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al Science

정치사상사 7. 근대 정치사상의 형성 – 홉스와 로크

SSSCHS 2025. 4. 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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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정치사상의 시대적 배경

17세기 유럽은 종교개혁 이후의 종교 갈등, 절대왕정의 등장, 과학혁명의 발전, 그리고 시민 혁명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정치사상 역시 중세적 사고에서 벗어나 근대적 관점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특히 영국에서는 청교도 혁명(1642-1649)과 명예혁명(1688)이라는 두 번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토마스 홉스와 존 로크라는 두 위대한 정치사상가의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근대 정치사상의 핵심적인 특징은 국가와 정치 권력의 정당성을 신이 아닌 인간의 동의와 계약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회계약론'은 홉스와 로크에 의해 체계화되었으며, 이들은 비록 상이한 결론에 도달했지만 유사한 방법론을 사용했다. 두 사상가 모두 가상의 '자연 상태'를 상정하고,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계약을 통해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과 절대주권론

홉스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토마스 홉스(1588-1679)는 영국 청교도 혁명의 혼란기를 살았던 철학자다. 그는 왕당파 귀족의 가정교사로 일하며 유럽 대륙을 여행했고, 갈릴레오, 데카르트 등 당대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내전을 피해 파리로 망명한 시기에 그의 대표작 『리바이어던』(1651)을 집필했다. 홉스가 목격한 내전의 혼란과 무질서는 그의 정치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홉스의 과학적 방법론

홉스는 당시 새롭게 발전하던 기계론적 세계관과 과학적 방법을 정치철학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 사회와 정치 현상을 기하학처럼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믿었다. 홉스에게 세계는 물질적 입자들의 운동으로 설명되는 기계와 같았고, 인간 역시 자기 보존의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였다.

자연 상태와 사회계약

홉스는 국가 이전의 가상적인 '자연 상태'를 상정한다. 이 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롭지만 모든 이가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때문에 심각한 갈등 상태에 놓인다. 홉스가 묘사하는 자연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으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며, 불쾌하고, 잔인하며, 짧다"고 표현된다.

이러한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들은 자신의 자연권(모든 것에 대한 권리)을 포기하고 절대적 권력을 가진 주권자에게 복종하기로 계약한다. 이 계약은 주권자와 백성 사이의 계약이 아니라, 백성들 상호 간의 계약으로 각자가 "나는 이 사람 또는 이 집단에게 나를 통치할 권한을 양도한다"고 선언하는 형태다.

리바이어던: 절대 주권의 정당화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성서에 나오는 바다 괴물의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이는 그가 구상한 강력한 주권 국가를 상징한다. 홉스에게 주권은 절대적이고, 분할될 수 없으며, 양도될 수 없는 것이다. 주권자는 법 위에 존재하며, 그의 권력에는 어떠한 제한도 있을 수 없다.

홉스가 절대 권력을 옹호한 이유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에게 최악의 정부라도 무정부 상태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있었다. 다만 그는 주권자의 의무가 백성의 안전과 복지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절대 권력에도 일종의 목적론적 제한을 두었다.

홉스 사상의 특징과 영향

홉스의 정치사상에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1. 세속적 정치론: 홉스는 정치 권력의 정당성을 신의 의지가 아닌 인간의 계약에서 찾음으로써 정치이론의 세속화에 기여했다.
  2. 주권 개념의 확립: 홉스는 근대적 의미의 주권 개념을 체계화했다. 주권은 분할될 수 없고, 영속적이며, 절대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3. 개인주의적 기초: 홉스의 정치론은 개인의 자기 보존 욕구라는 개인주의적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는 후대의 자유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4. 실증주의적 법관: 홉스에게 법은 주권자의 명령이며, 그 내용이 아닌 출처에 의해 정당화된다. 이는 후대의 법실증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홉스의 절대주의적 결론에도 불구하고, 그의 방법론과 기본 전제는 근대 정치사상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국가의 정당성을 세속적 계약에서 찾는 접근법은 이후 로크, 루소 등에게 계승되어 발전된다.

존 로크: 자연권, 제한정부, 그리고 자유주의의 기초

로크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존 로크(1632-1704)는 영국 명예혁명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한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청교도 혁명기에 성장했고, 왕정복고기에는 의학을 공부하며 자연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샤프츠베리 백작의 비서로 일하며 정치에 관여했고, 그의 정치적 곤경으로 함께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1688년 명예혁명 후 영국으로 돌아온 로크는 그의 대표작 『시민정부론』(1690)을 출판했다.

