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logy

계층과 불평등 2. 마르크스의 계급 이론 - 자본주의 사회구조의 근본적 분석

SSSCHS 2025. 4. 25.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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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이론의 시작점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남긴 이 문장은 사회 불평등에 관한 가장 유명한 선언 중 하나다. 마르크스는 19세기 산업혁명 시대 유럽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본질과 그 모순을 관찰하며, 사회 불평등을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

마르크스의 계급 이론은 단순한 학술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당시 산업화된 유럽 사회의 극심한 빈곤과 착취라는 현실을 이해하고 변혁하기 위한 실천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이론은 사회 불평등을 이해하는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관점 중 하나로 남아있다.

생산수단 소유에 기초한 계급 구분

마르크스 계급 이론의 핵심은 '생산수단'(means of production)의 소유 여부에 따른 계급 구분이다. 생산수단이란 토지, 공장, 설비, 기계, 원료 등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 자원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이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느냐에 따라 사회가 근본적으로 두 개의 주요 계급으로 나뉜다고 보았다.

자본가 계급(부르주아지)

자본가 계급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집단이다. 공장 주인, 토지 소유자, 기업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생산수단의 소유를 통해 생산 과정 전체를 통제하고, 다른 사람들의 노동력을 구매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부르주아지'(bourgeoisie)는 바로 이 계급을 가리킨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자본가 계급은 대기업 총수와 대주주, 중소·중견기업 소유주, 다수의 사업체나 부동산을 가진 자산가 등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사회의 소수이지만 경제적 자원과 권력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프롤레타리아트)

노동자 계급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다. 공장 노동자, 사무직 근로자, 서비스 종사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마르크스는 이들을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라고 불렀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은 대기업·중소기업 직원, 공무원, 전문직 종사자(의사, 변호사도 대부분 조직에 고용된 형태), 서비스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임금을 받고 일하는 대다수 근로자를 포함한다. 이들은 생산수단이 아닌 자신의 기술, 지식, 노동력에 의존해 살아간다.

중간 계급의 문제

마르크스의 이분법적 계급 구분은 명쾌하지만, 실제 사회에는 이 두 계급 사이에 다양한 중간적 위치가 존재한다. 소규모 자영업자, 자유 전문직, 중간 관리자 등이 그 예다. 이들은 일정한 생산수단(자영업자의 가게나 설비)을 소유하거나 특별한 기술·지위(전문직의 자격증, 관리자의 권한)를 갖고 있지만, 대자본가처럼 타인의 노동을 대규모로 착취할 만큼의 자본은 없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이런 중간 계층이 점차 양극화되어 결국 두 주요 계급으로 흡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중간 계급이 오히려 확대되고 분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것이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중요한 비판점 중 하나다.

잉여가치 이론과 착취의 메커니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본질로 꼽은 것이 바로 '잉여가치'(surplus value)의 창출과 착취다. 이는 그의 계급 이론의 경제적 기초가 된다.

잉여가치란 무엇인가

잉여가치는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중에서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을 초과하는 부분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경제적 가치의 원천은 노동이라고 보았다. 노동자가 8시간 일해서 만든 제품의 가치가 10만 원인데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5만 원이라면, 나머지 5만 원은 잉여가치로서 자본가에게 돌아간다.

중요한 점은 마르크스가 이 잉여가치의 창출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이것이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자본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유(專有)된다는 점을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구조적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착취의 세 가지 형태

마르크스가 말하는 '착취'(exploitation)는 단순히 노동자를 학대한다는 도덕적 의미가 아니라, 객관적인 경제적 관계를 가리킨다. 이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1. 절대적 잉여가치 착취: 노동 시간을 연장하여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방식이다. 장시간 노동, 초과근무, 휴일 없는 근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산업혁명 초기에는 하루 14~16시간 노동도 흔했다.
  2. 상대적 잉여가치 착취: 노동 생산성을 높여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새로운 기술, 작업 공정 개선, 노동 강도 강화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3. 구조적 착취: 임금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잉여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실업자 '산업예비군'의 압력, 노동조합 약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통해 강화된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과로사를 불러올 정도의 장시간 노동(절대적 착취),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 강도(상대적 착취), 그리고 비정규직 확대와 노동권 약화(구조적 착취)가 모두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주 52시간 근무제' 논쟁, IT 업계의 '크런치 모드', '플랫폼 노동자' 문제 등은 모두 마르크스의 착취 개념으로 분석할 수 있는 현상들이다.

