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 Administration

행정학개론 9. 재무행정 이론 - 공공재원의 지혜로운 관리

SSSCHS 2025. 3. 2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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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책을 실현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정책이 아무리 훌륭해도 재원이 없으면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만다. 재무행정은 이렇게 정부 활동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하며, 책임 있게 관리하는 과정을 다루는 행정학의 핵심 영역이다. 오늘은 재무행정의 기본 개념부터 예산 이론, 현대적 쟁점까지 살펴보자.

재무행정의 개념과 중요성

재무행정의 정의와 범위

재무행정(Financial Administration)은 정부가 공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고 관리하는 모든 활동을 포괄한다. 구체적으로는 세입 확보(조세 정책), 예산 편성과 집행, 회계와 감사, 정부 부채 관리 등을 포함한다.

좁은 의미에서는 예산 과정에 초점을 맞추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재정 정책(fiscal policy)과 연결되어 경제 안정화, 소득 재분배, 자원 배분 등 거시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부의 경제적 활동 전반을 아우른다.

재무행정의 중요성

재무행정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자원의 효율적 배분: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얼마나 배분할 것인가는 정부의 우선순위를 반영하는 가장 구체적인 지표다. 예산은 '숫자로 표현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2. 경제 안정과 성장: 정부 지출과 조세 정책은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적절한 재정 정책은 경기 침체 시 경제를 활성화하고, 과열 시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3. 사회적 형평성 제고: 누진적 조세 제도와 복지 지출을 통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적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
  4. 정치적 책임성 확보: 국민의 세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정부의 책임성과 직결된다. 투명한 재무 관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재무행정의 역사적 발전

전통적 재무행정

20세기 초까지의 재무행정은 주로 '통제 지향적' 접근법이었다. 정부 지출의 합법성과 규정 준수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예산의 주요 기능은 의회가 행정부를 통제하는 수단이었다. 이 시기의 핵심 가치는 절약과 효율이었다.

미국에서는 1921년 예산회계법(Budget and Accounting Act) 제정으로 행정부 예산제도가 체계화되었고, 한국에서는 1961년 예산회계법 제정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현대적 재무행정

1960년대 이후 PPBS(계획예산제도), ZBB(영기준예산제도) 등 성과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예산 기법이 등장했다. 1980년대부터는 신공공관리론(NPM)의 영향으로 성과주의 예산, 발생주의 회계 등 민간 기업의 재무관리 기법이 공공부문에 도입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재정 건전성과 지속가능성, 성과 중심 관리, 참여 예산 등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재정 건전성과 경제 활성화 사이의 균형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예산 이론과 예산 제도

예산의 개념과 기능

예산(Budget)은 일정 기간 동안 정부의 수입과 지출 계획을 금액으로 표시한 문서다.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1. 자원 배분 기능: 한정된 재원을 다양한 정책과 사업에 배분함으로써 국가의 우선순위를 실현한다.
  2. 통제 기능: 행정부의 재정 활동을 입법부가 감독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
  3. 관리 기능: 행정 기관의 운영과 성과를 관리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4. 경제 안정화 기능: 총수요를 조절함으로써 경기 안정과 성장, 고용, 물가 안정 등 거시경제적 목표를 달성한다.

예산 원칙

전통적인 예산 원칙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완전성의 원칙: 모든 수입과 지출이 예산에 포함되어야 한다.
  2. 단일성의 원칙: 모든 수입과 지출이 하나의 문서에 통합되어야 한다.
  3. 사전 의결의 원칙: 예산은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전에 의결되어야 한다.
  4. 공개의 원칙: 예산 과정과 내용은 국민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5. 명확성의 원칙: 예산 내용은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작성되어야 한다.
  6. 한정성의 원칙: 세출예산은 목적, 금액, 기간이 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에는 이러한 원칙들이 다소 완화되어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특별회계, 기금 등으로 인해 단일성의 원칙이 완화되었고, 계속비, 이월비 등으로 인해 한정성의 원칙도 예외가 인정되고 있다.

주요 예산 제도

품목별 예산제도(Line-item Budgeting)

가장 전통적인 예산 형식으로, 지출 항목(인건비, 물품비, 시설비 등)별로 예산을 편성한다. 통제가 용이하고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투입에만 초점을 맞추어 성과나 효과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성과주의 예산제도(Performance Budgeting)

1950년대부터 발전한 이 제도는 정부 활동의 기능과 사업, 그리고 그 성과에 초점을 맞춘다. 무엇을 했는지(what) 보다 무엇을 성취했는지(achievement)를 중시한다. 성과 측정이 어렵고 적용이 복잡하다는 한계가 있다.

