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위험의 개념과 변화
사회적 위험(social risk)이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삶의 불확실성과 위협 요소를 말한다. 이는 소득 상실이나 지출 증가를 초래하여 개인과 가족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하시킬 수 있는 사건이나 상황을 포함한다. 실업, 질병, 산업재해, 노령, 사망 등이 전통적인 사회적 위험으로 간주되어 왔다. 복지국가의 핵심 기능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형성된 전통적 복지국가는 산업사회의 '구사회적 위험(old social risks)'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는 주로 남성 생계부양자의 소득 단절에 초점을 맞추었다. 실업보험, 산재보험, 건강보험, 연금제도 등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한 소득보장 체계가 이러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했다. 이 시기 복지국가의 기본 전제는 안정적인 경제성장, 완전고용, 표준적 고용관계, 전통적 가족구조(남성 생계부양자-여성 돌봄제공자)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탈산업화, 세계화, 인구구조 변화, 가족구조 변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환경이 크게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과는 다른 성격의 '신사회적 위험(new social risks)'을 출현시켰다. 테일러-구비(Taylor-Gooby)는 신사회적 위험을 "후기 산업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사회적 변화의 결과로 개인이 생애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위험"으로 정의했다.
신사회적 위험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위험의 개인화와 다양화다. 표준적 생애주기가 해체되고 개인의 선택과 책임이 강조되면서, 위험 경험도 더욱 개별화되고 다양해졌다. 둘째, 위험의 장기화와 만성화다. 과거에는 일시적·단기적 사건으로 인식되던 실업이나 빈곤이 이제는 장기적·구조적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셋째, 위험의 복합성과 누적성이다. 여러 위험 요소가 중첩되고 상호작용하면서, 특정 집단에게 위험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신사회적 위험의 주요 영역으로는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한부모 가족의 취약성, 저숙련 노동자의 고용불안정, 불충분한 사회보장 적용, 돌봄 서비스의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신사회적 위험은 특히 여성, 청년, 노인, 이주민, 저숙련 노동자 등 특정 집단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주목할 점은 전통적 복지국가가 남성 생계부양자를 중심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신사회적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도 급격한 경제·사회적 변화 속에서 구사회적 위험과 신사회적 위험이 중첩된 복잡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특히 압축적 근대화로 인해 선진국들이 순차적으로 경험한 변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위험의 중첩성과 복합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형 복지국가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층적 사회적 위험 구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인구구조 변화와 복지과제
인구구조 변화는 현대 복지국가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 중 하나다.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는 복지수요와 재원조달 양 측면에서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에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인구구조 변화는 단순한 인구학적 현상을 넘어 경제, 사회, 정치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변화다.
저출산은 세계적 추세지만, 한국은 특히 심각한 상황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며 인구대체율(2.1명)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초저출산 현상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저출산의 원인으로는 결혼·출산 가치관 변화, 양육비 부담, 일-가정 양립 어려움, 주거 불안정, 노동시장 불확실성, 교육 경쟁 등 복합적 요인이 지목된다.
저출산은 여러 복지과제를 제기한다. 우선 가족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히 출산율 제고를 목표로 하는 인구정책적 접근에서 벗어나, 일-가정 양립 지원, 성평등한 돌봄 분담, 아동·청소년의 삶의 질 향상 등을 포괄하는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구체적으로는 보육·교육서비스 확충, 육아휴직 활성화, 유연근무제 확대, 주거지원 강화, 아동수당과 같은 현금지원 확대 등이 필요하다.
고령화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2000년에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7% 이상), 2018년에 고령사회(14% 이상)에 진입했으며,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20% 이상)에 도달할 전망이다. 프랑스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115년이 걸린 것에 비해, 한국은 불과 18년 만에 이 과정을 경험했다. 이러한 압축적 고령화는 사회적 적응과 제도 개혁의 시간적 여유를 제약한다.
고령화는 노후소득보장, 의료·돌봄 서비스, 주거환경, 사회참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 대응을 요구한다. 특히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과 적정성 확보가 핵심 과제다. 국민연금의 낮은 소득대체율, 광범위한 사각지대, 재정 불안정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한국 복지국가의 장기적 과제다. 또한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와 돌봄 비용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장기요양보험 확충,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 등의 정책이 요구된다.
