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logy

환경사회학 7. 지속가능발전의 이상과 현실: SDGs와 지속가능성 지표의 사회학적 검토

SSSCHS 2025. 6. 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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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브룬틀란트 위원회가 '우리 공동의 미래' 보고서에서 지속가능발전 개념을 제시한 이래, 이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발전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다. 경제성장과 환경보전, 사회적 형평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지속가능발전의 이상은 매력적이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2015년 채택된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인류의 야심찬 청사진이지만, 동시에 복잡한 사회적 갈등과 구조적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 개념의 등장과 사회적 배경

지속가능발전 개념이 부상한 배경에는 20세기 후반의 환경위기와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가 있다. 1972년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 보고서는 무한한 경제성장이 유한한 지구에서 불가능하다는 점을 경고했다. 같은 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는 환경보전과 경제발전 사이의 긴장관계를 국제적 의제로 부각시켰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의 환경보전 요구를 '성장 사다리 걷어차기'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자신들도 서구 선진국처럼 산업화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룰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환경보전을 위해 경제성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남북 갈등 속에서 등장한 지속가능발전 개념은 환경과 발전의 대립을 넘어서는 제3의 길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지속가능발전의 정의 자체가 모호하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는 브룬틀란트 위원회의 정의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모호성은 각국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속가능발전을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었다.

밀레니엄개발목표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로

2000년 유엔은 밀레니엄개발목표(MDGs)를 통해 빈곤 퇴치와 인간개발에 초점을 맞춘 국제적 목표를 설정했다. MDGs는 절대빈곤 인구 감소, 초등교육 보편화, 성평등 증진 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보였다. 또한 목표 설정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의 참여가 제한적이었다는 비판도 받았다.

2015년 채택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MDGs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목표로 구성된 SDGs는 빈곤 종식부터 기후행동까지 인류가 직면한 거의 모든 과제를 포괄한다. '아무도 뒤처지지 않는다(Leave no one behind)'는 슬로건 아래 보편성과 포용성을 강조했다.

SDGs의 가장 큰 특징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목표라는 점이다. 과거 개발 목표들이 주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했다면, SDGs는 모든 국가가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지구적 차원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각국의 발전 수준과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SDGs의 구조적 모순과 목표 간 상충

SDGs의 17개 목표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상충하기도 한다. 경제성장(목표 8)과 환경보전(목표 13-15) 사이의 긴장관계가 대표적이다. 빠른 경제성장을 추구하면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하고 자연환경이 파괴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환경보전을 우선시하면 경제성장이 제약받을 수 있다.

빈곤 종식(목표 1)과 기후행동(목표 13) 사이의 딜레마도 심각하다.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당장 굶주리는 국민들의 생존 문제가 기후변화보다 더 절박하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많은 국가들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통해 전력난을 해결하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평등(목표 5)과 전통문화 보존 사이의 갈등도 간과할 수 없다. 여성의 권리 신장과 사회 참여 확대는 보편적 가치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적 성 역할과 충돌할 수 있다. 서구적 가치를 강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물과 위생(목표 6), 에너지(목표 7), 식량안보(목표 2) 등 기본적 인간 욕구와 관련된 목표들 사이에서도 자원 배분을 둘러한 경쟁이 발생한다. 한정된 자원과 예산으로 모든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갈등이 불가피하다.

지속가능성 측정의 한계와 지표의 정치성

SDGs 이행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지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측정하는 것 자체가 복잡하고 논란이 많은 과제다. 무엇을 측정할 것인가,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누가 측정할 것인가 등 모든 단계에서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다.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측정하는 GDP의 한계는 잘 알려져 있다. GDP는 경제활동의 규모는 측정하지만 환경 파괴나 사회적 불평등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는 반영하지 못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진정진보지표(GPI), 국민총행복지수(GNH), 포용적 부지수(IWI) 등 다양한 대안 지표들이 개발되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환경적 지속가능성 측정도 쉽지 않다. 탄소발자국, 생태발자국, 물발자국 등 다양한 지표들이 사용되지만, 각각 다른 측면을 강조한다. 어떤 지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가나 지역의 지속가능성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지구 차원의 환경 문제를 국가 단위로 배분하는 것 자체가 논란이 된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은 더욱 측정하기 어렵다. 사회적 결속, 문화적 다양성, 거버넌스의 질 같은 요소들을 어떻게 수치화할 것인가? 서구적 기준으로 개발된 지표들이 비서구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지속가능성 지표는 종종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국가별 SDGs 이행 격차와 글로벌 불평등

