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 Communication

저널리즘 4. 어젠다 세팅: 미디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를 결정하는 방식

SSSCHS 2025. 4. 2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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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문제들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경제 성장, 환경 오염, 범죄율, 주택 가격, 교육 불평등 등 수많은 이슈 중 특정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하는 과정에는 미디어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미디어가 강조하는 이슈는 공중의 의제가 되고, 종종 정책 결정자들의 우선순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미디어가 '무엇에 관해 생각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바로 '의제설정이론' 또는 '어젠다 세팅'(Agenda-Setting)이다.

의제설정이론의 탄생: 챈플힐 연구

의제설정이론은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맥스웰 맥콤스(Maxwell McCombs)와 도널드 쇼(Donald Shaw)가 수행한 역사적인 연구에서 태동했다. 이 연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Chapel Hill) 지역의 무당파 유권자 100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챈플힐 연구'(Chapel Hill study)로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은 유권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선거 이슈(공중 의제)와 지역 미디어가 강조한 이슈(미디어 의제)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들은 9개 주요 미디어(신문, TV 뉴스 등)의 내용을 분석하고, 유권자 설문을 통해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미디어가 강조한 이슈와 유권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슈 사이에는 거의 완벽한 상관관계(+0.97)가 존재했다. 이러한 발견을 토대로 맥콤스와 쇼는 1972년 논문 "The Agenda-Setting Function of Mass Media"를 발표했고, 이 논문은 미디어 효과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들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매스미디어가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what to think)를 알려주는 데는 성공적이지 못할지 모르지만, 무엇에 관해 생각해야 할지(what to think about)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으로 알려준다."

이 연구는 '최소 효과론'이 지배하던 당시 미디어 연구 풍토에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1940~50년대 주류 이론이었던 '제한 효과 이론'은 미디어가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에 제한적인 영향만을 미친다고 봤다. 그러나 의제설정이론은 미디어가 사람들의 인지적 세계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을 증명함으로써, 미디어 효과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의제설정 이론의 발전과 단계

초기 의제설정 연구 이후 수많은 후속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론이 정교화됐다. 특히 의제설정 효과의 다양한 조건과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의제설정 이론은 크게 세 단계로 발전했다.

1단계 의제설정(First-level Agenda Setting)

첫 번째 단계는 '대상 의제설정'(object agenda-setting)으로, 미디어가 특정 이슈나 대상(인물, 기관 등)의 중요성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이는 맥콤스와 쇼의 초기 연구에서 확인된 현상이다. 미디어가 특정 이슈를 자주, 현저하게(뉴스 순서, 헤드라인 크기, 보도 시간 등) 다루면, 수용자들은 그 이슈를 더 중요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가 범죄 보도를 증가시키면 시민들은 범죄율이 실제로 변화하지 않았더라도 범죄 문제를 더 심각하게 인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미디어가 환경 문제를 덜 다루면 시민들의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도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2단계 의제설정(Second-level Agenda Setting)

1990년대 이후 등장한 두 번째 단계는 '속성 의제설정'(attribute agenda-setting)으로, 미디어가 이슈나 대상의 특정 속성을 강조함으로써 수용자들이 그 속성을 더 중요하게 인식하도록 만든다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미디어는 '무엇에 관해 생각할 것인가'뿐만 아니라 '그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정치인 보도에서 미디어가 정책 전문성보다 개인적 스캔들을 강조하면, 유권자들은 해당 정치인을 평가할 때 정책보다 인격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게 된다. 또한 이민 문제를 경제적 측면보다 안보 측면에서 주로 다루면, 대중은 이민을 경제 이슈보다 안보 이슈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단계의 의제설정은 '프레이밍'(framing) 이론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둘 다 미디어가 이슈의 특정 측면을 강조하는 방식에 주목하지만, 의제설정은 현저성(salience) 전이에, 프레이밍은 해석 체계(interpretive schema) 제공에 초점을 맞춘다는 차이가 있다.

