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지의 패러다임 전환
장애인 복지법제는 시혜적 복지에서 권리 기반 복지로의 전환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역이다. 1981년 제정된 심신장애자복지법이 2007년 전면 개정되어 장애인복지법으로 변화한 과정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과거의 장애인 복지는 '보호'와 '재활'에 초점을 맞췄다. 장애인을 의료적 치료와 재활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는 의료모델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사회적 모델을 채택하여,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장벽의 문제로 인식한다. 법 제1조는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보장"을 목적으로 명시하여 권리 중심적 접근을 분명히 한다.
장애인활동지원법과 자립생활 패러다임
2011년 제정된 장애인활동지원법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 법은 중증장애인에게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하여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활동지원급여는 크게 활동보조, 방문목욕, 방문간호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활동보조는 장애인이 선택한 활동지원사가 신체활동, 가사활동,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서비스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한다. 이는 과거 시설 중심의 서비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물론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활동지원 시간의 부족, 지역별 서비스 격차, 활동지원사 처우 문제 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활동지원법은 장애인을 수동적 복지 수혜자가 아닌 능동적 시민으로 인식하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
2019년 헌법재판소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관련 법령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2019헌마953). 이 사건은 서울시의 장애인콜택시 이용 대상을 1·2급 장애인으로 제한한 것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중증장애인과 그 외 장애인을 일률적으로 구분하여 특별교통수단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3급 지체장애인 중에도 대중교통 이용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가 있으며, 장애등급만으로는 이동 능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결정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장애인의 이동권을 헌법적 기본권으로 인정했다. 둘째, 형식적인 장애등급이 아닌 실질적인 이동 제약을 기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셋째, 장애인 차별금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엄격한 심사 기준을 보여주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 강화
2008년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은 포괄적인 차별금지 규범을 제시한다. 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제공, 사법·행정절차 등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다. 이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필요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자료 제공,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 제공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당한 편의제공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차별행위로 간주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구제절차도 마련하고 있다. 차별행위에 대한 진정을 접수받아 조사하고, 시정권고를 할 수 있다. 또한 악의적인 차별행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여 실효성을 높였다.
장애인 고용법제의 발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은 장애인의 경제활동 참여를 보장하는 핵심 법률이다. 이 법은 의무고용제도를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주에게 장애인 고용 의무를 부과한다. 현재 국가·지방자치단체는 3.6%, 50인 이상 민간기업은 3.1%의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
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한 사업주에게는 부담금을 부과하고, 초과 달성한 사업주에게는 장려금을 지급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운영한다. 이러한 제도는 장애인 고용률을 점진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
최근에는 중증장애인의 고용 확대를 위한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 중증장애인을 고용하면 2배로 인정하는 더블카운트제,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장애인표준사업장,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등 보호고용과 일반고용의 중간 형태도 활성화되고 있다.
발달장애인 지원체계의 구축
2014년 제정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의 특수한 욕구에 대응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발달장애인은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별도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이 법은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설치, 개인별지원계획 수립, 성년후견제 이용 지원 등을 규정한다. 특히 공공후견인 제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게 국가가 후견인을 지원하는 제도로, 발달장애인의 권익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자기옹호 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 의사소통 지원, 행동발달증진센터 운영 등도 포함된다. 이는 발달장애인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역량 강화를 통해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접근이다.
탈시설과 지역사회 통합
최근 장애인 복지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탈시설이다. UN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는 "모든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권을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명시한다. 우리나라도 2008년 이 협약을 비준하면서 탈시설 정책을 본격화했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통해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의 전환을 명문화했다. 또한 각 지방자치단체는 탈시설 로드맵을 수립하고, 자립생활 체험홈, 자립생활주택 등 중간단계 주거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을 나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사회에서의 적절한 주거, 활동지원, 소득보장, 사회참여 기회가 종합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제도적 정비와 함께 충분한 예산 확보, 지역사회의 인식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결론
장애인 복지법제는 시혜에서 권리로, 보호에서 자립으로, 시설에서 지역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거쳐왔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헌법불합치 결정은 이러한 권리 기반 접근이 헌법적 차원에서 확인된 중요한 사례다.
현행 장애인 복지법제는 장애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고, 완전한 사회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활동지원법, 발달장애인법 등은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하는 법적 토대다.
그러나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한다. 장애인의 실질적인 자립생활 보장, 통합교육과 통합고용의 확대, 접근성 향상, 인식 개선 등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다. 진정한 장애인 복지는 특별한 배려가 필요 없는 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 사회를 지향한다. 법제도는 이러한 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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