계획예산제도(PPBS: Planning-Programming-Budgeting System)

1960년대 미국에서 발전한 이 제도는 계획-프로그래밍-예산편성의 세 단계를 통합한다. 장기적 목표와 계획에 기반하여 대안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최적의 자원 배분을 추구한다. 그러나 방대한 정보와 분석이 필요해 실행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영기준 예산제도(ZBB: Zero-Base Budgeting)

1970년대 카터 행정부에서 도입된 이 제도는 모든 사업을 매년 원점(zero-base)에서 재검토한다. 관성적 예산 편성을 방지하고 비효율적 사업을 정리할 수 있지만, 분석 부담이 크고 기존 사업의 기득권이 강하다는 한계가 있다.

사업별 예산제도(Program Budgeting)

정부 활동을 정책 목표에 따라 사업 단위로 분류하고 예산을 편성한다. 한국에서는 2004년부터 도입되어 현재 정부의 기본 예산 체계로 자리 잡았다. 정책과 예산의 연계를 강화하고 성과 관리를 용이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성과기반 예산제도(Performance-Based Budgeting)

성과 정보를 예산 과정에 체계적으로 연계시키는 제도로, 성과 계획-실행-평가-환류의 순환 구조를 갖는다. OECD 국가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2000년대 이후 성과관리제도와 함께 발전하고 있다.

예산 과정의 정치경제학

합리주의 vs 점증주의

예산 결정 과정에 대한 이론은 크게 합리주의와 점증주의로 나눌 수 있다:

합리주의적 접근(Rationalism)

모든 대안과 결과를 포괄적으로 분석하여 최적의 예산을 도출하는 접근법이다. PPBS, ZBB 등이 이러한 합리주의적 접근에 기반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완전한 정보와 분석 능력의 한계, 가치 판단의 개입 등으로 인해 순수한 합리적 결정이 어렵다.

점증주의적 접근(Incrementalism)

찰스 린드블롬(Charles Lindblom)과 아론 윌다브스키(Aaron Wildavsky)가 주장한 이 접근법은 예산이 전년도를 기준으로 소폭 증감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고 본다. 정치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재원 배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어렵고 기존 사업의 타성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공공선택론과 예산 극대화 모형

윌리엄 니스카넨(William Niskanen)의 '관료제의 예산 극대화 모형'은 관료들이 자신의 부처 예산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더 큰 예산이 권력, 명성, 영향력 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예산 증가의 원인을 설명하고, 엄격한 예산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정치적 예산 순환(Political Budget Cycle)

선거와 예산 간의 관계를 다루는 이 이론은 정치인들이 재선을 위해 선거 직전에 인기 있는 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예산이 정치적 주기에 따라 변동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재무행정의 주요 영역

세입 관리

정부 활동의 재원은 크게 조세수입, 세외수입, 기채(국채 발행) 등으로 구성된다:

조세 정책

조세는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재원이다. 조세 제도를 설계할 때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고려한다:

  1. 공평성(Equity): 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수평적 공평성(같은 상황의 납세자는 같은 세금)과 수직적 공평성(능력에 따른 차등 부담)으로 구분된다.
  2. 효율성(Efficiency): 조세로 인한 경제적 왜곡과 비효율을 최소화해야 한다. 과세로 인해 경제 주체의 의사결정이 크게 변하지 않아야 한다.
  3. 단순성과 준수 용이성(Simplicity and Compliance): 세법은 이해하기 쉽고 준수하기 용이해야 한다.
  4. 충분성(Adequacy): 필요한 재정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충분한 세입을 확보해야 한다.
  5. 탄력성(Elasticity): 경제 성장에 따라 세수도 자연스럽게 증가해야 한다.

국가채무 관리

정부가 세입보다 많은 지출을 할 경우 발생하는 재정적자는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충당한다. 국가채무는 다음과 같은 쟁점을 제기한다:

  1.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국가채무가 지속 가능한 수준인지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채무 규모 자체보다는 GDP 대비 비율, 이자 부담, 상환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2. 세대 간 형평성(Intergenerational Equity): 현재 세대의 소비를 위한 채무가 미래 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
  3. 재정 규율(Fiscal Discipline): 과도한 채무 발행을 제한하기 위한 재정준칙(fiscal rules)이 중요하다. 많은 국가들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에 상한선을 두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출 관리

재정 사업 평가

정부 지출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평가 제도가 운영된다:

  1. 예비타당성조사: 대규모 재정사업 착수 전에 경제성, 정책적 타당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2. 재정사업 자율평가/심층평가: 진행 중인 사업의 성과를 평가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한다.
  3. 규제영향분석(RIA): 새로운 규제 도입이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다.

