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의 새로운 도전과 전환 필요성
현대 복지국가는 20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위험(질병, 실업, 노령, 산업재해 등)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존 복지국가가 직면한 환경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 위기,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 기술혁명과 노동시장 재편, 세계화와 이주 증가 등은 전통적 복지국가 모델의 지속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위험(new social risks)은 기존 복지제도의 효과성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복지국가의 재정적·정치적 기반을 위협한다. 복지국가가 기능적 역할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모델을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글에서는 현대 복지국가가 직면한 주요 미래 의제들을 살펴보고, 각 의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시도와 도전 과제를 분석한다.
기후변화와 생태적 전환
기후위기와 복지국가의 관계
기후변화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도전 중 하나로, 복지국가의 역할과 지속가능성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기후변화가 복지국가에 미치는 영향은 다차원적이다.
첫째, 기후변화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창출한다. 폭염, 홍수, 가뭄 등 기상이변으로 인한 건강 위험, 농업 생산성 감소, 거주지 상실 등의 문제는 기존 복지제도가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위험이다.
둘째,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사회적 비용의 분배 문제가 있다. 석탄발전소 폐쇄, 내연기관차 금지 등 탈탄소 정책은 특정 산업과 지역에 집중적인 타격을 줄 수 있으며, 이로 인한 일자리 상실과 지역경제 쇠퇴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의 관점에서 복지국가의 개입을 요구한다.
셋째, 기후변화 대응과 복지국가의 재정적 지속가능성 사이의 긴장관계가 존재한다. 탄소세나 배출권 거래제 같은 탄소가격제는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복지국가의 기존 재원 확보 방식도 저성장 시나리오에서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생태복지국가의 모색
최근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생태복지국가' 또는 '친환경 복지국가'라는 개념이 제안되고 있다. 이는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복지를 통합적으로 추구하는 국가 모델을 의미한다. 생태복지국가의 주요 특징과 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생태적 시민권(ecological citizenship)의 확립이다. 깨끗한 공기, 안전한 식수, 기후 안정성 등에 대한 권리를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한다.
둘째, 친환경 사회투자(green social investment)를 강화한다. 녹색 산업 일자리 창출, 친환경 기술 교육훈련, 에너지 효율적 주택 개선 등을 통해 사회정책과 환경정책의 시너지를 추구한다.
셋째, 기후 불평등에 대응하는 소득재분배를 강화한다. 탄소세 수입을 활용한 기후배당(carbon dividend) 지급,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강화, 정의로운 전환 기금 조성 등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편익을 공정하게 분배한다.
스페인의 기후기본소득
스페인은 2021년부터 '기후기본소득(Climate Basic Income)' 정책을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이는 탄소세 수입의 일부를 저소득층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로, 기후변화 대응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고 에너지 빈곤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스페인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매년 약 700만 가구(전체 인구의 30%)에 평균 400유로의 기후배당을 지급하고 있다.
기후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의 논리와 환경세제 개혁을 결합한 혁신적 정책으로, 소득재분배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다. 이러한 접근은 '이중배당(double dividend)'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초고령사회와 돌봄 혁신
인구고령화의 복합적 영향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인구고령화는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에 중대한 도전을 제기한다. OECD 국가들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20년 평균 17%에서 2050년 27%로 증가할 전망이며, 일본, 한국, 이탈리아 등은 2050년까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5%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은 복지국가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 첫째, 연금, 의료, 장기요양 등 노인 관련 복지지출이 급증한다. 둘째,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인해 복지재정의 수입 기반이 약화된다. 셋째, 부양비(dependency ratio) 증가로 세대 간 부담 분배의 문제가 심화된다. 넷째, 돌봄 수요가 급증하면서 돌봄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진다.
특히 돌봄 위기(care crisis)는 초고령사회의 핵심 과제이다. 전통적으로 가족(주로 여성)이 담당해 온 노인 돌봄이 가족 구조 변화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증가로 지속가능하지 않게 되면서, 돌봄의 사회화가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세대 간 계약의 재정립
초고령사회에서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대 간 계약(intergenerational contract)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현재의 복지모델은 주로 현재 일하는 세대가 노인세대를 부양하고, 미래에는 자신들이 부양받는 세대 간 이전(transfer)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구구조 변화로 이 구조의 지속가능성이 약화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세대 간 연대가 요구된다.
첫째, 연금개혁을 통한 세대 간 부담의 공정한 분배가 필요하다. 많은 국가들이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 기여율 인상, 급여 수준 조정 등을 통해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둘째, 생애주기 관점에서의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를 강화한다. 아동, 청년에 대한 투자는 미래 생산성 향상을 통해 초고령사회의 부양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셋째, 노인세대의 사회참여와 기여를 확대한다. 건강한 노인의 고용 촉진, 자원봉사 활동 지원, 세대 간 교류 프로그램 등을 통해 노인을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기여자'로 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일본의 돌봄 로봇 정책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로, 2020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8.7%에 달한다. 심각한 돌봄 인력 부족에 직면한 일본 정부는 2013년부터 '돌봄 로봇 개발·도입 촉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정책은 로봇 기술을 활용하여 돌봄의 질을 향상시키고 돌봄 인력의 부담을 경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본 정부는 이동 지원, 배설 지원, 목욕 지원, 치매 케어, 모니터링 등 5개 중점 분야에서 돌봄 로봇 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요양시설의 돌봄 로봇 도입에 대한 보조금도 제공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일본 노인요양시설의 약 30%가 하나 이상의 돌봄 로봇을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2025년까지 이 비율을 80%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돌봄 로봇 도입은 기술적 한계, 높은 비용, 윤리적 문제(인간 접촉의 감소,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등) 등의 도전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로봇이 인간 돌봄을 전면 대체하기보다는 보완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돌봄 인력의 질적 향상과 처우 개선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로봇자동화와 노동시장 변화
기술혁명과 일자리의 미래
인공지능(AI), 로봇공학, 빅데이터 등을 중심으로 한 제4차 산업혁명은 노동시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기술 변화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상반된 전망이 존재한다.
