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함께 봐야 한다. 마치 물고기를 이해하려면 물의 성질과 그 생태계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행동과 사회환경(HBSE: Human Behavior and Social Environment)이라는 학문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출발한다.
사회과학 연구 패러다임의 이해
사회과학에서 인간을 연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패러다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실증주의적 패러다임인데, 이는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사회현상에 적용하려는 시도다. 숫자로 측정할 수 있고, 변수들 간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히려는 접근이다. 예를 들어 '빈곤이 아동의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해석주의적 패러다임으로, 인간의 주관적 경험과 의미를 중시한다. 같은 빈곤 상황에서도 어떤 아이는 좌절하고, 어떤 아이는 오히려 강한 동기를 갖는다. 이런 개인차와 맥락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접근이다. 면접이나 참여관찰 같은 질적 연구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현대 HBSE는 이 두 패러다임을 통합적으로 활용한다. 넓은 시각에서 패턴을 파악하되, 개인의 독특한 경험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론 검증 대 이론 구축
연구를 할 때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연역적 접근은 기존 이론에서 가설을 도출하고 이를 검증하는 방식이다. "애착이론에 따르면 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동이 또래관계가 좋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수집해 확인하는 식이다.
귀납적 접근은 현장의 관찰과 데이터에서 출발해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이민자 가족을 깊이 연구하다 보니 기존 서구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독특한 적응 패턴을 발견하고, 이를 설명하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다.
HBSE 분야에서는 두 접근을 순환적으로 활용한다. 이론으로 현실을 설명하고, 현실에서 이론을 수정·보완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HBSE의 학문적 위치
인간행동과 사회환경은 학제간 융합학문이다.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생물학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을 통합해 인간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심리학에서는 개인의 인지, 정서, 행동 패턴을 배운다. 사회학은 집단과 사회구조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인류학은 문화적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생물학은 유전과 뇌과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특히 사회복지학에서 HBSE는 핵심 기초과목이다. 클라이언트를 돕기 위해서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해야 하고, 그 행동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를 도우려면 아동발달 이론을 알아야 하고, 가족체계와 지역사회 자원을 파악해야 한다.
발달 관점의 중요성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변화한다. 발달 관점은 이런 변화의 과정과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단순히 아동기에서 성인기로의 성장만이 아니라, 노년기까지 이어지는 전 생애 발달을 다룬다.
발달은 단선적이지 않다. 신체적 성장, 인지적 발달, 정서적 성숙, 사회적 관계 형성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복잡하게 진행된다. 또한 같은 나이라도 개인차가 크고, 문화적 배경에 따라 발달 양상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청소년기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보자. 서구 사회에서는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지만,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가족과 공동체와의 연결성 속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이론만 적용하면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생태 관점의 필요성
생태 관점은 인간을 환경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본다. 브론펜브레너의 생태체계이론은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개인을 둘러싼 미시체계(가족, 학교), 중간체계(이들 간의 연결), 외체계(부모의 직장 등), 거시체계(문화, 제도) 등이 동심원처럼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생태 관점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바이러스라는 생물학적 요인이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가족관계, 교육시스템, 경제구조, 문화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아이들의 발달에도 큰 변화가 생겼는데, 사회적 고립은 언어발달을 지연시켰고, 온라인 수업은 계층 간 교육격차를 벌렸다.
생태 관점은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학교부적응 아동이 있다면, 그 아이의 기질이나 능력만 볼 게 아니라 가정환경, 또래관계, 학교문화, 교육제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해결책도 다층적으로 접근한다.
결론
인간행동과 사회환경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실증주의와 해석주의, 이론 검증과 구축, 여러 학문의 통합, 발달과 생태 관점 등 다양한 렌즈를 통해 인간의 복잡성을 포착하려 한다.
이런 통합적 접근이 왜 필요할까? 현실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청소년 비행, 노인 고독사 등 사회문제는 개인, 가족, 지역사회, 정책이 얽혀있다. HBSE는 이런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고 개입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앞으로 우리는 발달이론부터 생태체계이론까지, 개인의 내면에서 사회구조까지 다양한 차원을 탐구하게 된다. 이 여정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깊이와 환경과의 역동적 관계를 이해하는 눈을 기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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