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logy

한국사회론 10. 도시화·주거체제와 공간 불평등 - 자본축적과 공간재구조화의 정치경제학

SSSCHS 2025. 4. 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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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도시화 과정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 1960년대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시작된 도시화는 농촌에서 도시로의 대규모 인구 이동을 수반했으며,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공간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또한 부동산 중심의 자산 형성 구조는 주거 불안과 계층 간 자산 격차라는 이중의 문제를 낳았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도시화, 주거체제, 공간 불평등을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자본축적과 공간재구조화의 메커니즘을 이론적으로 고찰한다.

도시 공간의 정치경제학: 이론적 기초

도시 공간을 분석하는 정치경제학적 접근은 공간을 단순한 물리적 실체가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권력과 자본의 장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을 대표하는 이론가들의 핵심 개념을 살펴보자.

앙리 르페브르: 공간의 생산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공간의 생산』에서 공간이 사회적 관계에 의해 생산된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공간을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한다:

  • 공간적 실천(spatial practice): 일상적 경험과 인식을 통해 형성되는 물리적 공간
  • 공간 재현(representations of space): 도시계획가, 건축가 등 전문가들에 의해 개념화된 공간
  • 재현 공간(representational spaces):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 체험되는 공간

르페브르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자본 축적의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 공간의 생산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재생산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의 이해관계가 공간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데이비드 하비: 공간적 고정과 시공간 압축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와 도시 공간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공간적 고정'(spatial fix)이다. 자본은 과잉축적의 위기에 직면할 때, 물리적 인프라(도로, 건물, 공장 등)에 투자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위기를 해소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도시 공간은 자본 축적의 순환 과정에 깊이 편입된다.

또한 하비는 '시공간 압축'(time-space compression)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공간적 경험의 변화를 설명한다. 교통과 통신 기술의 발달로 공간적 거리는 극복되는 듯하지만, 동시에 특정 장소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모순적 현상이 나타난다.

하비의 이론은 특히 부동산 개발과 자본 축적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그에 따르면, 도시 재개발이나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의 '이차 순환'(secondary circuit)을 통한 이윤 추구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마누엘 카스텔: 공간 흐름과 네트워크 사회

마누엘 카스텔(Manuel Castells)은 『정보시대』 3부작을 통해 네트워크 사회에서의 공간 재구성을 분석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흐름의 공간'(space of flows)이 '장소의 공간'(space of places)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물리적 근접성보다 글로벌 네트워크에서의 연결성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세계도시 네트워크와 글로벌 차원의 공간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글로벌 네트워크에 통합된 소수의 핵심 도시들(뉴욕, 런던, 도쿄 등)과 네트워크에서 배제된 주변부 지역 간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한국 도시화의 정치경제학적 특성

한국의 도시화는 서구나 다른 발전도상국과는 다른 독특한 경로를 따랐다. 이러한 특수성을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해보자.

압축적 도시화와 발전국가

한국의 도시화는 '압축적 근대화'의 한 측면으로,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1960년대 약 30%였던 도시화율은 2020년 약 90%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압축적 도시화는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모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발전국가로서 한국 정부는 산업화 전략의 일환으로 도시 공간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했다. 수출 중심 산업화를 위한 산업단지 조성, 대규모 주택 공급을 위한 신도시 개발, 행정 기능의 재배치 등을 통해 국가는 자본 축적과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공간을 조직했다.

최병두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자본-공간의 삼중 관계가 형성되었다. 국가는 토지 수용, 기반시설 조성,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자본의 공간적 확장을 지원했고, 자본은 이를 통해 산업 및 부동산 개발에서 이윤을 창출했다. 이 과정에서 도시 공간은 자본 축적의 핵심 장(場)으로 자리 잡았다.

수도권 집중과 공간적 불균등 발전

한국 도시화의 또 다른 특징은 수도권 집중이다. 2020년 기준 전체 인구의 약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며, 경제력, 문화자원, 교육기회 등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수도권 집중은 단순한 시장 메커니즘의 결과가 아닌, 국가 주도 발전 전략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비의 '불균등 발전'(uneven development) 개념을 적용하면, 한국의 수도권 집중은 자본 축적의 공간적 논리에 따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본은 더 높은 이윤을 찾아 특정 지역에 집중되고, 이는 다시 집적 경제(agglomeration economy)를 통해 더 많은 자본과 인구를 끌어들이는 순환적 과정을 만든다.