계급의식과 계급투쟁

마르크스 이론에서 중요한 또 다른 개념은 '계급의식'(class consciousness)과 '계급투쟁'(class struggle)이다. 이는 그의 이론이 단순한 경제 분석을 넘어, 사회변혁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실천적 이론임을 보여준다.

객관적 계급 위치와 주관적 계급의식

마르크스는 계급이 단순히 객관적인 경제적 위치만이 아니라, 주관적인 의식과 정체성의 문제도 포함한다고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개념적 구분을 제시했다:

  • 즉자적 계급(class in itself): 객관적 경제적 위치만을 공유하는 상태. 같은 계급적 위치에 있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개인들의 집합으로만 존재하는 상태.
  • 대자적 계급(class for itself): 자신의 계급적 위치와 이해관계를 자각하고, 집단적 행동을 통해 이를 추구하는 상태. 계급의식을 가진 상태.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이 단순히 '즉자적 계급'에서 '대자적 계급'으로 발전할 때, 비로소 자본주의의 변혁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계급의식의 발전'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으로 분류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나 '샐러리맨'으로 인식하는 현상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계급의식의 결여와 연관된다. 반면, 노동조합 활동이나 비정규직 연대, 플랫폼 노동자 공제회 등의 움직임은 계급의식의 발전과 관련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계급투쟁의 여러 형태

마르크스에게 '계급투쟁'은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동력이자,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1. 경제적 투쟁: 임금 인상, 노동 조건 개선, 노동 시간 단축 등을 위한 노동조합 활동이나 파업. 이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부분적 개선을 목표로 한다.
  2. 정치적 투쟁: 노동법 개정, 사회보장 확대, 노동자 정당 설립 등 정치적 영역에서의 권력 획득을 위한 투쟁이다.
  3. 이데올로기적 투쟁: 지배 이데올로기(능력주의, 개인주의 등)에 대항하는 대안적 세계관과 가치의 확산을 위한 투쟁이다.
  4. 혁명적 투쟁: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투쟁이다.

마르크스는 점증하는 자본주의의 모순(부의 집중과 빈곤의 확대, 과잉생산과 소비 부족의 불균형 등)이 결국 노동자 계급을 혁명적 행동으로 이끌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여러 현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은 자본주의의 놀라운 적응력과 변형 능력으로 인해 이러한 예측이 단순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역사적 유물론과 생산양식의 발전

마르크스의 계급 이론은 그의 더 큰 이론적 틀인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인간 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물질적 생산과 경제적 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관점이다.

생산양식의 단계적 발전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가 다음과 같은 '생산양식'(mode of production)의 단계적 발전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1. 원시공산제: 생산력이 극히 낮고 사유재산이 없는 상태. 원시 수렵·채집 사회가 이에 해당한다.
  2. 고대 노예제: 노예를 소유한 지배계급과 노예로 이루어진 사회. 고대 그리스, 로마 등이 대표적이다.
  3. 봉건제: 토지를 소유한 귀족(영주)과 토지에 묶인 농노로 구성된 사회. 중세 유럽이 전형적인 예다.
  4. 자본주의: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노동력을 판매하는 노동자로 구성된 사회. 현대 산업사회가 여기에 해당한다.
  5.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계급 철폐를 특징으로 하는 미래 사회. 마르크스가 전망한 자본주의 이후의 단계다.

마르크스는 각 단계가 그 내부에서 발생하는 모순으로 인해 다음 단계로 이행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역시 내재적 모순(생산의 사회화와 소유의 사적 성격 간의 모순)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로 이행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에서 중요한 또 다른 개념은 '토대'(base)와 '상부구조'(superstructure)의 구분이다:

  • 토대: 경제적 기반, 즉 생산력(기술, 노동력)과 생산관계(소유 형태, 계급 관계)로 구성된다.
  • 상부구조: 정치, 법, 종교, 도덕, 예술, 철학 등 사회의 비경제적 영역을 포함한다.

마르크스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즉, 사회의 경제적 관계가 정치 제도, 법 체계, 지배적 이데올로기 등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 '평등', '재산권' 등의 가치와 법 개념이 강조되는 것은,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 관계를 일방적 결정이 아닌 상호작용으로 이해한다. 즉, 상부구조 역시 토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계급 이론의 현대적 비판

마르크스의 계급 이론은 자본주의의 핵심 메커니즘을 통찰력 있게 포착했지만, 사회 변화와 함께 여러 비판과 도전에 직면했다. 주요 비판점을 살펴보자.