SDGs 채택 이후 각국의 이행 실적을 보면 심각한 격차가 나타난다. 북유럽 국가들은 대부분의 목표에서 높은 성과를 보이는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나 남아시아 일부 국가들은 여전히 기본적인 목표 달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각국의 경제 발전 수준, 제도적 역량, 자연환경 등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선진국들도 모든 목표를 균등하게 달성하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 부문에서는 높은 성과를 보이지만 불평등과 기후행동 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는다. 독일은 재생에너지와 환경보전에서는 앞서가지만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 부문에서는 과제가 많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재정적 제약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SDGs 달성을 위해서는 연간 수조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추산되는데, 이는 개발도상국 정부 예산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국제사회의 개발원조도 필요 자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SDGs 이행에 더욱 큰 타격을 주었다. 많은 국가들이 경제 회복과 보건 위기 대응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지속가능발전 투자를 미루고 있다. 특히 교육, 성평등, 빈곤 퇴치 등의 분야에서 성과가 후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ESG 경영과 지속가능발전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확산되면서 민간 부문의 SDGs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공급망 관리, 친환경 제품 개발, 사회공헌 활동 등을 통해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투자자들도 ESG 요소를 투자 결정에 반영하는 책임투자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이 진정성 있는 변화인지 아니면 그린워싱에 불과한지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많은 기업들이 마케팅 목적으로 SDGs 로고를 사용하면서도 실제로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 모델을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석유회사들이 재생에너지 투자를 홍보하면서도 여전히 화석연료 개발에 훨씬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ESG 평가 기관들의 평가 기준과 방법론도 논란이 되고 있다. 같은 기업에 대해 평가 기관마다 다른 점수를 주는 경우가 많아 투자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ESG 지표들이 정량적 데이터에 의존하다 보니 기업의 실질적인 지속가능성보다는 공시 역량을 평가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역 사회와 시민사회의 역할

SDGs 달성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지역 커뮤니티는 지속가능발전의 구체적인 실행 주체이자 수혜자다. 상향식(bottom-up) 접근을 통해 지역의 특성과 필요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지역 SDGs가 좋은 사례다. 서울시는 '시민이 행복한 지속가능도시 서울'을 비전으로 내세우며 17개 목표를 지역 실정에 맞게 재구성했다. 수원시는 인간도시를 지향하며 시민 참여형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화 노력은 글로벌 목표를 로컬 행동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

시민사회단체들도 SDGs 모니터링과 정책 제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나 기업과 달리 시민단체들은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권력기관을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역량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정부나 기업에 비해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청년세대의 참여도 주목할 만하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의 직접적 피해자가 될 청년들은 그레타 툰베리로 상징되는 환경운동을 통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열정과 의지만으로는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도 있다.

기술혁신과 지속가능발전의 관계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혁신이 지속가능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양면적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자원 사용을 최적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스마트시티, 정밀농업, 순환경제 등의 분야에서 기술혁신의 잠재력이 크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자동으로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기기의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 소비, 플랫폼 경제로 인한 노동 불안정성 증가 등 부정적 영향도 만만치 않다.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기술 접근성의 불평등도 심각한 문제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도시와 농촌 간, 계층 간 디지털 격차가 지속가능발전의 새로운 불평등 요인이 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기술혁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포용적 지속가능발전의 핵심 과제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의 발전은 일자리 문제와도 직결된다. 기술 진보로 인한 실업 증가는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기술 변화에 대응한 교육훈련 시스템 개편, 사회안전망 강화,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코로나19와 지속가능발전의 새로운 과제

코로나19 팬데믹은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다. 감염병 확산과 환경파괴의 연관성이 주목받으면서 '원헬스(One Health)' 접근법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인간, 동물, 환경의 건강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보건시스템의 취약성은 SDGs 3번 목표(건강한 삶 보장)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백신 접근성을 둘러싼 국가 간 불평등, 의료진 부족, 보건 인프라 부족 등의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보건 역량 강화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경제적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많은 국가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지속가능발전 투자가 뒷전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일부 국가들은 '그린 뉴딜'을 통해 경제회복과 환경보전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재택근무와 비대면 문화의 확산은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제공한다. 교통량 감소로 대기오염이 줄어들고 온실가스 배출이 감소하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디지털 격차 심화, 사회적 고립 증가, 플라스틱 폐기물 급증 등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지속가능발전의 미래 전망과 대안적 접근

SDGs 2030 달성 시한이 절반 정도 지난 현 시점에서 대부분의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빈곤, 교육, 성평등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과가 후퇴하고 있다. 하지만 실패를 인정하고 포기하기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접근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순위의 명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17개 목표를 모두 동등하게 추진하기보다는 각국의 상황에 맞는 핵심 목표를 선정하고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목표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상충 관계를 최소화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상향식 접근법의 강화도 중요하다.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정책보다는 지역사회와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풀뿌리 운동이 더 지속가능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 지역의 특성과 필요를 반영한 맞춤형 해결책을 개발하는 것이 관건이다.

탈성장이나 도넛경제학 같은 대안적 패러다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무한한 경제성장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발전 모델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아직 실험 단계에 있지만, 지속가능발전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결론

지속가능발전과 SDGs는 인류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적 청사진이다. 환경보전과 경제발전, 사회적 형평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이상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목표 간 상충, 측정의 어려움, 이행 격차, 구조적 불평등 등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발전의 가치와 방향성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불평등 심화, 사회적 갈등 등의 문제들은 여전히 시급한 해결이 필요한 과제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고, 보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접근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속가능발전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동시에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글로벌 목표와 로컬 행동을 연결하는 다층적 거버넌스의 구축,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의 결합, 단기적 성과와 장기적 비전의 균형 등이 핵심 과제다. 무엇보다 지속가능발전이 소수 전문가나 정책 담당자만의 과제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참여해야 할 공동의 프로젝트라는 인식의 확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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