이승욱의 연구는 수도권 집중이 단순한 지역 불균형을 넘어,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특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 서울 중심의 중앙집권적 행정 체계, 교통·통신 인프라의 수도권 중심 구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수도권 집중 현상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부동산 중심의 축적 체제

한국 도시화의 세 번째 특징은 부동산 중심의 축적 체제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이후 부동산, 특히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수단을 넘어 중요한 자산 축적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비의 이론을 적용하면, 이는 자본의 '이차 순환'이 한국에서 특히 중요한 자본 축적 경로로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산업 부문(일차 순환)에서 발생한 자본이 부동산 부문(이차 순환)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부동산은 한국 자본주의의 핵심 축적 영역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시기에 따라 부동산 규제와 부양을 오가는 모순적 정책을 펼쳤지만, 전반적으로는 부동산 개발을 통한 경기 부양과 자본 축적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도시 정책은 부동산 중심 축적 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주거체제의 형성과 변화

주거체제(housing regime)는 주택의 생산, 분배, 소비를 둘러싼 제도와 관행의 총체를 의미한다. 한국의 주거체제는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가?

아파트 공화국의 형성

한국 주거체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파트 중심성이다. 발레리 겔레즈노가 '아파트 공화국'이라 명명한 이 현상은 단순한 주택 유형의 선호를 넘어, 사회경제적·문화적 함의를 갖는다.

아파트는 1970-80년대 급속한 도시화에 대응하기 위한 효율적 주택 공급 방식으로 도입되었다. 국가는 토지 수용, 규제 완화, 금융 지원 등을 통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을 촉진했고, 건설자본은 이를 통해 급성장했다. 소비자들에게 아파트는 현대적 생활양식의 상징이자 자산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삼자(국가-자본-소비자)의 이해관계 일치가 '아파트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아파트는 단순한 건축 양식이 아니라, 한국적 근대성과 계층 정체성이 응축된 사회적 공간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소유 중심 주거체제와 자산기반 복지

한국의 주거체제는 강한 소유 지향성을 특징으로 한다. 주택 소유율은 약 60%로 OECD 평균보다 낮지만, 자가 소유에 대한 사회적 압력과 선호는 매우 강하다. 이는, 주택이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자산 증식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유 중심 주거체제는 '자산기반 복지'(asset-based welfare) 시스템과 맞물려 있다. 국가의 공적 복지가 취약한 상황에서 주택 자산은 노후 보장과 자녀 교육 투자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즉, 주택 소유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개인적 전략으로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기반 복지 시스템은 주택을 소유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주택 자산의 불평등한 분배는 더욱 뚜렷해졌고, 이는 세대 간 불평등 재생산의 주요 경로가 되고 있다.

주거 불안과 주거복지의 확대

주택 가격 상승과 소유 중심 주거체제는 저소득층과 청년층의 주거 불안을 심화시켰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전·월세 가격의 지속적 상승은 '주거 빈곤'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켰다.

이에 대응하여 국가의 주거복지 정책도 확대되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 주거급여, 저리 융자 등 다양한 정책이 도입되었으나, 여전히 시장 중심의 주택 정책이 지배적이다. 주거복지는 선별적이고 잔여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복지국가의 전반적 특성과도 일치한다.

이러한 상황은 에스핑-안데르센(Esping-Andersen)의 복지체제 유형론을 주거 영역에 적용한 '주거복지체제'(housing welfare regime)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 한국의 주거복지체제는 시장 의존성이 높고 탈상품화 수준이 낮은 '자유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보이며, 가족의 역할이 중요한 '가족주의적' 특성도 함께 나타난다.

공간 불평등의 다층적 구조

한국 사회의 공간 불평등은 다양한 스케일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거시적 차원의 지역 불균형에서 미시적 차원의 도시 내부 분화까지, 공간 불평등의 다층적 구조를 살펴보자.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가장 거시적 차원에서 한국의 공간 불평등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격차로 나타난다. 이는 단순한 인구 분포를 넘어 경제력, 교육·문화 기회, 삶의 질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불균형을 포함한다.

