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logy

환경사회학 10. 환경 미래의 갈래길: 탄소중립, 탈성장, 기후정의가 그리는 사회 전망

SSSCHS 2025. 6. 5.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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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지금 거대한 갈래길에 서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위기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현재의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기술 혁신을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하는가?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정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다. 탄소중립, 탈성장, 기후정의라는 세 가지 주요 경로가 각각 다른 미래 사회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각각의 시나리오가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기술 낙관주의의 미래

탄소중립은 현재 가장 주류적인 기후 대응 전략이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는 목표 아래, 전 세계 120여 개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 시나리오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기술 혁신을 통해 탈탄소화를 달성하려는 접근법이다.

탄소중립 전략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이다.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전기차로 교통 시스템을 바꾸며,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것이다. 여기에 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CCUS), 수소 경제, 원자력 발전 등이 보완적 역할을 한다. 기술 혁신이 환경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바탕에 있다.

이 시나리오의 가장 큰 장점은 현실성이다. 기존의 정치·경제 체제와 생활양식을 크게 바꾸지 않고도 기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결정자들과 기업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비용이 급격히 하락하고,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등 긍정적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그린 뉴딜, 녹색 성장, 녹색 금융 등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환경 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선진국들은 기술 수출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테슬라나 베스타스 같은 기업들의 성공은 이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는 한계도 분명하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 중심적 접근의 한계다.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로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철강, 시멘트, 화학 등 중공업 분야의 탈탄소화는 여전히 기술적 난제로 남아있다.

리바운드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에너지 효율이 개선되면 에너지 비용이 줄어들어 오히려 더 많이 사용하게 되는 현상이다. 전기차가 보급되면서 자동차 이용이 늘어나거나, 재생에너지가 싸져서 전력 소비가 증가하는 것이 그 예다.

사회적 불평등 문제도 심각하다. 탄소중립 전환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 전기차를 살 수 있는 부유층과 그렇지 못한 저소득층 사이의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또한 화석연료 산업 종사자들의 일자리 문제, 개발도상국의 발전권 문제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탈성장 시나리오: 패러다임 전환의 급진적 상상

탈성장(degrowth)은 경제성장 중심의 사회 시스템 자체를 문제로 보는 급진적 접근법이다. 무한한 성장이 유한한 지구에서 불가능하다는 인식 아래, 성장보다는 웰빙을 추구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 패러다임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탈성장 시나리오에서는 물질적 소비의 절대적 감소가 핵심이다. 필요 없는 생산과 소비를 줄이고, 내구성 있는 제품을 만들며, 공유와 재활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주 5일제에서 주 4일제로, 대량생산에서 소량 맞춤 생산으로, 소유에서 공유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시간 사용의 변화도 중요하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쉬며, 돈을 벌기 위한 노동보다는 의미 있는 활동에 시간을 쓰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본소득제나 최대임금제 같은 새로운 분배 시스템이 필요하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효율보다는 회복력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도 수반된다.

탈성장 시나리오의 장점은 환경 부담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생산과 소비 자체를 줄이면 자원 사용량과 폐기물 발생량을 대폭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삶의 질 향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더 여유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지역 공동체의 복원도 기대할 수 있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에서 벗어나면 지역 기반의 소규모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로컬푸드, 지역화폐, 공동체 텃밭 등이 새로운 경제 모델의 기반이 된다. 이는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고 환경 부담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탈성장 시나리오는 현실적 한계가 크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실현 가능성이다. 성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기존의 정치·경제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인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는 매우 어렵다. 기업들의 반발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도 생활 수준 하락을 우려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에게는 더욱 어려운 선택이다. 아직 기본적인 필요도 충족하지 못한 상황에서 성장을 포기하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선진국만 탈성장을 하고 개발도상국은 성장을 계속한다면 글로벌 차원의 환경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

기술 발전의 저해 가능성도 우려된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 연구개발 투자가 줄어들고, 환경 기술 발전도 더뎌질 수 있다. 탈성장이 오히려 환경 문제 해결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기후정의 시나리오: 평등과 정의 중심의 전환

기후정의(climate justice)는 기후변화 문제를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패러다임이다. 기후변화의 원인과 결과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인식 아래, 정의로운 기후 대응을 추구한다. 이는 탄소중립의 기술 중심주의나 탈성장의 전면적 전환론과는 다른 제3의 길을 제시한다.

기후정의의 핵심은 '공통되지만 차별적인 책임' 원칙이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다르므로 대응 책임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더 많은 감축 의무를 지고, 개발도상국에는 기술과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파리기후협정의 손실과 피해 기금이 이런 원칙을 반영한 것이다.