3단계 의제설정(Third-level Agenda Setting)

2000년대 이후 제안된 세 번째 단계는 '네트워크 의제설정'(network agenda-setting)으로, 미디어가 이슈나 속성을 개별적으로 전달할 뿐만 아니라, 이들 간의 연결 관계까지 전이시킨다는 이론이다. 이는 인간의 인지 과정이 네트워크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신경망 이론에 기반한다.

전통적인 의제설정은 미디어가 각 이슈를 얼마나 자주 다루는지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네트워크 의제설정은 미디어가 이슈들을 어떻게 연결하는지까지 고려한다. 미디어가 두 개념을 자주 함께 언급하면, 수용자들도 그 두 개념을 인지적으로 연결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가 '이민'과 '범죄'를 자주 함께 언급하면, 대중은 이 두 개념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인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기후 변화'와 '국가 안보'를 함께 다루면, 시민들도 이 두 이슈를 연결지어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네트워크 접근법은 빅데이터와 네트워크 분석 기법의 발전에 힘입어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의제설정 과정의 핵심 개념

의제설정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개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저성(Salience)

현저성은 의제설정의 중심 개념으로, 특정 이슈가 눈에 띄고 중요하게 인식되는 정도를 의미한다. 미디어는 뉴스 선택, 배치, 반복, 강조를 통해 특정 이슈의 현저성을 높이며, 이렇게 증가된 현저성은 공중의 의제로 전이된다.

현저성은 다음과 같은 요소로 측정된다:

  • 보도 빈도(frequency): 해당 이슈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
  • 위치(placement): 첫 페이지/헤드라인인지, 내부 기사인지
  • 크기(size): 기사 길이, 방송 시간, 헤드라인 크기 등
  • 강조(emphasis): 사진, 그래픽, 인용 등 시각적 요소 활용

의제의 유형

의제설정 연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유형의 의제를 구분한다:

  1. 미디어 의제(Media agenda): 뉴스 미디어가 중요하게 다루는 이슈들
  2. 공중 의제(Public agenda): 일반 대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들
  3. 정책 의제(Policy agenda): 정책 결정자들이 중요시하는 이슈들

의제설정 과정은 이 세 의제 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영향 관계는 미디어 의제 → 공중 의제 → 정책 의제의 순서이지만, 정책 의제가 미디어 의제에 영향을 미치는 등 역방향의 영향도 존재한다.

의제간 영향(Intermedia Agenda Setting)

모든 미디어가 독립적으로 의제를 설정하는 것은 아니다. '의제간 영향'이란 영향력 있는 엘리트 미디어(예: 뉴욕타임스, CNN 등)의 의제가 다른 미디어의 의제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미디어 간 의제설정'이라고도 불린다.

디지털 시대에는 전통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 간의 의제 영향도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다. 트위터 트렌드가 뉴스 의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뉴스가 소셜 미디어 대화를 주도하기도 한다.

공명(Resonance)와 필요성(Need for Orientation)

모든 이슈가 같은 정도의 의제설정 효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효과의 강도는 이슈의 특성과 수용자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공명'은 미디어 메시지가 수용자의 직접 경험과 일치할 때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실업률 상승에 관한 뉴스는 고용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강한 영향을 미친다.

'필요성'은 수용자가 특정 주제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정도를 말한다. 이는 주제의 관련성(relevance)과 불확실성(uncertainty)에 따라 결정된다. 자신과 관련이 높고 불확실성이 큰 이슈일수록, 수용자는 미디어의 의제설정 효과에 더 취약해진다.

방법론: 의제설정 효과를 어떻게 측정하는가

의제설정 연구는 다양한 방법론을 활용해왔다. 초기 연구는 주로 내용 분석과 여론 조사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방식을 취했다.

내용 분석(Content Analysis)

미디어 의제를 측정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특정 기간 동안의 뉴스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이슈별 보도 빈도, 기사 위치, 크기, 헤드라인 등을 코딩하여 각 이슈의 현저성을 수치화한다.

디지털 도구의 발전으로 빅데이터 분석, 자연어 처리, 감성 분석 등을 활용한 내용 분석도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화된 텍스트 분석을 통해 대량의 뉴스 기사에서 주요 이슈와 프레임을 추출할 수 있다.

