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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론 14. 정책·거버넌스와 교육과정 - 국가·지역 수준 권한 배분과 교육과정 정치학

SSSCHS 2025. 5. 7.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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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은 단순한 학습 내용의 목록이나 기술적 문서가 아니라, 복잡한 정치적·사회적 협상과 결정의 산물이다. 국가와 지역 수준에서 교육과정이 어떻게 결정되고, 누가 이 과정에 참여하며, 어떤 권한과 책임이 분배되는지는 교육의 방향과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이 글에서는 교육과정 정책과 거버넌스의 다양한 모델, 국가 교육과정의 발전과 쟁점, 교육과정 정치학의 주요 관점, 그리고 현대 사회의 변화에 따른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살펴본다.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개념과 모델

교육과정 거버넌스란 교육과정에 관한 의사결정, 권한 배분, 책임 소재, 이해관계자 참여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교육과정이 어떻게 계획되고, 개발되고, 실행되고, 평가되는지를 결정하는 제도적 틀과 과정을 의미한다.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스펙트럼

교육과정 거버넌스는 중앙집권적 모델에서 분권화된 모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1. 중앙집권형 모델(Centralized Model)
    • 국가 수준에서 교육과정의 목표, 내용, 방법, 평가 등을 상세히 규정한다.
    • 모든 학교가 동일한 국가 교육과정을 따르도록 하여 교육의 균질성과 형평성을 추구한다.
    • 프랑스, 일본, 한국 등 많은 국가들이 전통적으로 이 모델을 채택해왔다.
    • 장점: 교육의 일관성과 형평성 보장, 국가적 교육 비전 실현
    • 단점: 지역적 특수성 반영 어려움, 교사의 자율성 제한, 변화에 대한 유연성 부족
  2. 권한 분산형 모델(Decentralized Model)
    • 교육과정에 관한 의사결정 권한이 지역, 학교, 교사 수준으로 분산된다.
    • 국가는 광범위한 목표와 원칙만 제시하고, 구체적 내용과 방법은 지역과 학교가 결정한다.
    • 미국(주 수준), 캐나다(주), 호주(주) 등의 연방국가들이 이러한 특성을 보인다.
    • 장점: 지역적 맥락과 요구 반영, 교사의 전문적 자율성 증진, 혁신과 실험 촉진
    • 단점: 지역 간 교육 격차 발생 가능성, 국가적 일관성 확보의 어려움
  3. 협력적 거버넌스 모델(Collaborative Governance Model)
    • 국가, 지역, 학교, 교사, 학부모,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협력적으로 교육과정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 핀란드, 네덜란드 등에서 볼 수 있는 모델로, 사회적 합의와 협력을 중시한다.
    • 장점: 민주적 참여와 투명성 증진, 다양한 관점의 통합, 상향식·하향식 접근의 균형
    • 단점: 의사결정 과정의 복잡성과, 시간 소요, 이해관계 충돌 조정의 어려움

교육과정 권한 분권화(Curriculum Decentralization)의 추세

20세기 후반부터 많은 국가들에서 교육과정 의사결정 권한의 분권화 추세가 나타났다:

  1. 정치적 맥락: 민주화, 지방 자치 강화 등 정치적 변화와 맞물려 교육 분야에서도 중앙 집권적 통제에서 벗어나 지역과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2. 경제적 맥락: 세계화, 지식기반경제로의 전환에 따라 각 지역과 학교가 변화하는 경제적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율성이 중요해졌다.
  3. 다양성 인식 확대: 학생 인구의 다양성 증가와 문화적 다원주의 인식이 확대되면서, 중앙에서 규정된 단일한 교육과정보다 지역과 학교 수준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4. 교사 전문성 인정: 교사를 단순한 교육과정 전달자가 아닌 전문가로 인식하는 관점이 확산되면서, 교사들이 교육과정 개발과 실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중요해졌다.

