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Welfare

사회복지정책론 14. 노동시장과 소득보장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 최저임금, 실업급여, 기본소득 논쟁

SSSCHS 2025. 5. 1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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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노동시장 변화와 사회보장의 도전

현대 노동시장은 디지털화, 글로벌화,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인해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전통적인 '표준고용관계'는 해체되고, 플랫폼 노동, 긱 이코노미, 프리랜서 등 다양한 비정형 고용이 확산되는 추세다. IL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비정형 고용은 전체 고용의 약 40%를 차지하며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시장 변화는 정규직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 사회보험 체계의 효과성과 포괄성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한다. 사회보험 사각지대 확대, 소득 양극화, 중산층 축소, 저임금 일자리 증가 등 불평등 심화 현상은 새로운 소득보장 정책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최저임금제도 강화, 실업급여 개혁,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소득보장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정책들의 이론적 배경, 국가별 사례, 효과와 한계를 분석하고, 미래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통합적 사회보장 체계의 방향을 모색한다.

최저임금제도: 불평등 완화와 노동시장 효과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기본적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으로, OECD 국가 대부분이 법정 최저임금을 운영하고 있다. 최저임금에 대한 이론적 논쟁은 크게 두 관점으로 나뉜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최저임금이 고용 감소를 초래한다고 주장하지만, 제도주의 경제학은 최저임금 인상이 구매력 증가, 생산성 향상, 이직률 감소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실증연구들은 적정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Card와 Krueger(1994)의 선구적 연구를 시작으로, Dube 등(2010, 2016)의 연구는 최저임금 인상 후에도 유의미한 고용 감소가 나타나지 않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50-60%를 넘어설 경우 고용에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최근 최저임금 정책은 '생활임금'(Living Wage)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생활임금은 노동자와 가족이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수준을 의미한다. 영국은 2016년부터 '국가생활임금'을 도입했고, 미국의 여러 도시들도 연방 최저임금보다 높은 생활임금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주요국의 최저임금 정책은 다양한 모델로 발전해왔다. 영국은 저임금위원회의 독립적 권고를 바탕으로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준독립적 모델을 운영한다. 프랑스는 높은 최저임금(SMIC)을 유지하며, 물가상승률과 노동자 평균임금 상승률에 자동 연동된다. 독일은 2015년에 법정 최저임금을 도입한 후발주자지만, 빠르게 수준을 높여 2022년 12유로로 인상했다. 미국은 연방 최저임금($7.25, 2009년 이후 동결)과 주·지방정부 최저임금의 이원화된 구조로, 지역 간 임금 격차가 크다.

한국은 2018년 16.4% 인상을 시작으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을 경험했으며, 소득 불평등 완화와 자영업자 부담 증가라는 상반된 평가가 공존한다. 최저임금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특성과 경제상황에 맞는 적정 수준 설정, 단계적 인상, 기업 적응 지원, EITC 등 보완적 정책과의 연계가 중요하다.

실업급여제도: 노동시장 유연안정성의 핵심 축

실업급여는 실직자에게 임시적 소득지원을 제공하여 소득안정성을 높이고, 적절한 일자리를 찾을 시간적 여유를 보장하는 제도다. 실업급여 제도의 주요 설계 요소로는 수급자격, 급여수준, 급여기간, 재원조달 방식 등이 있다.

실업급여 제도의 핵심 쟁점은 '보장과 효율의 딜레마'다. 지나치게 관대한 급여는 구직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고, 너무 제한적인 급여는 소득보장 기능이 약화되고 노동시장 매칭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의 실업급여 개혁은 '활성화'(activation) 전략과의 결합을 강조한다. 실업급여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ALMP)을 연계하여 수급자의 권리와 의무를 균형 있게 설정하는 접근이다.

실업급여 제도는 복지국가 유형에 따라 상이한 특성을 보인다. 북유럽 국가들은 관대한 실업급여와 강력한 활성화 정책을 결합한다. 덴마크의 '황금삼각형'(Golden Triangle) 모델은 유연한 해고규제, 관대한 실업급여, 강력한 활성화 조치의 조합으로 '유연안정성'(flexicurity)의 대표적 사례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 '하르츠 개혁'을 통해 기존 실업급여 체계를 개편했다. 실업급여 I은 기존 사회보험 방식의 단기 실업급여, 실업급여 II(현재 Bürgergeld)는 장기 실업자와 저소득층을 위한 최저생활 보장 성격의 급여다. 이 개혁은 독일 실업률 감소에 기여했으나, 저임금 일자리 증가와 불안정 고용 확대라는 부작용도 낳았다.

영미권 국가들은 제한적인 실업급여 체계를 운영한다. 미국의 실업급여는 주정부가 운영하며 급여기간이 짧고 소득대체율도 낮다. 영국은 구직자수당이라는 정액급여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다양한 자산조사 기반 사회부조와 연계된다.

한국의 고용보험은 1995년 도입되었으며, 최근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등으로 적용범위를 넓히는 '전국민 고용보험'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의 사각지대가 크고, 급여수준과 기간이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의 교훈

핀란드는 2017-2018년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의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했다. 2,000명의 실업급여 수급자에게 월 560유로의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2년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실험 결과, 기본소득 그룹의 고용률은 대조군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기본소득이 노동의욕을 크게 저하시키지 않음을 보여준다. 반면, 기본소득 수급자들은 건강상태와 심리적 웰빙, 재정적 안정감, 사회적 신뢰 측면에서 뚜렷한 개선을 보였다.