여론 조사(Public Opinion Surveys)

공중 의제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최중요 이슈'(Most Important Problem, MIP) 질문을 활용한 여론 조사를 실시한다. 응답자들의 답변을 통해 각 이슈가 공중 의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를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 분석, 검색어 트렌드 분석 등 온라인 행동 데이터를 통해 공중 의제를 측정하는 방법도 활용되고 있다.

시계열 분석(Time-Series Analysis)

의제설정 효과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미디어 의제와 공중 의제의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대표적인 방법은 '교차지연 상관분석'(cross-lagged correlation)으로, 특정 시점의 미디어 의제와 이후 시점의 공중 의제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이러한 시계열 분석은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관계의 방향을 추론할 수 있게 해준다. 미디어 의제 변화가 공중 의제 변화를 선행한다면, 미디어가 공중 의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험 연구(Experimental Studies)

의제설정의 인과관계를 직접 검증하기 위해 통제된 실험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참가자들을 여러 집단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미디어 콘텐츠에 노출시킨 후, 이슈 중요성 인식의 차이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한 집단에는 환경 문제를 강조한 뉴스를, 다른 집단에는 경제 문제를 강조한 뉴스를 보여준 후, 각 집단이 이슈의 중요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의제설정 효과의 조건과 영향 요인

의제설정 효과는 모든 상황에서 균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다양한 요인들이 효과의 강도와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이슈 특성(Issue Characteristics)

모든 이슈가 같은 수준의 의제설정 효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슈의 특성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 체험적(obtrusive) vs. 비체험적(unobtrusive) 이슈: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이슈(예: 물가, 실업)보다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이슈(예: 외교 정책, 환경 문제)에서 의제설정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문제는 미디어 외에도 다양한 정보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구체적 vs. 추상적 이슈: 구체적이고 명확한 이슈가 추상적이고 복잡한 이슈보다 의제설정 효과가 크다. 이는 구체적 이슈가 인지적으로 처리하기 더 쉽기 때문이다.
  • 새로운 vs. 지속적 이슈: 새롭게 등장한 이슈는 이미 공론화된 이슈보다 의제설정 효과가 크다. 기존 이슈에 대해서는 이미 공중이 의견을 형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디어 특성(Media Characteristics)

미디어의 유형과 특성에 따라서도 의제설정 효과는 달라진다:

  • 신뢰도: 신뢰도가 높은 미디어일수록 의제설정 효과가 크다. 공신력 있는 언론의 보도는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 미디어 유형: 전통적으로 신문이 TV보다 더 강한 의제설정 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신문은 더 상세한 정보와 맥락을 제공하고, 독자가 자신의 페이스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주목도: 주목도가 높은 보도(1면 헤드라인, 프라임타임 뉴스의 첫 아이템 등)가 더 강한 의제설정 효과를 가진다.

수용자 특성(Audience Characteristics)

수용자의 개인적 특성도 의제설정 효과의 중요한 조절 변수다:

  • 정치적 관심과 지식: 정치에 관심이 많고 지식이 높은 사람들은 미디어 의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들은 정치 뉴스를 더 많이 소비하고, 정보를 더 체계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 대인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노출 후 타인과의 대화가 많을수록 의제설정 효과가 강화된다. 대화를 통해 미디어 메시지가 재확인되고 강화되기 때문이다.
  • 인구통계학적 요인: 연령, 교육 수준, 소득 등 인구통계학적 요인에 따라 미디어 이용 패턴과 정보 처리 방식이 달라지므로, 의제설정 효과도 달라질 수 있다.

의제설정과 권력: 누가 의제를 설정하는가?

의제설정 이론이 제기하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누가 미디어 의제를 설정하는가?"이다. 미디어가 공중 의제에 영향을 미친다면, 미디어 의제를 결정하는 행위자는 상당한 사회적 권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정치 행위자와 미디어 의제

정치인, 정부 기관, 정당 등 정치 행위자들은 미디어 의제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정책 발표, 이벤트 등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이슈를 부각시키려 노력한다.