국가 교육과정과 표준화

국가 교육과정의 의미와 역할

국가 교육과정(National Curriculum)은 국가 수준에서 모든 학교가 따라야 할 교육 목표, 내용, 방법, 평가 등을 규정한 공식적 지침이다. 국가 교육과정의 주요 역할은 다음과 같다:

  1. 국가적 교육 비전 제시: 국가가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와 목표를 명확히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2. 교육의 질 보장: 모든 학생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준과 내용을 규정한다.
  3. 형평성 증진: 지역, 학교,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교육 형평성을 추구한다.
  4. 사회 통합 촉진: 공통된 지식, 가치, 역량을 함양함으로써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과 연대를 강화한다.
  5. 국가 경쟁력 향상: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요구에 부응하는 인재 양성을 통해 국가 경쟁력 향상에 기여한다.

주요국의 국가 교육과정 사례

다양한 국가들의 교육과정 접근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영국: 1988년 교육개혁법(Education Reform Act)을 통해 국가 교육과정(National Curriculum)을 도입했다. 영국의 국가 교육과정은 모든 학생들이 배워야 할 핵심 교과와 성취 기준을 규정하면서도, 학교와 교사에게 교수법과 자원 선택의 자율성을 부여한다. 최근에는 지식 중심 교육과정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2. 핀란드: 국가 핵심 교육과정(National Core Curriculum)이 광범위한 목표와 내용 영역을 제시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학교가 이를 기반으로 지역 교육과정을 개발한다. 교사들은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가지고 교육과정을 해석하고 실행한다. 최근 개정에서는 역량 중심 접근법과 현상 중심 학습이 강조되었다.
  3. 싱가포르: 중앙집권적 교육과정 체제를 갖추고 있으나, '덜 가르치고 더 배우게 하라(Teach Less, Learn More)'는 철학 하에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21세기 역량, 창의성, 혁신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개혁하고 있다.
  4. 미국: 연방 차원의 국가 교육과정은 없으며, 각 주(State)가 교육과정에 관한 권한을 가진다. 그러나 2010년 도입된 '공통 핵심 주 표준(Common Core State Standards)'을 통해 영어와 수학 영역에서 주 간 공통 기준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는 모든 주가 참여하지는 않았으며,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교육과정 표준화의 쟁점

교육과정의 표준화는 다양한 쟁점과 긴장 관계를 내포한다:

  1. 일관성 vs. 유연성: 모든 학생들에게 일관된 교육 경험을 제공하려는 목표와, 지역적 특성과 개별 학생의 요구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해야 할 필요성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2. 책무성 vs. 자율성: 교육의 질과 성과에 대한 책무성 확보와, 교사와 학교의 전문적 자율성 보장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3. 국가 통제 vs. 시장 원리: 교육과정을 국가가 중앙에서 통제해야 하는지, 아니면 학교 선택과 경쟁 등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하는지에 대한 이념적 논쟁이 존재한다.
  4. 지식 중심 vs. 역량 중심: 전통적인 교과 지식과 내용을 강조해야 하는지, 아니면 역량과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적 논쟁이 있다.
  5. 글로벌 표준 vs. 지역적 맥락: 국제적 비교와 경쟁력을 위한 글로벌 표준 채택과, 각 국가와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사회적 맥락 존중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교육과정 정치학: 권력과 이데올로기

교육과정은 단순한 기술적 문서가 아니라, 권력 관계와 이데올로기가 작용하는 정치적 텍스트다. 교육과정 정치학은 교육과정 결정 과정에 내재된 권력 관계, 가치 갈등, 이데올로기적 경합을 분석한다.

교육과정과 권력 관계

교육과정 개발과 실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권력 관계의 양상:

  1. 지식의 선택과 배제: 어떤 지식이 가치 있고 가르칠 만한 것으로 선택되고, 어떤 지식이 배제되는가의 문제는 권력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Michael Apple은 교육과정이 '공식적 지식(official knowledge)'을 통해 특정 집단의 관점과 이해관계를 특권화한다고 주장했다.
  2. 이해관계자 간 권력 역학: 국가, 정치인, 관료, 전문가, 교사, 학부모, 시민사회, 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은 각기 다른 영향력을 가지고 교육과정 결정에 참여한다. 이들 사이의 권력 관계가 교육과정의 방향과 내용을 좌우한다.
  3. 학문 분야 간 경쟁: 한정된 교육과정 시간과 자원을 두고 다양한 학문 분야와 교과목이 경쟁한다. 어떤 교과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배정되는지는 각 학문 공동체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반영한다.
  4. 전문가 권력과 기술관료주의: 교육과정 개발이 과학적, 기술적 과정으로 간주될 때, 교육 전문가와 관료들이 주도권을 갖게 된다. 이는 교육과정 결정을 '탈정치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형태의 전문가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교육과정과 이데올로기

