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Welfare

사회복지학개론 8. 사회복지 재원의 구조와 지속가능성: 조세와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SSSCHS 2025. 5. 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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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재정적 기반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안정적인 재원 확보에 달려있다. 아무리 이상적인 복지 프로그램과 서비스라 할지라도 이를 뒷받침할 재정적 기반이 없다면 실현 불가능한 공상에 불과하다. 현대 복지국가는 GDP의 20~30%에 달하는 막대한 사회지출을 통해 국민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고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거대한 지출을 뒷받침하는 재원 구조는 복지국가의 유형과 특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이다.

복지국가의 재원은 크게 조세, 사회보험료, 그리고 기타 재원(사용자 부담금, 기부금, 복권수익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국가는 이러한 재원들의 비중과 구성을 통해 독특한 복지재정 체계를 구축해왔다. 전통적으로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조세부담률을 통한 보편적 복지를, 대륙 유럽 국가들은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를, 영미권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조세부담과 선별적 복지를 특징으로 한다.

21세기에 들어 고령화, 저성장, 노동시장 변화, 세계화 등 다양한 도전 요인들로 인해 복지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많은 국가들이 재원 다양화, 지출 효율화, 조세체계 개혁 등을 통해 복지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복지재정의 이론적 기반과 현실적 쟁점을 이해하는 것은 미래 복지국가의 발전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조세기반 복지재정의 이론과 실제

조세는 복지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재원으로, 특히 보편적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세를 통한 복지재정 조달은 사회연대 원리에 기반하며, 부의 재분배 기능을 수행한다는 장점이 있다. 조세기반 복지재정은 시민권적 접근과 맞닿아 있으며, 모든 시민에게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를 권리로서 보장하는 이념적 토대가 된다.

조세의 유형은 크게 직접세(소득세, 재산세 등)와 간접세(부가가치세, 소비세 등)로 구분된다. 직접세는 누진적 성격을 가지며 소득재분배 효과가 큰 반면, 간접세는 역진적 성격을 띠지만 세수 확보가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복지국가의 재분배 효과는 조세체계의 누진성과 복지급여의 선별성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조세-복지 연계 모델'(tax-welfare linkage model)은 조세와 복지급여의 통합적 관점에서 순재분배 효과를 분석하는 틀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조세의 누진성만으로 재분배 효과를 평가할 수 없으며, 조세를 통해 조달된 재원이 어떤 형태의 복지급여로 돌아가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OECD 국가들의 비교연구에 따르면, 북유럽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조세부담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복지급여를 통해 높은 수준의 재분배를 달성하고 있다.

조세기반 복지재정의 대표적 사례는 덴마크와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는 GDP의 45~50%에 달하는 높은 조세부담률을 기반으로 보편적 의료, 교육, 돌봄 서비스와 관대한 소득보장 제도를 운영한다. 특히 덴마크는 사회보험료 비중이 낮고 조세 의존도가 매우 높은 '탈사회보험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노동시장 참여와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기본적 복지를 보장하는 시민권적 접근의 반영이다.

최근에는 조세기반 복지재정의 새로운 형태로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무조건적으로 제공되는 정기적 현금급여로, 조세를 통한 보편적 재분배의 극단적 형태라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의 재원으로는 소득세, 토지세, 탄소세, 로봇세, 데이터세 등 다양한 형태의 조세가 제안되고 있으며, 재원 마련의 현실성이 기본소득 도입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사회보험의 원리와 재정구조

사회보험은 근로자와 고용주가 공동으로 보험료를 납부하여 실업, 질병, 노령, 산업재해 등의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제도이다. 사회보험은 19세기 말 비스마르크 시대 독일에서 시작되어 대륙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현재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 핵심적인 사회보장 제도로 자리 잡고 있다.

사회보험의 기본 원리는 '기여-급여 연계성'이다. 즉, 보험료 납부라는 기여를 통해 위험 발생 시 급여를 받을 권리를 획득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원리는 수급권에 대한 정당성을 강화하고, 복지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노동시장 참여가 전제된다는 점에서 불안정 노동자, 경력단절여성 등 노동시장 외부자에 대한 보호가 취약하다는 한계도 있다.

사회보험의 재정 방식은 크게 부과방식(Pay-As-You-Go, PAYG)과 적립방식(funded system)으로 구분된다. 부과방식은 현재 근로세대의 보험료로 현재 수급세대의 급여를 충당하는 세대 간 연대 원리에 기반한다. 반면 적립방식은 각 세대가 자신의 미래 급여를 위한 보험료를 적립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공적연금이 부과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나, 인구고령화로 인해 재정적 지속가능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적립방식의 보완이나 다층체계로의 전환이 검토되고 있다.

