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Welfare

사회복지법제와 실천 3. 공적부조 영역 -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최저생활의 보장

SSSCHS 2025. 5. 1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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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발전과 의의

한국의 공적부조제도는 1961년 생활보호법 제정으로 시작되어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전면 개편되었다. 이는 단순한 법명 변경이 아니라 복지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했다. 생활보호법이 시혜적 보호에 머물렀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국민의 권리로서 최저생활을 보장한다.

외환위기 이후 절대빈곤층이 급증하면서 기존 생활보호제도의 한계가 드러났다. 근로능력자를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인구학적 기준에 따라 선별적으로 보호하던 방식으로는 신빈곤 문제에 대응할 수 없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소득인정액 기준을 도입하고, 근로능력 유무와 관계없이 최저생활 이하의 모든 국민을 보호 대상으로 확대했다.

오늘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한국 사회안전망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한다. 다른 사회보장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빈곤층에게 최종적인 생활보장을 제공함으로써 헌법상 인간다운 생활권을 실현하는 핵심 제도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급여 체계

맞춤형 급여체계 도입

2015년 이전까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통합급여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최저생계비라는 단일 기준선을 설정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가구에게 모든 급여를 일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는 탈수급 유인을 저해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5년 7월부터 시행된 맞춤형 급여체계는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를 분리하여 각각 다른 선정기준을 적용한다.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생계급여는 30%,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는 45%, 교육급여는 50% 이하 가구에게 지급된다. 이를 통해 소득이 증가하더라도 필요한 급여는 계속 받을 수 있어 근로유인이 제고되었다.

생계급여

생계급여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핵심 급여로, 수급자의 최저생활을 직접적으로 보장한다. 가구의 소득인정액과 생계급여 선정기준액의 차액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보충급여 방식을 채택한다. 예를 들어 4인 가구의 생계급여 선정기준액이 162만원이고 해당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50만원이라면, 그 차액인 112만원을 생계급여로 지급한다.

생계급여액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가구 특성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장애인이나 노인이 있는 가구, 한부모가족 등은 추가적인 생활비가 소요되므로 가구균등화지수를 달리 적용하거나 부가급여를 제공한다. 이는 형식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의료급여

의료급여는 저소득층의 의료보장을 위해 의료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1종과 2종으로 구분되며, 1종 수급자는 근로무능력자로 구성된 가구, 2종은 근로능력자가 있는 가구가 해당된다. 1종은 모든 의료비가 무료이며, 2종은 일부 본인부담금을 납부한다.

의료급여는 현물급여 방식으로 제공되며, 수급자는 의료급여기관에서 진료를 받을 때 의료급여증을 제시하면 된다. 다만 과도한 의료이용을 방지하기 위해 선택의료급여기관제도, 급여일수 제한 등의 관리 장치를 두고 있다.

주거급여

주거급여는 임차가구에게는 임차료를, 자가가구에게는 주택 수선비를 지원한다. 지역별 기준임대료를 설정하고 실제 임차료와 비교하여 낮은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서울의 경우 1급지로 분류되어 가장 높은 기준임대료가 적용되며, 농어촌 지역은 4급지로 상대적으로 낮은 기준이 적용된다.

자가가구에 대한 수선비 지원은 주택 노후도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경보수는 3년 주기로 457만원, 중보수는 5년 주기로 849만원, 대보수는 7년 주기로 1,241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한다. 이는 주거권 보장이 단순한 거처 제공을 넘어 적절한 주거환경 유지까지 포함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교육급여

교육급여는 초·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수급가구에 교육비를 지원한다. 부교재비, 학용품비, 교과서대, 입학금 및 수업료 등을 지원하며, 최근에는 교육활동지원비로 통합하여 지급한다. 2021년부터는 현금 지급 방식에서 바우처 방식으로 전환되어 실제 교육 목적에 사용되도록 관리하고 있다.

교육급여는 의무교육 대상인 초·중학생뿐만 아니라 고등학생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오늘날 고등학교 교육이 보편화되어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고등학생에 대한 교육급여는 교육기회의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수급자 선정 기준과 요건

소득인정액 기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 선정에서 핵심은 소득인정액이다. 소득인정액은 실제소득뿐만 아니라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월소득만으로는 실질적인 생활수준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도입되었다.

소득인정액 = 소득평가액 + 재산의 소득환산액

소득평가액은 실제소득에서 가구특성별 지출요인과 근로소득공제를 차감하여 산정한다. 특히 근로소득의 30%를 공제하는 것은 근로유인을 제고하기 위한 장치다. 재산의 소득환산액은 재산가액에서 기본재산액과 부채를 제외한 후 소득환산율을 곱하여 계산한다.

부양의무자 기준

부양의무자 기준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논란이 많은 요소다. 수급신청자의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의 소득·재산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수급자격이 제한된다. 이는 가족 간 부양을 우선시하는 전통적 가족주의와 공적부조의 보충성 원칙에 기초한다.

그러나 실제 부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도 수급자격이 제한되어 복지 사각지대를 양산한다는 비판이 지속되었다. 이에 정부는 단계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여, 2021년부터는 생계급여에서 노인·한부모가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2022년부터는 모든 생계급여 신청자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다.