개별 국가 내에서도 정의로운 전환이 중요하다. 탈탄소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지역과 계층에 대한 보상과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독일의 탈석탄 정책에서 석탄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 패키지를 마련한 것이 좋은 사례다. 일자리 재훈련, 지역 산업 전환, 사회안전망 강화 등이 포함된다.

세대간 정의도 중요한 축이다. 현세대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피해를 미래 세대가 감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로 상징되는 청소년 기후운동이 바로 이런 세대간 정의를 내세우고 있다.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 현재의 정책을 평가하고 수정해야 한다.

기후정의 시나리오에서는 참여적 거버넌스가 강조된다. 기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들, 특히 취약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 배심원단, 기후 시민의회, 참여 예산제 등을 통해 더 민주적인 기후 거버넌스를 구축하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후정의 접근법의 장점은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기후 정책의 부담과 편익이 공정하게 분배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또한 기후 대응이 사회 발전과 연결될 수 있다. 에너지 빈곤 해소, 대기질 개선, 녹색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기후 행동과 사회적 편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도 효과적이다. 선진국의 지원 하에 개발도상국도 기후 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다. 기술 이전, 재정 지원, 역량 강화 등을 통해 글로벌 기후 행동의 기반을 넓힐 수 있다.

하지만 기후정의 시나리오도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의의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무엇이 공정한 분담인가? 역사적 책임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현재 역량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국제 협상에서도 복잡함이 가중된다. 각국이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상황에서 정의로운 합의를 이루기는 어렵다. 기후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또한 정의 추구가 효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너무 복잡한 분담 체계는 오히려 기후 행동을 지연시킬 수 있다.

혼합 시나리오들과 복합적 접근

현실에서는 탄소중립, 탈성장, 기후정의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기보다는 여러 요소들을 결합한 혼합적 접근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각 시나리오의 장점을 살리고 한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될 것이다.

기술 혁신과 생활양식 변화를 결합하는 접근법이 대표적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나 전기차 보급 같은 기술적 해법과 함께 에너지 절약, 대중교통 이용, 채식 확대 같은 행동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덴마크의 에너지 정책이나 코스타리카의 탄소중립 전략이 이런 접근법을 보여준다.

지역별 맞춤형 전략도 중요하다. 선진국은 절대적 감축과 기술 지원에 집중하고, 개발도상국은 지속가능한 발전과 적응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또한 같은 국가 내에서도 도시와 농촌, 산업지역과 주거지역에 따라 다른 전략을 적용할 수 있다.

시간적 단계화도 고려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기존 시스템 내에서의 효율 개선에 집중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구조적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당장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집중하되, 점진적으로 순환경제나 공유경제로 전환해나가는 전략이다.

섹터별 차별화된 접근도 필요하다. 전력 부문은 기술적 해법이 상대적으로 명확하지만, 교통이나 건물 부문은 행동 변화가 더 중요하다. 농업이나 폐기물 부문은 순환경제 원칙을 적용하고, 금융 부문은 ESG 투자를 확대하는 식으로 각 분야의 특성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미래 선택지

한국 사회는 어떤 미래를 선택해야 할까? 한국의 독특한 조건들을 고려할 때 어떤 시나리오가 가장 적합할까?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현재 상황과 미래 전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7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면서 동시에 급격한 산업화를 이룬 후발 산업국이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 발달해 있어 탈탄소화가 쉽지 않다. 하지만 높은 기술 수준과 강력한 정부 정책 추진력을 갖고 있어 빠른 전환도 가능하다.

그린 뉴딜과 2050 탄소중립 선언을 통해 한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선택했다. 재생에너지 확대, 수소 경제 육성, 그린 모빌리티 전환 등이 핵심 전략이다. 하지만 이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탈성장 요소의 도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이미 성숙한 선진국이므로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발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저출산 문제 대응, 삶의 질 향상 등이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기후정의 관점에서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다. 탈석탄 과정에서 석탄 지역 주민들의 피해,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서민 부담, 환경 규제로 인한 중소기업 어려움 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한국형 뉴딜의 성공을 위해서는 기술 혁신, 사회 혁신, 제도 혁신이 모두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기술 개발과 함께 에너지 절약 문화 확산, 탄소세 도입과 함께 취약계층 지원 강화, 탈탄소 정책과 함께 지역 균형 발전 등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은 빠른 사회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므로 이를 활용한 전략이 중요하다. IT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그리드, 디지털 기술 기반의 에너지 효율화, 소셜미디어를 통한 환경 의식 확산 등이 한국형 기후 대응의 핵심이 될 수 있다.

