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개발의 개념과 이론적 기초
지역개발은 특정 지역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환경적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한 종합적 노력을 의미한다. 단순한 물리적 개발을 넘어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 지역 정체성 강화, 지속가능한 발전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현대적 의미의 지역개발은 경제성장 일변도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형평성, 지속가능성, 주민 참여, 거버넌스 등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다.
지역개발 이론은 크게 경제학적 접근, 공간계획적 접근, 사회학적 접근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제학적 접근은 성장거점이론, 산업클러스터 이론, 내생적 성장이론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페루(F. Perroux)가 제안한 성장거점이론은 특정 지역에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발전의 동력을 만들고, 이를 주변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이다. 이 이론은 1960-70년대 한국의 산업단지 중심 지역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공간계획적 접근은 중심지이론, 산업입지론, 공간구조론 등을 포함한다. 독일의 지리학자 크리스탈러(W. Christaller)의 중심지이론은 도시와 배후지역 간의 계층적 구조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국토종합계획 등 공간계획 수립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이 이론은 공간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도시 체계 구축에 활용되었으나, 현대의 네트워크 경제 하에서는 적용의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사회학적 접근은 사회자본론, 커뮤니티 개발론, 협력적 거버넌스 이론 등을 포함한다. 특히 퍼트넘(R. Putnam)의 사회자본 개념은 지역 내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사회적 관계가 지역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다. 이는 최근 마을만들기, 사회적 경제, 주민참여형 개발 등의 접근법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이러한 이론적 접근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초기에는 경제 성장과 산업화에 중점을 둔 하향식(top-down) 접근이 주류였으나, 점차 지역 내부의 역량과 특성을 중시하는 상향식(bottom-up) 접근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현대의 지역개발은 이 두 가지 접근을 적절히 조합한 혼합형 모델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국 국토균형발전 정책의 변천사
한국의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환경에 따라 변화해왔다. 이를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1960-70년대)는 '성장거점 전략'의 시기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추진된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72-1981)은 서울과 부산을 양대 성장거점으로 설정하고, 산업기반시설을 집중 배치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울산, 포항, 구미 등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이 이 시기의 대표적 정책이다. 이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으나, 수도권 집중과 지역 간 불균형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두 번째 시기(1980-90년대)는 '분산형 균형발전 전략'의 시기다.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82-1991)과 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92-2001)은 성장거점의 확산, 다핵분산형 국토구조 구축, 지방 중소도시 육성 등을 강조했다. 수도권정비계획법 제정(1982), 지방대학 육성, 테크노파크 조성 등의 정책이 추진되었다. 이 시기에는 지방자치제가 부활(1991)하면서 지역발전에 대한 지방정부의 역할과 관심이 증대되었다.
세 번째 시기(2000년대 초중반)는 '혁신 기반 균형발전 전략'의 시기다. 참여정부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2004),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설치, 혁신도시 및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 등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은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방 혁신역량 강화를 위한 대표적 정책이었다. 이 시기에는 지역 특성에 기반한 혁신클러스터 구축과 산학연 협력이 강조되었다.
네 번째 시기(2000년대 후반-현재)는 '지역 주도 발전 전략'의 시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역 경제의 자생적 성장 동력 확보가 중요해졌고, 지역 주도・중앙 지원이라는 패러다임이 강화되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지역 주도 분권형 균형발전'을 표방하며 지역발전투자협약, 지역혁신체계 구축, 생활 SOC 확충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최근에는 메가시티, 지방소멸 대응, 초광역 협력 등이 새로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변화 과정에서 몇 가지 특징이 관찰된다. 첫째,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의 단절성이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존 정책을 폐지하거나 대폭 수정하는 경향이 있어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이 부족했다. 둘째,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휴먼웨어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초기의 물리적 인프라 구축에서 점차 혁신역량, 삶의 질, 공동체 활성화 등으로 정책 초점이 이동했다. 셋째, 중앙정부 주도에서 지방정부 및 민간 참여로의 확대다. 초기의 중앙집권적 접근에서 점차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거버넌스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
혁신도시 정책의 성과와 한계
혁신도시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통해 지역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계획도시다. 참여정부가 2003년 발표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방안'에 따라 전국 10개 지역(부산, 대구, 광주・전남, 울산, 강원, 충북, 전북, 경북, 경남, 제주)에 혁신도시가 조성되었다.
