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실천론 2. 사회복지실천의 가치·윤리적 기초: 전문적 가치체계와 윤리적 의사결정

사회복지실천과 가치의 의미

사회복지실천에서 가치는 단순한 신념이나 선호를 넘어 전문직의 정체성과 실천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가치란 무엇이 바람직하고 중요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신념 체계로, 사회복지사의 판단과 행동에 지침을 제공한다. 특히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실천에서 가치는 단순한 부가적 요소가 아니라 실천의 본질적 기반이 된다.

사회복지 가치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목적 가치로, 사회복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적 상태나 목표를 의미한다. 사회정의, 평등, 인간 존엄성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과정 가치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나 과정에서 중시하는 가치다. 자기결정권 존중, 개별화, 비밀보장 등이 이에 속한다.

사회복지 가치체계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화해왔다. 초기에는 종교적 자선과 관련된 가치가 강조되었다면, 현대에는 인권, 사회정의, 다양성 존중 등의 가치가 중요시된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 변동과 철학적 사조의 변화, 그리고 사회복지 전문직의 발전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회복지실천의 핵심 가치

사회복지실천의 핵심 가치는 전 세계 사회복지 전문직이 공유하는 기본적인 신념 체계다. 이는 국제사회복지사연맹(IFSW)과 국제사회복지교육협의회(IASSW)의 윤리 원칙 선언, 각국의 사회복지사협회 윤리강령 등에 반영되어 있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의 윤리강령도 이러한 핵심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

첫째,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존중이다. 이는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고유한 가치와 존엄성을 지니며, 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신념이다.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 상태, 문화적 배경, 장애 여부 등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가치 있는 존재로 대한다.

둘째, 자기결정권 존중이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권리가 있으며, 사회복지사는 이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이는 클라이언트를 수동적인 서비스 수혜자가 아닌 자신의 삶의 주체로 인식하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단, 자기결정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심각한 해를 끼칠 위험이 있을 경우에는 전문적 판단에 따라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

셋째, 사회정의 추구다. 사회복지는 불평등, 차별, 억압 등의 사회적 불의에 대항하고, 자원과 기회의 공정한 분배를 추구한다. 이는 개인의 문제를 개인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그것이 발생한 사회구조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는 관점을 반영한다. 사회복지사는 취약계층의 권익 옹호와 제도적 변화를 위한 노력에 참여해야 한다.

넷째, 관계의 중요성 인식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며, 사회복지실천도 기본적으로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와의 신뢰 관계 구축을 중시하며, 이를 변화의 주요 매개체로 활용한다.

다섯째, 성실성과 전문적 책임이다. 사회복지사는 전문가로서 지속적인 지식과 기술 개발에 힘쓰며, 자신의 실천에 대해 책임을 진다. 또한 클라이언트와의 약속, 비밀보장, 정직한 정보 제공 등에 있어 성실함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의 구조와 내용

한국사회복지사협회는 1982년 처음으로 윤리강령을 제정했으며, 이후 사회적 변화와 전문직의 발전에 따라 수차례 개정되었다. 현행 윤리강령은 전문, 윤리기준, 윤리기준의 적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윤리강령의 전문에서는 사회복지의 기본 이념과 목적, 사회복지사의 사명과 책임을 천명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모든 사람의 복지증진을 위해 헌신하며,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는 기본 정신을 담고 있다.

윤리기준은 크게 클라이언트에 대한 윤리기준, 동료에 대한 윤리기준, 사회에 대한 윤리기준 등으로 구분된다. 클라이언트에 대한 윤리기준에서는 비밀보장, 자기결정권 존중, 차별금지, 이중관계 제한 등의 원칙을 제시한다. 동료에 대한 윤리기준에서는 상호 존중과 협력, 동료의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대응 방법 등을 다룬다. 사회에 대한 윤리기준에서는 사회복지사의 사회적 책임과 옹호자 역할을 강조한다.

윤리기준 적용에 관한 부분에서는 윤리적 갈등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지침, 윤리위원회의 역할과 기능, 윤리적 위반에 대한 대응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윤리강령을 단순한 선언적 문서가 아닌 실천적 지침으로 활용하기 위한 구체적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한국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의 특징은 보편적인 사회복지 가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문화적, 제도적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가족주의 문화, 집단주의적 경향, 관계 중심적 특성 등 한국적 맥락을 고려한 윤리적 지침을 포함하고 있다.

사회복지실천에서의 윤리적 딜레마

사회복지실천 현장에서는 다양한 윤리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윤리적 딜레마란 두 가지 이상의 윤리적 원칙이나 가치가 충돌하여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복지사는 체계적인 윤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첫째, 자기결정권과 클라이언트 보호의 딜레마다.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클라이언트나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개입해야 할 책임도 있다. 예를 들어, 자살 위험이 있는 클라이언트, 아동학대 사례 등에서 이러한 딜레마가 발생한다.

둘째, 비밀보장과 정보공개의 딜레마다.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의 사생활과 비밀을 보장해야 하지만, 법적 요구나 제3자 보호의 필요성이 있을 때는 정보를 공개해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자해나 타해 위험 등의 사례에서 이러한 딜레마가 두드러진다.

셋째,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 간 딜레마다.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개인 클라이언트의 최대 이익과 전체 클라이언트 집단의 이익이 상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클라이언트에게 많은 자원을 투입하면 다른 클라이언트들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제한될 수 있다.

넷째, 전문가적 객관성과 인간적 연민 사이의 딜레마다. 사회복지사는 전문가로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유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클라이언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이 두 측면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딜레마가 발생한다.