교육과정에 반영되는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관점과 그 영향:

  1. 신자유주의와 시장 논리: 교육과정을 효율성, 성과, 경쟁력, 선택, 책무성 등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장 중심적 관점이다. 이는 교육을 경제적 성장과 국가 경쟁력의 도구로 바라보며, 표준화된 검사와 성과 측정을 강조한다.
  2. 보수주의와 전통적 가치: 교육과정을 통해 전통적 지식, 문화적 유산, 도덕적 가치의 전수를 강조하는 관점이다. 이는 교과 중심 교육과정, 기초 학력, 규율과 질서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3. 진보주의와 학생 중심 접근: 학생의 흥미, 요구, 경험에 기반한 교육과정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이는 통합 교육과정, 탐구 기반 학습, 학생 주도적 활동을 중시한다.
  4. 비판적 교육학과 사회 변혁: 교육과정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추구하는 관점이다. 이는 권력 관계의 분석, 다양한 목소리의 포함, 비판적 의식과 행동의 함양을 강조한다.
  5.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보편적 진리와 거대 담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지식의 상황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이는 교육과정에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의 가능성, 지식의 구성적 성격,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을 중시한다.

교육과정 개혁과 이데올로기적 논쟁

교육과정 개혁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논쟁의 양상:

  1. '문화 전쟁(Culture Wars)'과 교육과정: 특히 역사, 문학, 사회 등의 교과에서 어떤 관점과 내용을 포함할 것인가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나타난다. 미국의 역사 교육과정 논쟁, 일본의 역사교과서 논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2. 국가 정체성과 교육과정: 교육과정은 종종 국가 정체성 형성과 사회 통합의 도구로 활용된다. 그러나 다문화사회에서 '국가 정체성'의 의미와 내용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입장이 충돌한다.
  3. 종교와 가치 교육: 공교육 내에서 종교적 가치와 세속적 가치의 위치, 도덕·윤리 교육의 접근법, 성교육과 젠더 이슈 등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교육과정 논쟁으로 표출된다.
  4. 과학과 기술의 정치학: 과학 교육과정에서도 진화론 vs. 창조론, 기후 변화, 생명 윤리 등의 주제를 둘러싸고 이데올로기적 논쟁이 발생한다. 이는 과학적 지식의 객관성과 가치중립성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반영한다.

교육과정 정책 결정 과정

교육과정 정책의 주요 행위자

교육과정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행위자들과 그들의 역할:

  1. 국가와 정부 기관: 교육부, 교육과정 위원회 등 공식적인 정부 기관이 교육과정 정책의 기본 틀을 설정하고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역할과 영향력은 각 국가의 정치적, 행정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다.
  2. 정치인과 정당: 교육과정은 종종 선거와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된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념적 지향과 지지층의 요구를 반영한 교육과정 정책을 추진한다.
  3. 교육 전문가와 학자: 교과 내용 전문가, 교육학자, 교육과정 이론가 등이 교육과정의 학문적, 교육적 타당성을 검토하고 전문적 조언을 제공한다.
  4. 교사와 교원 단체: 교육과정의 실행자인 교사들과 그들의 단체는 교육과정 개발과 개정 과정에 참여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국가별로 큰 차이가 있다.
  5. 학부모와 지역사회: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과 요구를 표출하며, 특히 학부모 단체를 통해 조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6. 시민사회와 이익 집단: 다양한 시민단체, NGO, 종교 단체, 기업 등이 특정 가치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교육과정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7. 국제기구와 초국가적 행위자: OECD, UNESCO, World Bank 등의 국제기구와 다국적 교육 기업, 재단 등이 글로벌 교육 담론과 표준을 형성하고 각국의 교육과정 정책에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교육과정 정책 결정 모델

교육과정 정책이 결정되는 다양한 방식과 과정:

  1. 합리적-기술적 모델(Rational-Technical Model): 교육과정 정책을 과학적, 합리적 분석과 계획에 기반한 기술적 과정으로 본다. 전문가들이 객관적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최적의' 교육과정을 설계한다는 관점이다.
  2. 정치적 협상 모델(Political Bargaining Model): 교육과정 정책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정치적 협상과 타협의 결과로 본다. 이는 권력 관계, 이해관계, 가치 갈등이 교육과정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이다.
  3. 점증주의 모델(Incrementalism): 교육과정 정책이 대규모 개혁보다는 기존 정책에 대한 점진적 조정과 변화를 통해 발전한다는 관점이다. 이는 급진적 변화의 위험과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안전한 접근법으로 볼 수 있다.
  4. 혼합 스캐닝 모델(Mixed Scanning): 합리적 계획과 점증주의를 결합한 접근으로, 광범위한 방향성과 목표는 합리적으로 설정하되, 구체적인 실행은 점진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방식이다.
  5. 담론 모델(Discourse Model): 교육과정 정책을 다양한 담론들 간의 경쟁과 협상의 결과로 본다. 이는 언어, 상징, 의미 체계가 교육과정 정책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관점이다.

교육과정 개혁의 역학과 도전

교육과정 개혁 추진 과정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역학과 도전 요소:

  1. 정치적 시간성과 교육적 시간성의 불일치: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의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단기적 개혁을 선호하는 반면, 교육적 변화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시간성의 불일치가 교육과정 개혁의 지속성과 일관성을 저해한다.
  2. 상징적 정책과 실질적 변화의 간극: 교육과정 개혁이 종종 상징적, 수사적 차원에 머물고 실질적인 교실 수준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 정책 문서상의 변화와 실제 교육 실천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3. 실행의 복잡성: 교육과정 정책은 다양한 수준(국가, 지역, 학교, 교실)을 거쳐 실행되며, 각 단계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의 해석과 적응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원래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변형될 수 있다.
  4. 이해관계자 저항 관리: 교육과정 개혁은 기존의 이해관계와 관행에 도전하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러한 저항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이 개혁의 성공에 중요하다.
  5. 역량과 자원의 제약: 교육과정 개혁의 성공적 실행을 위해서는 교사 연수, 교재 개발, 학습 환경 개선 등에 충분한 자원과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는 종종 제한적이다.

현대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새로운 흐름

다층적 거버넌스(Multi-level Governance)의 발전

교육과정 결정이 다양한 수준에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상:

  1. 초국가적 수준(Supranational Level): EU, OECD 등 국제기구와 초국가적 네트워크가 교육과정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 PISA 등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21세기 역량 담론 등이 각국의 교육과정 개혁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다.
  2. 국가 수준(National Level): 여전히 대부분의 국가에서 교육과정의 기본 틀과 방향은 국가 수준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권한과 역할은 변화하고 있다.
  3. 지역 수준(Regional/Local Level): 지방분권화 추세에 따라 지역 교육청, 지방자치단체 등이 교육과정 결정에 참여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4. 학교 수준(School Level): 학교 기반 교육과정 개발(School-Based Curriculum Development)이 강조되면서, 개별 학교가 교육과정 결정에 참여하는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5. 교실 수준(Classroom Level): 최종적으로 교사가 교실에서 교육과정을 해석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진다. 교사의 전문적 자율성과 교육과정 리더십이 강조되는 추세다.

네트워크 거버넌스와 참여적 접근

위계적, 일방향적 거버넌스에서 네트워크 기반, 참여적 거버넌스로의 전환:

  1. 이해관계자 참여 확대: 교사, 학부모, 학생, 지역사회,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교육과정 개발과 실행에 참여하는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2. 공동 창조(Co-creation)와 집단지성: 교육과정 개발이 소수 전문가의 독점적 작업이 아니라, 다양한 참여자들의 지식과 경험을 결합하는 공동 창조 과정으로 재개념화되고 있다. 핀란드의 교육과정 개혁 과정이 이러한 접근의 사례다.
  3. 수평적 네트워크와 협력: 학교 간, 교사 간 네트워크를 통한 교육과정 지식과 실천의 공유가 활성화되고 있다. 교사 전문적 학습공동체, 혁신학교 네트워크 등이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4. 디지털 기술과 참여 확대: 온라인 플랫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교육과정 개발과 피드백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교육과정 초안에 대한 온라인 공개 의견 수렴 등이 증가하고 있다.