경험론과 자연법 사상

로크는 인식론에서 경험론의 기초를 확립한 철학자로, 인간의 지식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획득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경험론적 접근은 그의 정치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로크는 홉스와 달리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도 자연법을 인식하고 따를 수 있는 합리적 존재라고 보았다. 자연법은 신이 부여한 이성의 법칙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독립적이며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 상태와 사회계약

로크가 묘사하는 자연 상태는 홉스의 것보다 훨씬 덜 잔인하다. 로크에게 자연 상태는 "완전한 자유의 상태"이자 "평등의 상태"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는 자연법을 어기는 사람들을 처벌할 공통된 권위가 없고, 각자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집행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들은 사회계약을 맺어 정치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 계약을 통해 인간들은 자연법을 집행할 권리만을 정부에 위임하며, 자연권 자체는 여전히 보유한다. 이것이 홉스와 로크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시민정부론』: 제한정부와 저항권

로크의 『시민정부론』은 제한정부와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로크에 따르면 정부의 권력은 제한적이며, 목적이 뚜렷하다. 정부는 오직 시민들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 이상의 권한을 가질 수 없다.

로크는 정부가 신탁(trust)의 형태로 시민들에게 책임을 진다고 보았다. 만약 정부가 이 신탁을 위반하고 전제적으로 변한다면, 시민들은 저항할 권리를 갖는다. 이것이 로크의 유명한 '저항권' 이론이다. 이는 명예혁명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권력 분립의 원칙

로크는 정부 권력이 입법권, 집행권, 연방권(외교권)으로 나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입법권과 집행권의 분리를 강조했는데, 이는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권력 분립 이론은 후에 몽테스키외에 의해 더욱 발전되어 근대 헌정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관용론과 종교의 자유

로크는 『관용에 관한 편지』에서 종교의 자유와 국가로부터의 교회의 분리를 주장했다. 그는 신앙의 문제는 개인의 양심에 속하는 것이며, 강제될 수 없다고 보았다. 다만 그의 관용은 무신론자와 가톨릭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로크의 재산권 이론

로크는 사유재산의 정당성에 대한 영향력 있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자연에 섞음으로써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공유지에서 사과를 따는 행위는 그 사과에 자신의 노동을 더하는 것이므로 그 사과에 대한 소유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만 로크는 재산권에 두 가지 제한을 두었다: 첫째, 충분히 남겨두어야 한다(enough and as good left for others). 둘째, 낭비되지 않아야 한다(spoilage proviso). 이러한 제한은 로크의 재산권 이론이 단순한 무제한적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로크 사상의 특징과 영향

로크의 정치사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1. 자연권의 강조: 로크는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불가침의 자연권을 강조했다. 이는 후대의 인권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2. 제한정부론: 로크는 정부의 권력이 제한적이며,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3. 저항권의 정당화: 로크는 정부가 시민의 신탁을 위반할 경우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혁명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4. 관용과 자유의 가치: 로크는 종교적 관용과 사상의 자유를 옹호함으로써 자유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

로크의 사상은 미국 독립선언서와 프랑스 인권선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그의 자연권 사상, 제한정부론, 저항권 이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정치적 가치로 남아있다.

홉스와 로크의 비교: 근대 정치사상의 두 흐름

공통점: 사회계약론의 프레임워크

홉스와 로크는 모두 사회계약론이라는 틀을 통해 정치 공동체의 기원과 정당성을 설명한다. 두 사상가 모두 자연 상태라는 가상의 전제에서 출발하여, 인간들이 계약을 통해 정치 사회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정치 권력의 정당성을 신이 아닌 인간의 동의에서 찾음으로써 정치이론의 세속화에 기여했다.

차이점: 인간관, 자연 상태, 계약의 성격, 정부의 형태

그러나 두 사상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1. 인간관: 홉스는 인간을 자기 보존의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이기적 존재로 보았다. 반면 로크는 인간을 자연법을 인식하고 따를 수 있는 합리적 존재로 보았다.
  2. 자연 상태: 홉스에게 자연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비참한 상태였다. 반면 로크에게 자연 상태는 기본적으로 평화롭지만 불편함이 있는 상태였다.
  3. 계약의 성격: 홉스에게 사회계약은 자연권의 전면적 양도를 의미했다. 반면 로크에게 계약은 자연법 집행권의 위임일 뿐, 자연권 자체는 여전히 보유된다.
  4. 정부의 형태: 홉스는 절대 주권을 옹호했다. 반면 로크는 제한정부와 권력 분립을 주장했다.
  5. 저항권: 홉스는 주권자에 대한 저항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로크는 정부가 신탁을 위반할 경우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차이점들은 홉스와 로크가 각각 절대주의와 자유주의라는 근대 정치사상의 두 흐름을 대표하게 만들었다.

