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logy

계층과 불평등 11. 세계체계와 글로벌 불평등의 구조적 이해

SSSCHS 2025. 4. 25. 11:00
반응형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연결망으로 묶여 있다. 국가 간 경계는 법적으로 존재하지만, 자본과 노동, 상품은 이미 국경을 넘나들며 전 지구적 체계를 형성한지 오래다. 국가 내부의 계층과 불평등 문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현대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형성된 계층화와 불평등의 메커니즘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월러스틴의 세계체계론: 심-주변-반주변부 관계의 역학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1970년대부터 자본주의 세계 경제를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분석하는 '세계체계론'을 발전시켰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16세기부터 형성된 자본주의 세계 경제는 중심부(core), 주변부(periphery), 반주변부(semi-periphery)라는 세 지역으로 구분된다.

중심부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로, 고도의 기술력과 자본 집약적 산업, 높은 임금과 생활수준을 누린다. 미국, 서유럽, 일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주변부는 저임금 노동력과 원자재 공급에 의존하는 국가들로, 중심부의 필요에 따라 경제 구조가 왜곡되어 발전했다. 많은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국가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반주변부는 중간적 위치를 차지하는 국가들로, 주변부에 대해서는 중심부 역할을, 중심부에 대해서는 주변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브라질, 멕시코, 한국, 중국 등이 반주변부 국가로 분류되곤 한다. 이들은 중심부로 도약하거나, 주변부로 추락할 가능성을 모두 가진 경계선상에 위치한다.

세계체계론의 핵심은 이 구조가 단순한 발전 단계가 아니라 체계적인 불평등 관계라는 점이다. 중심부의 부와 발전은 주변부의 착취와 저발전을 전제로 한다. 즉, 주변부의 "저발전의 발전(development of underdevelopment)"은 우연이 아니라 세계체계의 필연적 결과다.

"주변부의 저발전은 우연한 역사적 상황이 아니라, 중심부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조건이다."

중심부 국가들은 고부가가치 생산과 첨단 기술을 독점하는 한편, 주변부 국가들에게는 저부가가치 생산과 원자재 공급이라는 역할을 할당한다. 이런 국제 분업 체계는 자유무역이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불평등한 교환 관계를 정당화한다. 표면적으로는 동등한 무역 파트너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주변부의 잉여가 중심부로 이전되는 구조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불평등 교환과 세계체계 내 착취 관계

세계체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불평등 교환(unequal exchange)은 글로벌 불평등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아민 에마뉴엘(Arghiri Emmanuel)과 같은 학자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무역이 동등한 가치의 교환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주변부 국가들에서는 노동력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이는 상품 가격에 반영된다. 같은 노동시간이 투입되더라도 주변부에서 생산된 상품은 중심부 상품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런 불평등한 교환을 통해 주변부의 잉여가치가 중심부로 이전되는 구조적 착취가 발생한다.

주변부 노동자가 10시간 일해 생산한 상품과 중심부 노동자가 2시간 일해 생산한 상품이 동일한 가격에 거래될 때, 실질적으로는 주변부 노동자의 8시간에 해당하는 가치가 중심부로 이전된다.

이런 불평등 교환은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구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이폰과 같은 첨단 전자제품의 경우, 실제 생산은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반주변부나 주변부 국가에서 이루어지지만, 디자인과 마케팅, 유통과 같은 고부가가치 활동은 미국과 같은 중심부 국가가 독점한다. 결과적으로 최종 판매가격의 대부분은 중심부 기업과 국가에 귀속된다.

사스키아 사센의 세계도시 가설과 도시 간 불평등 네트워크

불평등은 국가 단위뿐만 아니라 도시 간 네트워크에서도 나타난다.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은 '세계도시(Global City)' 개념을 통해 글로벌 경제 시스템 내에서 특정 도시들이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를 분석했다.

사센에 따르면 뉴욕, 런던, 도쿄와 같은 글로벌 도시들은 세계 경제의 지휘통제 센터로 기능한다. 이곳에는 다국적 기업의 본사, 국제 금융기관, 고급 생산자 서비스(법률, 회계, 컨설팅 등)가 집중되어 있다. 이런 도시들은 국내 다른 지역이나 주변국 도시들보다 글로벌 네트워크와 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의 글로벌 도시들은 자국 내 다른 도시들보다 뉴욕, 런던, 도쿄와 같은 다른 글로벌 도시들과 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세계도시 네트워크는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글로벌 도시 내에서도 고소득 전문직과 저임금 서비스직 사이의 양극화가 심화된다. 금융 분석가와 같은 고급 인력이 집중되는 한편, 이들을 지원하는 청소, 배달, 케어 서비스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조건에 놓인다.

또한 세계도시 네트워크에 편입된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 사이의 격차도 커진다. 서울, 상하이,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들은 글로벌 네트워크에 편입되며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같은 국가 내의 다른 지역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과 초국적 자본의 지배력

2000년대 이후 글로벌 경제는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GVC)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는 상품 생산의 각 단계가 여러 국가에 분산되어 이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글로벌 가치사슬은 생산 네트워크의 글로벌화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 구조를 만들어낸다.

