는 다양한 형태의 도시 사회운동들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 운동은 도시에 대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반젠트리피케이션 운동은 가장 활발한 도시 사회운동 중 하나다. 런던의 Social Life, 뉴욕의 Right to the City Alliance, 베를린의 Kotti & Co 같은 단체들은 저소득층과 기존 거주민들이 도시 개발로 인해 쫓겨나지 않도록 보호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임대료 통제, 사회주택 확대, 공동체 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 설립 등을 통해 도시 공간의 상품화에 맞서고 있다.

공원이나 광장 같은 공공공간을 지키기 위한 운동들도 활발하다. 터키 이스탄불의 게지 공원 시위, 스페인의 15-M 운동, 미국의 Occupy Wall Street 운동 등은 모두 공공공간을 사유화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이들 운동은 단순히 특정 공간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도시에서의 집회와 표현의 자유, 민주적 참여의 권리를 수호하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도 용산 참사, 명동 쪽방촌 철거 반대 운동, 홍대 클럽데이 문화 보존 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도시 사회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상권 변화에 맞서는 상인들과 시민들의 연대 운동도 늘어나고 있다.

지방분권과 도시자치의 강화

도시정치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중앙정부로부터의 권한 이양, 즉 지방분권이 필수적이다. 많은 국가에서 도시 정부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시민들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보조성의 원칙(Principle of Subsidiarity)'을 통해 가능한 한 시민들과 가까운 차원에서 정책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의 연방제도, 프랑스의 지방분권 개혁, 영국의 devolution 정책 등이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한국에서도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된 자치분권 로드맵은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하고, 주민자치회 설치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려는 시도였다. 비록 완전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한국 도시정치의 민주화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와 도시정치의 변화

코로나19 팬데믹은 도시정치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었다. 방역 정책, 소상공인 지원,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등은 모두 지방정부의 역량에 크게 의존했다.

동시에 팬데믹은 기존의 도시 공간 이용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가져왔다.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업무 공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고, 대신 주거 환경과 근린 공간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는 도시계획의 패러다임 변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시민들의 일상생활 반경 내에서의 편의성과 안전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 우선순위가 변화하고 있다.

또한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시민참여의 새로운 형태들이 등장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원격 참여, 지역 커뮤니티 단위의 자발적 방역 활동, 소상공인과 시민들 간의 연대 운동 등이 그 예시다. 이러한 변화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도시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와 도시정치의 새로운 쟁점

우버, 에어비앤비, 배달의민족 같은 플랫폼 기업들의 등장은 도시정치에 새로운 쟁점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기존의 규제 체계를 우회하면서 도시의 교통, 주거, 상업 생태계에 급속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는 주거용 부동산을 숙박업소로 전환시키면서 지역 주택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에서는 장기 임대용 주택이 단기 임대용으로 전환되면서 주거비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속화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 베를린 등 많은 도시에서 에어비앤비 규제를 둘러싼 치열한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버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는 기존 택시 업계와의 갈등을 야기하면서, 노동자의 권리와 플랫폼 경제의 혁신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도시 정부의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런던에서는 우버의 영업 허가를 둘러싼 법적 다툼이 수년간 지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다.

한국에서도 타다 서비스를 둘러싼 논란,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 환경 개선 요구, 에어비앤비로 인한 주거지 갈등 등이 중요한 도시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존의 성장연합 이론으로는 완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갈등을 보여준다.

기후변화와 녹색 도시정치

기후변화 대응이 전 지구적 과제로 부상하면서, 도시정치에서도 환경 이슈의 중요성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탄소 중립, 재생에너지 전환, 친환경 교통 시스템 구축 등이 도시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환경 정책을 둘러싸고도 복잡한 정치적 역학이 작동한다. 친환경 정책은 종종 높은 비용을 수반하며, 이로 인한 부담이 사회 계층별로 다르게 분배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저배출구역 정책은 환경 개선 효과가 있지만, 구형 차량을 운전하는 저소득층에게는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또한 녹색 개발이나 생태 복원 사업들이 새로운 형태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야기하는 '그린 젠트리피케이션(Green Gentrification)'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공원이나 녹지가 조성되면서 주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기존 거주민들이 밀려나는 것이다. 이는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 관점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결론

도시정치는 성장연합의 경제적 논리와 시민들의 사용가치 추구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전개된다. 성장연합 이론은 현대 도시에서 누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에 맞서는 시민들의 저항과 대안 모색의 가능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은 도시 공간을 둘러싼 투쟁에서 시민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는 단순히 도시에 거주할 권리를 넘어서,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참여예산제, 주민자치회, 리빙랩 같은 제도들은 이러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도구들이다.

하지만 도시정치의 민주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확산,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 코로나19로 인한 도시 공간 이용의 변화 등은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쟁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도, 도시가 모든 시민들을 위한 공동의 작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21세기 도시정치의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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