인구구조 변화는 세대 간 자원배분 문제를 정치화하는 경향이 있다. 고령인구 증가는 노인 관련 복지지출 확대 압력으로 이어지는 반면,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재원조달 기반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대 간 공평성과 연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는 중요한 정치적 과제다. 일부에서는 '세대 갈등'이나 '세대 간 형평성' 담론이 제기되지만, 이는 복지재원의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관점이라는 비판도 있다. 보다 생산적인 접근은 생애주기 관점에서 각 세대의 필요와 기여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생애주기 복지국가' 모델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금급여, 서비스, 시간정책, 인프라 등을 포괄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중앙정부, 지방정부, 기업, 시민사회, 가족 등 다양한 주체 간의 협력과 책임 분담도 중요하다. 특히 한국처럼 압축적·급진적 인구변화를 경험하는 국가에서는, 장기적 비전과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 추진이 필수적이다.
노동시장 변화와 고용 불안정성
노동시장은 산업구조 변화, 기술 발전, 세계화 등의 영향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고용관계의 본질, 직업 구조, 일자리 특성, 노동자의 경험 등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특히 주목할 변화는 노동시장 유연화, 서비스 경제화, 디지털 전환, 플랫폼 경제 확산 등이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용 불안정과 노동시장 양극화라는 심각한 도전도 제기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현상으로, 고용·해고의 유연성, 임금 유연성, 업무 유연성, 노동시간 유연성 등을 포함한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효율성 제고라는 명목으로 추진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확대, 고용 불안정 심화, 저임금 일자리 증가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특히 유연화의 혜택과 비용이 불균등하게 분배되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labor market dualization)가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내부자(insiders)와 외부자(outsiders)의 분절을 의미한다. 내부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 높은 임금, 양호한 근로조건, 강한 사회보장을 누리는 반면, 외부자는 불안정 고용, 낮은 임금, 열악한 근로조건, 약한 사회보장에 직면한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이중구조가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공공-민간 등 여러 차원에서 중첩적으로 나타난다. 2022년 기준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임금노동자의 약 38%로 OECD 평균을 상회하며,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약 69%에 불과하다.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 경제의 확산은 노동의 형태와 고용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플랫폼 노동, 긱 이코노미(gig economy), 크라우드 워크(crowd work) 등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일부 노동자에게 유연성과 자율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고용 불안정, 소득 불안정, 사회보장 배제, 노동권 약화 등의 문제도 야기한다. 특히 이러한 비표준적 고용형태는 기존의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이러한 노동시장 변화는 복지국가에 여러 도전을 제기한다. 첫째, 사회보험의 적용 범위와 실효성 문제다. 전통적 사회보험은 표준적 고용관계(정규직, 전일제, 장기고용)를 전제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비정형 노동자나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는 노동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한다. 둘째, 소득 불평등과 근로빈곤 심화다. 노동시장 양극화는 임금 격차를 확대하고 저임금 일자리를 증가시켜, '일해도 가난한' 근로빈곤층을 양산한다. 셋째, 직업 불안정성과 경력 단절 증가다. 평생직장 개념이 약화되고 잦은 직업 전환이 일상화되면서, 경력 개발과 소득 안정성 유지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사회보장제도의 포괄성 강화다. 고용형태나 종사상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기본적인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보편적 사회보장'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고용보험의 전 국민 적용, '소득 기반' 사회보험 체계로의 전환,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의 연계 강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ALMP)의 강화다. 급변하는 노동시장에서 개인의 고용가능성과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직업훈련, 평생학습, 경력개발 지원, 취업 연계 서비스 등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술 변화로 인한 직무 대체 위험이 높은 직종의 노동자들을 위한 선제적 지원이 중요하다.
셋째, 일자리 질(job quality)의 제고다. 단순히 일자리 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적정 임금, 고용 안정성, 사회보장, 작업 환경, 직업 훈련 기회 등을 포괄하는 '좋은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사용 제한,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합 강화 등의 정책이 요구된다. 또한 디지털 경제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일자리에도 적절한 노동기준과 사회적 보호를 적용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근로빈곤과 불평등 심화
근로빈곤(working poverty)은 일을 하면서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노동은 빈곤에서 벗어나는 주요 경로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취업 자체가 빈곤 탈출을 보장하지 않는 상황이 증가하고 있다. 근로빈곤은 단순한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부족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복지제도, 가족구조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다.