기술 혁신과 사회 혁신의 균형

미래 시나리오를 실현하는 데 있어 기술 혁신과 사회 혁신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사회 변화만으로도 부족하다. 둘 사이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성공의 열쇠다.

기술 혁신의 잠재력은 여전히 크다.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 효율은 계속 개선되고 있고, 배터리 기술도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에너지 관리, 바이오 기술을 활용한 친환경 소재 개발, 탄소 포집 기술의 상용화 등 새로운 가능성들이 계속 열리고 있다.

하지만 기술 혁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술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전기차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구매 보조금이 없으면 확산되기 어렵다. 재생에너지 기술이 완성되어도 기존 전력 시스템이나 규제 체계가 바뀌지 않으면 도입이 지연된다.

사회 혁신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소비 패턴의 변화, 라이프스타일의 전환, 가치관의 변화 등이 없으면 기술적 해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에너지 효율이 좋은 기기를 만들어도 사람들이 더 많이 사용하면 전체 에너지 소비는 줄어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기술 혁신과 사회 혁신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술 발전이 사회 변화를 촉진하고, 사회 변화가 기술 발전을 이끌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카풀이나 차량 공유 서비스가 모바일 기술과 공유경제 문화의 결합으로 확산된 것이 좋은 예다.

정책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과 함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R&D 투자와 함께 시장 창출, 규제 개선, 인센티브 제공 등이 패키지로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기술 변화로 인한 사회적 영향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제 협력과 글로벌 거버넌스

환경 문제는 본질적으로 글로벌한 성격을 갖기 때문에 국제 협력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어떤 미래 시나리오를 선택하든 국제적 차원의 조정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국제 거버넌스 체계는 이런 도전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 협력은 파리기후협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체계는 자발적 참여에 기반하고 있어 강제력이 부족하다. 각국이 제출한 국가별 기여방안(NDC)을 모두 달성해도 1.5도 목표 달성은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역과 환경의 연계도 중요한 이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같은 정책은 환경 보호와 무역 보호주의 사이의 경계선에 있다. 환경 기준이 새로운 무역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환경 덤핑을 방지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공존한다.

기술 이전과 재정 지원도 핵심 과제다. 개발도상국이 기후 행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연간 1000억 달러 지원 약속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고, 기술 이전도 지적재산권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거버넌스도 모색되고 있다. 도시, 지역, 기업,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다층적 거버넌스가 주목받고 있다. C40 같은 도시 네트워크, RE100 같은 기업 이니셔티브, 350.org 같은 시민사회 운동이 그 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협력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위성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 모니터링, 블록체인을 활용한 탄소 거래, AI를 이용한 기후 예측 등이 국제 협력의 새로운 도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많다. 강대국 간의 경쟁, 주권 국가 체제의 제약, 단기 이익과 장기 목표의 괴리 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보듯이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도 국제 협력은 쉽지 않다.

시민 참여와 민주주의의 역할

환경 문제 해결에서 시민 참여와 민주주의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전문가나 정책 결정자만으로는 복잡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특히 미래 시나리오 선택은 가치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민주적 숙의 과정이 중요하다.

시민 참여의 형태는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선거를 통한 정치 참여다. 환경 정당의 약진이나 환경 공약의 중요성 증가가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선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복잡한 환경 이슈에 대한 숙의 없이는 올바른 선택이 어렵다.

시민 배심원단이나 기후 시민의회 같은 새로운 참여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숙의하여 정책 권고안을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의 기후 시민 협의회, 아일랜드의 시민 의회, 영국의 기후 시민 배심원단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방식은 일반 시민들의 집단 지혜를 활용하면서도 포퓰리즘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역 차원의 참여도 중요하다. 환경 문제는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참여 없이는 효과적인 해결이 어렵다. 마을 단위의 에너지 자립, 지역 순환경제 구축, 시민 참여형 도시계획 등이 그 예다. 독일의 에너지 협동조합, 일본의 지역 순환 공생권, 한국의 마을 기업 등이 지역 차원 참여의 사례들이다.

디지털 기술도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새로운 도구가 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정책 토론, 모바일 앱을 통한 환경 모니터링, 크라우드소싱을 통한 데이터 수집 등이 가능해졌다. 시민과학(citizen science) 프로젝트들은 일반 시민들이 과학 연구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시민 참여에도 한계가 있다. 참여 역량의 불평등, 대표성 문제, 시간과 비용의 제약 등이 걸림돌이 된다. 또한 전문성이 필요한 기술적 이슈에서는 시민 참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의 지식과 시민의 가치 판단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다.