비관적 전망에 따르면, 자동화로 인해 상당수 직업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Frey와 Osborne(2013)의 연구는 미국 일자리의 47%가 향후 10-20년 내에 자동화될 위험이 높다고 예측했으며, OECD(2019)는 회원국 일자리의 평균 14%가 자동화 위험이 높고, 추가로 32%는 상당한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낙관적 전망은 기술 변화가 일자리 상실보다는 직무 내용 변화와 새로운 직업 창출을 가져올 것이라고 본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은 일부 직업을 없애는 동시에 새로운 직업을 창출해 왔으며, 자동화가 보완하기 어려운 창의성, 감성지능, 복잡한 문제해결 능력 등을 요구하는 직업은 오히려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낙관론과 비관론 모두 기술 변화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한다. 고숙련·고임금 직업과 저숙련·저임금 직업이 증가하는 반면, 중숙련·중임금 직업이 감소하는 '고용 양극화(job polarization)' 현상은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 관찰되고 있다.
복지국가의 적응 전략
기술변화와 노동시장 재편에 대응하기 위한 복지국가의 적응 전략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첫째, 인적자본 개발과 평생학습 체계 구축이다. 기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역량을 키우기 위해 교육제도 혁신과 직업훈련 강화가 필요하다. 덴마크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은 고용 유연성, 관대한 실업급여,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결합하여 노동자들의 직업 전환을 지원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둘째, 사회보장제도의 현대화이다. 기존 사회보험은 정규직 고용관계를 전제로 설계되어,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등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에 대한 보호가 미흡하다. 이에 따라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취업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사회보험, 소득 단절 시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기본소득 등 대안적 제도가 제안되고 있다.
셋째, 일자리 공유와 노동시간 단축이다. 기술발전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분배함으로써, 일자리 감소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독일의 '단축근로(Kurzarbeit)' 제도, 프랑스의 35시간 노동제 등은 이러한 접근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UBI)과 복지국가 재설계
기본소득 논의의 부상 배경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UBI)은 모든 시민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로, 최근 복지국가 개혁 논의에서 주목받고 있다. 기본소득이 부상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있다.
첫째, 기술변화와 노동시장 불안정성 증가이다.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우려, 플랫폼 노동 등 불안정 고용 확대는 기존 노동 중심 복지모델의 한계를 드러내며, 소득 확보와 복지 접근성의 대안적 경로로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둘째, 기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와 복잡성 문제이다. 선별적 복지는 자격 심사의 복잡성, 낙인효과, 빈곤 함정 등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의 단순성과 보편성이 주목받고 있다.
셋째, 불평등 심화와 부의 재분배 필요성이다. 세계적으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사회의 공동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모든 시민에게 분배하는 정의로운 방식으로 기본소득이 제안되고 있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핀란드는 2017-2018년 실업급여 수급자 2,000명을 대상으로 월 560유로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최종 결과에 따르면, 기본소득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으나(실험군의 취업률이 대조군보다 1.3%p 높음), 참가자들의 복지감과 재정적 안정성,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향상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기본소득이 취업 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참가자들의 직업 탐색 활동이 더 적극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참가자들에게 재정적 안정성을 제공하여 더 나은 일자리를 찾거나, 창업, 교육 등에 투자할 여유를 제공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핀란드의 실험은 소규모, 단기간으로 진행되어 사회 전체에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의 거시경제적 영향, 노동시장 장기 변화, 재정적 지속가능성 등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본소득과 복지국가의 관계
기본소득과 기존 복지국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일부는 기본소득을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재로 보고, 복잡한 선별적 제도들을 단일한 기본소득으로 통합하자고 주장한다(자유지상주의적 접근). 반면 다른 이들은 기본소득을 기존 복지제도의 보완재로 보고, 교육, 의료, 돌봄 등 보편적 서비스와 함께 작동하는 추가적 층위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제안한다(사회민주주의적 접근).
재원 마련 방식에 따라서도 기본소득의 성격과 효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누진적 소득세, 부유세, 환경세, 데이터세 등 다양한 재원 옵션이 제안되고 있으며, 각각은 분배적 효과와 경제적 영향이 다르다. 특히 최근에는 천연자원, 토지, 데이터 등 공유자원(commons)에서 발생하는 지대(rent)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는 '공유부 배당(commons dividend)'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결론
복지국가는 기후변화, 인구고령화, 기술혁명, 불평등 심화 등 21세기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여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도전은 복지국가의 기존 틀 내에서 부분적 개혁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우며, 복지국가의 기본 전제와 작동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생태복지국가, 세대 간 계약의 재정립, 노동과 복지의 새로운 연계, 기본소득 등의 논의는 이러한 근본적 재구성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복지국가의 근본 가치인 사회 연대와 안전망 제공은 유지하되, 그 구현 방식은 21세기의 새로운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함을 시사한다.
복지국가의 미래는 단순히 기존 제도의 확대나 축소가 아닌, 새로운 사회적·경제적·환경적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적 모델을 발전시키는 데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정책, 경제정책, 환경정책의 통합적 접근과 장기적 관점에서의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또한 다양한 정책 실험과 국제적 협력을 통해 새로운 복지국가 모델을 모색하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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