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Welfare

사회문제론 7. 페미니스트와 젠더 관점: 성 불평등의 사회적 구성과 이론적 접근

SSSCHS 2025. 5. 1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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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불평등의 사회문제화 과정

젠더 불평등이 사회문제로 인식되는 과정은 역사적으로 긴 투쟁의 결과다. 오랫동안 여성의 종속적 지위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가부장제는 당연한 사회질서로 여겨졌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 이후 평등과 인권에 대한 의식이 성장하면서, 여성의 권리 문제가 공론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1792)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적 존재임을 주장하며 교육권을 요구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참정권 운동은 여성 문제를 정치적 의제로 전환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서프러제트 운동은 단순히 투표권을 얻는 것을 넘어 여성을 완전한 시민으로 인정받게 하는 투쟁이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집회, 시위, 단식투쟁 등 다양한 저항 방식을 동원했고, 때로는 과격한 행동도 불사했다. 이들의 노력은 결국 많은 국가에서 여성 참정권을 획득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제2물결 페미니즘은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선언했다.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1963)는 중산층 주부들의 불만족과 좌절을 사회문제로 제기했다. 가정 내 성별 분업, 임금 격차, 유리천장 같은 구조적 차별이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의식 고양 집단(consciousness-raising groups)은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성차별의 구조적 성격을 인식하는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평등한 기회의 추구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가장 오래되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진 페미니즘 이론이다. 존 스튜어트 밀과 해리엇 테일러 밀의 사상에 뿌리를 둔 이 접근법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적 존재이며, 따라서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법적 평등, 교육 기회의 균등, 고용에서의 차별 철폐를 주요 목표로 삼는다.

베티 프리단으로 대표되는 현대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전미여성기구(NOW)를 창설하여 제도적 개혁을 추진했다. 이들은 평등권 수정안(ERA) 통과, 직장 내 성차별 금지법 제정, 재생산권 보장 등을 위해 노력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핵심은 기존 체제 내에서의 개혁을 통해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나 가부장제 자체를 전복시키려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참여자가 되기를 추구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성과는 많은 국가에서 법적, 제도적 평등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교육 기회의 확대, 직업 선택의 자유, 정치 참여의 증가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이룬 중요한 성취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형식적 평등에 치중한 나머지 실질적 평등을 간과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중산층 백인 여성의 경험을 보편화하여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의 교차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급진주의 페미니즘: 가부장제의 해체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1960년대 후반 등장하여 성 억압의 뿌리를 가부장제 자체에서 찾는다. 케이트 밀렛의 『성 정치학』(1970)은 가부장제를 모든 권력 체계의 원형으로 분석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억압이 계급이나 인종 억압보다 더 근본적이고 보편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가부장제는 단순한 사회제도가 아니라 모든 사회관계를 관통하는 지배 체계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1970)에서 생물학적 재생산이 여성 억압의 물질적 기초라고 분석했다. 그녀는 인공 생식 기술의 발달이 여성을 생물학적 운명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안드레아 드워킨과 캐서린 맥키넌은 포르노그래피와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폭력의 제도화로 규정하고 법적 규제를 주장했다. 이들의 활동은 성폭력과 가정폭력을 사적 문제가 아닌 공적 의제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의식 고양, 여성만의 공간 창출, 대안적 생활양식 실험 등을 통해 가부장제 문화에 도전했다. 여성 건강 운동, 반성폭력 운동,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실천적 성과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젠더 본질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고, 여성 내부의 차이를 간과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개인적 해방에 치중하여 구조적 변혁을 위한 정치 전략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맑스주의 페미니즘: 계급과 젠더의 교차

맑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을 자본주의 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분석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 사적소유, 국가의 기원』(1884)은 가부장제가 사적 소유의 등장과 함께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종속은 재산 상속을 위한 부계 혈통의 확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맑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가 가정 내 여성의 무급 노동을 착취하여 이윤을 극대화한다고 분석한다.

질라 아이젠스타인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라는 이중 체계로 개념화했다. 여성은 임금 노동자로서 계급 착취를 당하는 동시에 가정에서는 재생산 노동을 무급으로 수행하며 이중의 억압을 받는다. 하이디 하트만은 "불행한 결혼"이라는 비유를 통해 맑스주의와 페미니즘의 긴장 관계를 설명했다. 전통적 맑스주의가 젠더 문제를 계급 문제에 종속시키는 경향이 있다면,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의 독자적 작동을 강조한다.