혁신도시 정책의 핵심은 153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과 함께, 이전 기관과 지역 대학・기업 간 산학연 협력을 통해 자생적 혁신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분산을 넘어 지역의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지식기반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혁신도시 정책의 성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 인구 증가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이전 공공기관 임직원과 가족, 연관 기업 종사자 등 상당한 인구가 지방으로 이동했고, 이는 지방 소멸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변화였다. 둘째,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가 있었다. 공공기관의 지역 조달과 소비 지출이 증가하고, 관련 기업의 동반 이전이 이루어지면서 지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셋째, 지역 혁신 역량 강화에 기여했다. 이전 공공기관과 지역 대학 간 협력 사업, 공동 R&D, 인재 양성 프로그램 등이 활성화되면서 지역의 혁신 기반이 확충되었다.
그러나 혁신도시 정책은 여러 한계와 문제점도 노출했다. 첫째, 자생적 혁신 클러스터 형성이 미흡했다. 공공기관 이전에는 성공했으나, 이를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 구축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부 혁신도시는 여전히 '베드타운' 성격이 강하며, 민간 기업의 유치가 부진하다. 둘째, 정주 여건 개선이 지연되었다. 교육・의료・문화 시설 등 생활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아 이전 직원들의 정착과 가족 동반 이주에 어려움이 있었다. 셋째, 혁신도시 간・혁신도시와 주변 도시 간 연계와 협력이 부족했다. 각 혁신도시가 독립적으로 개발되면서 광역적 시너지 창출에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2018년부터 '혁신도시 시즌2'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혁신도시 산업 생태계 구축 △정주 여건 개선 △주변 지역과의 상생 발전 △투자 선순환 구조 확립 등을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의 '혁신도시 종합발전계획'은 이전 공공기관의 특성을 활용한 특화 발전 전략, 스마트시티 기술 적용, 주변 도시와의 광역적 연계 등을 강조하고 있다.
혁신도시 정책의 장기적 성공을 위해서는 단순한 물리적 개발이나 공공기관 이전을 넘어, 지역의 혁신 역량과 내생적 발전 동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이동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접근에서 벗어나, 지역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한 맞춤형 발전 전략이 중요하다.
EU의 지역정책과 결속기금
유럽연합(EU)의 지역정책은 회원국 간, 그리고 회원국 내 지역 간 발전 격차를 완화하고 경제적・사회적・영토적 결속(cohesion)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다. EU는 전체 예산의 약 1/3을 지역정책에 할당할 정도로 이를 중요시하며, 특히 결속기금(Cohesion Fund)을 통해 저발전 지역에 대한 집중적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EU 지역정책의 핵심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집중(concentration) 원칙이다. 한정된 자원을 가장 필요한 지역과 부문에 집중 투자한다. 둘째, 프로그래밍(programming) 원칙이다. 단기적 프로젝트보다는 다년도 프로그램을 통해 전략적 접근을 강조한다. 셋째, 파트너십(partnership) 원칙이다. EU, 회원국, 지역, 민간 등 다양한 수준의 이해관계자가 협력한다. 넷째, 추가성(additionality) 원칙이다. EU 기금은 국가 재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하는 것이어야 한다.
EU의 지역정책 재원은 크게 세 가지 기금으로 구성된다. 첫째, 유럽 지역개발기금(ERDF, European Regional Development Fund)은 인프라, 혁신, 기업지원 등에 투자한다. 둘째, 유럽 사회기금(ESF, European Social Fund)은 교육, 고용, 사회통합 등을 지원한다. 셋째, 결속기금(CF, Cohesion Fund)은 EU 평균 GDP의 90% 미만인 회원국을 대상으로 교통・환경 인프라 구축을 지원한다. 이 세 기금을 통틀어 '구조투자기금(ESIF, European Structural and Investment Funds)'이라 한다.