특히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고위 정치인의 발언은 높은 뉴스 가치를 가지며, 쉽게 미디어 의제가 된다. 이를 '대통령 효과'(presidential effect)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익 집단과 PR 활동

기업, NGO, 싱크탱크, 노동조합 등 다양한 이익 집단들도 PR 활동을 통해 미디어 의제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이들은 전문적인 PR 전략을 활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슈와 프레임을 부각시키고, 불리한 것은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이익 집단들의 자원과 영향력은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자원이 풍부한 집단(대기업, 강력한 로비 단체 등)이 미디어 의제 설정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기자와 편집자의 역할

미디어 조직 내부의 기자와 편집자들도 중요한 의제 설정자다. 이들은 뉴스 가치 판단, 취재원 선택, 프레임 구성 등을 통해 의제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조직 내 위계가 높은 선임 기자, 편집자, 데스크 등은 보도 방향 결정에 큰 영향력을 가진다. 이들의 개인적 관심사, 정치적 성향, 직업적 가치관이 의제 설정에 반영될 수 있다.

미디어 소유주와 경영진

미디어 조직의 소유주와 경영진 역시 중요한 의제 설정자다. 이들은 직접적인 보도 지시나 인사권 행사, 또는 조직 문화 형성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제 설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미디어 집중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소수의 대형 미디어 그룹이 사회적 의제 설정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의제설정: 변화와 지속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등장은 전통적인 의제설정 과정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정보 환경의 파편화, 참여 문화의 확산, 알고리즘의 영향력 증가 등이 새로운 의제설정 역학을 만들어내고 있다.

분절화된 의제(Fragmented Agenda)

과거 소수의 주류 미디어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비교적 통합된 미디어 의제와 공중 의제가 형성됐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수많은 미디어 채널과 플랫폼이 존재하며, 각자 다른 이슈를 강조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단일한 의제보다, 여러 집단이 각자 다른 의제를 가지는 '분절화된 의제' 현상이 나타난다. 보수 매체를 소비하는 집단과 진보 매체를 소비하는 집단이 전혀 다른 이슈를 중요하게 여기는 '의제 양극화'(agenda polarization) 현상도 관찰된다.

상향식 의제설정(Bottom-up Agenda Setting)

전통적인 의제설정은 주로 엘리트 미디어에서 대중으로 하향식(top-down)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일반 시민이 생성한 콘텐츠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논의가 전통 미디어의 의제가 되는 상향식(bottom-up) 의제설정도 가능해졌다.

트위터, 유튜브, 레딧 등에서 시작된 이슈가 바이럴을 통해 확산되고, 결국 주류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의제설정의 방향이 역전되는 현상으로, '역의제설정'(reverse agenda-setting)이라고도 불린다.

알고리즘과 의제설정

검색 엔진과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새로운 형태의 의제설정자로 부상했다.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알고리즘, 유튜브의 추천 시스템,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은 사용자에게 노출되는 정보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과거 행동, 선호도, 인구통계학적 특성 등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필터링하기 때문에,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나 '에코 챔버'(echo chamber)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기존 관점을 강화하는 정보만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는 현상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더라도 사용자마다 매우 다른 의제를 접할 수 있다.

이런 '알고리즘 큐레이션'은 전통적인 의제설정 과정에 비해 투명성이 낮고, 상업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의제설정과 가짜 뉴스(Fake News)

디지털 환경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나 의도적인 허위 정보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도 의제설정 효과를 가질 수 있으며, 이는 민주적 여론 형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특히 정서적 반응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허위 정보는 소셜 미디어에서 높은 공유율을 보이며, 빠르게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바이럴 허위정보'(viral misinformation)는 단기간에 강력한 의제설정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개인화된 의제(Personalized Agenda)

디지털 환경에서는 개인마다 서로 다른 정보를 소비하는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개인의 관심사, 선호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각자 다른 '개인화된 의제'가 형성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공통 의제'(common agenda)가 약화될 수 있으며, 이는 공론장 분열이나 사회적 분극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의제설정 이론의 비판과 한계

의제설정 이론은 미디어와 공중 의제 간의 관계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여러 한계와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인과관계의 문제

의제설정 연구의 핵심 도전 중 하나는 인과관계의 증명이다. 미디어 의제와 공중 의제 간의 상관관계가 반드시 미디어가 공중 의제에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의 인과관계(공중 의제가 미디어 의제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나 제3의 요인(정치 행위자가 미디어와 공중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가능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실험 연구나 정교한 시계열 분석이 활용되고 있지만, 실제 미디어 환경의 복잡성을 완전히 통제하기는 어렵다.