다만 의료급여는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완전한 폐지까지는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근로능력 판정

근로능력 유무는 조건부수급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18세 이상 64세 이하의 수급자는 원칙적으로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질병·부상, 장애 정도, 임신·출산, 가구 여건 등을 고려하여 근로능력을 평가한다.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조건부수급자로 분류되어 자활사업 참여 등의 조건을 이행해야 한다. 조건 불이행 시에는 생계급여가 중지될 수 있다. 이는 근로연계복지(workfare) 이념을 반영한 것으로, 단순한 현금 지급을 넘어 자립을 지원하고자 하는 취지다.

재산·소득 기준의 쟁점

기본재산액의 적정성

기본재산액은 생활유지에 필요한 기본적인 재산으로, 재산의 소득환산에서 제외된다. 2024년 기준 대도시 6,900만원, 중소도시 4,200만원, 농어촌 3,500만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지역별 생활비와 주거비 차이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기본재산액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기본적인 주거용 부동산 가격이 기본재산액을 훨씬 초과하여, 실질적으로 빈곤함에도 수급자격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재산의 소득환산율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할 때 적용되는 환산율도 중요한 쟁점이다. 주거용재산은 월 1.04%, 일반재산은 월 4.17%, 금융재산은 월 6.26%의 환산율이 적용된다. 자동차는 월 100%라는 극단적으로 높은 환산율이 적용되어 사실상 자동차 보유자는 수급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차등적 환산율은 재산의 유동성과 생활필수성을 고려한 것이지만, 때로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예를 들어 농어촌 지역에서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환산율 때문에 수급자격을 상실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장애인가구 최저생계비 사건 (2002헌마328)

사건의 배경

2002년 당시 생활보호법 시행령은 장애인가구와 비장애인가구에 동일한 최저생계비를 적용했다. 그러나 장애인가구는 장애로 인한 추가 생활비가 발생함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평등권 침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청구인들은 장애인가구의 경우 의료비, 재활치료비, 특수교육비, 보장구 구입비 등 추가적인 비용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가구의 추가 생활비는 월평균 15-30만원에 달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재판소는 "장애인가구의 최저생계비를 비장애인가구와 동일하게 책정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서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형식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의 관점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원칙은 일체의 차별적 대우를 부정하는 절대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근거가 있는 차별 내지 불평등은 허용하는 상대적 평등을 의미한다"고 전제한 후, "오히려 장애인가구와 비장애인가구를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이 실질적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판단했다.

실질적 평등의 실현

헌법재판소는 입법자의 형성재량을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명확히 했다. "최저생계비 결정에 있어서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되지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침해하는 경우에는 재량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 결정은 단순히 장애인 가구에 대한 추가 급여를 인정한 것을 넘어, 공적부조에서 실질적 평등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개인이나 가구의 특수한 욕구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급여는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었다.

판결의 영향

이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가구 특성을 반영한 급여체계로 개선되었다. 장애인가구, 노인가구, 한부모가구 등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급여가 제공되거나 공제 기준이 완화되었다. 특히 장애수당, 장애아동수당 등이 소득인정액 산정에서 제외되고, 장애인 의료비 공제가 확대되었다.

또한 이 판결은 다른 사회복지급여에서도 개인별·가구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획일적 기준이 아닌 맞춤형 복지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적부조의 법적 성격과 원리

최후의 사회안전망

공적부조는 사회보험이나 다른 사회복지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최후의 안전망이다. 따라서 포괄성과 보편성을 특징으로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1조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이러한 최후 안전망으로서의 성격은 수급권의 무차별성으로 나타난다. 연령, 성별, 직업, 지역에 관계없이 오직 빈곤 여부만을 기준으로 급여가 제공된다. 다만 외국인의 경우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

보충성의 원칙

공적부조는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운영된다. 개인의 자활 노력과 가족의 부양이 우선시되고, 이것이 불가능할 때 비로소 국가가 개입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부양의무자 기준이나 재산 기준에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보충성 원칙의 지나친 강조는 복지 사각지대를 양산할 수 있다. 특히 가족 해체가 증가하고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인 가족 부양을 전제로 한 보충성 원칙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가 진행되고 있다.

권리성과 수급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수급권을 법적 권리로 명시한다. 제2조는 "이 법에 따른 급여를 받을 권리"를 수급권으로 정의하고, 수급권은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으며, 이를 압류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수급권의 권리성은 행정쟁송을 통한 권리구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급여신청 거부, 급여 중지, 보장비용 징수 등에 대해 이의신청과 행정심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는 과거 시혜적 보호에서 권리 기반 보장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결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헌법상 인간다운 생활권을 구체화하는 핵심적인 공적부조제도다. 2000년 제정 이후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통합급여에서 맞춤형 급여로, 획일적 기준에서 가구특성 반영으로 발전해 왔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장애인가구 최저생계비 사건은 공적부조에서도 실질적 평등이 실현되어야 함을 확인한 중요한 판례다. 이는 단순히 생존 보장을 넘어 개인의 특수한 욕구를 고려한 인간다운 생활 보장으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앞으로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응하여 지속적으로 진화해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전 폐지, 기본재산액의 현실화, 근로연계복지의 내실화 등이 주요 과제다. 무엇보다 빈곤층의 인간 존엄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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