EU는 지역을 'NUTS(Nomenclature of Territorial Units for Statistics)'라는 체계로 분류하며, 지역정책은 주로 NUTS 2 수준(인구 80만~300만 명 규모)을 대상으로 한다. 지원 대상 지역은 1인당 GDP에 따라 '저발전 지역(less developed regions)', '전환 지역(transition regions)', '발전 지역(more developed regions)'으로 구분된다. 2021-2027년 기간의 결속정책 예산은 약 3,920억 유로로, 이 중 약 70%가 저발전 지역에 집중 투자된다.
EU 지역정책의 성과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장기적・안정적 재원 확보의 중요성이다. EU는 7년 단위의 다년도 재정 프레임워크를 통해 지역정책의 안정적 추진을 보장한다. 둘째, 다층적 거버넌스 체계의 효과성이다. EU-회원국-지역의 협력적 체계가 정책의 일관성과 현장 적합성을 높인다. 셋째, 성과 중심 관리의 중요성이다. EU는 엄격한 모니터링과 평가 시스템을 통해 기금 사용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제고한다. 넷째, 차별화된 접근의 필요성이다. 지역 특성과 발전 수준에 따라 다양한 지원 방식과 강도를 적용한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으로는 △장기적 관점의 국가-지역 발전계약 도입 △지역 주도・중앙 지원의 다층적 거버넌스 구축 △성과관리 체계 고도화 △지역 특성에 기반한 맞춤형 지원 확대 등이 있다. 특히 EU의 '스마트 전문화(Smart Specialization)' 전략은 지역의 강점과 잠재력에 기반한 차별화된 발전 경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지역 특화 발전 전략에 참고할 만하다.
일본의 지방창생 정책 사례
일본의 지방창생(地方創生) 정책은 심각한 인구 감소와 도쿄 일극 집중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14년부터 본격 추진된 종합적 지역발전 전략이다. 아베 정부는 '마을・사람・일자리 창생법'을 제정하고, '지방창생'을 국가적 과제로 설정했다. 이는 한국의 지방소멸 위기와 수도권 집중 문제에 대응하는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방창생 정책의 배경에는 일본의 급격한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있다. 특히 2040년까지 전체 기초자치단체의 약 절반이 '소멸 가능성'에 직면할 것이라는 마스다 보고서(2014)는 큰 충격을 주었다. 또한 도쿄 일극 집중으로 인한 지방 경제의 쇠퇴와 지역 간 불균형 심화도 중요한 배경이었다.
지방창생 정책의 핵심 내용은 크게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지방에서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이다. 지역 특성을 살린 산업 진흥, 농림수산업의 성장산업화, 관광 진흥 등을 추진한다. 둘째, 지방으로의 새로운 인구 흐름 형성이다. 청년 UIJ턴(도시에서 지방으로의 이주) 촉진, 기업의 지방 이전 지원, 관계인구(특정 지역과 관계를 맺고 지속적으로 관여하는 사람들) 확대 등이 포함된다. 셋째, 젊은 세대의 결혼・출산・육아 희망 실현이다. 일-가정 양립 지원, 보육 서비스 확충, 청년 고용 안정화 등을 추진한다. 넷째, 시대에 맞는 지역 만들기와 지역 간 연계 강화다. 콤팩트 시티 구축, 소규모 거점 형성, 광역 연계 촉진 등이 해당한다.
정책 추진 체계로는 중앙 차원의 '마을・사람・일자리 창생본부'(본부장: 총리)와 지방 차원의 '지방창생총합전략'이 구축되었다. 특히 모든 지자체가 인구 비전과 5개년 총합전략을 수립하도록 함으로써 체계적 접근을 유도했다. 재정 지원 수단으로는 '지방창생교부금'이 설치되어 지역의 자율적 사업을 지원했다.