계급 구조의 다원화와 중간계급의 확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사회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두 계급으로 양극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 중간계급의 확대: 관리자, 전문직, 기술직 등 전통적인 자본가나 노동자로 분류하기 어려운 직업군이 크게 증가했다.
  • 노동계급의 분화: 블루칼라 노동자, 서비스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창의 노동자 등으로 노동자 계급 내부의 분화와 격차가 심화되었다.
  • 소유와 통제의 분리: 주식회사의 발달로 기업 소유자(주주)와 실질적 통제자(최고경영진)가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계급 구조의 복잡화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영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격차, 전문직과 단순 서비스직의 분화, 1인 기업가나 프리랜서와 같은 새로운 노동 형태의 등장 등이 그 예다.

서비스 경제로의 전환과 탈산업화

마르크스의 이론은 주로 산업 자본주의와 공장 노동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선진국 경제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겪었다:

  •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이동: 선진국 노동력의 대부분이 서비스 부문(금융, 교육, 의료, 엔터테인먼트 등)에 종사하게 되었다.
  • 지식 경제의 부상: 물질적 생산보다 지식, 정보, 창의성이 경제적 가치 창출의 중심이 되었다.
  • 글로벌 가치사슬의 형성: 생산 과정이 국제적으로 분산되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노동자 사이의 관계가 복잡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마르크스가 설명한 전통적인 계급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서비스 노동자의 잉여가치 창출 방식, 지식 노동자의 계급적 위치, 글로벌 차원의 착취 관계 등은 마르크스 이론의 단순한 적용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제조업 일자리가 감소하고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지는 탈산업화 현상이 나타났다. 동시에 제조업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이전되면서, 국내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계급의식과 혁명의 부재

마르크스의 가장 큰 예측 중 하나는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와 함께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의식이 발전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나타났다:

  • 복지국가의 등장: 많은 선진국에서 복지제도를 통한 자본주의의 '순화'가 이루어졌다.
  • 노동계급의 보수화: 일부 노동자층, 특히 조직된 노동자들이 체제 내 개혁을 통한 점진적 개선을 선호하게 되었다.
  • 대안적 정체성의 부상: 계급보다 인종, 젠더, 종교, 국가 등에 기반한 정체성이 정치적 동원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국에서도 노동계급의 단결과 계급의식 형성은 여러 장애물에 부딪쳤다. 기업별 노조 체제, 정규직-비정규직 분할, 중소기업과 대기업 노동자 간 격차, 그리고 '서민'이나 '중산층' 등의 모호한 정체성이 계급의식의 발전을 제약했다.

현대 마르크스주의의 대응: 이론의 확장과 재해석

이러한 비판에 직면하여, 현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고 재해석했다. 몇 가지 주요 방향을 살펴보자.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역할 재평가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 등의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상대적 자율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알튀세르는 학교, 교회, 미디어, 가족 등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기능한다고 보았다.
  •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풀란차스는 자본주의 국가가 단순히 자본가 계급의 도구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때로는 특정 자본가 분파의 단기적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교육 체계, 대중 미디어, 군대 등이 특정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재생산하는 방식, 그리고 국가가 재벌과 갈등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양상은 이런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

모순적 계급 위치와 계급 구조의 복잡화

에릭 올린 라이트(Erik Olin Wright)와 같은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중간계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순적 계급 위치'(contradictory class locations) 개념을 발전시켰다:

  • 여러 계급적 특성의 중첩: 많은 현대 직업(관리자, 전문직 등)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다. 이들은 다른 노동자를 통제하는 권한을 갖지만, 동시에 자본가에 의해 고용되고 통제된다.
  • 다차원적 착취 관계: 라이트는 자본 자산, 조직 자산, 기술/자격 자산 등 다양한 차원의 자산에 기초한 복합적 착취 관계를 분석했다.

한국의 맥락에서는 재벌 그룹 임원, 고위 공무원, 전문직 등이 이러한 모순적 계급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상당한 권한과 특권을 가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논리에 종속된다.

세계체계론과 글로벌 자본주의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을 비롯한 세계체계론자들은 마르크스 이론을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했다:

  • 중심부-주변부-반주변부: 세계 경제는 중심부(선진국), 주변부(가장 빈곤한 개발도상국), 반주변부(중간 발전 단계)로 구성되며, 이들 사이에 불평등한 교환 관계가 형성된다.
  • 초국적 자본가 계급: 국경을 초월하여 활동하는 글로벌 자본가 계급의 등장과 그 권력을 분석했다.

