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는 이념과 정책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실제 서비스로 구현되어 수요자에게 전달되어야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아무리 이상적인 복지정책이라도 효과적인 전달체계가 없다면 종이 위의 계획에 불과하다. 따라서 서비스 전달체계(service delivery system)는 복지정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최근 복지 환경의 변화와 함께 국가, 시장, 시민사회 간의 새로운 역할 분담과 협력 방식을 의미하는 거버넌스(governance)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사회복지 서비스 전달체계의 개념과 구조, 복지혼합(welfare mix) 현상, 그리고 새로운 공공관리와 거버넌스의 발전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서비스 전달체계의 개념과 중요성
서비스 전달체계란 사회복지 서비스가 공급자로부터 수요자에게 전달되는 조직적 배열과 절차의 총체를 의미한다. 즉, 복지 서비스와 급여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고, 어떤 경로를 통해 대상자에게 전달되는지를 규정하는 제도적 장치다.
전달체계의 중요성은 여러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효과성과 효율성의 측면이다. 적절한 전달체계는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복지효과를 달성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접근성과 형평성의 측면이다. 전달체계는 서비스 대상자가 필요한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셋째, 책임성과 투명성의 측면이다. 복지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책임소재가 명확하고 투명해야 부패나 비효율을 방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통합성과 연속성의 측면이다. 복합적 욕구를 가진 대상자에게 분절적이 아닌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애주기에 따른 연속적 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
서비스 전달체계의 구성요소는 크게 공급자(provider), 전달자(deliverer), 그리고 수요자(consumer)로 나눌 수 있다. 공급자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재원을 마련하는 주체로, 정부, 민간기업, 비영리단체 등이 포함된다. 전달자는 실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간조직이나 일선 기관을 의미하며, 수요자는 서비스의 최종 이용자인 개인이나 가족이다. 이들 간의 관계 설정과 역할 분담이 전달체계의 핵심 과제다.
전통적 전달체계 모델과 한계
전통적으로 복지국가에서는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제적인 전달체계 모델이 지배적이었다. 이 모델에서는 국가가 서비스의 기획, 재원조달, 전달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한다. 서비스 내용과 대상, 전달방식이 법과 규정에 의해 표준화되고, 위계적 행정체계를 통해 집행된다.
이러한 전통적 모델은 보편적 서비스 제공과 형평성 보장에 강점이 있었다. 또한 명확한 책임소재와 정치적 정당성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다양한 한계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첫째, 관료제적 경직성으로 인해 개별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표준화된 서비스는 효율적일 수 있으나, 개인마다 다른 복지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둘째, 분절성과 파편화 문제다. 부처별, 프로그램별로 분리된 전달체계는 복합적 욕구를 가진 대상자에게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서비스 중복이나 사각지대 발생의 원인이 된다.
셋째, 대응성과 효율성의 저하다. 중앙집권적 체계는 현장의 변화나 위기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 어려우며, 과도한 행정비용과 절차적 복잡성으로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요자 참여와 선택의 제한이다. 전통적 모델에서는 서비스 수요자가 수동적 수혜자로 인식되며, 서비스 내용이나 전달방식에 대한 선택권이 제한된다.
이러한 한계점들은 1980년대 이후 복지국가 재편과 맞물려 새로운 전달체계 모델의 모색으로 이어졌다. 특히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와 거버넌스(Governance) 패러다임의 등장은 복지 전달체계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복지혼합(Welfare Mix)의 등장과 특성
1980년대 이후 복지국가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복지혼합' 현상의 확산이다. 복지혼합이란 복지 서비스의 공급과 전달이 더 이상 국가만의 독점적 영역이 아니라, 시장, 시민사회, 가족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혼합적 체계로 변화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첫째, 재정적 요인으로, 복지국가의 재정위기와 효율성 제고의 필요성이 민간 참여 확대로 이어졌다. 둘째, 이념적 요인으로, 신자유주의 확산과 함께 국가 역할의 축소와 시장 원리 도입이 강조되었다. 셋째, 사회적 요인으로, 복지 욕구의 다양화와 개인화에 따라 획일적인 국가 서비스의 한계가 부각되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요인으로, 시민사회의 성장과 참여 민주주의 요구가 증가했다.
복지혼합 현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제공주체의 다원화로, 국가 외에 영리기업, 비영리단체,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이 복지 서비스 제공에 참여한다. 둘째, 재원조달의 다양화로, 공적 재원 외에 민간투자, 기부금, 이용료 등이 복합적으로 활용된다. 셋째, 전달방식의 변화로, 직접 서비스 제공보다 계약, 바우처, 조세 혜택 등을 통한 간접적 전달방식이 확대된다.