근로빈곤의 주요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지목된다. 첫째, 저임금 일자리 확대다. 서비스 경제화, 세계화로 인한 경쟁 심화, 노동조합 약화 등으로 인해 저임금 부문이 확대되고 있다. 둘째, 불안정 고용 증가다. 비정규직, 시간제, 특수고용 등 불안정 고용형태가 확산되면서, 고용 단절과 소득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다. 셋째, 가구 특성이다. 특히 한부모 가구, 일인 생계부양자 가구, 돌봄 부담이 큰 가구 등은 근로빈곤 위험이 높다. 넷째, 복지제도의 한계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공공부조의 불충분성, 일-복지 연계의 미흡 등도 근로빈곤 지속에 기여한다.
한국의 근로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특히 비정규직, 자영업자, 청년, 여성, 고령층, 저학력층 등에서 근로빈곤 위험이 높게 나타난다. 자영업자의 경우, 영세 자영업의 비중이 높고 소득 불안정성이 크며 사회보장 적용률이 낮아 근로빈곤에 특히 취약하다. 한국의 높은 근로빈곤율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서비스업 중심의 저임금 일자리 확대, 자영업 과밀화, 가족 기능 약화, 복지제도의 미성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불평등 심화도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회적 위험이다. 소득 불평등은 1980년대 이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지니계수와 상대적 빈곤율은 OECD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며, 특히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자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보다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금융자산 확대는 자산 격차를 더욱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불평등 심화는 여러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첫째, 사회이동성 저하와 기회 불평등 심화다. 특히 교육, 주거, 건강, 문화적 자본 등에서의 격차가 세대 간 이전되면서, '기회의 불평등'이 구조화될 위험이 있다. 둘째, 사회통합과 신뢰 약화다. 심각한 불평등은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자본과 신뢰를 약화시킨다. 셋째, 경제성장 둔화다. 중산층 약화와 내수 시장 위축, 인적자본 개발 저해,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 등을 통해 장기적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근로빈곤과 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은 크게 노동시장 정책, 소득보장 정책, 자산형성 지원 정책, 사회서비스 정책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노동시장 정책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규제 강화, 일자리 질 개선, 노동권 보호 등이 중요하다. 소득보장 정책으로는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실업급여 강화,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아동수당·기초연금 등 범주적 급여 확충 등이 필요하다. 자산형성 지원 정책으로는 저소득층 자산형성 프로그램, 주택정책 개혁, 상속·증여세 강화 등이 고려될 수 있다. 사회서비스 정책으로는 보육, 교육, 의료, 주거, 돌봄 등 필수 서비스의 공공성과 접근성 강화가 중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분절적 접근이 아닌 통합적 접근이다. 근로빈곤과 불평등은 복합적 원인에 의해 발생하므로, 노동-복지-교육-주거 등을 연계한 종합적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단기적 대응을 넘어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사회 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 간의 협력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생애주기 관점과 복지정책
생애주기 접근(life course approach)은 개인이 출생부터 사망까지 경험하는 다양한 생애 사건과 전환에 주목하는 분석 틀이다. 이 관점은 인간 발달을 특정 시점의 단면이 아닌 장기적 과정으로 이해하며, 삶의 다양한 영역(교육, 노동, 가족, 건강 등)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생애주기 접근은 복지정책 설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생애주기 접근의 핵심 개념으로는 생애 궤적(trajectory), 전환(transition), 중대 사건(critical event), 민감기(sensitive period), 누적적 이점/불이익(cumulative advantage/disadvantage) 등이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생애 초기의 경험과 환경은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며, 생애 과정에서 경험하는 위험과 기회는 누적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과거의 선택과 경험이 현재와 미래의 선택지를 제약하는 '경로의존성'도 중요한 특징이다.