이러한 수도권-비수도권 격차는 월러스타인(Wallerstein)의 세계체제이론을 국내적 맥락에 적용한 '내부 중심-주변부' 구조로 해석할 수 있다. 수도권이 중심부로서 자본, 정보, 인재를 집중시키는 반면, 비수도권은 주변부로서 자원을 중심부에 제공하는 종속적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단순한 지역 격차가 아닌, 구조적 종속 관계로서의 공간 불평등을 강조한다. 수도권 집중 완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행정수도 이전, 혁신도시 조성 등)에도 불구하고 격차가 지속되는 것은, 이러한 구조적 관계가 쉽게 변화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도시 내부의 분절화

도시 내부에서도 공간적 분리와 불평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는 서울의 강남-강북 격차다. 강남 지역은 교육, 문화, 소비 인프라가 집중되고 부동산 가치가 높은 반면, 강북 등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도시 내부 분절화는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자본의 공간적 회로'로 분석될 수 있다. 하비의 이론을 적용하면, 특정 지역에 대한 집중적 자본 투자는 그 지역의 지대(rent)를 상승시키고, 이는 다시 더 많은 자본 투자를 유인하는 순환적 과정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부유층은 높은 지대를 지불할 수 있는 '프리미엄' 공간에 집중되고, 저소득층은 주변부로 밀려나는 계층별 주거지 분리가 심화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교육과 공간 불평등의 상호 강화 관계다. 좋은 학군에 대한 수요가 해당 지역의 주택 가격을 상승시키고, 이는 다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구의 선별적 유입을 촉진한다. 이러한 '교육적 젠트리피케이션'은 공간적 불평등과 교육적 불평등의 상호 강화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 재생의 정치학

최근 도시 공간 불평등의 주요 양상으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낙후된 도심 지역에 자본과 중산층이 유입되면서 지역이 '업그레이드'되고, 기존 저소득층 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말한다.

하비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자본의 창조적 파괴' 과정으로 분석한다. 자본은 지대 격차(rent gap)가 큰 지역, 즉 현재 가치와 잠재적 가치의 차이가 큰 지역에 투자함으로써 이윤을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공간과 공동체는 파괴되고 새로운 경관이 창출된다.

한국에서는 특히 2010년대 이후 서울 홍대, 연남동, 성수동 등에서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는 단순한 시장 현상이 아니라 도시 재생 정책, 문화 소비 패턴의 변화, 부동산 투자 논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도시 재생 정책은 종종 젠트리피케이션과 모순적 관계에 놓인다. 쇠퇴 지역 활성화라는 명목의 정책이 결과적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촉진하고 원주민 축출을 가속화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도시 정책의 계급적 성격과 자본 축적 논리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공간의 정치와 도시권 담론

공간 불평등에 대응하여 다양한 저항과 대안적 공간 실천이 등장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공간의 정치'(politics of space)를 형성하며, 도시권(right to the city) 담론으로 이어진다.

공간을 둘러싼 갈등과 저항

공간 생산 과정에서 국가, 자본, 시민사회 사이의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한국에서 이러한 공간 갈등의 대표적 사례로는 뉴타운 개발을 둘러싼 주민 갈등, 재개발 지역 철거민 운동, 임대료 상승에 대한 상인들의 저항 등이 있다.

르페브르의 관점에서 이러한 갈등은 '추상 공간'(abstract space)과 '사회적 공간'(social space) 사이의 긴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추상 공간은 국가와 자본이 교환가치 중심으로 균질화하고 상품화한 공간이라면, 사회적 공간은 주민들의 일상적 실천과 경험이 축적된 사용가치 중심의 공간이다. 재개발이나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이 두 공간 개념 사이의 충돌이 발생한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도시 정책이 강화되면서 도시 공간의 상품화와 금융화가 심화되었고, 이에 대한 저항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재개발 반대 운동, 주거권 운동, 세입자 운동, 상가 임차인 운동 등이 그 예다.

도시권과 공간 정의의 모색

이러한 저항은 단순한 이익 충돌을 넘어, 도시 공간에 대한 권리 주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르페브르가 제안하고 하비가 발전시킨 '도시권'(right to the city) 개념은 이러한 운동의 이론적 기반이 된다.

