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Welfare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3. 생물학적·유전적 관점 - Gesell의 성숙이론부터 현대 행동유전학까지

SSSCHS 2025. 5. 13. 00:03
반응형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부모를 닮은 자녀를 보며 하는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가 너무 달라서 놀라기도 한다. 인간의 행동과 발달에서 타고난 것과 길러진 것은 어떻게 상호작용할까? 생물학적·유전적 관점은 이 오래된 질문에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아놀드 게젤과 성숙 이론

20세기 초 아놀드 게젤(Arnold Gesell)은 수천 명의 아동을 체계적으로 관찰하며 발달의 규칙성을 발견했다. 그는 아이들이 앉기, 기기, 서기, 걷기를 거의 같은 순서로 하며, 각 단계가 나타나는 시기도 비슷하다는 것을 밝혔다.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성숙 이론을 제시했다.

게젤의 핵심 주장은 발달이 내적 시간표에 따라 자연스럽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마치 꽃봉오리가 때가 되면 피어나듯, 아동의 능력도 생물학적 성숙에 따라 나타난다. 그는 쌍둥이 연구를 통해 이를 증명하려 했다. 한 쌍둥이에게는 계단 오르기 훈련을 시키고, 다른 쌍둥이는 그냥 두었는데, 결국 두 아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계단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게젤의 발달 규준은 오늘날까지도 소아과에서 사용된다. 아이가 몇 개월에 목을 가누고, 언제 첫 이를 내는지 등의 기준이 그의 연구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환경의 역할을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극단적인 환경 박탈은 분명히 발달을 지연시킨다. 루마니아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비정형 발달의 이해

모든 아이가 같은 속도로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는 또래보다 빠르고, 어떤 아이는 느리다. 더 중요한 것은 일부 아이들이 질적으로 다른 발달 경로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를 비정형 발달이라 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대표적인 비정형 발달이다. 이들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서 독특한 패턴을 보인다. 눈맞춤을 피하고, 언어 발달이 지연되며, 반복적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 음악, 수학, 기억력 등에서 놀라운 재능을 가진 서번트 증후군이 그 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도 흔한 비정형 발달이다. 이 아이들은 주의집중이 어렵고, 충동적이며, 과잉행동을 보인다. 뇌영상 연구는 ADHD 아동의 전두엽 발달이 일반 아동과 다름을 보여준다. 특히 실행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의 성숙이 늦다.

비정형 발달의 원인은 복잡하다. 유전적 요인이 크지만, 환경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임신 중 약물 노출, 조산, 저체중 출생 등이 위험요인이 된다. 중요한 것은 비정형 발달을 단순히 '결함'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한다.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개념은 이런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움직임이다.

행동유전학의 혁명

1950년대 DNA 구조가 밝혀지면서 유전학은 혁명적 발전을 이뤘다. 행동유전학은 이런 지식을 인간 행동 연구에 적용한다. 쌍둥이 연구, 입양 연구, 가계 연구 등을 통해 행동의 유전적 기초를 탐구한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를 100% 공유하고, 이란성 쌍둥이는 50%를 공유한다. 만약 어떤 특성이 유전적이라면,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보다 더 비슷할 것이다. 이런 연구들은 지능, 성격, 정신장애 등 많은 특성에 유전적 영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행동유전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역설적이게도 환경의 중요성이다. 대부분의 행동 특성은 유전율이 30-60% 정도다. 즉, 환경이 40-70%를 설명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비공유 환경'의 역할이다. 같은 가정에서 자란 형제도 다른 이유는 각자가 경험하는 고유한 환경 때문이다. 부모의 차별적 대우, 또래 관계, 우연한 사건 등이 개인차를 만든다.

신경생물학적 기초

뇌과학의 발전은 행동의 생물학적 기초를 더 깊이 이해하게 했다. fMRI, PET 같은 뇌영상 기술로 살아있는 뇌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사고, 정서, 행동이 일어날 때 뇌의 어떤 영역이 활성화되는지 알 수 있다.

뇌는 출생 시 완성되지 않는다. 시냅스 형성과 가지치기(pruning)를 통해 계속 변화한다. 특히 전두엽은 20대 중반까지 발달한다. 이는 청소년기의 충동성과 위험 감수 행동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두엽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정서를 담당하는 변연계는 이미 활발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신경전달물질도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파민은 보상과 동기부여에 관여하고, 세로토닌은 기분 조절에 중요하다. ADHD는 도파민 시스템의 이상과 관련되고, 우울증은 세로토닌 부족과 연관된다. 이런 지식은 약물 치료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뇌와 행동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경험이 뇌를 변화시킨다. 런던 택시 운전사들의 해마(공간 기억 담당)가 일반인보다 크다는 연구가 유명하다. 명상, 운동, 학습 등도 뇌 구조와 기능을 바꾼다. 이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의 증거다.

유전-환경 상호작용

현대 발달과학은 유전 대 환경의 이분법을 넘어섰다. 중요한 것은 이 둘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다. 유전자는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고, 환경은 유전적 성향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킨다.

유전자-환경 상관(gene-environment correlation)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음악적 재능이 있는 부모는 음악적 유전자를 물려줄 뿐 아니라, 음악이 풍부한 환경도 제공한다. 활동적인 아이는 스포츠에 참여할 기회를 더 많이 찾는다. 즉, 유전적 성향이 특정 환경을 선택하게 만든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은 더 놀라운 발견을 제공한다. 환경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영양, 독소 노출 등이 유전자를 '켜거나 끌'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변화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후손들이 스트레스에 더 민감한 것이 그 예다.

민감성 차이 가설도 주목할 만하다. 어떤 아이들은 환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들은 나쁜 환경에서는 더 큰 어려움을 겪지만, 좋은 환경에서는 더 잘 번창한다. '난초 아이'와 '민들레 아이'라는 비유가 이를 잘 설명한다.

진화발달심리학의 통찰

진화론적 관점은 인간 행동의 궁극적 원인을 탐구한다. 왜 아기들은 뱀이나 거미를 무서워할까? 왜 청소년들은 위험을 감수할까? 진화발달심리학은 이런 행동들이 진화 과정에서 적응적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애착 행동은 진화적 관점에서 잘 이해된다. 포유류 새끼가 양육자 곁에 머무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인간 아기의 귀여운 외모(큰 눈, 통통한 볼)는 성인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낯가림도 적응적 기능이 있다. 이동이 가능해진 시기에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위험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진화적 설명을 너무 단순화하면 안 된다. 현대 환경은 진화적 적응이 일어난 환경과 매우 다르다. 단 것을 좋아하는 성향은 과거엔 적응적이었지만, 설탕이 넘치는 현대엔 비만의 원인이 된다. 이를 '진화적 불일치'라 한다.

결론

생물학적·유전적 관점은 인간 행동의 생물학적 토대를 밝혀준다. 게젤의 성숙 이론에서 시작해 현대 행동유전학과 신경과학까지, 우리는 타고난 요인의 중요성을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교훈은 결정론을 피하는 것이다. 유전자는 운명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뇌는 평생 변화할 수 있고, 환경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 비정형 발달도 다양성의 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

실천적 함의도 크다. 조기 개입이 중요한 이유는 뇌의 가소성이 어릴 때 가장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변화는 가능하다.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을 이해하면 더 효과적인 교육과 치료가 가능하다. ADHD 아동에게는 구조화된 환경이 도움이 되고, 민감한 아이에게는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생물학적 관점은 겸손을 가르쳐준다. 부모나 교사의 영향력은 분명 있지만, 한계도 있다. 아이들은 각자의 생물학적 특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를 존중하면서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