가치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가치사슬을 통제하는가'의 문제다. 대부분의 글로벌 가치사슬은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주도된다. 애플, 월마트, 나이키와 같은 기업들은 R&D, 디자인, 마케팅, 브랜딩과 같은 고부가가치 활동을 통제하면서 실제 생산은 저임금 국가로 아웃소싱한다.

아디다스나 나이키 운동화의 소비자 가격 중 실제 생산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1% 미만인 반면, 브랜드 가치와 마케팅, 유통에 할당되는 비중은 50%를 넘는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 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기술, 브랜드, 표준을 통제하는 선진국 기업들이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반면, 실제 생산이 이루어지는 개발도상국은 저부가가치 활동에 갇히게 된다.

또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확산은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기업들은 더 낮은 임금과 더 유연한 노동조건을 제공하는 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쉽게 옮길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협상력을 약화시킨다.

초국적 자본주의 계급의 부상과 글로벌 엘리트

글로벌 불평등의 새로운 측면 중 하나는 초국적 자본주의 계급(Transnational Capitalist Class, TCC)의 등장이다. 이들은 국가적 경계를 초월해 활동하는 기업 임원, 글로벌 정치인, 국제기구 관료, 상업화된 국제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레슬리 스클레어(Leslie Sklair)와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과 같은 학자들은 이 집단이 글로벌 경제를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재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국가 간 경계보다는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며, 글로벌 거버넌스 기구(IMF, 세계은행, WTO 등)를 통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확산시킨다.

초국적 자본주의 계급의 핵심 구성원들은 전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생활양식을 공유하며, 국적보다는 글로벌 엘리트라는 정체성에 더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

이런 초국적 자본주의 계급의 부상은 국가 내부의 계층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각국의 상위 1%는 자국 내 나머지 계층보다 글로벌 엘리트들과 더 많은 공통점을 갖게 되었다. 이는 국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연구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1%가 전 세계 부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불평등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은 단일 국가의 정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글로벌 차원의 도전과제가 되었다.

코로나19와 글로벌 불평등의 심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은 기존의 글로벌 불평등 구조를 더욱 악화시켰다. 선진국들은 대규모 재정 지출과 통화 완화를 통해 경제를 지원할 수 있었지만, 재정 여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들은 그러한 대응이 어려웠다.

백신 접근성에서도 심각한 불평등이 나타났다. 선진국들은 필요량을 초과하는 백신을 미리 확보한 반면, 많은 저소득 국가들은 백신 공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건강 불평등을 넘어 경제 회복의 불평등으로 이어졌다.

2021년 중반까지 고소득 국가의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최소 1회 이상 백신을 접종받은 반면, 저소득 국가에서는 인구의 1% 미만만이 접종을 받을 수 있었다.

팬데믹은 또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취약성도 드러냈다. 국경 봉쇄와 공급망 붕괴로 많은 개발도상국의 수출 산업이 타격을 입었고, 이는 저소득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디지털 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가치와 영향력은 오히려 커졌다. 이는 국가 간, 기업 간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안적 글로벌 체계를 향한 움직임들

현재의 글로벌 불평등 구조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다양한 움직임들도 존재한다. 세계 시민사회 운동, 초국적 노동 연대, 공정무역 네트워크 등이 그 예다.

공정무역 운동은 불평등한 교환 관계를 개선하려는 시도다.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가격을 보장하고, 노동조건과 환경기준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의 대안적 모델을 제시한다.

초국적 노동 연대는 국경을 넘어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교섭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방글라데시 의류 산업 노동자들의 안전과 임금 개선을 위한 글로벌 캠페인이나, 아마존 창고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 행동 등이 그 사례다.

국제 개발 협력의 패러다임도 변화하고 있다. 일방적인 원조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파트너십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글로벌 불평등 해소를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설정했다.

디지털 기술의 민주화와 지식 공유 운동도 주목할 만하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오픈 액세스 학술 출판 등은 지식과 기술의 불평등한 독점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

글로벌 불평등의 미래와 우리의 과제

글로벌 불평등은 단순한 국가 간 소득 격차를 넘어 복잡한 권력 관계와 구조적 메커니즘의 산물이다. 세계체계론, 세계도시 네트워크, 글로벌 가치사슬 등의 분석틀은 이러한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미래의 글로벌 불평등 구조는 기후변화, 인공지능과 자동화, 인구학적 변화 등의 거대한 변화에 의해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기후 위기는 이미 취약국가와 지역에 불균등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는 글로벌 불평등 논의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확산은 글로벌 노동 분업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갖고 있다.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하던 산업들이 자동화됨에 따라 개발도상국의 발전 경로가 차단될 위험도 있다.

한국 사회는 세계체계 내에서 반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도약한 드문 사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이 국내 불평등의 심화와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글로벌 가치사슬 내에서 한국 기업들이 때로는 중심부 역할을 때로는 주변부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불평등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더 정의로운 글로벌 체계를 모색하는 데 필수적이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연대와 협력만이 전 지구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