책무성과 자율성의 새로운 균형

교육과정 거버넌스에서 책무성과 자율성 관계의 재구성:

  1. 성과 기반 책무성의 한계 인식: 표준화된 시험 결과에 기반한 책무성 체제의 한계와 부작용(교육과정 축소, 교사 자율성 제한, 학습 경험 왜곡 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2. 전문적 책무성 강화: 외부적 통제보다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적 판단에 기반한 책무성 접근이 중요해지고 있다. 교사들이 동료 간 협력과 성찰을 통해 교육과정 실행의 질을 높이는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3. 참여적 책무성: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교육과정 결정과 평가에 참여함으로써, 보다 민주적이고 맥락적인 책무성 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4. 균형적 접근: 국가 수준의 기준과 지침을 통한 일관성 확보와, 지역과 학교 수준의 자율성과 다양성 존중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느슨한 연결(loose coupling)'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데이터 기반 교육과정 거버넌스

교육과정 결정에서 데이터와 증거의 역할 증대:

  1. 증거 기반 정책(Evidence-based Policy): 교육과정 정책 결정이 이념이나 직관이 아닌, 연구 결과와 데이터에 기반해야 한다는 관점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교육정책의 과학화, 합리화를 추구하는 흐름이다.
  2. 빅데이터와 학습 분석: 디지털 학습 환경에서 생성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교육과정의 효과성을 분석하고 개선하려는 시도가 확대되고 있다. 학습자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형 교육과정 설계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3. 비판적 관점의 필요성: 데이터 기반 접근이 중요하지만, 교육의 모든 가치 있는 측면이 데이터로 포착되는 것은 아니며, 데이터 자체도 특정 관점과 가정에 기반한다는 비판적 인식도 함께 중요해지고 있다.
  4. 데이터 윤리와 프라이버시: 학습자 데이터 수집과 활용 과정에서 윤리적 고려와 프라이버시 보호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쟁점

국제 비교와 글로벌 표준의 영향

국제적 교육 담론과 표준이 각국의 교육과정 정책에 미치는 영향:

  1. PISA 효과: 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가 각국의 교육과정 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 순위 경쟁이 교육과정 개혁의 주요 동인이 되기도 한다.
  2. 글로벌 교육 모델의 확산: '21세기 역량', '역량 기반 교육과정', '학습자 중심 교육' 등의 글로벌 교육 담론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 이는 교육 정책의 국제적 수렴 현상을 가져온다.
  3. 글로벌 교육 거버넌스의 출현: UNESCO, OECD, World Bank 등 국제기구와 글로벌 네트워크가 국가 교육과정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초국가적 교육 거버넌스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4. 정책 차용과 맥락화의 과제: 글로벌 모델과 성공 사례를 자국의 맥락에 맞게 적절히 번역하고 적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차용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문화적 다양성과 교육과정 표준화 사이의 긴장

글로벌화와 지역적 특수성 사이의 균형 모색:

  1. 문화적 자율성 vs. 글로벌 경쟁력: 자국의 문화적, 교육적 전통과 특수성을 보존하려는 욕구와,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교육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욕구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2. 교육의 동형화(Isomorphism) 경향: 국제적 영향으로 인해 각국의 교육과정이 표면적으로 유사한 형태를 갖추는 동형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다양한 교육적 전통과 접근법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3.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글로벌 흐름과 지역적 맥락의 창의적 결합을 통해, 보편성과 특수성의 균형을 추구하는 접근이 중요해지고 있다. 글로벌 역량과 지역적 정체성을 동시에 함양하는 교육과정이 주목받고 있다.
  4. 원주민 교육과 문화적 주권: 특히 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들에서 원주민 지식과 교육 방식을 교육과정에 통합하고, 문화적 주권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서구 중심의 글로벌 표준에 대한 대안적 접근으로서 의미가 있다.