복지혼합의 이론적 모형으로는 이블스크(Evers)의 '복지 삼각형' 모델이 대표적이다. 이 모델은 국가, 시장, 시민사회라는 세 꼭지점 사이의 다양한 혼합 지점에 복지 조직들이 위치한다고 본다. 순수한 공공, 시장, 시민사회 조직이 아닌 이들 간의 하이브리드 형태로 사회적 기업, 준공공기관, 계약형 비영리기관 등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복지혼합은 다양한 장점을 제공한다. 선택권과 다양성 증진, 혁신과 창의성 촉진, 자원의 효율적 활용, 시민참여 확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서비스 질의 불균등, 공공성 약화, 책임 소재의 불명확성, 취약계층 배제 위험 등의 한계도 존재한다.
계약주의와 준시장 모델
복지혼합의 주요 형태 중 하나는 계약주의(contracting-out)에 기반한 준시장(quasi-market) 모델이다. 이는 국가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민간 조직과의 계약을 통해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준시장 모델의 핵심은 구매자-공급자 분리(purchaser-provider split)에 있다. 국가는 서비스 기준을 설정하고 재원을 조달하는 구매자 역할을 담당하고, 민간 조직들은 경쟁을 통해 서비스 공급 계약을 따내는 공급자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공공 부문의 독점적 공급구조를 경쟁적 시장구조로 전환하되, 재원은 여전히 공적으로 조달함으로써 접근성을 보장하는 '준(準)시장' 체제를 구축한다.
영국은 1990년대 이후 사회서비스, 의료, 주거 등 다양한 복지 영역에서 준시장 모델을 적극 도입했다. 1990년 지역사회보호법(Community Care Act)은 지방정부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 민간 공급자와의 계약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구매자-공급자 분리를 제도화했다. 호주, 뉴질랜드 등도 유사한 개혁을 추진했다.
준시장 모델의 장점으로는 경쟁을 통한 효율성과 질 향상, 소비자 선택권 확대, 혁신 촉진 등이 있다. 그러나 거래비용 증가, 불완전 정보로 인한 시장실패, 크리밍(creaming)이나 파킹(parking) 같은 선별행위 발생, 공공성 약화 등의 한계도 지적된다.
실증 연구들은 준시장 모델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진정한 경쟁 환경 조성이 어렵고, 계약 관계의 불균형으로 인해 혁신보다는 안정적 관계 유지에 치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에 최근에는 단순한 계약 관계를 넘어 파트너십과 네트워크에 기반한 협력적 거버넌스가 강조되고 있다.
신공공관리(NPM)와 복지 거버넌스
복지 전달체계의 변화는 광범위한 행정개혁 패러다임인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 NPM)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신공공관리는 1980년대 이후 영국, 뉴질랜드 등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행정개혁 운동으로, 공공부문에 민간 경영 기법과 시장 원리를 도입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공공관리의 핵심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과 중심 관리로, 투입이 아닌 산출과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명확한 성과지표와 평가체계를 도입한다. 둘째, 경쟁 원리 도입으로, 공공서비스 공급에 시장 메커니즘과 경쟁체제를 적용한다. 셋째, 분권화와 유연화로, 중앙집권적 통제를 완화하고 현장에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한다. 넷째, 고객 지향성으로, 서비스 이용자를 수동적 수혜자가 아닌 선택권을 가진 고객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신공공관리 원칙은 복지 전달체계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사회서비스 영역에서는 바우처 제도, 성과기반 계약, 서비스 품질관리 체계 등이 도입되었다. 공공부조 영역에서는 조건부 급여, 취업 연계 프로그램, 사례관리 체계 등이 강화되었다. 의료 영역에서는 내부시장 도입, 의료기관 간 경쟁 촉진, 성과연동 지불제도 등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신공공관리의 한계와 부작용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도한 성과주의는 측정 가능한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게 만들고, 복합적 가치가 중요한 복지 영역의 특성을 간과하게 했다. 또한 경쟁 원리의 무분별한 도입은 협력을 저해하고 서비스 파편화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신공공관리를 넘어 '신공공거버넌스(New Public Governance)'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주목받고 있다.
신공공거버넌스는 다양한 행위자들 간의 네트워크와 협력적 관계를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정부와 민간의 이분법적 구분이나 계약 관계를 넘어, 정부, 시장, 시민사회가 상호 의존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복합적인 사회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는 협력적 거버넌스를 지향한다.