지방창생 정책의 주요 성과로는 △일부 지역에서의 인구 유출 둔화 △지역 특성을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 △지역 간 연계・협력 증진 △지방 거버넌스 역량 강화 등이 있다. 특히 '고향납세제도'를 통한 지역 자원 확보, 빈집・유휴시설을 활용한 리노베이션 사업, 관계인구 확대를 통한 지역 활성화 등이 긍정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정책의 한계와 과제도 존재한다. 첫째, 도쿄 일극 집중 추세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 2019년까지 오히려 도쿄권 인구 유입이 증가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났다. 둘째, 지역 간 성과 격차가 크다. 역량과 자원이 풍부한 일부 지역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소규모 지자체나 낙후 지역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셋째, 단기적・하향식 접근의 한계가 있다. 인구 문제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한데, 단기적 성과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이후 원격근무 확산과 지방 이주 관심 증가를 계기로 '제2기 지방창생'이 추진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활용한 지역 활성화, 도쿄 일극 집중 시정을 위한 기업 분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실현하는 지역 만들기 등이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되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으로는 △인구 감소에 대한 선제적・장기적 대응 △지역 특성에 기반한 맞춤형 발전 전략 △관계인구 개념의 활용 △지역 주도・중앙 지원의 거버넌스 구축 △디지털 전환과 연계한 새로운 지역 발전 모델 모색 등이 있다. 특히 일본의 경험은 단순한 물리적 분산이나 재정 지원만으로는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형 균형발전의 새로운 과제
한국의 균형발전 정책은 그동안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왔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혁신도시 건설,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 등 물리적 분산 정책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수도권 집중 추세를 근본적으로 전환하지는 못했다. 이제 한국형 균형발전은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첫 번째 과제는 '지방소멸' 위기에 대한 대응이다. 2020년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05개가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이는 5년 전보다 36개 증가한 수치다. 특히 청년층의 지속적인 유출로 인한 지방의 '인구 절벽'은 지역 경제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청년 정주 환경 개선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 △지역 관계인구 확대 등의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의 지방창생 정책이나 EU의 스마트 시티 전략은 참고할 만한 사례다.
두 번째 과제는 '메가시티・메가리전' 시대의 광역협력 강화다. 글로벌 경쟁이 도시와 지역 단위로 확대되면서, 행정구역을 넘어선 경제・생활권 단위의 광역적 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부산-울산-경남의 '동남권 메가시티', 대구-경북의 '통합신공항 메가시티'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여 △초광역 협력 거버넌스 구축 △광역 인프라 확충 △규제 특례 도입 등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메트로폴(métropole) 제도나 독일의 광역연합(Regionalverband) 모델은 참고할 만하다.
세 번째 과제는 '디지털 전환'에 따른 새로운 지역발전 패러다임 구축이다. 코로나19 이후 원격근무, 온라인 교육, 디지털 헬스케어 등이 확산되면서, 물리적 거리의 제약이 완화되고 있다. 이는 지방의 입지적 불리함을 극복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디지털 인프라의 지역 간 격차 해소 △지역 특화 디지털 산업 육성 △디지털 인재의 지역 유치 등이 중요하다. 에스토니아의 'e-Residency' 제도나 미국의 'Rural Innovation Initiative'는 참고할 만한 사례다.
네 번째 과제는 '녹색 전환과 탄소중립'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으며, 이는 지역발전 전략에도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그린 뉴딜 기반 지역 경제 전환 △에너지 자립형 지역 순환경제 구축 △지속가능한 생태도시 조성 등이 주요 전략이 될 수 있다. 덴마크의 삼쇠섬(100% 재생에너지 자립)이나 독일의 프라이부르크(환경수도)는 참고할 만한 선도 사례다.