생애주기 관점에서 사회적 위험은 각 생애 단계마다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아동기에는 빈곤, 학대, 교육 기회 부족 등이, 청년기에는 교육-노동시장 이행 문제, 주거 불안정, 정신건강 위기 등이, 중장년기에는 실업, 가족 해체, 돌봄 부담 등이, 노년기에는 소득 상실, 건강 악화, 사회적 고립 등이 주요 위험이다. 생애주기 복지국가는 이러한 생애주기별 위험에 대응하여 적절한 지원과 보호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생애주기 관점이 복지정책에 주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예방적·투자적 접근의 중요성이다. 생애 초기의 적절한 개입과 투자는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이고 비용 효율적일 수 있다. 유아기 투자, 양질의 교육, 청년 취업 지원 등은 단순한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둘째, 생애 전환기 지원의 필요성이다. 학교에서 직장으로, 일자리 간, 가족 구성의 변화, 은퇴 등 주요 생애 전환기에 집중적인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 적응을 촉진할 수 있다. 셋째, 통합적·연속적 서비스 체계의 구축이다. 삶의 영역(일, 가족, 건강, 교육 등)과 생애 단계 간의 연계성을 고려한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분절적 접근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최근 여러 국가에서 생애주기 관점을 복지정책에 적용하는 시도가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회투자전략(social investment strategy)'은 인적자본 개발, 일-가정 양립 지원,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을 통해 시민들의 생애 역량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접근법이다. 이는 전통적 복지국가의 '사후적 보호' 중심 접근에서 '예방적 투자' 중심 접근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사회투자전략은 특히 북유럽 국가들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스웨덴, 덴마크 등은 양질의 보육·교육 서비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가족친화적 노동환경 등을 통해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사회투자를 실현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이들 국가는 높은 사회지출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경쟁력과 고용률도 높게 유지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 정부 시기에 '아동 중심 사회투자 전략'이 추진되었다. '모든 아동이 중요하다(Every Child Matters)' 프로그램을 통해 생애 초기부터의 통합적 지원을 강화했으며, 특히 빈곤아동에 대한 집중 투자를 통해 빈곤의 세대 간 전승을 차단하고자 했다. 슈어스타트(Sure Start) 프로그램은 취약계층 아동과 가족에게 종합적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적 사례다.
호주는 '생애 전환 프레임워크(Life Transitions Framework)'를 통해 주요 생애 전환기에 집중적 지원을 제공하는 접근을 발전시켰다. 학교에서 직장으로의 이행, 출산과 육아, 경력 전환, 은퇴 등 주요 생애 전환기에 맞춤형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위기를 최소화하고 적응을 촉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는 생애 전체에 걸친 '사회적 위험 관리(social risk management)' 체계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생애주기 접근을 복지정책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확대되고 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여러 정부에서 주요 정책 기조로 제시되었으며, 아동수당, 청년 취업 지원, 중장년 재충전 지원, 기초연금 등 생애주기별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종합적 전략보다 개별 프로그램 중심의 접근이 주를 이루며, 생애주기 간 연계성과 통합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생애주기 접근을 한국 복지정책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단순한 생애주기별 '분류'를 넘어, 생애 과정의 연속성과 상호연관성을 고려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현금급여, 서비스, 시간정책, 규제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의 조합이 중요하다. 셋째, 부처 간, 중앙-지방 간 분절성을 극복하고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계층, 젠더, 지역 등에 따른 생애주기 경험의 다양성과 불평등을 고려해야 한다.
구체적인 생애주기별 정책 방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동기에는 보편적 아동수당, 양질의 보육·교육 서비스, 아동보호체계 강화, 아동 빈곤 퇴치 등이 핵심 과제다. 청년기에는 교육-노동시장 이행 지원, 주거 안정성 확보, 청년 자산형성 지원, 정신건강 서비스 등이 중요하다. 중장년기에는 일-가정 양립 지원, 평생학습과 직업훈련, 경력 전환 지원, 가족돌봄 지원 등이 필요하다. 노년기에는 적정 소득보장, 의료 및 장기요양 서비스, 사회참여 촉진, 존엄한 죽음을 위한 지원 등이 주요 과제다.
돌봄의 사회화와 복지 과제
생애주기 관점에서 볼 때, 돌봄(care)은 모든 인간이 생애 어느 시점에서든 제공하거나 받게 되는 보편적 경험이다. 전통적으로 돌봄은 가족, 특히 여성의 무급 노동에 의존해왔지만,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 가족구조 변화, 인구고령화 등으로 인해 '돌봄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돌봄의 사회화'가 중요한 복지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돌봄의 사회화란 전통적으로 가족 내에서 무급으로 수행되던 돌봄 노동을 사회적 책임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이는 돌봄 서비스의 공적 제공, 돌봄 비용의 사회적 분담, 돌봄 시간의 보장, 돌봄 노동의 가치 인정 등 다양한 측면을 포함한다. 돌봄의 사회화는 단순한 서비스 확대를 넘어, 돌봄의 가치와 책임에 대한 사회적 재구성을 의미한다.