의제설정과 실제 태도 변화의 관계

의제설정은 이슈의 중요성 인식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이슈에 대한 구체적인 태도나 행동 변화까지 직접적으로 유발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즉, 미디어가 '무엇에 관해 생각할지'는 알려줄 수 있지만, '어떻게 생각할지'는 반드시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2단계 의제설정과 프레이밍 연구는 미디어가 이슈의 특정 속성을 강조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태도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의 적용 가능성

전통적인 의제설정 이론은 주로 주류 매스미디어가 지배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발전했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미디어 채널과 플랫폼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이론의 적용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소셜 미디어와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이 주도하는 정보 환경에서는 단일한 '미디어 의제'를 정의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일부 학자들은 의제설정 이론의 기본 가정과 방법론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수정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의제설정 이론의 사회적 함의

의제설정 이론은 단순한 학술적 관심을 넘어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함의를 가진다.

민주주의와 정보 다양성

건강한 민주주의는 다양한 관점과 이슈가 공론장에서 논의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소수의 미디어나 권력 엘리트가 의제를 독점하는 상황은 민주적 토론을 제한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미디어 소유 다양성, 편집 독립성, 공영 미디어의 역할, 대안 미디어의 활성화 등은 의제설정 과정의 민주화를 위한 중요한 정책적 과제다.

디지털 리터러시와 비판적 미디어 소비

의제설정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시민들이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소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디어가 특정 이슈를 강조하거나 배제하는 방식, 프레임을 구성하는 방식 등을 인식함으로써, 보다 주체적인 정보 소비가 가능해진다.

이런 맥락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시민들이 의제설정 과정에서 미디어와 알고리즘의 역할을 이해하고, 다양한 정보원을 활용하여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정치 커뮤니케이션과 캠페인 전략

의제설정 이론은 정치인과 선거 캠페인 전략가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이슈를 공론장에 부각시키고, 불리한 이슈는 최소화하는 '의제 구축'(agenda building) 전략은 현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경제 정책에 강점이 있는 정치인은 경제 이슈가 선거의 주요 의제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반대로 이 분야에 약점이 있는 정치인은 다른 이슈(예: 안보, 복지 등)로 의제를 전환하려 할 것이다.

결론: 의제설정 연구의 미래

의제설정 이론은 1970년대 초기 연구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해왔으며,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연구 질문과 방법론이 등장하고 있다.

미래 의제설정 연구의 중요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디지털 플랫폼 알고리즘의 의제설정 역할 이해: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의제설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러한 '알고리즘 의제설정'의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는 연구
  2. 글로벌 의제설정 과정 연구: 국경을 초월한 정보 흐름이 각국의 미디어 의제와 공중 의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글로벌 이슈(기후변화, 팬데믹 등)에 대한 초국가적 의제설정 과정을 이해하는 연구
  3. 다매체 환경에서의 의제설정 측정: 개인이 다양한 미디어 채널과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소비하는 환경에서, 통합적인 '미디어 의제' 노출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적 발전
  4. 의제설정과 민주주의 관계 재고: 분절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공유된 공적 의제의 부재가 민주적 토론과 합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건강한 공론장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연구

5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의제설정 이론은 미디어가 현실을 구성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왔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오늘날에도, '무엇에 관해 생각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커뮤니케이션학의 핵심 영역으로 남아있다.

미디어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을 구성하는 강력한 행위자라는 의제설정 이론의 기본 전제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효과로 의제를 설정하는지는 계속해서 재검토되고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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