다섯 번째 과제는 '포용적 성장'을 통한 지역 내 불평등 해소다. 그동안의 균형발전 정책이 주로 지역 간 격차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지역 내 격차와 불평등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도시와 농촌, 원도심과 신도시 간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취약지역 생활 인프라 확충 △지역 내 일자리 격차 해소 △사회적 경제 활성화 등이 주요 전략이 될 수 있다. 영국의 '지역공동체 부흥(Community Renewal)' 정책이나 미국의 '기회구역(Opportunity Zones)' 프로그램은 참고할 만한 사례다.
이러한 과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균형발전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양적 분산'에서 '질적 분권'으로의 전환이다. 단순한 기관 이전이나 물리적 분산을 넘어, 실질적인 권한과 자원의 이양을 통한 지역 자율성 강화가 중요하다. 둘째, '하향식'에서 '상향식+협력형'으로의 전환이다. 중앙정부 주도의 일방적 추진에서 벗어나, 지역의 주도성과 다양한 주체 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단일 모델'에서 '맞춤형 접근'으로의 전환이다. 모든 지역에 동일한 정책을 적용하기보다, 지역 특성과 발전 단계에 맞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균형발전 정책 추진체계도 개선이 필요하다. 기존의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관련 조직은 정권 변화에 따라 잦은 변동을 겪었고, 이는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저해했다. 더욱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추진체계를 위해 △초당적 균형발전 거버넌스 구축 △중앙-지방 협력 플랫폼 강화 △국가-지역 간 발전 계약제도 도입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국가-지역 계획계약(CPER)'이나 EU의 '파트너십 협약(Partnership Agreement)'은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균형발전 재원 확보 방안도 중요한 과제다. 현재의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는 규모와 자율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균형발전 재원의 안정적 확대 △지방의 재정 자율성 강화 △성과 연계형 인센티브 제도 도입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독일의 '재정조정제도(Finanzausgleich)'나 캐나다의 '형평화 교부금(Equalization Payments)'은 참고할 만한 사례다.
새로운 균형발전 정책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대립 구도를 넘어, 상생과 협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수도권의 과밀화 문제와 비수도권의 활력 저하 문제는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지방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초광역 경제권 활성화 △수도권-지방 간 기능적 연계 강화 △지역 특화 발전 지원 등의 접근이 유용할 수 있다.
지역 특성 기반 발전 전략 설계
지역마다 보유한 자원과 역량, 문제와 기회가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인 발전 전략은 한계가 있다. 지역 특성에 기반한 맞춤형 발전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이는 각 지역이 자신만의 강점과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지속가능한 발전 경로를 모색하는 접근법이다.
지역 특성 분석의 핵심 영역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자연환경적 특성이다. 지리적 위치, 지형, 기후, 자연자원 등이 포함된다. 둘째, 사회경제적 특성이다. 인구 구조, 산업 구조, 고용 현황, 교육 수준, 소득 분포 등이 해당한다. 셋째, 역사문화적 특성이다. 역사적 배경, 문화유산, 지역 정체성, 공동체 특성 등이 포함된다. 넷째, 제도적 특성이다. 행정 체계, 거버넌스 구조, 지역 리더십, 시민사회 역량 등이 해당한다.
EU의 '스마트 전문화(Smart Specialization)' 전략은 지역 특성 기반 발전의 대표적 모델이다. 이는 각 지역이 경쟁우위가 있는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되, 혁신을 통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스마트 전문화는 △기업가적 발견 과정(entrepreneurial discovery process) △증거 기반 의사결정 △우선순위 설정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 등을 강조한다. 핀란드 북부의 '북극 스마트 전문화'나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산업 전환 전략'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지역 특성 기반 발전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경북 안동의 '한국정신문화 중심지' 전략, 전북 완주의 '로컬푸드 시스템', 제주의 '청정 환경 기반 관광'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 특성을 활용한 브랜드화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경남 하동의 '슬로시티', 강원 평창의 '동계스포츠 메카', 전남 순천의 '생태도시' 등의 사례가 있다.