다섯째, 문화적 다양성 존중과 보편적 가치 적용의 딜레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클라이언트의 가치관과 관행을 존중해야 하지만, 기본적인 인권과 복지를 침해하는 문화적 관행에 대해서는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

윤리적 의사결정 모형

사회복지사가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체계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다양한 의사결정 모형이 개발되어 있다. 이러한 모형은 윤리적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와 단계를 제시한다.

대표적인 윤리적 의사결정 모형으로는 레이너(Reamer)의 윤리적 의사결정 모형, 로웬버그와 돌고프(Lowenberg & Dolgoff)의 윤리적 우선순위 스크린 모형, 콩고-브라운(Congress-Brown)의 ETHIC 모형 등이 있다. 이 중 레이너의 모형을 중심으로 윤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살펴보자.

레이너의 윤리적 의사결정 모형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구성된다:

1. 윤리적 이슈와 딜레마 확인하기: 먼저 현재 상황에서 어떤 윤리적 원칙이나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지 명확히 파악한다. 관련된 모든 당사자(클라이언트, 가족, 기관, 지역사회 등)와 그들의 이해관계를 확인한다.
2.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 사회적, 기관적 요인 확인하기: 사회복지사 자신의 가치관과 편견, 소속 기관의 정책과 규범, 사회적 맥락 등이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검토한다.
3. 가능한 행동 대안과 참여자 파악하기: 취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 대안을 열거하고, 각 대안에 따라 누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분석한다.
4. 각 대안의 위험과 이점 분석하기: 각 대안이 가져올 수 있는 단기적, 장기적 결과와 위험, 이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관련된 모든 당사자의 관점을 고려한다.
5. 전문가 및 동료와 상담하기: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의 경우, 동료 사회복지사, 슈퍼바이저, 윤리위원회 등과 상담하여 다양한 관점과 조언을 얻는다.
6. 결정하고 행동하기: 위의 과정을 거쳐 최선의 판단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행동한다. 결정의 근거와 과정을 문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7. 결과 점검 및 평가하기: 결정에 따른 행동 이후 그 결과를 모니터링하고 평가한다. 이는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된다.

로웬버그와 돌고프의 윤리적 우선순위 원칙

로웬버그와 돌고프는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서 상충하는 여러 가치나 원칙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원칙들을 제시했다. 이를 '윤리적 우선순위 스크린 모형'이라 한다. 이 모형은 다음과 같은 7가지 원칙을 순서대로 제시한다:

1. 생명 보호의 원칙: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다.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다른 모든 윤리적 고려사항보다 생명 보호가 우선된다.
2. 평등대우와 불평등의 최소화 원칙: 모든 사람은 동등한 가치와 존엄성을 가지며, 차별 없이 대우받아야 한다. 불가피한 불평등이 존재할 경우, 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결정한다.
3. 자율성과 자유의 원칙: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단, 이것이 타인의 권리나 복지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용된다.
4. 최소 해악의 원칙: 어떤 결정이든 해를 끼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면, 가능한 한 최소한의 해악을 끼치는 방향으로 결정한다.
5. 삶의 질 향상의 원칙: 모든 결정은 궁극적으로 클라이언트와 관련 당사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
6. 사생활 보호와 비밀보장의 원칙: 개인의 사생활과 비밀은 최대한 보호되어야 한다. 단, 앞서 언급한 상위 원칙들이 위협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용된다.
7. 진실성과 완전한 정보공개의 원칙: 클라이언트에게 정직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서비스와 관련된 모든 중요한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 원칙들은 위계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상위 원칙이 하위 원칙보다 우선시된다. 예를 들어, 생명 보호(1번 원칙)와 비밀보장(6번 원칙)이 충돌할 경우, 생명 보호가 우선된다.

문화적 맥락에서의 윤리적 고려

다문화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사회복지실천에서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윤리적 의사결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 존중과 보편적 윤리 원칙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문화적 역량(cultural competence)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문화적 역량이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클라이언트와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문화적 인식, 지식, 기술의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문화적 맥락에서의 윤리적 의사결정을 위해 다음과 같은 지침을 고려할 수 있다:

1. 문화적 자기인식 강화하기: 사회복지사는 자신의 문화적 배경과 가치관이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해야 한다.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를 경계하고, 다른 문화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유지한다.
2. 클라이언트의 문화적 맥락 이해하기: 클라이언트의 문화적 배경, 가치관, 세계관, 의사소통 방식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수집한다. 이때 편견과 고정관념을 피하고, 개인차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3. 문화적으로 적절한 의사소통 방식 사용하기: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에서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며, 필요시 통역사나 문화적 중재자를 활용한다.
4. 보편적 인권과 문화적 다양성 사이의 균형 찾기: 인간의 기본적 존엄성, 생명 보호, 신체적 안전 등 핵심적인 인권 가치는 문화적 다양성을 이유로 타협할 수 없다. 그러나 덜 핵심적인 영역에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결론

사회복지실천의 가치와 윤리는 전문직의 정체성과 실천 방향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요소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존중, 자기결정권 존중, 사회정의 추구, 관계의 중요성 인식, 성실성과 전문적 책임 등의 핵심 가치는 사회복지실천의 기반을 이룬다.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서 사회복지사는 체계적인 의사결정 모형을 활용하여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레이너의 윤리적 의사결정 모형, 로웬버그와 돌고프의 윤리적 우선순위 원칙 등은 복잡한 윤리적 상황에서 사회복지사의 판단을 돕는 유용한 도구다.

또한 다문화사회에서는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윤리적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보편적인 인권 가치를 지키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실천에서의 가치와 윤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 변화에 따라 계속 발전하고 있다. 사회복지사는 전문가로서 지속적인 성찰과 학습을 통해 윤리적 민감성과 판단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클라이언트의 복지 증진과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사회복지의 궁극적 목표 달성에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