사회보험 재정의 안정성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다. 보험료율은 근로자와 고용주가 납부하는 보험료의 임금 대비 비율을, 소득대체율은 급여가 근로소득을 대체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이 사회보험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좌우한다. 여기에 인구구조, 경제성장률, 노동시장 참여율 등의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사회보험 중심 복지국가의 대표적 사례는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대륙 유럽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는 직종별로 분화된 사회보험 체계를 특징으로 하며, 고용 지위와 연계된 사회적 권리가 강조된다. 특히 독일의 사회보험 체계는 '비스마르키안 모델'의 원형으로, 노사정 삼자 구조의 자치운영 방식과 직업별 분절적 구조가 특징이다.

복지재정의 국가 간 비교와 유형

복지국가의 재원 구조는 국가마다 상이하며, 이는 각국의 역사적 경로, 정치적 선택, 경제구조 등을 반영한다. OECD 국가들의 복지재정을 비교해보면, 조세 중심형(북유럽), 사회보험 중심형(대륙 유럽), 혼합형(영국, 캐나다 등) 등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조세 중심형 국가들은 GDP 대비 높은 조세부담률(40~50%)과 보편적 복지급여를 특징으로 한다. 이들 국가는 직접세와 간접세를 고르게 활용하여 안정적 세수를 확보하고 있으며, 지방세의 비중도 상대적으로 높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이 이 유형에 속하며, 특히 덴마크는 사회보험료 비중이 매우 낮고 조세가 복지재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회보험 중심형 국가들은 사회보장기여금이 복지재원의 큰 비중을 차지하며, 직업별로 분절된 사회보험 체계를 갖는다. 이들 국가는 상대적으로 간접세보다 직접세 비중이 높고, 법인세율도 높은 편이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이 이 유형에 속하며, 특히 독일은 사회보험 중심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간주된다.

혼합형 국가들은 조세와 사회보험료가 균형을 이루는 재원구조를 갖는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이 이에 해당하며, 기초보장은 조세를 통해, 소득비례 보장은 사회보험을 통해 제공하는 이중구조가 특징이다. 최근에는 많은 국가들이 재원 다양화를 통해 혼합형으로 수렴하는 경향도 관찰된다.

또한 복지재정의 분권화 정도도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북유럽과 연방제 국가들은 지방정부의 복지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중앙집권적 국가들은 중앙정부 주도의 복지재정 구조를 갖는다. 복지재정의 분권화는 지역 특성에 맞는 서비스 제공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지역 간 복지 격차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인구고령화와 복지재정의 지속가능성

인구고령화는 복지재정, 특히 연금과 의료 분야에 막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 증가는 이미 현실이 되었으며, 향후 수십 년간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OECD 추계에 따르면, 인구고령화로 인해 2050년까지 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이 평균 2.5%p, 의료 및 장기요양 지출이 3.3%p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부과방식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에서는 근로세대 감소와 수급세대 증가로 인한 재정적 불균형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연금 재정의 장기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수급개시연령 상향, 기여기간 연장, 급여수준 조정, 적립식 요소 도입 등 다양한 개혁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노인의료비 증가도 복지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고령인구 증가와 함께 만성질환 유병률 상승, 의료기술 발전에 따른 비용 증가 등으로 인해 의료지출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예방적 건강관리 강화, 의료서비스 효율화, 본인부담금 조정 등의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나, 의료접근성과 형평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비용 통제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인구고령화에 대응한 복지재정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기존 제도의 모수적 개혁을 통한 지출 억제 전략이다. 연금 수급연령 상향, 급여 산식 조정, 의료 본인부담금 조정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 제도의 구조적 개혁을 통한 재정 안정화 전략이다. 확정급여형에서 확정기여형으로의 전환, 다층체계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셋째, 추가 재원 발굴을 통한 수입 확대 전략이다. 조세기반 확대, 목적세 도입, 사회보험료율 인상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스웨덴은 인구고령화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1990년대 중반 연금개혁을 통해 명목확정기여방식(NDC)을 도입하고, 자동안정화 장치를 설치하여 인구구조와 경제여건 변화에 자동으로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돌봄서비스 확충을 통해 고령자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함으로써 사회보장 기여자 기반을 확대했다.