성공적인 지역 특성 기반 발전 전략을 위한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철저한 지역 자산 분석이다. SWOT 분석, 입지계수(LQ) 분석, 사회네트워크 분석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지역의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둘째, 참여적 계획 과정이다. 지역 주민, 기업, 대학,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발전 전략 수립에 참여해야 한다. 셋째, 명확한 비전과 우선순위 설정이다. 모든 분야를 다 발전시킬 수 없으므로, 지역의 핵심 경쟁우위 분야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넷째, 유연하고 적응적인 접근이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전략을 지속적으로 조정하고 개선해야 한다.
지역특성화발전특구제도, 규제자유특구, 기업도시 등 한국의 특구 정책도 지역 특성을 활용한 발전 전략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종종 하향식으로 추진되거나,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보다 효과적인 지역 특성 기반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의 내생적 역량 강화 △장기적 관점의 접근 △지역 간 연계협력 촉진 △성과 평가 및 환류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는 지역 특성을 활용한 새로운 발전 기회도 확대되고 있다. 원격근무, 디지털 노마드, 온라인 교육, 디지털 헬스케어 등의 확산으로 물리적 거리의 제약이 완화되면서, 자연환경, 문화적 매력, 생활 편의성 등 지역의 새로운 강점이 부각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활용하여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지역 자산의 글로벌 연계 △로컬 콘텐츠의 디지털화와 확산 △지역 기반 디지털 창업 생태계 구축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농어촌 정책과 지역소멸 대응
농어촌 지역은 수도권 집중과 산업화의 영향으로 인구 유출, 고령화, 경제적 침체 등 복합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특히 많은 농어촌 지역이 '지방소멸'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적극적인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농어촌 정책의 패러다임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1960-70년대에는 식량 증산과 농업 생산성 향상을 중심으로 한 '농업중심적 접근'이 주를 이루었다. 1980-90년대에는 농업 구조조정과 함께 농촌 정주환경 개선을 강조하는 '농업・농촌 균형적 접근'으로 전환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가치를 중시하는 '통합적 농촌발전 접근'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방소멸 위기 대응과 농촌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혁신적 농촌정책'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지방소멸은 출산율 저하와 청년층 유출로 인한 인구의 자연적・사회적 감소가 지속되어 지역 공동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한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05개가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으며, 특히 군 지역의 경우 82개 중 67개가 소멸 고위험지역으로 나타났다.
지방소멸 대응 정책은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첫째, 인구 유입 촉진이다. 귀농・귀촌 지원, 청년 창업 지원, 관계인구 확대 등을 통해 농어촌으로의 인구 유입을 유도한다. 둘째, 정주 환경 개선이다. 주택, 교통, 교육, 의료, 문화 등 기초 생활인프라를 확충하여 '살기 좋은 농촌'을 조성한다. 셋째, 경제 활력 제고다. 농업의 고부가가치화, 6차산업화, 사회적 경제 활성화 등을 통해 지역 경제 기반을 강화한다. 넷째, 공동체 활성화다. 마을만들기, 사회적 자본 강화, 거버넌스 구축 등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회복력을 높인다.
농어촌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이다. 마을, 권역, 읍면 등 다양한 공간 단위의 종합 개발을 지원하여 농어촌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경제 활력을 제고한다. 둘째, 농촌 신활력 플러스 사업이다. 지역 특화자원을 활용한 창업, 6차산업화, 사회적 경제 등을 지원하여 농촌 경제의 활력을 높인다. 셋째, 청년 농업인 육성 정책이다. 청년 창업농 지원, 후계농업경영인 육성, 청년 농촌보금자리 조성 등을 통해 농촌의 세대 교체와 혁신을 촉진한다.