역사적 맥락에서의 이해

홉스와 로크의 사상 차이는 그들이 경험한 역사적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홉스는 청교도 혁명의 무질서와 혼란을 경험했고, 이는 그가 강력한 질서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만들었다. 반면 로크는 제임스 2세의 전제적 통치와 명예혁명을 경험했으며, 이는 그가 권력의 제한과 견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했다.

근대 유럽 사회에서의 권력 정당화 이론의 발전

홉스와 로크의 사상은 근대 초기 유럽에서 정치 권력의 정당화에 관한 논쟁의 두 축을 형성했다. 이들의 이론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왕권신수설에서 인민주권론으로

중세와 근대 초기까지 유럽에서는 왕권신수설(divine right of kings)이 지배적인 정치 이데올로기였다. 이는 군주의 권력이 신으로부터 직접 부여받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론은 정치 권력의 원천을 신이 아닌 인민의 동의에서 찾음으로써 이러한 관점에 도전했다.

특히 로크의 인민주권론은 이후 루소, 시에예스 등을 거쳐 발전하여 근대 민주주의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오늘날 정부의 정당성이 국민의 동의와 선거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은 이러한 사상적 전통의 결과물이다.

절대주의에서 입헌주의로

홉스의 절대주권론은 17세기 유럽의 절대왕정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그러나 로크의 제한정부론과 권력분립 이론은 입헌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 로크의 사상은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 발전뿐만 아니라, 미국 헌법과 프랑스 혁명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인 헌법에 의한 정부 권력의 제한, 권력 분립, 기본권의 보장 등은 모두 로크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권 사상과 인권의 발전

로크의 자연권 사상은 근대 인권 개념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불가침의 권리를 가진다는 로크의 주장은 미국 독립선언서("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와 프랑스 인권선언("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보편적 인권의 개념은 이러한 자연권 사상의 현대적 발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정치사상의 의의와 한계

홉스와 로크로 대표되는 근대 초기 정치사상은 현대 정치이론의 기초를 마련했지만, 동시에 일정한 한계도 가지고 있었다.

의의: 근대 정치 제도와 가치의 이론적 기초

근대 정치사상의 가장 큰 의의는 오늘날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 제도와 가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국민 주권, 사회계약에 기초한 정부의 정당성, 기본권의 보장, 권력 분립, 법치주의 등은 모두 근대 정치사상가들에 의해 발전된 개념들이다.

특히 이들의 사상은 근대 국민국가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가의 정당성이 국민의 동의에 기초한다는 생각, 정부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가 되었다.

한계: 배제된 집단과 실현되지 않은 이상

그러나 근대 정치사상은 일정한 한계도 가지고 있었다. 홉스와 로크가 말하는 '인간'은 사실상 백인 남성 재산 소유자를 의미했으며, 여성, 비백인, 무산자들은 정치적 권리에서 배제되었다. 로크 자신도 노예무역에 투자하고 미국 캐롤라이나 식민지의 헌법을 작성하면서 노예제를 정당화했다.

또한 이들의 자연 상태와 사회계약은 실제 역사적 사실이 아닌 사고 실험이었다. 실제 국가의 형성 과정은 이들의 이론보다 훨씬 복잡하고 폭력적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홉스와 로크의 사상은 근대 정치철학의 기초를 놓았으며, 오늘날까지도 정치적 정당성과 권리에 관한 논쟁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결론: 현대 정치사상에 미친 영향

홉스와 로크의 사상은 후대의 정치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홉스의 계약론적 접근과 주권 개념은 루소, 칸트, 헤겔 등에게 이어졌고, 로크의 자연권 사상과 제한정부론은 몽테스키외, 페인, 제퍼슨 등에게 계승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민주주의, 인권, 헌정주의 등의 정치적 가치와 제도는 이들 근대 정치사상가들이 제시한 이론적 틀 위에서 발전해왔다. 현대 정치철학의 주요 논쟁—자유주의 vs. 공동체주의, 절차적 정의 vs. 실질적 정의, 소극적 자유 vs. 적극적 자유 등—역시 홉스와 로크가 제기한 문제들의 현대적 변주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초기의 정치사상은 중세적 세계관에서 근대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정치 권력의 정당성을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이성과 동의에서 찾는 접근법은 정치학을 세속화하고 합리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전환은 인류 정치사상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으며, 근대 이후의 모든 정치사상은 이들이 제시한 문제의식과 개념적 틀 위에서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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