돌봄 정책은 크게 아동돌봄과 노인·장애인 돌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아동돌봄 영역에서는 보육서비스, 육아휴직, 방과후 돌봄, 아동수당 등의 정책이 발전해왔다. 노인·장애인 돌봄 영역에서는 장기요양보험, 장애인활동지원, 가족돌봄휴가, 돌봄수당 등의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돌봄 제공자와 수혜자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각국의 돌봄 정책 접근은 다양한 모델로 나타난다. 북유럽 국가들은 공공 중심의 보편적 서비스 모델을 특징으로 한다. 양질의 공공 돌봄 서비스, 관대한 육아휴직, 돌봄 인프라에 대한 높은 공적 투자가 이루어진다. 대륙 유럽 국가들은 가족주의와 사회보험을 결합한 혼합 모델을 보인다. 돌봄수당과 같은 현금급여, 가족 내 돌봄 지원, 사회보험 방식의 장기요양 제도 등이 특징이다. 남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가족 중심 모델이 강했으나, 최근에는 공적 돌봄 체계를 확대하는 추세다.
한국의 돌봄 정책은 2000년대 이후 크게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여러 한계와 과제가 있다. 우선 서비스의 양적 확대에 비해 질적 수준 향상은 미흡하다. 특히 돌봄 노동자의 낮은 처우와 열악한 근로조건은 서비스 질 향상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둘째, 서비스, 시간, 현금 등 다양한 정책 수단 간의 균형과 통합이 부족하다. 셋째, 공공성과 보편성이 여전히 취약하다. 민간 중심의 서비스 공급 구조와 선별적 접근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넷째, 젠더 형평성 측면에서의 한계가 있다. 돌봄의 사회화에도 불구하고, 가족 내 돌봄 부담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돌봄의 사회화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 방향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제시된다. 첫째, 돌봄 서비스의 공공성과 질적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 공공 인프라 확충, 돌봄 노동자 처우 개선, 서비스 표준화와 질 관리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 둘째, 돌봄 시간을 보장하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육아휴직, 가족돌봄휴가, 유연근무제 등을 확대하고, 남성의 돌봄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 셋째, 현금급여와 서비스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다. 아동수당, 장기요양급여, 돌봄수당 등 현금급여와 직접 서비스의 균형 있는 발전이 중요하다. 넷째, 지역사회 기반 돌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커뮤니티 케어' 모델을 통해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돌봄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돌봄의 사회화는 단순한 복지서비스 확대를 넘어, 사회의 가치체계와 책임 구조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돌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돌봄 책임의 공정한 분담을 실현하는 것은 더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핵심 과제다. 이는 젠더 평등, 세대 간 연대, 사회적 포용이라는 가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위험 대응을 위한 복지체제 혁신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복지체제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전통적 복지국가가 산업사회의 '구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되었다면, 21세기 복지국가는 탈산업사회의 '신사회적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이러한 복지체제 혁신의 방향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회보장 체계의 보편성과 포괄성 강화다. 전통적 사회보험은 표준적 고용관계를 전제로 설계되어, 다양한 고용형태와 직업경로를 가진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용 지위나 기여 이력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기본적인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는 보편적 사회보장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소득 기반 사회보험'으로의 전환,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의 유기적 연계, '사회적 최저선(social floor)'의 확립 등이 제안된다.
일부 국가에서는 '기본소득(basic income)'이 새로운 사회보장 모델로 논의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무조건적으로 제공되는 정기적 현금급여로, 노동시장 참여나 필요 증명 없이 지급된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이 제도가 복잡한 기존 복지제도를 단순화하고, 불안정 노동 시대의 소득 안정성을 제공하며, 개인의 자율성과 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정적 지속가능성, 노동유인 효과, 기존 복지제도와의 관계 등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둘째, 사회투자 중심의 능동적 복지체제 구축이다. 사회투자는 사후적 소득 보전을 넘어 인적자본 개발, 사회적 위험 예방, 노동시장 참여 촉진 등을 통해 시민의 생애 역량을 강화하는 접근법이다. 특히 양질의 보육·교육,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평생학습 등에 대한 투자는 개인의 적응력과 회복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사회투자 전략은 '보호(protection)'와 '촉진(promotion)'의 균형을 추구하며, 복지국가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강화할 수 있다.
사회투자 전략은 특히 생애 초기 단계에 대한 집중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양질의 영유아 보육·교육, 아동·청소년 발달 지원, 취약가족 통합 서비스 등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가장 큰 사회적·경제적 수익을 가져올 수 있다. 이는 '미래세대 복지'의 관점에서 세대 간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는 접근이기도 하다.