해외의 성공적인 농촌 발전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작은 거점' 정책은 인구 감소 지역에서 중심지와 주변 마을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기초 서비스를 유지하는 전략이다. 프랑스의 '농촌 탁월성 거점(PER)' 정책은 농촌 지역의 혁신 프로젝트를 선정하여 집중 지원함으로써 지역 경쟁력을 높인다. 영국의 'LEADER 프로그램'은 상향식 접근, 지역 파트너십, 혁신을 강조하는 농촌 발전 모델이다.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새로운 접근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모색되고 있다. 첫째, 스마트 빌리지 구축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농촌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경제 기회를 창출한다. 둘째, 농촌형 생활 SOC 확충이다. 작은 학교, 작은 영화관, 이동식 의료・금융 서비스 등 농촌 특성에 맞는 공공서비스 모델을 개발한다. 셋째, 다양한 보조금 제도 혁신이다. 일본의 '지방창생 교부금'이나 유럽의 '기본소득 실험' 등을 참고하여, 지역 맞춤형 재정 지원 방식을 모색한다. 넷째, 관계인구 활성화다. 완전한 이주가 아니더라도 농촌과 지속적 관계를 맺는 도시민(2지역 거주자, 주말 농장 이용자, 고향 납세자 등)을 확대하여 농촌의 사회적・경제적 활력을 높인다.
지방소멸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단일 부처나 단일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범정부적 협력과 다양한 정책의 연계가 중요하다. 또한 농어촌 지역의 다양성을 고려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 수도권 인접 농촌, 도농복합지역 농촌, 원격 농촌 등 지역 특성에 따라 차별화된 전략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과 공동체가 주도하는 상향식 접근이 강화되어야 한다. 외부의 일방적 지원보다는 지역의 내생적 발전 역량을 키우는 것이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결론
지역개발과 균형발전 정책은 단순한 물리적 개발이나 자원 배분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사회통합의 핵심 과제다. 한국은 그동안 다양한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수도권 집중 심화와 지역 간 격차 확대라는 도전에 여전히 직면해 있다.
이러한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휴먼웨어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물리적 인프라 구축뿐 아니라 혁신 역량, 사회 자본, 거버넌스 구축 등 무형적 자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정부 주도에서 다주체 협력으로의 전환이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기업, 대학,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협력적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셋째, 단기적 성과에서 장기적 지속가능성으로의 전환이다. 정권 교체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는 장기적 비전과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균형발전을 위한 분권화와 자율성 강화도 중요하다. 지방이 자신의 발전 경로를 스스로 설계하고 추진할 수 있는 권한과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분권 강화 △지방재정 자율성 제고 △지역 특성에 기반한 규제혁신 등이 필요하다. 특히 균형발전 정책이 중앙정부의 시혜적 관점에서 벗어나, 지역의 주체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미래의 지역개발은 글로벌 메가트렌드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대응, 인구구조 변화,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등의 변화는 지역발전에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원격근무, 분산 거주, 생활 중심 경제 등의 확산은 지역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선제적으로 포착하고 대응하는 미래지향적 균형발전 전략이 요구된다.
균형발전은 단순한 경제적 성장을 넘어, 삶의 질과 사회적 포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어디서나 살기 좋은 국토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이를 위해 △지역 특성을 살린 발전 전략 △주민 체감형 생활SOC 확충 △커뮤니티 기반 사회적 경제 활성화 △지역 정체성과 문화적 다양성 증진 등의 접근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균형발전은 수도권과 지방의 대립이 아닌 상생과 협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수도권의 과밀화 문제와 지방의 활력 저하 문제는 동전의 양면이며, 두 지역 모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상호 협력과 기능적 연계가 필요하다. '장소 기반 정책(place-based policy)'과 '사람 기반 정책(people-based policy)'의 조화를 통해, 국토 공간의 균형 있는 발전과 국민 모두의 풍요로운 삶을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Public Administra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방행정론 11. 지방공기업과 공공서비스 혁신의 새로운 패러다임 (0) | 2025.05.08 |
---|---|
지방행정론 10. 메가시티와 광역행정 협력 (0) | 2025.05.08 |
지방행정론 8. 정책과정: 지방의회와 정책결정의 메커니즘 (0) | 2025.05.08 |
지방행정론 7. 주민참여와 거버넌스 (0) | 2025.05.08 |
지방행정론 6. 재정관리 2: 예산·성과관리 - 효율적 지방재정 운용 메커니즘 (0) | 2025.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