공동생산(Co-production)과 참여적 거버넌스
최근 복지 전달체계에서 주목받는 개념 중 하나는 '공동생산(co-production)'이다. 공동생산이란 서비스의 전문가와 이용자가 함께 서비스를 설계하고 전달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서비스 이용자를 단순한 수혜자나 소비자가 아닌, 서비스 생산의 적극적 파트너로 인식하는 관점의 전환이다.
공동생산의 개념은 1970년대 미국의 행정학자 오스트롬(Elinor Ostrom)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 그녀는 시민들이 공공서비스 생산에 참여할 때 서비스의 효과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사회서비스, 보건의료, 지역개발 등 다양한 복지 영역에서 공동생산 접근법이 확산되었다.
공동생산의 유형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보일과 해리스(Boyle & Harris)는 공동생산을 공동계획(co-planning), 공동설계(co-design), 공동전달(co-delivery), 공동평가(co-assessment) 등으로 구분했다. 공동계획은 서비스 우선순위와 자원배분에 이용자가 참여하는 것이고, 공동설계는 서비스 내용과 전달방식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다. 공동전달은 이용자가 서비스 제공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며, 공동평가는 서비스 평가와 개선 과정에 이용자의 피드백이 반영되는 것이다.
공동생산이 잘 작동하는 사례로는 영국의 키이즈(KeyRing) 프로그램이 있다. 이는 학습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네트워크로, 전문가의 일방적 지원이 아닌 구성원 간 상호지원과 공동활동을 통해 운영된다. 또한 핀란드의 정신건강 회복 모델인 '열린 대화(Open Dialogue)'도 전문가와 환자, 가족이 대등한 관계에서 치료 계획을 함께 수립하는 공동생산의 사례다.
공동생산은 여러 장점을 가진다. 이용자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 제공, 자원 활용의 효율성 증대, 이용자 역량강화와 자율성 증진, 지역사회 연대와 신뢰 구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전문가의 저항, 권한과 책임의 불명확성, 이용자 참여의 형식화 위험, 참여 역량의 불평등 등의 과제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공동생산을 넘어 참여적 거버넌스로 개념이 확장되고 있다. 참여적 거버넌스는 정책과 서비스의 기획, 결정, 집행, 평가 전 과정에 시민과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포괄적 거버넌스 모델이다. 이는 복지 서비스의 민주적 정당성과 대응성을 높이고, 다양한 관점과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디지털 전환과 스마트 복지 전달체계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복지 전달체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전통적인 대면 서비스 중심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복지 전달체계로의 전환이 진행 중이다.
디지털 복지 전달체계의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첫째, 통합정보시스템 구축으로, 분절된 복지 정보와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연계하는 플랫폼이 발전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이나 영국의 Universal Credit 시스템이 그 사례다. 둘째, 모바일 기반 서비스로, 스마트폰 앱을 통한 복지 서비스 신청, 정보 제공, 상담 등이 확대되고 있다. 셋째, 원격 서비스 확대로, 화상 상담, 원격 의료, 온라인 교육 등 물리적 거리를 넘어선 서비스 전달이 가능해졌다. 마지막으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활용이다. 복지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복지 사각지대를 예측하는 등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장점으로는 접근성과 편의성 향상, 서비스 통합과 연계 강화, 실시간 대응 가능성 증가, 자원의 효율적 배분 등이 있다. 그러나 디지털 격차와 배제 위험, 개인정보 보호와 윤리적 문제, 대면 서비스의 가치 약화, 알고리즘 편향과 차별 가능성 등의 도전과제도 존재한다.
특히 버지니아 유뱅크스(Virginia Eubanks)는 『자동화된 불평등(Automating Inequality)』에서 복지 영역의 자동화된 의사결정 시스템이 빈곤층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구조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디지털 가난의 감옥'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디지털 복지 전달체계는 기술적 효율성만이 아닌 사회적 형평성과 윤리적 관점에서도 설계되어야 한다.
향후 디지털 복지 거버넌스의 발전 방향으로는 '사람 중심' 접근의 유지, 디지털 접근성 보장, 데이터 거버넌스 확립, 하이브리드 모델(대면+비대면) 개발 등이 제시되고 있다. 결국 기술은 복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며, 복지의 본질적 가치인 인간 존엄성과 사회연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한국 복지 전달체계의 변화와 과제
한국의 복지 전달체계는 복지국가 발전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초기에는 중앙집권적이고 분절적인 전달체계가 주를 이루었으나, 2000년대 이후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전달체계 구축을 위한 다양한 개혁이 진행되었다.