재정 투명성과 책임성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만큼, 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매우 중요하다:

  1. 재정정보 공개: 예산, 결산, 국가채무 등 주요 재정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한다.
  2. 참여 예산제: 예산 과정에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여 민주성과 투명성을 높인다.
  3. 재정 모니터링과 감사: 외부 기관(감사원, 국회 등)의 감사와 내부 통제 시스템을 통해 재정 운영의 적법성과 효율성을 검증한다.

현대 재무행정의 쟁점과 도전

재정 건전성과 경기 활성화의 균형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재정 건전성 회복과 경기 활성화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긴축 재정이 경기를 더 위축시키는 '재정 절벽(fiscal cliff)' 현상이 우려되는 한편, 지속적인 확장 재정은 국가채무 증가와 재정 위기 위험을 높인다.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포용적 성장과 재정 정책

불평등 심화와 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 강조되면서, 재정 정책의 재분배 기능이 주목받고 있다. 누진적 과세와 취약계층 지원 지출을 통해 성장의 혜택이 사회 전체에 고르게 분배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령화와 재정 지속가능성

인구 고령화는 연금, 의료 등 사회보장 지출 증가와 생산인구 감소로 인한 세수 감소라는 이중고를 초래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재정 지속가능성에 큰 도전이 된다. 사회보장제도의 개혁과 함께 생산성 향상, 노동참여율 제고 등 종합적 대응이 필요하다.

기후변화와 녹색 재정

기후변화 대응이 국제적 과제로 부상하면서 '녹색 재정(green finance)'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탄소세와 같은 환경 관련 세제, 친환경 산업 지원, 기후변화 적응 투자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필요하다.

발생주의 회계와 재무제표

현금주의에서 발생주의로

전통적으로 정부 회계는 현금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현금주의(cash basis)'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는 자산과 부채, 미래 의무 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많은 국가들이 민간 기업과 유사한 '발생주의(accrual basis)' 회계를 도입하고 있다. 발생주의는 현금 흐름과 관계없이 거래가 발생한 시점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재정 상태를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정부 재무제표의 의의

발생주의 회계 도입으로 정부도 민간 기업처럼 재무제표를 작성한다:

  1. 재정상태표(Balance Sheet): 정부가 보유한 자산과 부채, 순자산의 상태를 보여준다.
  2. 재정운영표(Income Statement): 일정 기간 동안의 수익과 비용, 운영 결과를 보여준다.
  3. 순자산변동표(Statement of Changes in Net Assets): 순자산의 변동 내역을 보여준다.
  4. 현금흐름표(Cash Flow Statement): 현금의 유입과 유출 내역을 보여준다.

이러한 재무제표는 정부의 재정 상태와 성과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재정 건전성을 평가하는 데 유용하다.

디지털 시대의 재무행정

디지털 예산회계시스템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예산과 회계 업무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dBrain, 미국의 DATA Act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장점을 제공한다:

  1. 업무 효율성 향상: 예산 편성, 집행, 결산 등의 업무를 자동화하여 효율성을 높인다.
  2. 실시간 모니터링: 재정 집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신속한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3. 투명성 강화: 재정 정보의 공개와 접근성을 높여 투명성을 강화한다.
  4.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축적된 재정 데이터를 분석하여 증거 기반의 정책 결정을 지원한다.

블록체인과 재무행정

블록체인 기술은 재무행정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1. 투명성과 보안 강화: 거래 내역이 분산 저장되어 위변조가 어렵고 추적이 용이하다.
  2. 스마트 계약: 자동화된 계약 실행으로 조달 과정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3. 재정 통제 혁신: 예산 집행의 조건과 제약을 프로그래밍하여 자동화된 통제가 가능하다.

마치며: 지속가능한 재무행정을 향하여

재무행정은 단순한 '돈 관리'를 넘어, 정부의 정책 목표를 실현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핵심 수단이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재무행정의 본질적 가치인 효율성, 책임성, 형평성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대응해 나가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재정 건전성과 경제 활력, 세대 간 형평성과 현세대의 복지, 효율성과 형평성 등 상충되는 가치들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재무행정은 현재와 미래 세대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공공가치 창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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