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Welfare

사회복지법제와 실천 2. 헌법과 사회적 기본권 - 인간다운 생활의 헌법적 보장

SSSCHS 2025. 5. 1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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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본권의 등장과 헌법적 의의

현대 복지국가의 헌법은 전통적인 자유권적 기본권을 넘어 사회적 기본권을 명문으로 보장한다. 19세기 자유주의 헌법이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중시했다면, 20세기 이후 헌법은 국가에 의한 자유, 즉 적극적인 국가의 급부와 보호를 통해 실질적 자유를 실현하고자 한다.

한국 헌법도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반영하여 다양한 사회적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헌법 제34조는 한국 사회복지의 헌법적 토대를 이루는 핵심 조항으로, 인간다운 생활권, 사회보장수급권, 여성·노인·청소년·장애인 등에 대한 특별보호를 명시한다.

사회적 기본권은 단순한 프로그램 규정이 아니라 구체적 권리성을 갖는다. 헌법재판소는 초기에는 사회적 기본권의 구체적 권리성을 부인했으나, 점차 그 규범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판례를 발전시켜 왔다. 오늘날 사회적 기본권은 최소한의 보장 수준에서는 구체적 권리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된다.

헌법 제10조 - 인간의 존엄과 가치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이는 모든 기본권의 이념적 기초이자 헌법의 최고 가치다.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인간의 존엄은 단순히 생물학적 생존을 넘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의 보장을 의미한다.

헌법재판소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인간의 본질이며 고유한 가치"이고, "국가는 헌법에 규정된 개별적 기본권을 비롯하여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자유와 권리까지도 이를 보장하여야 하며, 이를 통해 개별 국민이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확보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인간 존엄의 개념은 사회복지급여의 수준과 방식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공적부조 급여가 단순히 생존만을 유지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지 않는다. 문화생활, 사회참여, 자아실현의 기회까지 고려한 급여 수준이 요구되는 이유다.

헌법 제34조 - 인간다운 생활권과 사회보장수급권

제34조 제1항 -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이는 한국 사회복지의 가장 직접적인 헌법적 근거다. 인간다운 생활권은 최소한의 물질적 기초 위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되는 생활을 국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헌법재판소는 인간다운 생활권의 내용을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물질적인 생활의 유지"로 파악한다. 여기서 최소한이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그 사회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발전 정도에 상응하는 생활"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다운 생활의 구체적 내용은 시대와 사회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 개념이다.

제34조 제2항 -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 의무

제34조 제2항은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이는 국가에게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고 운영할 헌법적 의무를 부과한다. 다만 '노력할 의무'라는 표현 때문에 국가의 재량 여지가 크다고 해석될 수 있으나, 헌법재판소는 이를 단순한 노력의무가 아닌 구체적 작위의무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 의무는 기존 제도를 유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확대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존 사회복지급여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입법은 특별한 정당화 사유가 없는 한 이 조항에 위반될 수 있다.

제34조 제3항부터 제5항 - 특별 보호 대상

헌법 제34조는 제3항부터 제5항까지 여성, 노인, 청소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 보호를 규정한다. 제3항은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제4항은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고, 제5항은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규정들은 형식적 평등을 넘어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헌법적 근거가 된다. 특히 제5항은 다른 조항들과 달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하여 보다 구체적인 권리성을 인정받는다. 헌법재판소도 장애인 등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에 대해서는 국가의 보호의무가 더욱 강화된다고 해석한다.

헌법재판소 사회권 판례의 흐름

초기 판례 - 프로그램 규정설

헌법재판소 초기 판례는 사회적 기본권을 프로그램 규정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1994년 생계보호기준 위헌확인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그 자체가 주관적 권리로서 개인에게 국가에 대하여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 시기 헌법재판소는 사회적 기본권이 "입법을 통하여 구체화될 때 비로소 구체적 권리로 형성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즉, 헌법 제34조만으로는 직접 국가에 급부를 청구할 수 없고, 구체적인 법률이 제정되어야 비로소 권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전환기 판례 - 최소보장의 원칙

2000년대 들어 헌법재판소는 사회적 기본권의 규범력을 점차 인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차등지급 사건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헌법에 위반된다"는 최소보장의 원칙을 확립했다.

이 판결은 입법자의 형성 재량을 인정하면서도, 그 재량이 무제한이 아니며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생활은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는 한계를 설정했다. 이로써 사회적 기본권도 최소한의 범위에서는 구체적 권리성을 갖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최근 판례 - 적극적 평등 실현

최근 헌법재판소는 단순한 최소보장을 넘어 적극적인 평등 실현을 강조하는 판례들을 내놓고 있다. 2019년 장애인활동지원법 65세 연령제한 사건에서는 "장애인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장애인이 장애 때문에 겪는 사회적 제약과 불이익을 제거함으로써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2020년 아동수당법 사건에서는 "아동은 특별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므로, 국가는 아동이 안전하고 행복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시행할 의무가 있다"고 하여 국가의 적극적 보호의무를 강조했다.

사회권 판례의 주요 심사 기준

입법형성권의 존중

헌법재판소는 사회적 기본권 실현에 있어 입법자의 형성권을 폭넓게 인정한다. 사회복지제도의 구체적 내용, 급여 수준, 수급 요건 등은 일차적으로 입법자가 결정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회복지정책이 국가의 재정 능력과 전체적인 사회정책적 고려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입법형성권이 무제한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입법자는 헌법상 보장된 인간다운 생활권을 실현하기 위하여 객관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하여, 최소보장의 원칙이라는 하한선을 설정했다.

자의금지원칙과 비례원칙

사회복지급여의 차등이나 제한에 대해서는 평등권 심사가 이루어진다. 헌법재판소는 일반적으로 자의금지원칙에 따라 완화된 심사를 하지만,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거나 차별적 취급으로 인한 불이익이 중대한 경우에는 비례원칙에 따른 엄격한 심사를 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불리한 대우는 엄격한 심사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2007년 장애등급제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장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조건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라며 실질적 평등의 관점에서 판단했다.

신뢰보호원칙

기존 사회복지급여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경우 신뢰보호원칙이 문제된다. 수급자들은 기존 급여가 계속될 것이라는 신뢰를 갖고 생활을 영위하므로, 이러한 신뢰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사회보험급여의 경우 재산권적 성격을 인정하여 강한 신뢰보호를 부여하는 반면, 공적부조급여는 상대적으로 약한 보호를 받는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적부조급여도 수급자의 생존과 직결되는 경우 신뢰보호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경향이다.

국가의 보호의무와 사회권

헌법 제10조 후문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이는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를 명시한 것으로, 사회적 기본권 영역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가의 보호의무는 단순히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소극적 의무를 넘어, 기본권 실현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할 의무를 포함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경우 국가의 적극적 보호 없이는 헌법상 권리를 실현할 수 없으므로, 보호의무는 더욱 강화된다.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침해를 방어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민이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결론

헌법상 사회적 기본권은 한국 사회복지법제의 근간을 이룬다.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권과 사회보장수급권은 모든 사회복지입법의 헌법적 토대가 된다.

헌법재판소는 초기의 프로그램 규정설에서 벗어나 사회적 기본권의 구체적 권리성을 점차 인정하는 방향으로 판례를 발전시켜 왔다. 특히 최소보장의 원칙을 확립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실질적 평등 실현을 강조하면서 사회권의 규범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적 기초는 개별 사회복지법의 해석과 적용에 중요한 지침이 된다. 모든 사회복지제도는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야 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보호가 요구된다. 앞으로도 헌법재판소의 사회권 판례는 한국 사회복지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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