한국의 교육과정 거버넌스 변화와 과제

한국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역사적 발전

한국 교육과정 정책 결정 방식의 변화 과정:

  1. 중앙집권적 전통: 한국의 교육과정 거버넌스는 오랫동안 교육부(이전의 문교부)가 주도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특성을 보여왔다. 국가 교육과정의 개발과 실행에 관한 결정권이 중앙 정부에 집중되었다.
  2. 점진적 분권화 흐름: 1990년대 이후 지방교육자치제의 강화, 학교 자율성 확대 등을 통해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점진적 분권화가 이루어져 왔다. 특히 2009 개정 교육과정 이후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가 강조되었다.
  3. 참여적 접근의 확대: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 교사, 학부모, 학생,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국가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의 공청회, 의견 수렴 절차 등이 강화되었다.
  4. 전문가 중심에서 현장 중심으로: 학문 전문가 중심의 교육과정 개발에서 현장 교사의 참여와 역할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교육과정 개정 연구진과 심의 위원회에 현장 교사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현 상황과 쟁점

현재 한국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특성과 당면 과제:

  1. 중앙-지방-학교 간 권한 배분: 국가 교육과정-시도 교육청 지침-학교 교육과정으로 이어지는 현행 교육과정 거버넌스 구조에서, 각 수준 간 적절한 권한과 책임 배분이 중요한 쟁점이다.
  2. 교육과정 자율성의 실질화: 문서상으로는 학교 교육과정 자율성이 강조되지만, 입시 중심 교육 체제, 학교 간 경쟁, 학부모의 기대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실질적 자율성이 제한되는 현실이 있다.
  3. 교육과정 개정 주기와 안정성: 교육과정 개정이 정권 교체와 연동되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어, 교육 현장의 혼란과 피로감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있다. 정치적 영향력에서 상대적으로 독립된,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교육과정 거버넌스 구조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4. 다양한 목소리의 실질적 반영: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 기회가 확대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실질적인 영향력으로 이어지는지, 특히 학생과 소외 계층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는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미래 지향적 교육과정 거버넌스를 위한 제언

한국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발전 방향과 과제:

  1.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민주화와 전문화 균형: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면서도, 교육과정 개발의 전문성과 질을 확보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를 모색해야 한다.
  2. 교사의 교육과정 리더십 강화: 교사들이 단순한 교육과정 실행자가 아니라, 교육과정 개발과 재구성의 주체로서 역량과 권한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사 전문성 개발, 교사 네트워크 활성화, 의사결정 참여 기회 확대 등이 필요하다.
  3. 지역 교육과정 역량 강화: 시도 교육청과 지역 교육지원청이 지역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한 교육과정 개발과 지원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중앙-지방-학교 간 협력적 교육과정 거버넌스 구조를 발전시켜야 한다.
  4. 교육과정 정책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 교육과정이 정권의 정치적 의제에 좌우되지 않고, 교육적 가치와 비전에 기반하여 일관성 있게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독립적인 교육과정 위원회 등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
  5. 증거 기반과 가치 기반의 조화: 교육과정 정책이 실증적 연구와 데이터에 기반하되, 동시에 교육의 근본 가치와 목적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철학적 성찰을 중시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결론

교육과정 정책과 거버넌스는 단순한 행정적,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목적과 방향, 사회적 가치와 비전, 권력 관계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과정이다. 이는 '어떤 지식이 가치 있는가', '어떤 인간을 기를 것인가',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된다.

현대 사회에서 교육과정 거버넌스는 다층적, 네트워크적 특성을 띠며, 다양한 행위자와 수준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글로벌화, 디지털화, 민주화 등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교육과정 정책과 거버넌스는 중앙 통제와 현장 자율성, 글로벌 표준과 지역적 특수성, 전문가 지식과 시민 참여, 효율성과 민주성 등 다양한 가치와 원리 사이의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존중하고 모든 학습자의 잠재력과 행복을 증진하는 교육과정을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교육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대화하고 협력하는 참여적, 민주적 교육과정 거버넌스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결국 교육과정 정책과 거버넌스는 우리가 어떤 교육을 통해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실천의 과정이다. 이는 기술적 효율성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교육의 본질적 가치와 모든 학습자의 성장과 행복을 중심에 두는 지혜로운 접근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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