핀란드 실험의 한계는 대상자가 실업자로 제한되고 급여수준이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완전히 대체할 만큼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실험은 실업급여와 기본소득의 결합 가능성, 조건부 급여의 한계, 웰빙과 자율성 증진의 중요성 등 유의미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했다.

기본소득 논쟁: 철학적 기반과 정책 실험

기본소득은 모든 구성원에게 무조건적으로 정기적인 현금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다. 자산조사나 노동 요건 없이 보편적으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보장제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감소 우려, 플랫폼 경제 확산과 불안정 노동 증가,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 문제 등을 배경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기본소득의 철학적 기반은 다양한 이론적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개인의 실질적 자유와 자율성 증진, 공화주의적 관점에서는 경제적 예속으로부터의 해방과 시민권 강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는 자본주의적 노동강제에 대한 대안, 페미니즘적 관점에서는 무급 돌봄노동의 인정과 젠더 평등 등 다양한 이론적 정당화가 이루어진다.

기본소득의 구체적 설계는 크게 완전기본소득과 부분기본소득으로 나눌 수 있다. 완전기본소득은 기본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며 기존 제도를 대체하는 성격이 강하고, 부분기본소득은 생활유지에 불충분한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며 기존 제도와 보완적으로 운영된다.

기본소득과 유사한 현금 지급 실험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캐나다 마니토바주의 '민컴'(Mincome) 실험, 나미비아의 오치베로 실험, 인도 마드야프라데시주 실험 등이 있다. 최근에는 미국 스톡턴시의 SEED 프로젝트, Y Combinator의 실험, GiveDirectly의 케냐 실험 등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서울시 청년수당 등 청년층 대상 현금성 지원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기본소득과 유사하지만 차이가 있는 제도로는 알래스카 영구기금 배당금, 이란의 에너지 보조금 개혁, 미국의 EITC와 자녀세액공제 등이 있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규범적 차원과 실용적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규범적 차원에서 찬성 측은 기본소득이 실질적 자유와 사회정의를 증진하고 경제적 기본권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호혜성과 상호의무의 원칙에 위배되고 노동윤리를 약화시킨다고 비판한다.

실용적 차원에서 찬성 측은 기본소득이 새로운 사회안전망이 될 수 있고, 사각지대와 낙인효과를 해소하며, 행정비용을 절감하고 빈곤함정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막대한 재정 부담, 인플레이션 위험, 노동공급 감소 가능성, 기존 사회서비스의 약화 등을 우려한다.

통합적 소득보장 체계의 모색: 하이브리드 모델

현대 노동시장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고려할 때, 어느 한 가지 정책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최저임금, 실업급여, 기본소득 등 각 정책은 고유한 장단점과 적용 대상을 가지며, 이들을 상호보완적으로 조합하는 '하이브리드 접근'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은 노동시장 참여자의 적정 소득을 보장하는 1차적 수단으로, 실업급여는 노동시장 이행기의 소득 단절을 보완하고, 부분적 기본소득은 사각지대를 포괄하는 안전망으로 작동할 수 있다. 여기에 EITC와 같은 노동연계 급여, 아동수당과 같은 인구학적 특성 기반 급여 등을 결합하여 종합적 소득보장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의 사례로 네덜란드와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 프랑스의 '활동연대소득', 영국의 '유니버설 크레딧', 스페인의 '최저생활소득' 등이 있다. 이들은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응하여 포괄성과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미래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소득보장 정책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 기초하여 발전해야 한다. 첫째, 포괄성이다. 다양한 고용형태와 삶의 경로를 포용하는 사회보장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이동성이다. 직업과 고용형태 변화에도 지속되는 사회보장 권리의 이동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 개인화다.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의 권리로서 사회보장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넷째, 자율성 증진이다. 단순한 생존 보장을 넘어 개인의 선택권과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결론

노동시장의 근본적 변화는 전통적 사회보장제도의 한계를 드러내고, 새로운 소득보장 정책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최저임금, 실업급여, 기본소득 등 다양한 정책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은 각각의 장단점과 적용 맥락을 가진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노동시장 외부자에게는 혜택이 제한적이다. 실업급여는 노동시장 이행기의 소득 안정성을 높이지만, 고용형태 다변화로 인한 사각지대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포괄성과 무조건성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재정적 실현가능성과 기존 제도와의 조화 문제가 과제로 남아있다.

미래 소득보장 정책은 각 제도의 장점을 살리고 한계를 보완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실업급여-부분 기본소득의 조합, EITC와 같은 노동연계 급여의 확대, 사회보험의 포괄성 강화 등 다층적 접근을 통해 모든 시민의 기본적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노동과 복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은 21세기 복지국가의 핵심 과제다. 표준적 고용관계에 기반한 20세기 복지국가 모델을 넘어, 다양한 삶의 경로와 노동형태를 포용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이 요구된다. 이는 단순한 제도 개혁을 넘어, 노동의 가치, 분배 정의, 사회적 시민권에 대한 근본적 재고를 필요로 하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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