한국 복지 전달체계 개혁의 주요 흐름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합적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제도적 노력이다. 2006년 시작된 주민생활지원서비스 전달체계 개편, 2012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 구축, 2017년 읍면동 복지허브화 사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 공공-민간 협력 강화와 거버넌스 확대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운영,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추진, 사회서비스원 설립 등의 시도가 있었다. 셋째, 수요자 중심 서비스 강화로,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확대, 맞춤형 사례관리 도입, 원스톱 서비스 체계 구축 등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첫째, 부처별, 사업별로 분절된 서비스 전달체계의 통합이다.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다양한 부처에서 유사한 복지사업이 분절적으로 운영되어 비효율과 혼란을 야기한다. 둘째, 중앙-지방 간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이다. 대부분의 복지사업이 중앙정부 주도로 설계되고 지방정부는 집행만 담당하는 구조로, 지역 특성에 맞는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 셋째, 복지인력과 인프라의 지역 간 격차다. 농어촌과 도시 간, 그리고 대도시와 중소도시 간 복지 자원의 불균형이 심각하다. 마지막으로 민관 협력의 형식화와 거버넌스 역량 부족이다. 협력체계가 제도적으로는 마련되었으나 실질적인 협력과 참여는 미흡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향후 방향으로는 첫째, 중앙-지방 간 복지 거버넌스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기준과 재원을 제공하고, 지방정부는 지역 특성에 맞는 서비스 설계와 전달을 담당하는 새로운 역할 분담이 요구된다. 둘째, 통합적 서비스 전달을 위한 제도적 기반 강화다. 복지-고용-주거-의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아우르는 통합 사례관리 체계와 정보시스템 고도화가 필요하다. 셋째, 시민참여와 공동생산 확대다. 복지서비스 설계와 전달 과정에 이용자와 지역사회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는 메커니즘이 강화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전환에 대응한 스마트 복지 거버넌스 구축이다. 기술 혁신을 활용하되 디지털 포용성을 고려한 균형 있는 접근이 중요하다.
복지 전달체계 개혁의 국제적 동향과 시사점
복지 전달체계 개혁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과제로, 다양한 국가들의 경험에서 유용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주요 국가들의 개혁 사례와 그 시사점을 살펴본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복지 전달체계 개혁의 선도적 국가로 인식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조인드업 거버넌스(joined-up governance)'를 통해 부처 간, 기관 간 칸막이를 넘어선 통합적 접근을 강조했다. 2010년 이후에는 '큰 사회(Big Society)' 개념 하에 지역사회와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최근에는 '장소 기반 접근(place-based approach)'을 통해 지역 단위의 통합적 서비스 전달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 맨체스터의 '디볼루션 맨체스터(Devolution Manchester)' 사례는 보건, 복지, 주거, 교통 등 다양한 영역의 권한을 지역으로 이양하고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한 성공적 모델로 평가받는다.
북유럽 국가들은 보편적 복지 서비스와 지방분권적 전달체계의 조화를 이룬 사례로 주목받는다. 특히 덴마크와 스웨덴은 강력한 지방자치와 함께 통합적 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축했다. 덴마크의 '원스톱 숍(one-stop shop)' 모델은 고용, 복지, 의료 서비스를 한 곳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체계로,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 접근성을 높인 사례다. 또한 핀란드의 '오헤이스토(Ohjaamo)' 청년 원스톱 센터는 청년들에게 교육, 고용, 주거, 복지 등 종합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합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호주는 복지 전달체계에 시장 원리를 적극 도입한 국가다. 1998년 도입된 '잡 네트워크(Job Network)'는 공공고용서비스를 민간 기관들과의 성과 기반 계약을 통해 제공하는 준시장 모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나타난 크리밍(creaming)과 파킹(parking) 같은, 민간기관이 취업이 쉬운 대상자에게만 집중하고 어려운 대상자는 방치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2015년부터는 '잡액티브(jobactive)' 시스템으로 개편하여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 또한 장애인 서비스 영역에서는 '국가장애보험제도(NDIS)'를 통해 개인 맞춤형 예산제와 선택권을 강화한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동향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합적 서비스 전달의 중요성이다. 복합적 욕구를 가진 대상자를 위해 부문 간, 영역 간 경계를 넘어선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지역 중심의 접근 강화다. 중앙집권적 표준화보다 지역 특성에 맞는 유연한 서비스 설계와 전달이 효과적이다. 셋째, 이용자 참여와 선택권 확대다. 서비스 이용자를 수동적 수혜자가 아닌 적극적 참여자로 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균형 잡힌 거버넌스 구축이다.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장점을 결합한 혼합 모델이 복지 전달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미래 복지 전달체계의 발전 방향: 통합성, 참여성, 지속가능성