환경 교육의 강화도 필요하다. 시민들이 환경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서 비판적 사고력, 문제 해결 능력, 참여 역량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평생 교육, 시민 교육의 확대도 중요하다.

불확실성과 리스크 관리

미래 예측에는 항상 불확실성이 따른다. 기후변화의 정확한 속도와 규모, 기술 발전의 정확한 경로, 사회 변화의 방향 등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하든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기후변화 자체의 불확실성도 크다. 과학자들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시점과 규모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티핑 포인트가 언제 올지, 어떤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태계가 어떻게 반응할지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예방원칙이 중요하다.

기술 발전의 불확실성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기술이 상용화될지, 언제쯤 경제성을 확보할지,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등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핵융합 발전, 직접공기포집, 인공광합성 등 혁신적 기술들의 실현 가능성과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사회적 변화의 방향도 예측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보여주듯이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사회를 크게 바꿀 수 있다. 정치적 변화, 경제적 충격, 사회적 갈등 등이 환경 정책에 미칠 영향도 불확실하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적응적 관리(adaptive management) 접근법이 필요하다. 고정된 계획보다는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정기적인 모니터링과 평가를 통해 정책을 수정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복원력(resilience) 구축도 핵심이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에너지 시스템의 다변화, 식량 시스템의 안정성 확보, 사회안전망의 강화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시나리오 플래닝도 유용한 도구다. 여러 가지 가능한 미래를 상정하고 각각에 대한 대응 방안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낙관적 시나리오와 비관적 시나리오를 모두 고려하여 균형 잡힌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세대간 형평성과 미래 책임

환경 문제는 본질적으로 세대간 문제다. 현세대의 행동이 미래 세대에게 미칠 영향을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가 중요한 윤리적 쟁점이다. 특히 기후변화는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이 수십 년 후에 영향을 미치는 지연 효과를 갖고 있어 세대간 형평성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현재 청소년들이 주도하는 기후 운동은 바로 이런 세대간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다. 그레타 툰베리의 "어떻게 감히 우리의 미래를 훔칠 수 있느냐"는 호소는 세대간 정의의 핵심을 담고 있다. 현세대가 화석연료를 사용해서 얻은 이익을 미래 세대가 기후변화 피해로 갚아야 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경제학에서도 세대간 할인율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미래의 편익과 비용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 어떤 할인율을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면 미래의 기후 피해가 과소평가되고, 낮은 할인율을 적용하면 현재의 경제적 부담이 과도해질 수 있다.

법적 차원에서도 미래 세대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쟁점이다. 미래 세대는 현재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발언권이 없다. 이들의 이익을 누가 대변할 것인가? 일부 국가에서는 미래 세대 옴부즈만이나 미래 세대 위원회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헌법적 차원에서도 환경권과 미래 세대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논의되고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국가들은 헌법에 환경권과 기후 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한국도 개헌 논의에서 환경권 강화와 미래 세대 권리 보장이 주요 쟁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세대간 형평성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기는 어렵다. 현세대도 생존권과 발전권을 갖고 있고, 미래 세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현재의 희생을 강요하기는 어렵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당장의 빈곤 해결이 더 시급한 과제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현세대와 미래 세대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것이다. 단기적 이익만을 추구하지도 않고, 미래만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도 않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이 바로 이런 세대간 형평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결론: 갈래길에서의 선택과 통합적 접근

인류는 지금 환경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갈래길에 서 있다. 탄소중립, 탈성장, 기후정의라는 세 가지 주요 경로는 각각 다른 사회의 모습을 제시한다. 탄소중립은 기술 혁신을 통한 현실적 해법을, 탈성장은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근본적 해법을, 기후정의는 형평성을 중시하는 포용적 해법을 추구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기보다는 세 접근법의 장점을 결합한 통합적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 혁신의 현실성, 탈성장의 근본성, 기후정의의 포용성을 모두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기술적 해법에 의존하되, 중장기적으로는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추구하고, 전 과정에서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도 이런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린 뉴딜과 탄소중립을 기반으로 하되, 삶의 질 향상과 사회적 가치 추구를 병행하고,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공정하게 분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 혁신과 사회 혁신,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 글로벌 경쟁력과 지역 공동체 발전을 모두 고려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시민 참여와 민주적 숙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환경 문제는 기술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가치와 선택의 문제다.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어떻게 부담과 편익을 나눌 것인가 등은 시민들이 함께 결정해야 할 문제다.

불확실성이 크고 도전이 만만치 않지만, 인류는 이미 여러 번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와 용기다. 환경 위기를 계기로 더 지속가능하고 공정하며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환이 될 것이다.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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