세계화와 조세경쟁의 영향

세계화와 자본 이동성 증가는 복지국가의 재정 기반에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조세경쟁'(tax competition) 현상, 즉 국가들이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해 법인세율과 자본소득세율을 경쟁적으로 인하하는 현상은 복지재정의 잠재적 위협 요인이다. 1980년대 이후 OECD 국가들의 평균 법인세율은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바닥을 향한 경주'(race to the bottom) 가설에 따르면, 조세경쟁은 결국 복지국가의 재정 기반을 약화시키고 복지지출 삭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실증 연구에서는 세계화가 반드시 복지축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보상 가설'(compensation hypothesis)도 제기된다. 이에 따르면, 세계화로 인한 경제적 불안정성 증가가 오히려 사회보장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복지지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조세회피와 탈세도 복지재정의 중요한 위협 요인이다. 다국적 기업들의 '이전가격'(transfer pricing)을 통한 조세회피, 개인들의 역외 금융센터(offshore financial centers)를 통한 탈세 등으로 인해 상당한 규모의 조세수입이 누수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OECD의 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프로젝트, 자동정보교환(AEOI) 체계 구축 등 국제적 공조 노력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많은 복지국가들이 상당한 정책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높은 조세부담률과 관대한 복지제도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조세정책과 복지정책을 넘어 교육, 혁신, 노동시장 정책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 접근을 통해 '사회투자 국가'(social investment state) 모델을 발전시켰다.

최근에는 글로벌 차원의 조세개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G20과 OECD 주도로 추진되는 디지털세 도입, 글로벌 최저한세(global minimum tax) 설치 등은 조세경쟁을 제한하고 다국적 기업에 대한 과세 기반을 강화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국제적 협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복지국가의 재정적 지속가능성 확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재정위기와 복지개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어진 유로존 위기는 많은 국가들, 특히 남유럽 국가들의 복지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은 국가부채 급증과 재정적자 심화로 인해 '트로이카'(EU, ECB, IMF)의 구제금융에 의존해야 했고, 그 대가로 엄격한 긴축정책과 복지개혁을 요구받았다.

재정위기 상황에서의 복지개혁은 대개 단기적 지출 삭감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급여 수준 동결 또는 삭감, 수급 자격 강화, 본인부담금 인상 등의 조치가 신속하게 시행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위기의 부담을 전가할 우려가 있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적 자본과 인적 자원을 손상시킬 수 있다.

보다 지속가능한 접근은 복지지출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이는 '스마트 개혁'이다. 이는 단순한 급여 삭감보다 서비스 전달체계 개선, 프로그램 간 중복 해소, 표적화(targeting) 강화 등을 통해 동일한 자원으로 더 나은 성과를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아동 및 가족 지원, 평생학습 등 '사회투자' 영역의 지출을 보호하여 장기적 성장 기반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정위기 상황에서도 북유럽 국가들, 특히 스웨덴과 핀란드는 복지국가의 핵심 요소를 보존하면서 재정 안정화를 달성한 사례로 주목받는다. 이들 국가는 1990년대 경제위기 경험을 토대로, 재정준칙 도입, 지출 우선순위 재설정, 공공부문 효율화 등을 통해 복지 수준을 크게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재정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반면 남유럽 국가들은 기존 복지제도의 구조적 취약성(분절적 노동시장, 불평등한 복지 혜택, 취약한 조세행정 등)과 급진적 긴축정책의 결합으로 인해 복지국가의 기반이 크게 약화되었다. 특히 그리스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률 하락, 빈곤율 급증, 자살률 증가 등 사회적 비용이 컸으며, 경제회복도 지연되었다.

재정위기 시 복지개혁의 성공 여부는 개혁의 정치적 정당성과 사회적 합의에 크게 좌우된다. 위기 상황에서도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협력을 통한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가 이루어질 때, 보다 형평성 있고 효과적인 개혁이 가능하다. 핀란드, 네덜란드 등의 사례는 노사정 협의와 사회적 합의를 통한 위기 대응의 성공 모델로 평가받는다.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조건

복지국가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정부부채 비율이나 재정적자 수준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보다 포괄적인 접근으로, 재정적 지속가능성, 사회적 지속가능성, 정치적 지속가능성의 균형이 중요하다. 즉,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사회적 보호와 정치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복지모델을 발전시키는 것이 과제이다.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첫 번째 조건은 안정적이고 다양한 재원 구조이다. 직접세, 간접세, 사회보험료, 재산세, 환경세 등 다양한 세원을 균형 있게 활용함으로써 세수의 안정성과 충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과세기반을 넓히고 조세행정을 효율화하여 세수 누수를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두 번째 조건은 효율적인 복지지출 구조이다. 동일한 재원으로 더 큰 사회적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비용효과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증거기반 정책결정(evidence-based policy making), 프로그램 평가와 모니터링 강화, 혁신적 서비스 전달 모델 도입 등이 활용될 수 있다.