급변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미래 복지 전달체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통합성, 참여성, 지속가능성의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통합성(integration)은 파편화된 서비스를 넘어 수요자 중심의 통합적 접근을 의미한다. 이는 서비스 통합, 정보 통합, 전달체계 통합 등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서비스 통합은 복지, 고용, 의료, 주거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통합 사례관리와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의미한다. 정보 통합은 분절된 정보시스템을 연계하여 서비스 대상자의 총체적 상황을 파악하고 맞춤형 지원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전달체계 통합은 중앙-지방정부, 공공-민간 기관 간의 효과적인 역할 분담과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 전략으로는 생애주기별 통합 서비스 체계 구축, 지역 단위 통합 복지 플랫폼 개발, 다부문 협력을 위한 제도적 인센티브 강화 등이 제시될 수 있다. 영국의 '전인적 접근(whole person approach)'이나 캐나다의 '래핑어라운드(wrapping around)' 모델은 대상자의 복합적 욕구에 대응하는 통합적 접근의 사례다.
둘째, 참여성(participation)은 서비스 이용자와 지역사회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참여를 넘어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는 실질적 참여를 의미한다. 공동설계(co-design), 공동생산(co-production), 공동평가(co-evaluation)의 원리가 복지 전달체계 전반에 확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전략으로는 참여적 의사결정 구조 확립, 지역사회 자원 네트워크 활성화, 이용자 역량강화 프로그램 확대 등이 있다. 특히 지역사회 기반 복지(community-based welfare)는 공급자 중심의 하향식 접근에서 벗어나 지역 구성원들이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는 상향식 접근을 지향한다. 스코틀랜드의 '지역사회 역량 구축(community capacity building)' 정책이나 네덜란드의 '버르트조르흐(Buurtzorg)' 모델은 참여와 자율성에 기반한 혁신적 사례로 평가된다.
셋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복지 전달체계가 장기적으로 유지 발전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재정적 지속가능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이를 위한 전략으로는 비용 효과적인 예방적 서비스 강화, 사회적 가치 측정과 성과 관리 체계 개발, 복지와 환경의 통합적 접근 등이 있다. 예방적 접근은 문제가 발생한 후 대응하는 것보다 비용 효과적이라는 증거가 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은 의료서비스와 지역사회 복지서비스를 연계하여 예방적 접근을 강화하는 모델이다. 또한 '친환경 복지(eco-welfare)' 개념은 복지와 환경의 선순환을 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미래 복지 전달체계의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결론
복지 서비스 전달체계와 거버넌스는 복지정책의 이념과 내용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전통적인 국가 중심의 관료제적 전달체계는 1980년대 이후 복지혼합, 계약주의, 신공공관리 등의 영향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최근에는 협력적 거버넌스, 공동생산, 디지털 전환 등이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요한 것은 전달체계와 거버넌스가 복지의 본질적 가치와 목적을 실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효율성과 효과성은 중요한 가치지만, 형평성, 접근성, 참여성,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가치들이 균형 있게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복지 서비스의 궁극적 목적인 인간 존엄성 보장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전달체계의 성과를 평가하고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복지 전달체계는 짧은 기간 동안 양적 확대와 질적 개선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분절성, 지역 간 격차, 관료주의적 경직성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앙-지방 간 새로운 역할 분담, 통합적 서비스 체계 구축, 이용자와 지역사회의 참여 확대, 디지털 혁신의 균형 있는 활용 등이 필요하다.
미래 복지 전달체계는 수요자 중심의 통합성, 시민참여에 기반한 참여성, 장기적 관점의 지속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 발전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행정적 변화를 넘어, 복지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즉, 전문가 중심에서 시민 중심으로, 파편적 접근에서 통합적 접근으로, 문제 대응에서 예방과 역량강화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국 효과적인 복지 전달체계와 거버넌스는 복지국가의 약속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핵심 기제다. 그것은 단순히 서비스를 전달하는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사회연대와 포용의 가치를 구현하는 사회적 장치로서 의미를 갖는다. 변화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복지 전달체계는 효율성과, 형평성, 민주성,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균형 있게 추구하며 끊임없이 혁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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