셋째, 통합적·맞춤형 서비스 전달체계 구축이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은 복합적이고 다차원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분절적·획일적 서비스로는 효과적 대응이 어렵다. 이에 '통합사례관리', '원스톱 서비스',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 등 수요자 중심의 통합적 접근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복합적 욕구를 가진 취약계층을 위해서는 소득, 고용, 주거, 건강, 돌봄 등을 포괄하는 통합적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통합적·맞춤형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도구다. '디지털 복지국가(digital welfare state)'라는 개념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을 활용해 개인별 생애주기와 필요에 맞는 정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복지 모델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정보 격차(digital divide), 알고리즘 편향, 개인정보 보호 등의 새로운 도전도 제기한다.
넷째, 다층적 복지거버넌스 구축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시장-시민사회-가족 간의 새로운 역할 분담과 협력이 필요하다. 전통적 복지국가가 국가 중심 모델이었다면, 21세기 복지체제는 다양한 주체의 역량을 결합하는 '복지혼합(welfare mix)' 또는 '복지다원주의(welfare pluralism)'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국가의 역할은 직접 서비스 제공자에서 조정자, 규제자, 촉진자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사회 중심의 복지 모델도 주목받고 있다. '커뮤니티 케어', '지역사회 복지생태계', '로컬 푸드 네트워크' 등은 지역 수준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하여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법이다. 이는 거대 관료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해결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돌봄, 주거, 고용 등의 영역에서 지역 기반 혁신 모델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한국의 복지체제 혁신을 위해서는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를 참고하되, 한국의 특수한 맥락과 도전을 고려한 독자적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한국은 압축적 경제성장과 복지발전을 경험했기 때문에, 선진국들이 순차적으로 경험한 변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이는 '구사회적 위험'과 '신사회적 위험'이 중첩된 복잡한 상황을 의미한다.
한국 복지국가의 주요 과제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사회보험 사각지대 축소, 돌봄의 사회화 확대, 주거안정성 강화, 지역 간 격차 완화 등이 있다. 이러한 과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선진국 모델의 모방이 아닌, 한국의 경제·사회·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한국형 복지모델'의 발전이 필요하다. 이는 공동체 전통, 가족 유대, 높은 교육열, 디지털 기술 발전 등 한국의 강점을 활용하면서, 노동시장 분절화, 급속한 고령화, 지역 불균형 등의 도전에 대응하는 통합적 접근을 요구한다.
결론
인구·노동시장 변화와 사회적 위험의 재구성은 현대 복지국가에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제시한다. 저출산·고령화, 노동시장 유연화, 가족구조 변화, 디지털 전환 등으로 인해 전통적 복지국가의 전제와 기반이 약화되고 있으며,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위험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복지국가의 근본적 혁신과 재구성을 요구한다.
생애주기 관점은 이러한 복잡한 변화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개인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생애 전체의 연속성과 상호연관성 속에서 이해함으로써, 더 통합적이고 예방적인 접근이 가능해진다. 특히 생애 초기 투자, 주요 전환기 지원, 생애 단계별 맞춤형 서비스 등의 접근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21세기 복지국가의 발전 방향은 '보호'와 '투자'의 균형, 보편성과 맞춤형 지원의 결합, 다양한 정책 수단의 통합적 활용, 다층적 거버넌스 구축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 복지국가의 가치와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는 혁신적 접근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는 압축적 근대화와 급격한 사회변화로 인해 더욱 복잡한 사회적 위험 구조에 직면해 있다. 노동시장 이중화, 급속한 고령화, 저출산, 가족기능 약화, 주거불안 등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상황에서, 단편적이고 잔여적인 접근으로는 효과적 대응이 어렵다. 따라서 한국형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보장의 보편성 강화, 사회투자 확대, 통합적 서비스 체계 구축, 다층적 복지거버넌스 발전 등 종합적 전략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복지국가의 과제는 단순한 위험 관리나 소득 보장을 넘어, 모든 시민이 전생애에 걸쳐 존엄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경제적 효율성, 사회적 형평성,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균형 있게 추구하는 '포용적 복지국가'의 비전을 요구한다.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 시장, 시민사회, 가족 등 다양한 주체의 협력과 책임 분담, 그리고 세대 간 연대와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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