세 번째 조건은 장기적 성장 기반 구축을 위한 '사회투자'이다. 인적자본 형성, 고용 촉진, 사회적 배제 예방 등에 중점을 둔 투자적 복지 접근은 장기적으로 복지수요를 줄이고 재정 기반을 강화하는 선순환을 가능케 한다. 특히 아동 및 가족 지원,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평생학습 등은 '미래 복지지출 예방' 효과가 큰 영역이다.

네 번째 조건은 제도 간 상호보완성과 통합성이다. 복지, 조세, 노동시장, 교육 정책 등이 서로 정합성 있게 설계되어 시너지를 발휘할 때 정책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연한 노동시장과 강력한 사회안전망의 결합은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가능케 했다.

다섯 번째 조건은 인구변화와 경제여건 변화에 자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자동안정화 장치'(automatic stabilizers)이다. 스웨덴의 명목확정기여 연금제도, 캐나다의 연금지속가능성 조정 메커니즘 등은 정치적 의사결정 없이도 재정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복지국가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은 결국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지지에 기반해야 한다. 조세부담과 복지혜택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고, 세대 간 형평성을 유지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협력을 촉진하는 거버넌스 체계가 중요하다. 특히 복지개혁의 과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함으로써 '기여자'와 '수혜자'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새로운 재원 발굴과 복지재정의 혁신

전통적인 복지재원인 소득세, 법인세, 사회보험료 등이 직면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새로운 재원 발굴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추가 세수 확보를 넘어, 복지국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하는 의미 있는 시도들이다.

환경세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복지재원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이다. 탄소세, 에너지세, 폐기물세 등 다양한 형태의 환경세는 환경 오염 감소라는 1차적 효과와 함께, 그 세수를 복지프로그램에 활용함으로써 '이중 배당'(double dividend)을 얻을 수 있다.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환경세 수입의 상당 부분을 사회보장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불로소득과 자산에 대한 과세 강화도 주목받는 대안이다. 토지세, 부유세, 상속세, 금융거래세 등은 노동소득 대비 자본소득 과세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특히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21세기 자본』에서 글로벌 자본세 도입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주장했다. 이러한 접근은 '기능적 소득분배'(노동과 자본 간 소득 배분)의 불균형을 시정하고, 복지국가의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디지털 경제의 성장에 대응한 새로운 과세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세, 로봇세, 데이터세 등은 기술 변화로 인한 경제구조 변동을 과세체계에 반영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로봇세는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노동소득 기반 축소에 대응하여, 자본 집약적 생산방식에 과세함으로써 사회보장의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제안되고 있다.

목적세(earmarked tax)는 특정 조세 수입을 특정 지출 영역에 연계하는 방식으로, 복지재원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프랑스의 일반사회기여금(CSG)은 소득세와 사회보험료의 중간적 성격을 가진 목적세로, 사회보장 재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일본의 개호보험은 조세와 보험료를 결합한 독특한 재원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민간 자원의 동원과 혼합 재원 모델도 확대되고 있다. 사회성과연계채권(Social Impact Bond),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 크라우드 펀딩 등 혁신적 금융 방식을 통해 민간 자본을 사회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공공 재원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복합적 사회문제에 유연하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결론

복지국가의 재정적 기반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우선순위, 세대 간·계층 간 부담 배분, 국가와 시장과 개인의 책임 범위 등에 관한 근본적 선택을 반영한다. 조세와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한 복지재정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과 발전 방향을 가늠하는 필수적 기초이다.

현대 복지국가는 인구고령화, 노동시장 변화, 세계화,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도전 속에서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경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지출 삭감이나 증세를 넘어,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 관계를 구축하고, 사회투자적 접근을 강화하며, 복지 전달체계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종합적 전략을 요구한다.

특히 21세기 복지국가의 재정 전략은 '분배'와 '성장', '형평성'과 '효율성'을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는 관점을 넘어, 이들이 상호 보완적일 수 있는 정책 설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사회적 포용과 경제적 역동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 패러다임이 중요한 지향점이 될 수 있다.

또한 복지국가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은 단기적 수지 균형을 넘어,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적 자본과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환경적 지속가능성 등을 포괄하는 확장된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재정 지표만이 아니라, 사회지표와 환경지표를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접근을 요구한다.

복지국가의 재원 구조와 개혁 방향은 각국의 역사적 경로, 제도적 유산, 정치적 역학, 문화적 가치 등에 따라 상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협력, 세대 간 연대와 형평성, 증거기반 정책결정 등의 원칙은 보편적 중요성을 갖는다. 이러한 원칙들을 바탕으로, 각 사회는 자신의 고유한 맥락에 적합한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모델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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