실비아 왈비는 가부장제를 여섯 가지 구조로 분석했다: 가정 내 생산양식, 유급 노동, 국가, 남성 폭력, 섹슈얼리티, 문화. 이러한 구조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 변화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부장제는 사적 형태에서 공적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 여성들이 공적 영역에 진출했지만 여전히 성별 분리와 차별을 경험하는 것이 그 예다.

교차성 페미니즘: 다층적 억압의 인식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은 킴벌리 크렌쇼가 1989년 처음 제시했지만, 그 문제의식은 흑인 페미니즘 운동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소저너 트루스의 "나는 여자가 아닌가?"(1851) 연설은 백인 중산층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이 흑인 여성의 경험을 배제했음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컴바히 리버 콜렉티브 성명서(1977)는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가 동시에 작동하는 억압 체계를 분석했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에서 페미니즘이 모든 형태의 지배와 억압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백인 페미니즘의 인종 맹목성과 흑인 민족주의의 성차별주의를 동시에 비판하며, 해방의 정치는 교차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지배의 매트릭스" 개념을 통해 억압이 상호 연결된 체계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교차성 관점은 정체성 정치를 넘어 구조적 불평등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분석 도구가 되었다. 이주 여성, 장애 여성, 성소수자 여성의 경험은 단일한 범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다층적 현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주 가사노동자는 젠더, 인종, 계급, 국적의 교차점에서 착취와 차별을 경험한다. 교차성은 보편적 여성 주체를 가정하는 대신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현대 한국의 젠더 이슈

한국 사회의 젠더 문제는 급속한 근대화와 전통적 가부장제의 충돌 속에서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유교적 가부장제의 잔재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동시에 여성의 교육 수준과 경제활동 참여는 급속히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와 지속의 긴장은 다양한 젠더 갈등을 낳고 있다.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함께 성장했다. 여성단체들은 호주제 폐지, 성폭력 특별법 제정, 정치적 대표성 확대 등 제도적 개혁을 이끌어냈다. 2000년대 들어 온라인 페미니즘이 활성화되면서 일상적 성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확산되었다. 2015년 메갈리아의 등장과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은 젠더 이슈를 한국 사회의 중심 의제로 부상시켰다.

미투 운동은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화예술계, 정치계, 학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성폭력과 성희롱 고발이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권력관계에 기반한 구조적 문제임을 드러냈다. 동시에 백래시도 거셌다. 일부 남성들은 역차별을 주장하며 안티페미니즘 정서를 표출했고, 온라인 공간에서 젠더 갈등이 극단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디지털 시대의 젠더 정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젠더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을 동시에 제시한다. 소셜미디어는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플랫폼이 되었다. 해시태그 운동(#MeToo, #WithYou)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 연대를 가능하게 했다. 온라인 페미니즘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젠더 의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디지털 공간은 새로운 형태의 젠더 폭력이 발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온라인 성희롱, 디지털 성범죄, 딥페이크 포르노 등은 기술 발전이 가져온 어두운 측면이다. 게이머게이트 사건은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혐오가 조직화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알고리즘의 편향성은 기존의 젠더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재생산할 위험이 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의 발전은 젠더화된 노동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돌봄 노동과 감정 노동 분야는 자동화가 어려워 여성 고용이 유지될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직종의 가치 평가와 보상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기술 분야의 젠더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미래 사회의 젠더 평등을 위해 중요한 과제다.

결론

페미니즘과 젠더 관점은 사회문제를 이해하는 필수적인 렌즈를 제공한다. 자유주의, 급진주의, 맑스주의, 교차성 페미니즘은 각각 다른 각도에서 젠더 불평등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러한 다양한 이론적 접근은 젠더 문제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 젠더 평등은 형식적으로는 많이 달성되었지만, 실질적 평등은 여전히 요원하다. 유리천장, 임금 격차, 돌봄 노동의 불평등한 분담, 젠더 기반 폭력은 지속되고 있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적 개인화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선택과 능력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다.

젠더 정의를 향한 길은 단선적이지 않다. 백래시와 진전이 교차하며,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계속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젠더 문제를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과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다양한 정체성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더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여성의 지위 향상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차별이 없는 사회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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