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론 1. 교육과정의 개념과 역사적 변천 - 전통적 정의부터 현대적 해석까지

교육과정, 그 개념의 시작

교육과정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이나 '교과서에 담긴 내용'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한 개념이다. 교육과정(curriculum)이라는 용어는 라틴어 'currere'(달리다)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경주로' 또는 '달려야 할 코스'를 의미했다. 교육에서는 학습자가 통과해야 하는 일련의 학습 경로를 뜻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교육과정 개념은 시대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육과정은 단순한 지식 전달 체계에서 복잡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구성물로 진화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는 철학자-왕을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 내용을 제시했고, 중세 시대에는 자유 7학과(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술, 기하학, 천문학, 음악)를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구성되었다.

전통적 교육과정 정의: 내용과 경험의 체계

전통적 의미에서 교육과정은 '가르칠 내용'에 초점을 맞추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교육과정은 주로 교과 중심, 지식 전달 중심의 관점에서 정의되었다. 이 시기 대표적인 교육과정 정의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목의 총체
• 학생들이 배워야 할 지식과 기술의 집합
• 미래 세대에 전수할 가치 있는 문화유산

보비트(Franklin Bobbitt)는 1918년 저서 '교육과정(The Curriculum)'에서 교육과정을 "성인 생활에 필요한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아동과 청소년이 경험해야 하는 일련의 활동들"로 정의했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산업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효율적인 인재 양성을 위한 것이었다.

경험 중심 교육과정으로의 전환

1930년대 이후 존 듀이(John Dewey)와 진보주의 교육운동의 영향으로 교육과정 개념은 '내용'에서 '경험'으로 초점이 옮겨졌다. 듀이는 교육과정을 "학생의 경험 재구성"으로 보았으며, 학생들의 실제 생활과 연결된 의미 있는 활동을 중시했다.

홀리스 캐즈웰(Hollis Caswell)과 도크 캠벨(Doak Campbell)은 1935년 '교육과정 개발: 이론과 실제(Curriculum Development: Theory and Practice)'에서 교육과정을 "학교의 지도 아래 학생이 경험하는 모든 것"으로 정의했다. 이러한 정의는 교육과정의 범위를 공식적인 학습 내용뿐 아니라 학교생활 전반으로 확장시켰다.

Tyler의 합리적 모형과 현대적 교육과정 개념

교육과정 이론의 중요한 전환점은 1949년 랄프 타일러(Ralph Tyler)의 '교육과정과 수업의 기본 원리(Basic Principles of Curriculum and Instruction)'의 출간이었다. 타일러는 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네 가지 기본 질문을 제시했다:

1. 학교가 달성하고자 하는 교육목표는 무엇인가?
2. 이러한 목표 달성에 유용한 교육 경험은 무엇인가?
3. 이러한 교육 경험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4. 목표 달성 여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타일러의 접근법은 '목표 중심 모형' 또는 '합리적 모형'으로 불리며, 교육과정 개발의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과정을 강조했다. 이 모형은 오랫동안 교육과정 개발의 기본 틀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적 교육과정과 사적 교육과정의 구분

교육과정 개념이 발전하면서 '의도된 교육과정'과 '실제 교육과정' 간의 구분이 중요해졌다. 의도된 교육과정(intended curriculum)은 공식 문서에 명시된 계획이나 지침을 의미하며, 실제 교육과정(enacted curriculum)은 실제 교실에서 일어나는 교수-학습 활동을 말한다.

또한 교육과정은 다음과 같이 다양한 층위로 구분되기도 한다:

• 공식적 교육과정(formal curriculum): 문서화된 교육 계획
• 운영된 교육과정(operational curriculum): 실제 교실에서 실행되는 교육
• 경험된 교육과정(experienced curriculum): 학생이 실제로 경험하고 학습한 것
• 잠재적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 의도하지 않았지만 학교 문화와 환경을 통해 전달되는 가치, 태도, 신념

이러한 구분은 교육과정이 단순한 계획이나 문서가 아니라 복잡한 사회적, 교육적 실천임을 보여준다.

교육목적과 교육경험의 관계

교육과정 개념의 핵심에는 '교육목적'과 '교육경험'의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교육목적은 교육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상태나 결과를 의미하며, 교육경험은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제공되는 구체적인 활동이나 상황을 말한다.

타일러의 모형에서는 교육목적을 먼저 설정하고, 이를 위한 교육경험을 선정하는 연역적 접근법을 취한다. 반면, 힐다 타바(Hilda Taba)와 같은 교육과정 학자들은 학생의 필요와 관심에서 출발하여 교육목적을 도출하는 귀납적 접근법을 강조했다.

교육목적과 경험의 관계는 단순한 수단-목적의 관계를 넘어선다. 존 듀이는 목적과 수단이 상호의존적이라고 보았으며, 교육과정은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나선형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문서로서의 교육과정과 실제로서의 교육과정

교육과정은 때로는 '문서'로, 때로는 '실제'로 이해된다. 문서로서의 교육과정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표준, 교과서, 교수요목 등 공식적으로 기록된 계획을 의미한다. 반면 실제로서의 교육과정은 교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교수-학습 과정, 학생들의 경험, 학교 문화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이중적 이해는 교육과정 연구와 개발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문서상의 교육과정과 실제 교육과정 간의 격차(curriculum gap)를 인식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교육과정 실행(curriculum implementation)의 핵심 과제가 된다.

현대적 교육과정 개념의 확장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교육과정 개념은 더욱 확장되고 복잡해졌다. 재개념주의 운동(reconceptualist movement)의 영향으로 교육과정은 단순한 기술적(technical) 과정이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구성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윌리엄 파이너(William Pinar)는 교육과정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curriculum'이 아닌 'currere'(달리기)로의 복귀를 제안했다. 그에게 교육과정은 개인의 교육적 여정, 자서전적 경험, 내면의 대화를 포함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마이클 애플(Michael Apple)은 교육과정을 권력과 지식의 정치학 관점에서 분석하며, 교육과정이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는 교육과정을 억압과 해방의 도구로 바라보며, '은행 저금식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문제제기식 교육'을 제시했다.

이처럼 현대적 교육과정 개념은 단순한 학습 내용이나 경험의 집합을 넘어, 정체성 형성, 사회적 실천, 비판적 의식화, 문화 정치학 등 다양한 차원을 포괄하는 복합적인 개념으로 발전했다.

전통적 정의와 현대적 정의의 비교

전통적 교육과정 정의와 현대적 정의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전통적 정의:

• 고정된 지식과 기술의 집합
• 교사 중심, 내용 중심
•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지식 강조
• 효율성과 표준화 추구
• 선형적, 순차적 학습 경로

현대적 정의:

• 역동적이고 맥락적인 경험의 총체
• 학습자 중심, 과정 중심
• 지식의 사회적 구성과 다양성 인정
• 개인화와 차별화 강조
• 복잡하고 상호연결된 학습 네트워크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개념 정의의 변화를 넘어, 교육의 본질과, 지식, 학습, 교육 목적 등에 대한 철학적 관점의 변화를 반영한다.

결론

교육과정 개념은 단순한 '가르칠 내용'에서 시작하여 복잡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개인적 구성물로 진화해왔다. 타일러의 합리적 모형은 교육과정 개발의 체계적 접근의 기초를 제공했으며, 이후 다양한 관점과 이론이 교육과정 개념을 확장시켰다. 오늘날 교육과정은 문서와 실제, 의도와 경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포괄하는 다차원적 개념으로 이해된다.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학문적 관심사가 아니라, 교육 실천의 방향과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교육과정 개념의 역사적 변천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교육 실천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미래 교육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