한국은 20세기 후반 주변부에서 반주변부를 거쳐 중심부로 이동한 드문 사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특정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국내 계급 구조도 이에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다.

21세기 계급 분석의 새로운 과제: 마르크스를 넘어서

21세기 불평등과 계급 문제는 마르크스의 통찰을 여전히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그의 분석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도 요구한다.

비물질 노동과 디지털 자본주의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 등은 지식 경제와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 비물질 노동의 증가: 물질적 상품이 아닌 지식, 정보, 관계, 감정 등을 생산하는 노동이 증가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디자이너, 상담사 등이 대표적이다.
  • 다중(multitude)의 등장: 전통적 노동계급과 달리,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수행하는 '다중'이 새로운 혁명적 주체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 공통재(commons)의 중요성: 지식, 정보, 코드, 문화적 생산물 등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통재'가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도 IT 산업, 콘텐츠 산업, 서비스업 등에서 비물질 노동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인플루언서 등 전통적 고용 관계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 형태도 확대되고 있다. 이들의 착취와 저항 양상은 마르크스의 전통적 분석만으로는 온전히 포착하기 어렵다.

젠더, 인종, 계급의 교차성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Crenshaw), 벨 훅스(bell hooks) 등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계급 분석에 젠더와 인종의 차원을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교차성(intersectionality): 계급, 젠더, 인종 등 다양한 차별과 억압의 축이 교차하여 복합적인 불평등 경험을 만들어낸다.
  • 재생산 노동의 가치: 가사노동, 돌봄노동 등 주로 여성이 담당해온 재생산 노동이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필수적이지만 저평가되는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여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 장애인 노동자 등이 경험하는 복합적 차별과 착취는 단순한 계급 분석을 넘어서는 교차적 접근을 요구한다. 특히 성별 임금 격차, 돌봄 노동의 여성 편중,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 등은 젠더, 인종, 국적과 계급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생태위기와 자본주의 비판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 제임스 오코너(James O'Connor) 등 생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환경 문제와 계급 분석을 연결한다:

  • 자연의 상품화: 자본주의는 자연을 지속적으로 상품화하고 착취하며, 이는 생태적 파괴와 위기를 초래한다.
  • 제2의 모순: 자본주의는 노동력 착취(제1 모순)뿐 아니라, 자연과 환경 파괴(제2 모순)를 통해서도 위기를 겪게 된다.
  • 환경 정의: 환경 파괴의 부담과 비용이 계급, 인종, 지역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한국에서도 산업화 과정에서의 환경 파괴, 원전과 발전소 등 환경 위험 시설의 입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의 비용 분담 문제 등은 계급적 관점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의 '정의로운 전환' 논의는 환경 정책이 노동자와 취약계층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결론: 마르크스의 유산과 현대적 적용

마르크스의 계급 이론은 19세기 중반에 형성되었지만, 21세기 현재까지도 사회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그의 생산수단 소유에 기초한 계급 구분, 잉여가치 착취 개념, 계급의식과 계급투쟁의 분석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틀이다.

물론 마르크스 이론의 한계와 비판도 존재한다. 계급 구조의 다원화, 서비스 경제로의 전환,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복잡한 역할, 젠더·인종과 같은 비계급적 불평등의 중요성 등은 마르크스 원래의 분석 틀을 넘어서는 확장과 수정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변형되고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마르크스가 지적한 핵심 모순—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 간의 모순, 이윤 추구의 논리와 인간의 필요 간의 모순—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불평등과 갈등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마르크스적 계급 분석을 적용할 때는,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재벌 중심 경제, 압축적 근대화, 강한 발전국가 전통,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디지털화, 비정규직화, 노령화, 저출산 등 새로운 사회경제적 변화가 계급 구조와 불평등 양상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분석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마르크스의 계급 이론은 불평등의 표면적 현상을 넘어, 그 근본 원인과 구조를 파악하게 해주는 강력한 분석 도구다. 물론 이것만으로 현대 사회의 모든 불평등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른 비판적 접근법(페미니즘, 반인종주의, 생태주의 등)과 결합할 때 더욱 풍부한 이해와 실천적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21세기의 불평등 문제는 19세기와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본질에는 마르크스가 지적한 구조적 착취와 권력 불균형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계급 이론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 시대의 불평등을 이해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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