도시권은 단순히 도시 공간에 접근할 권리가 아니라, 도시를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맞게 변형시킬 수 있는 집합적 권리를 의미한다. 즉,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를 중심으로, 도시 생산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주거권 운동,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운동, 도시 공유재 운동 등 다양한 형태로 도시권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공간 정의'(spatial justice) 개념을 중심으로, 공간 불평등의 구조적 해소를 요구하는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대안적 공간 실천의 가능성

도시권 담론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대안적 공간 실천의 다양한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동체 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 주택협동조합, 사회주택, 빈집 재생 프로젝트, 주민 참여형 도시 계획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실험들은 부동산 중심의 자본 축적 논리에서 벗어나, 공간의 사용가치와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비록 아직은 소규모에 그치지만, 이러한 대안적 공간 실천은 도시 공간의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요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과 공간의 재구성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팬데믹 경험은 공간의 의미와 구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공간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물리적 공간과 가상 공간의 상호작용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물리적 공간과 가상 공간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 카스텔의 '네트워크 사회' 이론에 따르면, 정보 시대에는 '흐름의 공간'이 '장소의 공간'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즉, 물리적 근접성보다 디지털 네트워크상의 연결성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물리적 공간의 중요성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물리적 공간과 가상 공간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간 경험과 구조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디지털 플랫폼은 물리적 공간 이용에 큰 영향을 미치며(배달 앱, 숙박 앱 등), 역으로 물리적 장소의 특성은 디지털 콘텐츠 생산에 영향을 미친다('인스타그램 명소' 등).

디지털 불평등과 공간 불평등의 중첩

디지털 기술은 공간적 제약을 극복할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디지털 인프라, 디지털 리터러시,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 등에서의 격차는 기존의 공간 불평등과 중첩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농촌 지역이나 노후 도심 지역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며, 이는 지역 간 발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 불리는 이 현상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불평등의 새로운 형태로 이해되어야 한다.

팬데믹과 공간 경험의 변화

코로나19 팬데믹은 공간 이용 방식과 인식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재택근무, 원격교육, 비대면 서비스 등의 확산은 물리적 공간의 의미와 기능을 재구성했다.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인 공간 구조 변화의 촉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주거 공간이 일, 학습, 소비, 여가 등 다기능적 공간으로 변화하면서, 주거의 질과 크기에 따른 불평등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또한 도심과 교외, 도시와 농촌 간의 관계도 재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결론: 공간 정의를 향한 이론적 과제

지금까지 살펴본 한국 사회의 도시화, 주거체제, 공간 불평등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이론적 과제를 제시해보자.

공간 재구조화의 새로운 동학 이해

한국의 공간 구조는 지속적인 변화 과정에 있다. 저출산·고령화, 탈산업화, 디지털 전환 등의 거시적 변화는 공간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치경제학적 분석에 인구학적, 기술적, 생태적 차원을 통합한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자본 축적 논리가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국가의 공간 정책이 어떻게 재구성되는지, 시민사회의 공간 실천이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간 정의의 이론적 정교화

공간 불평등 해소를 위한 규범적 지향으로서 '공간 정의' 개념을 보다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자원의 균등한 분배를 넘어, 공간 생산 과정에의 참여권, 차이의 인정, 공간적 필요의 충족 등을 포괄하는 복합적 개념이어야 한다.

에드워드 소자(Edward Soja)의 '공간 정의' 개념, 아이리스 영(Iris Young)의 '억압의 다섯 가지 얼굴',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의 '인정, 재분배, 대표' 틀 등을 공간 연구에 적용함으로써, 보다 포괄적인 공간 정의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안적 공간 실천의 이론화

마지막으로, 다양한 대안적 공간 실천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주택협동조합, 공동체 토지신탁, 도시 공유재 운동 등의 실험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안적 공간 생산 모델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사례 연구를 넘어, 자본주의적 공간 생산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 구조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특히 공간의 탈상품화, 민주적 계획, 공유화(commoning)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공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실천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도시화와 공간 불평등은 단순한 기술적·행정적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발전 경로와 국가-자본-시민사회의 권력 관계가 응축된 정치적 쟁점이다. 따라서 공간 정의를 향한 이론적 탐구는 한국 사회의 민주적 재구성을 위한 중요한 지적 기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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